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201화
638화
에단은 예전에도 초인과 싸우며 상대의 초인기를 흡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에단만이 인지한 일로, 그의 말을 듣고 다양한 방법으로 에단을 살펴본 라미아와 비올라는 아무런 이상 증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에단이 지극히 정상이며, 건강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이드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금 에단이 다시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럼 결국 그 일이 우연은 아니라는 거네. 하기야 무인에게는 내공과 같은 초인력이 자동으로 흡수되는 게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매끈한 턱을 쓰다듬던 이드는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 재등장에 버릇처럼 라미아를 돌아보았지만 그녀라고 만능은 아니었다.
[다시 검사해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특별하게 감지되는 건 없어요.]
역시나 그럴 것 같았다.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이라고 발견할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달라. 저번엔 에단 혼자였지만, 이번에는 에단이 초인력을 흡수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목격자가 있어. 그것도 초인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말이지.’
입술을 축인 이드가 살짝 기대하는 눈으로 에단 옆에 앉아 있는 비올라를 바라보았다. 평소 데면데면한 면이 없잖아 있던 두 사람이 오늘은 유난스러울 정도로 딱 붙어 앉아 있었다.
이드는 그 이유가 비올라가 에단이 초인력을 흡수하는 것을 목격한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에단과 같이 있었잖아. 어때? 뭐 본 거 없어?”
“확실히 봤습니다. 이전에 아무런 흔적도 없어서 거짓말이 아닌가 의심을 했는데, 확실히 그건 아니었습니다.”
비올라가 묻기를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야, 내가 뭐가 아쉬워서 그딴 거짓말을 하냐!”
멀끔한 얼굴로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만들려 하자 기가 막힌 에단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비올라는 깔끔하게 그 소리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관련으로 요청하고 싶었던 것이 있습니다.”
“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
혹시 초인력이 흡수되는 것에 대해 무언가 알아낸 거라도 있는 건가? 이드는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고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초인력을 흡수한 건 사실입니다. 이전에는 없던 능력이 생겼다는 것은 초인력을 흡수하게 만드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에단의 몸 안에 생겼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일입니다. 마법학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세력을 불리려는 자들로서는 억만금을 대가로 주고라도 알고 싶어 할 비밀일 겁니다.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겁니다!”
열변을 토하는 비올라였지만, 드래곤 레어의 보물을 탈탈 털어서 가지고 있는 이드에게 돈은 그리 매력적인 물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에단을 해부해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시면 에단이 초인력을 흡수할 수 있는 이유를 밝혀 바치겠습니다.”
“무………… 뭐, 해부? 미쳤냐!”
에단이 기절할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이드를 돌아보았다.
이드는 저 바보가 자신을 왜 쳐다보는지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자신이 비올라의 요청을 허락이라도 할까 봐?
“불가! 그게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고 해도 에단의 희생을 전제로 얻을 생각은 없다.”
“마스터~!”
이드의 즉답에 에단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하지만 이드는 그 모습이 한심하게 보였다.
“방금 해부라는 말에 날 돌아본 것도 그렇고, 지금 반응도 그렇고……… 설마 내가 허락할 거라고 생각한 거냐? 날 고작 그 정도 인간으로 보고 있었단 말이야?”
“아닙니다, 마스터. 그런 게 아니라 하도 어이없는 말이 나와서 그만………….”
“그래도 그렇지! 거기다 해부해 보자고 하면 얌전히 당할 것도 아니잖아.”
“그・・・・・・렇죠?”
에단이 살살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자신에게 해가 되는 명령을 거부하는, 충성도 모르는 인간이 될 것 같고, 아니라고 하면 “좋아. 억지를 부릴 생각만 아니라면 네가 옆에 있어 주는 것이 혹시 있을지 모를 사태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으니 좋겠지. 하지만 같이 다니기 시작하면 에단의 명령을 들어야 할 거야. 이번 일의 책임자는 에단이니까.”
이드는 비올라의 요청을 허락하는 대신 조건을 달았다.
“물론입니다.”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비올라가 즉시 받아들였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에단의 옆에서 그를 연구하고, 궁극적으로 그를 해부의 길로 인도하는 것. 그 외에 바라는 것은 없었다.
“마스터, 이번처럼 은밀한 일에 이 자식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에단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이제부터 비올라가 알아낸 좌표로 가 검후를 납치하고 쉴라까지 납치하려 했던 초인들의 소굴을 조사하고, 추적해야 했다.
이런 일이 다 그렇지만 특히나 은밀하고, 섬세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비올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당장 마법사라는 존재 자체가 문제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관심을 받고 주목을 받는 존재들이었다.
그만큼 귀한 직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드는 결정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네가 좀 더 고생해라. 비올라가 눈에 띄는 건, 사람을 더 써서 비올라의 존재감을 묻으면 해결될 거 아냐. 난 오랜만에 얻은 쓸 만한 부하를 어이없이 잃고 싶지 않다고.”
이드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생각해서 말을 하니, 에단도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을 그만큼 귀하게 여겨 준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고개를 숙이고 비올라를 돌아보며 다짐을 받듯이 말했다.
“일단 마스터가 명령하시니 같이 다니기는 하는데, 절대 튀는 행동은 하지 말고 내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라. 그것만 약속하면 해부를 제외한 네 연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
“현명한 생각이다. 약속하지. 합리적인 명령이라고 판단되면 네 명령을 어기는 일은 없을 거다.”
마법사와 실험 대상 간의 극적인 협약이 타결되었다.
“그렇게 됐으니까 바이트 타블렛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혼자 고생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이드는 에단이 임무 수행 시 주의 사항을 주지시키는 것을 지켜보다 라미아에게 말했다.
[걱정 말아요. 바이트 타블렛에 대한 건 거의 완료되었으니까요. 사실, 비올라가 에단에게 붙은 것도 거의 조사가 끝나서 그런 거라고요. 아니면, 저 마법 오타쿠가 에단을 돕겠다고 나설 리가 없죠.]
투덜투덜 흉을 보는 말에 이드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러는 사이 날이 밝았다. 밤새 움직인 이드들은 조금 이른 아침을 먹었다. 밤을 새운 전투에 대한 피로는 견딜 수 있어도, 허기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수련생들이 하나둘 저택으로 들어서자 그들 사이에 섞여 스폴과 데일리도 출근을 했다.
기어이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그들 사이에는 쉴라까지 섞여 있어서 수련생들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스폴과 데일리와 함께하는 쉴라의 모습에 혹시 그녀에게 수업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를 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수련장에 들르지도 않은 쉴라가 곧장 이드들이 모여 있는 저택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수련장에 들러 한마디 짧은 격려라도 남겼을 테지만 상심한 지금의 쉴라에게 거기까지 세심한 배려를 바라기는 어려웠다.
“제가 많이 기다리게 했군요.”
“그만큼 쉴라 경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뜻이니, 저희보다는 쉴라 경이 고생이지요.”
이드는 쉴라에게 비어 있는 자리를 내어주며 그녀를 반겼다. 그리고 그녀가 오기 전 결정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모두 이미 계획했던 대로군요. 그런데 알아낸 좌표는 어디를 가리키는 건가요?”
쉴라의 물음에 클라인이 커다란 제국 전도를 펼쳤다.
그리고 비올라가 일어나 거의 붙어 있는 두 장소를 찍어 보였다.
“여기와 여기, 두 곳이다.”
“자자수 영지.”
지도에 적힌 지명을 읽어 내는 쉴라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그럴 만도 하지. 부하들의 목숨과 바꾼 정보니까.’
당장 해부대 위로 보낼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대답이 애매해. 쯧쯧, 하여간 해부는 안 돼.”
이드는 ‘백전의 용자도 해부라는 낯선 단어가 무서운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정말 진지하게 해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인력의 흡수 원인을 밝혀내면 마법사에 한 획을 긋는 엄청난 대발견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에단의 이름이 역사서와 마법서에 새겨질 테고, 그에게도 엄청난 영광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영광 너나 해라!”
죽은 후에 역사고 영광이고 무슨 소용이 있다고!
“본인이 싫단다. 그리고 그거 발견해 봤자 초인들만 좋은 일이잖아? 죄 없는 희생자도 생길 것이고. 밝혀서 좋을 게 없을 것 같다. 그러니 더 이상 이야기 꺼내지 마. 해부는 절대 안. 돼.”
“으음…….”
이드가 단호히 말을 끊자 입술을 달싹이던 비올라가 침묵했다. 본인은 물론이고 그 주인까지 싫다고 하니 당장 말을 바꾸게 만들기는 틀렸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한 것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일단 본인부터 설득하는 게 먼저다. 본인이 동참하겠다고 하면 저 인간이 어쩌겠어?”
이드 앞에 약자일 수밖에 없는 비올라는 공략의 대상을 이드에서 에단으로 바꾸었다.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스스로 해부를 당하겠다고 자처하겠는가. 하지만 오로지 마법사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비올라는 이 일을 충분히 설명하고, 그가 가지게 될 영광을 주지시키면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물론,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비올라가 일단 포기한 듯 보이자 이드는 에단의 검사를 라미아에게 다시 부탁했다.
“조금 이따가 라미아와 비올라에게 다시 검사를 받아 봐. 자세히 살피면 이번엔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이상이 없으면 바로 일을 시작하고, 초인력 흡수가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처럼 은밀히 진행해야 할 일에는 네가 가장 적합할 것 같으니까.”
“맡겨 주십시오, 마스터. 제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습니다. 간파의 눈에 걸리는 것도 없고요. 솔직히 그냥 흡수되다가 다시 흩어져 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돕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뭔가 답이 나올 때까지 어지간하면 네가 직접 초인을 상대로 싸우는 일은 자제하는 걸로 하자.”
이드의 당부에 에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이드가 자신을 이만큼 생각해 준다는 사실이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제가 에단과 같이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에단을 어떻게 해부에 동의하도록 만들까 하고 눈만 뒤룩뒤룩 굴리고 있던 비올라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야, 난 실험실 개구리가 될 생각 없다고!”
“나도 네가 싫다고 하면 강제하지는 않는다.”
“이게 끝까지 안 한다고는 안 하네.”
“사람의 가치관과 생각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거니까.”
아무리 가치관이 바뀌어도 자청해서 해부당할 정신머리를 가진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꿈도 꾸지 마라! 그리고 그거 노린 게 아니면 네가 왜 날 따라오겠다는 건데?”
버럭버럭 따지고 드는 에단을 무시하고 비올라가 이드를 보며 말했다.
“해부는 일단 포기하겠습니다. 대신 제가 옆에서 따라다니면서 에단을 살피고 연구해 볼 생각입니다. 만약 다시 이와 같은 사건이 생기거나 변화가 생긴다면 제가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의견인데.”
해부를 ‘일단’ 포기했다는 말이 걸리긴 했지만 무시했다. 그걸 제외하면 비올라의 말은 합당했다. 이유도 알 수 없는 이상 증상이 생긴 에단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도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 나갈 때만 해도 바이트 타블렛을 연구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싫어라 했잖아.”
“…바이트 타블렛은 제가 가지기로 약속되어 있으니 언제든 연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이 알 수 없는 현상으로 언제 무슨 일이 생겨서 죽을지 모르는 에단의 연구는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중요한 연구라도 선후는 있는 법이지요.”
“내 죽음은 확정이냐? 어디 순순히 죽어 준대?”
좀 어이없기는 하지만 확실히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이드도 내심 그 땅에서 적의 꼬리를 집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두 곳이 가깝기는 하지만, 좌표가 왜 두 개야?”
“이유는 모릅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여기, 두 번째는 여기로 짧은 시간을 두고 이동했습니다. 그렇게 빠르지 않았으면 두 번째 좌표는 사계의 눈이 먼저 말라 죽어서 얻을 수 없었을 겁니다.”
“어쩌면 첫 번째 좌표는 혹시 있을지 모를 추적을 대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클라인이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표식을 하며 자신의 짐작을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그럼 사람이 모이고, 조사가 시작되면 알려주세요. 기사들을 준비시키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번 일을 책임지게 된 에단이 고개를 숙였다.
인사를 받은 쉴라가 이번에는 비올라를 바라보았다.
“그대에게도 감사한다. 생명의 관에서 카린 경을 구할 때도 신세를 졌고, 영혼의 관과 정신의 관에 대한 정보를 얻는 일에도 신세를 졌는데, 이번에 또 도움을 받았다.”
“흥, 그럼 보답해라.”
이드 앞에서 꼬박꼬박 존대를 사용하던 비올라가 금세 거만한 투로 대답했다. 쉴라가 그보다 나이도 많은데 끝까지 지지 않으려 하는 모습에 이드가 작게 혀를 차는 중에 쉴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보답해야지. 앞서 보답으로 데이트를 원한다고 했었으니, 그 데이트 내일 하도록 하지.”
….응?”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있던 비올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