이드 2부 – 177화
614화
마르텔이 이드의 만검수련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블러디 혼이라는, 적에게 끔찍한 별명을 가진 그는 삼검왕 중 폭급한 성격으로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무공 수련에 가장 열정적인 수련광이기도 했다.
소드 팰러스에서 검후를 제외하고 최강이라 불리며 존경받는 삼검왕의 일인이면서도 단 하루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는데, 무공수련이 곧 취미이자 특기이며 또 생활인 사람이었다.
평소처럼 또 하루 수련장에서 밤을 새운 그가 가장 먼저 들은 소식이 바로 이드의 만검수련에 대한 이야기였다.
원래는 전날 전해 들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수련장에 들어가면 누구도 들이지 않고 수련에 빠지는 습관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하루 늦은 것이다. 마르텔에게 만검수련에 대한 소식을 전한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긴장감에 꼴깍꼴깍 침을 삼켰다.
그의 정수리로 훙훙 거친 콧바람이 쏟아져 머리카락이 날렸지만 찝찝하거나 불쾌하다는 생각을 할 정신이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삼검왕이 화가 나서 노골적인 불쾌감을 보이고 있는데 그런 게 눈에 들어올까. 그저 살 떨리는 거친 기세에 바들바들 몸을 떨기 바빴다.
“다시 말해 봐라. 뭐? 무슨 수련을 한다고?”
“느, 느리게 검술을 펼치는 훈련입니다. 베, 벤…………..”
“벤딩!”
“옙! 벤딩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썅!”
어거지로 재촉한 대답을 들은 마르텔이 거친 욕설을 뱉었다. 분노한 그는 그 앞에 서 있던 남자가 하얗게 질려서 휘청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마르텔이 그대로 방을 뛰어나가자 겨우 버티고 서 있던 남자가 힘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에고, 죽겠다! 마르텔 님 시중은 정말 피가 마르는구나. 앞으로 한 달 남았나?”
남자는 자신이 일할 날을 손으로 꼽아 보며 말했다. 그 폭급하고 살기등등한 기세 탓에 삼검왕 중 유일하게 시종들이 두 달마다 바뀌는 마르텔이었다.
“제발, 그동안 마르텔 님이 화내실 만한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씩씩거리며 방을 나선 마르텔은 한달음에 페시딘의 방을 향해 내달렸다.
그가 달리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미노타우르스의 돌진이라도 피하는 양 알아서 분분히 몸을 날렸다. 누구도 화난 블러디 혼의 뿔에 받히고 싶은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벤딩? 벤딩 훈련이라고? 도대체 언제 적에 폐기된 수련법을 들고 지랄이야! 이봐, 페시딘! 그거 들었나?”
페시딘의 방문을 부서트릴 듯 열어젖힌 마르텔이 버럭 소리쳤다.
모르는 사람이 당했다가는 놀라 가슴을 부여잡아야 할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그러나 삼검왕이라는 이름으로 수십 년을 함께한 페시딘은 익숙한 모습으로 작성하고 있던 서류의 필체 하나 흩트리지 않고 태연히 대답했다.
“난 어제 올 줄 알았는데. 또 수련장에서 밤을 새웠나? 아, 그리고 문부터 닫아 주겠나?”
“나야 늘 그렇지. 그보다 사람이 왔으면 얼굴이라도 좀 보여. 그렇게 얼굴 책상에 박고 있지 말고.”
평이한 페시딘의 대답에 그제야 흥분이 가라앉은 마르텔이 말했다.
“자네 얼굴이야 내 검보다 자세히 아는데, 따로 볼 필요 있나?”
“흥! 그보다 자네도 들었겠지?”
“어제 들었네.”
여전히 서류를 작성 중인 페시딘의 대답에 마르텔의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그런데도 따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건가? 그따위 짓을 하고 있다면 당연히 막아야지!”
“벤딩 훈련이 불법도 아닌데 무슨 이유로 말인가?”
“익! 몰라서 하는 소리야! 벤딩이라고, 벤딩! 빌어먹게 골골거리는 마법사 떨거지가 펜대 굴려 만들어 놓고 그럴듯하게 지 이름을 붙여 만든 X 같은 훈련법! 그건 그 자체로 불법이라고!”
발악하듯 소리치는 마르텔의 말에 그제야 페시딘의 고개가 들려졌다.
“자네 생각이야 충분히 이해하네만 그 훈련법이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효과 없어! 우리가 그 빌어먹을 훈련법 때문에 손해 본 시간만 1년이야. 그 시간에 평범하게 칼만 휘둘렀어도 두 배 이상의 효과는 봤을 거라고!” 마르텔은 보란 듯이 거칠게 검을 뽑아서는 상단에서 검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구웅-
미세하게 전진하는 검 끝에 바위라도 갈아 버릴 것만 같은 무거운 힘이 걸리며, 방 안의 공기가 짜부라졌다.
수련생들이 이해하지 못하던 완벽한 중검의 일초였다.
그러나 드높은 검술의 경지를 보이면서도 마르텔의 얼굴에는 불만과 거부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결국 중간에 검을 멈추고 짜증을 담아 소파에 검을 던져 버렸다.
“답답해서 죽지! 이딴 게 무슨 수련이라고!”
페시딘은 질색 하는 마르텔의 모습에 희미한 고소를 지었다.
사실 마르텔의 말처럼 벤딩 훈련이 영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만검수련과 똑같은 수련 방법을 가진 벤딩 훈련은 처음에 수련자의 검식과 육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주고 급한 성격을 순화해 침착하게 만들게 하는 등의 몇 가지 효과를 가지고 주목을 받았다.
특히 당시에도 폭급한 성격이던 마르텔에게는 성격 개조를 이유를 그 수련법이 강압적으로 지도되었고, 그는 급한 성격에 화를 삭이고 가슴을 두드려 가며 1년을 고생해야 했다.
그러나 만검수련에서 이드가 강조한 두 가지 핵심적인 요소를 가지지 못한 벤딩 훈련의 훈련 효과는 미미했다.
결론적으로 같은 시간 다른 훈련을 하는 것이 두 배 이상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무엇보다 마르텔의 성격 교정도 실패해 버렸다.
훈련이 실패로 돌아가고 폭주하던 마르텔은 정말이지 무서웠다. 당장 훈련을 개발한 마법사가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있었다면 둘 모두에게 매우 불행한 사태가 일어났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마르텔과 같은 이유로 벤딩 훈련을 한 다른 수련자의 경우에도 미미한 효과를 보기는 했지만 특기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이후 벤딩 훈련은 사장되었다. 공식적으로 폐기되어 쓸모없다는 도장이 찍혔다.
그 위에 마르텔이 길길이 날뛰며 벤딩의 벤도 꺼내지 못하게 뚜껑까지 덮어 버렸다.
마르텔이 벤딩 훈련이라는 이야기에 분노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벤딩 훈련 자체가 잘못인 것도 아니고, 불법은 더더욱 아니다. 누구도 추천하지 않을 뿐이지 특징적인 효과는 있으니까.
하지만 페시딘이 신경 쓰이는 것은 벤딩 훈련법이 아니라 이드에게 지도받는 수련생의 수와 그 소문에 있었다.
이전 조용히 여수련생 두 명을 가르치던 것과는 상황이 달랐다. 그때는 관심조차 받지 못했는데, 지금은 수련생들 본인뿐 아니라 소드 팰러스 전체에 이드에 대한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그것도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이드를 황궁에 보내기 전에 그와의 관계를 확실히 매듭지을 필요가 있는 이 시점에 말이다.
‘좋지 않아.’
페시딘은 마침 나타난 마르텔을 써 보기로 했다. 지금 이드가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블러디 혼의 반대에도 지금처럼 이슈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냥 둘 수는 없겠지.”
“역시 그렇지? 벤딩은 오히려 수련생들의 시간만 잡아먹게 될 거라고.”
가볍게 던진 말을 마르텔이 덥석 물고 늘어졌다.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없잖아 있네. 그자에게 직접 지도를 요청한 수련생들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선택이지만, 마인드 마스터의 이름에 혹해서 효과가 미미한 수련을 하게 될 다른 수련생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해. 하지만 벤딩 훈련이 불법이 아닌 이상 공식적으로 훈련을 금지시킬 수는 없는 게 문제야.”
“흥, 공식적으로 하지 못하면 당사자가 중지하도록 해야지!”
씨익.
페시딘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럼 자네가 그 당사자를 만나 보겠나? 효과 없는 훈련을 그만두도록.”
딱 입맛에 맞는 대답에 당장 고개를 끄덕이려던 마르텔이 무슨 생각이 났는지 멈칫했다.
“그런데 내가 만나러 가도 되겠나? 지금까지 거리를 두고 있었잖아.”
“이제 그러고 있을 수도 없어. 자네도 후작의 말을 들었지 않나. 시간이 없으니 우리도 좀 거칠게 나갈 필요가 있어.”
“으흐흐. 그런 일이라면 내가 자신 있지. 좋아, 맡겨 주게. 내가 확실히 처리하겠네. 마인드 마스터의 진짜 수련 방법도 있을 텐데 벤딩이 뭐야, 벤딩이!”
마르텔은 이드와 벤딩을 한꺼번에 갈아 버리겠다는 듯 이를 갈았다.
벤딩 훈련이 가지지 못한 무학의 정수를 품은 만검수련을 벤딩 훈련과 같은 외형만으로 판단한 그들의 실수였다.
“확실히 효과가 있다. 이건 벤딩 훈련이 아니다.”
만검수련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얻은 워스는 만검수련을 인정하고 있었다.
페시딘의 방에서 에단의 보고서를 빼돌린 그이기 때문에 이드가 내어놓은 만검수련을 단순한 벤딩 훈련이라고 그냥 넘기지 않았다.
모종의 방법을 통해 수련생들에게 은밀한 비결로 보안이 강조된 수련의 핵심 키워드 두 가지를 획득한 워스의 태도는 진지할 수밖에 없었다. 워스는 꼬박 하루를 만검수련에 투자했고, 그레이트 소드라는 드높은 경지를 통해 만검수련에 숨어 있는 효과를 완벽히 이해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마인드 마스터의 오리지널 수련법일 것이다. 내가 원했던 게 바로 이런 거라고! 만검수련 같은 수련법만 있다면 검후의 무공이 없어도 난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긴 시간 자신을 가로막고 선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벽을 넘을 단서를 찾은 워스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제 망설일 이유가 없다. 직접 그를 만나야겠어.”
결심을 굳힌 워스의 눈에 젊은 시절 사라진 열정의 불꽃이 다시 살아났다.
마인드 마스터의 수련법!
소드 팰러스에 수련 열풍이 불었다.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가 수련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꺼내 놓은 수련생 전용의 수련법이라는 말에 너도나도 검을 들고 끙끙거렸다.
개중에는 마르텔처럼 벤딩 훈련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주변의 열기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았다.
“마스터, 밖에 나가 보셨습니까? 진짜 어마어마합니다. 소드 팰러스의 모든 인간들이 만검수련의 수련생이 된 것 같습니다.”
에단이 허허거리며 자신의 일처럼 자랑했다.
이드도 그 믿기지 않는 전파 속도에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나도 이렇게 빠를 줄 생각도 못 했다. 수련생들이 일부러 소문내고 다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야.”
“하하. 그럴 리가요. 뭐, 기막히게 빠르기는 하지요. 그래도 마스터의 수련법이 아닙니까. 이 정도로 이슈가 되는 건 당연한 겁니다. 더구나 저 수련생들이 자기 숙소로 흩어져서 만검수련을 하면 보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강호 무림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소드 팰러스에서는 타인의 수련 방법을 묻는 것은 금기가 아니었다.
그것이 금기였다면 지금 저택에 모여든 수련생들이 그렇게 쉽게 이드에게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매달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만검은 정신과 마음가짐이 중요해. 단순히 외형만 따라 해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을 텐데.”
“그거야 따라 하는 자들이 감수할 일이지요. 혹 엉터리라는 말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수련생들의 무공이 발전하면 그런 말도 쑥 들어갈 겁니다.” 이드의 말 속에 든 우려를 빠르게 캐치한 에단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비결에 대한 소문은 없으니까. 녀석들 제법 믿을 만하잖아.”
“모두 소드 팰러스의 수련생입니다. 그건 배우는 사람의 기본, 아니, 인간으로서 기본입니다! 만약 기본도 안 된 인간이 있다면 제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에단은 마치 수련생들에게 들으라는 듯 살벌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만검수련을 하는 수련생들 중 그의 말에 겁을 먹는 수련생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역시 생각보다 너무 빨리 퍼져서 걱정이네. 이렇게 시끄러워지면 꼭 벌레가 꼬인다고.”
이드가 아무래도 찝찝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에이,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수업을 받고 싶으면 추천서부터 넣으라고 했고, 은색 기사단의 쉴라 경과도 친분이 있는 모습을 보이셔서 어지간히 간이 큰 놈이 아니면 허튼 생각을 가지고 찾아오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나 그런 에단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달달한 냄새에 혹한 벌레가 나타났다.
그것도 이미 한 번 얼굴을 들이밀었던 벌레.
“으허허. 이드 경, 축하하오. 지금 소드 팰러스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셨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