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226화
663화
“…..”
페시딘과의 대화를 마친 라울은 미묘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레오날도 후작이 이드를 황제의 손에 쥐여 주기 위해서 움직였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드가 이렇게 빨리 황궁으로 갈 줄은 몰랐다.
아니, 그전에 삼검왕이 나서서 이드를 잡아 둘 거라고 생각했다.
“이거, 그동안 천천히 그물을 치고 있던 일이 헛수고가 되어 버렸군. 삼검왕이 무능한 거야? 아니면 이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가 권력에 욕심이 있었나? 그렇게 보이진 않던데.”
그는 자신이 언급한 두 사람에 대해서 제법 잘 파악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방금 전까지 상대하고 있던 삼검왕은 절대 멍청한 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일의 맥을 잘 짚고, 상대의 약점도 잘 이용할 줄 안다.
진짜 어리석은 자였다면 오늘도 자신이 아닌 발터를 붙잡고 하소연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드도 권력에 욕심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라울이 눈을 가리고 책장을 바라보며 눈에 이상이 없는지를 확인했다.
“초인. 검후론 제국 운영. 음, 잘 보여. 시력에 이상이 없는 걸 보면 사람 보는 눈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럼 그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황궁으로 가는 거지?”
어지간히 명성이 높고, 권력 있는 자는 작은 움직임 하나 생각 없이 하진 않는다. 라울은 이드도 분명 그러할 거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드가 자신의 의도를 말해 주지 않는 이상 같은 소드 팰러스에 살고 있는 삼검왕도 파악하지 못한 사실을 그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 곧 드러날 테지. 그 전까지는 해 달라는 대로 따라 줄까.”
페시딘과 꾸민 계획은 나쁘지 않았다. 혼자 움직일 때보다 얻는 것이 적긴 하지만 그거야 이쪽에서 좀 더 힘을 쓰면 될 일이다.
“요즘 세상에 누가 계획을 정해진 대로만 진행하나? 융통성 있게 조종하면서 최대한 이익을 뽑아내는 거지.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니겠어.”
당장 페시딘이 요청한 일만 해도 그렇다. 거두어야 할 그물이긴 하지만, 그중 몇 가지를 놓아두면 따로 페시딘의 요청에 따라 두 번 일할 필요는 없어질 것이다. 꼭 물건만 재활용하라는 법은 없다. 엎어진 계획도 적당히 방향을 틀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오랜만에 사람들 좀 바쁘게 만들어 볼까?”
시원하게 기지개를 켠 라울이 밖에 있는 비서를 부르며 말했다. 대륙 초인들의 중심축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항상 느긋하던 그가 오늘은 오랜만에 바쁠 것 같았다.
코어를 사용한 에고 링스피어라는 정체불명의 미끼를 물어 버린 케마란을 위해 라미아는 소울 다이브 마법을 준비했다. 이 마법은 기존의 다양한 마법들을 융합하고 연계시켜 단일화한, 라미아 오리지널의 마법이었다.
이전 카렌의 정신세계에 침투할 때 사용했던 마법을 좀 더 스마트하고, 세련되게 다듬어 낸 것이다. 그때 생각 외로 뛰어난 효과를 보여서 혹시 다시 사용하게 될 사태를 대비해서 짬짬이 신경을 써서 만들어 둔 마법이었다.
“이렇게 딱 알맞게 사용하게 되는 순간이 오길 기다린 건 아니지만. 뭐, 새 마법을 만든 입장에서는 적절하게 쓸 수 있어서 흐뭇하네요.”
라미아가 연구실 바닥에 마법진을 설치하며 말했다. 열 개가 넘는 크고 작은 마법진을 사용했던 카렌 때와 달리 소울 다이브는 두 개의 대형 마법진만 있으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준비에는 시간이 걸렸다. 두 개의 마법진이라고 해도 매우 세밀하고 복잡했으니까. 정신과 정신의 접촉이란 것은 신체 접촉보다 수십 배 조심하고,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 점을 제외하더라도 소울 다이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케마란을 필수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일에 가장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이드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준비에 끝나면 부르라는 말을 남기고 수련장으로 올라갔다.
“아, 놀면 뭐해. 곧 황궁에 가는데 그 전에 수련생들 무공 한 자락이라도 더 봐줘야지.”
진심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자리를 비워서 자신의 이름 하나 보고 모여든 수련생들의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었다. 무공이라는 것이 매일 옆에 붙어서 호흡이 어쩌니, 몸의 중심이 어쩌니, 검이 이러니 하며 일일이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생이 앞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더 든든하고 수업에 대한 확신이 생기는 것이니 말이다.
스폴과 데일리가 빈자리를 어느 정도 메워 주기는 했지만, 대리는 대리일 뿐 메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사실 이드는 알지 못했지만 그가 가진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라는 타이틀은 그의 빈자리를 충분히 메꿔 주고 있었다. 애초에 그 타이틀을 보고 모여든 수련생들이기 때문이다.
‘비록 수련생들이 나보다 그 두 사람을 더 좋아할지라도 말이지, 칫.’
이드는 작게 혀를 찼다. 수련장에서 한창 땀을 흘리고 있는 수련생들이 이런 자신의 기특한 생각을 알아줄까 하는 회의감이 들어서다.
“평소 보이던 반응을 보면 오히려 앞으로도 두 사람이 수업해 주길 더 바라려나?”
어쩐지 그럴 것 같은 무서운 확신이 든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수련생들은 마스터가 준비해 주신 수업을 더 좋아합니다. 더 열심히 참여하기도 하고요.”
이드를 돕겠다고 따라나선 네리베르가 말했다.
“정말 다들 좋아해?”
“네. 익숙한 수업도 있고, 새로운 수업도 있지만 배운 대로 수련하다 보면 마스터가 말씀하신 수업의 효과가 분명히 나오니까요.”
결과가 확실한데 노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드의 수업을 듣는 수련생들이 가장 만족해하는 부분이었다. 최소한 이드의 수업을 받으면서는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심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저 열과 성을 다해서 열심히만 하면 되니까.
수련을 하며 노력한 만큼 결과를 보지 못하는 일이 많기에, 분명한 목표와 결과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만족한다면 다행이다. 그런데 이번에 황궁에 가면 제법 길게 자리를 비울지도 몰라. 어쩌면 좋을 것 같아? 잠시 수련장을 닫을까? 아니면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해야 할 과제를 던져 주는 게 좋을까.”
“정말 황궁에 가세요?”
처음 듣는 이야기에 네리베르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격렬한 호기심이 끓어올랐다.
“응. 길면 몇 달 정도 자리를 비우게 될 것 같아.”
“어떤 일로 가시는지 모르겠지만 저와 케마란이 마스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네리베르는 자신의 말을 후회했다. 케마란에게는 잘난 듯 충고와 경고를 해 놓고는 정작 자신의 마음 단속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아, 바보 같아요. 케마란의 바보기가 옮은 거예요.’
분명 그럴 것이다. 이전이라면 하지 않았을 충동적인 짓이었다.
이드는 갑자기 질문하더니 답도 듣지 않고 나라 잃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네리베르의 모습이 이상했지만 굳이 묻지 않고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마운 말인데, 지금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케마란에게도 말했지만 이번 일은 너희들이 같이하기에는 좀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어서.”
“네. 오히려 제가 철없는 말씀을 드린 것 같아요.”
이드는 실망한 듯 어깨를 떨구는 네리베르에게 말했다.
“그런 건 아니지. 돕고 싶다는 생각인 거잖아. 철들지 않은 것과는 상관없지.”
·죄송하지만 마스터, 그건 혹시 제가 철이 없다는 말은 아닌가요?”
“너 말고 케마란. 일전에 비슷한 소리를 한 적이 있거든.”
“그녀라면 확실히 ・・・・・・ “
이드는 순순히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네리베르의 모습에 수련장으로 눈을 돌렸다.
‘일단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과연 어떻게 될까.’
생명의 관의 일 이후 위험한 일에는 두 사람을 빼 두고 있었다. 분명 두 사람이 충분히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지만 신용과 실력은 다른 문제였다.
은색 기사단에서도 사상자가 나오는 일에 그녀들이 함께했다가는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위험한 상황에 잘 대처해서 실력이 늘어나면 좋지만, 그게 아니라면 끝이다.
그녀들이 꼭 필요한 상황도 아닌데 모 아니면 도의 극단적인 선택만 가능한 전장에 그녀들을 세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는 그 결정을 뒤바꿔야 할지도 몰랐다.
‘링스피어에 든 코어가 어떻게 되느냐에 달린 문제인데……’
이미 라미아가 코어만 분리하기는 힘들다고 단언한 상태였다. 코어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계속 케마란의 링스피어가 필요한 상황.
그렇다면 케마란에게서 링스피어를 떼어 놓아야 했다. 그리고 과연 케마란이 순순히 링스피어를 넘길까 싶기도 했다.
‘에이, 그럴 리가. 순순히 넘길 거였으면 그렇게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지도 않았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마침 지금 돌아가는 일에 끼고 싶은 그녀인 만큼 링스피어를 인질로 자신도 지금 진행되는 일에 끼워 달라고 나설 것이 분명했다.
‘조심성이 없긴 해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케마란이 끼면 당연히 네리베르도 끼겠지. 두 사람의 일도 궁리를 해 둘 필요가 있겠어.’
일단은 라미아의 마법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보고 결정할 일이다.
그때 실망한 듯 조용히 입을 닫고 있던 네리베르가 말했다.
“과제를 주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응? 무슨 말이야?”
“마스터가 자리를 비우셨을 때 수업 말이에요. 수련장을 닫기보다는 과제를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스터가 없다고 수련을 쉴 수도 없고, 다시 복귀하실 마스터를 두고 다른 수업에 참가할 수도 없으니까요. 거기다 스폴 경과 데일리 경은 남아 계실 테니까 그분들의 도움을 받아 수련하면 됩니다. 마스터가 직접 수업을 진행하지 않은 경우가 한두 번도 아니니까요.”
“그렇긴・・・・・・ 하지. 그런데 은색 아니, 오색 기사단도 곧 자리를 비울지 모르는데?”
수업에 소홀했던 사실에 대한 가차 없는 지적에 이드는 살짝 식은땀을 흘렸다.
“아, 그렇죠. 미완성의 마탑에 대한 토벌이 있었죠.”
생명의 관에서의 일은 이드와 쉴라를 통해 황궁 이상으로 잘 알고 있었다.
“두 분까지 토벌에 나선다면 수련에 조언을 구할 수 없죠. 하지만 마스터가 좀 더 수고를 해 주신다면 그 부분도 해결될 겁니다.”
“그래?”
“네, 수련생 공동 과제가 아니라 개인별 과제를 주시면 스폴 경과 데일리 경의 조언 없이도 열심히 수련할 수 있을 테니까요.”
“수, 수련생 전부?”
“네. 전~부요.”
이드는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한두 명도 아니고, 모든 수련생 개개인에게 맞는 수련 과제를 준비하려면 여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혹시 네리베르가 거절당했다고 자신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꺼낸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 방법이 가장 적당할 뿐 아니라, 마음에 들기도 했다. 비록 자신이 고생은 하겠지만 말이다.
자신의 사정으로 수업이 중단되는데, 그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소드 팰러스의 선생과 수련생의 관계가 계약 관계는 아니다. 그보다는 서로에 대한 존경과 나눔을 기반으로 한 신뢰 관계에 가깝다. 오히려 기술적인 계약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책임감이 더 컸다.
“보자, 그럼 한 이틀 정도 밤을 새우면 되려나.”
“저도 옆에서 돕겠습니다. 다른 건 도울 수 없지만, 그건 도울 수 있으니까요.”
“훗, 그래 준다면 고맙지. 그럼 당장 시작해 보자.”
이드의 말에 네리베르가 저택에서 종이와 펜을 가져왔다.
두 사람은 라미아가 부를 때까지 살피고 기록하고를 반복했다.
한쪽에서 두 사람이 열심히 필기에 전념하는 모습에 수련생들이 관심을 보일 때쯤 라미아가 그들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