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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76화


713화

근본 없이 튀어나온 팔씨름에 몇몇 사람의 얼굴이 괴상해졌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무공을 수련한 기사들이었다. 대련 수단으로 팔씨름을 택한다는 말에 대련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아 기분이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 특히 여성들은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대련으로 팔씨름을 하자고 하시다니. 명예 후작께선 재미있는 분이신가 봐요.”

대련이라면 떠오르는 검이나 창, 피와 주먹이 아니라 가끔 어린 여자아이들도 장난처럼 즐기는 팔씨름이 언급되어 새로웠던 것이다.

“지금 절 놀리시는 건 아닙니까?”

“황제 폐하 앞에서 허투루 말할 리가 있겠소?”

과연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믿어지지 않았다. 황제 앞에서 팔씨름을 하자고?

“하면 정말 팔씨름을 하자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그러나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라오. 이 형식의 대련은 원래 추수라고 부르니까.”

엘론드의 얼굴에 불쾌하다는 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추수건 수확이건, 팔씨름으로 대련한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팔씨름 따위로 어떻게 바닥이 드러나게 만들어 초인기를 끌어낼 것인가?

‘혹시 이거 그런 의미로 내놓은 거 아니야?’

눈을 덮은 콩깍지가 하나 더해졌다.

“팔・・・・・・ 아니, 추수라는 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어떻게든 팔씨름이란 말은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이드는 번뇌가 가득한 엘론드의 얼굴을 보며 한쪽 팔을 펴고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다른 팔을 허리 뒤로 돌리고 적당히 다리를 벌리고 섰다. 

“이 자세로 서로 발과 손을 마주하면 되오.”

누가 봐도 팔씨름 자세는 아니다. 엘론드는 투덜거리며 발과 손등을 마주 대었다.

“그래 봤자 손을 붙이고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흠칫!

그리고 다음 순간, 움직이던 입도 닫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드와 접촉한 발과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 때문이었다. 발은 산악처럼 무겁고 단단하며, 손은 구름처럼 폭신한데 그 속에 철심이 든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극도로 좁아진 외골수적인 사고와 달리 그의 신체 감각은 정직했다.

“이건…….”

엘론드가 굳은 이유를 짐작한 이드는 그에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이 팔씨름은 이 상태로 닿아 있는 팔을 움직여 치고 당기고 밀어, 상대의 중심을 무너트리거나 발을 움직이게 하는 쪽이 이기는 것이오. 손과 무릎이 검이고, 창이며, 방패인 셈이지. 이해했소?”

꼴깍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좋아. 이해한 모양이군. 그럼 대련을 시작하겠소.”

“제가! 심판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황녀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손수건을 든 그녀는 팔씨름이라는 대련이 사뭇 기대된다는 듯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황녀께서…….”

마주한 손등으로 엘론드가 퍼르르 떠는 것이 느껴졌다. 이드는 내심 질색을 하며 말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바로 시작해 주시죠.”

최대한 빨리 이 손을 떼고 싶다. 사내놈이 부들거리는 감각 같은 건 길게 느끼고 싶지 않다. 

“그럼. 시작!”

신호와 함께 황녀가 손수건을 흔들었다.

이드는 신호와 동시에 무릎을 쳐 전신에 힘을 주고 있는 엘론드의 중심을 탄경으로 무너트리고, 화경으로 팔목을 감아 탄성을 생성했다. 푸훙!

엘론드를 자신과 마주한 자세 그대로 허공으로 날려 버렸다.

충격을 받으면 반대로 튕겨 나가는 일반적인 현상과 다른 모습에, 기대하고 대련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고개가 천장까지 올라가는 엘론드를 따라 들려졌다.

“이게 무슨!”

순식간에 허공에 떠 버린 엘론드는 곧 중심을 잡아 착지했다. 상급 기사인 그에게 이 정도의 높이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진짜 문제는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자신이 왜 허공에 떠 버렸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번개처럼 몸을 관통한 기묘한 힘의 흐름뿐. 그것에서 느낀 것은 힘의 강도가 아니라 힘의 형태였다.

‘뭐지? 이게 마인드 마스터의 무공인가? 과연 대단하다.’

하지만 그런 감상도 잠시, 엘론드는 자신이 시작과 동시에 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당황했다.

그러나 이드는 순순히 그의 패배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엘론드 경, 시간이 흐르고 있소이다. 어서 위치하시오.”

이드가 어서 오라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모습에 엘론드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자신이 패배했음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저히 그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래. 단판 승부라고 한 적은 없잖아? 거기다 후작의 정체도 밝혀야 해. 쪽팔리지만 일단 참자. 내가 아니면 누가 지옥에 가리오!’

망설임은 순간이었다. 마음을 굳힌 엘론드가 당당히 허리를 펴고 이드와 마주 섰다.

“감사합니다.”

“아니, 당연하오. 처음 접하는 형태의 대련에 단번에 익숙해질 수는 없을 테니까.”

봐 주는 것 하나 없이 날려 버린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익숙하지 않은 대련을 단번에 받아들인 용기에 대해서는 대단하다고 생각하오. 거부할 줄 알았는데………… 경의 자신감이 참으로 대단하오.” 

칭찬의 말이지만 사실 칭찬은 아니었다. 나와 적을 아는 것은 싸움의 기본이다. 그런데 규칙도 모르는 대련 방법을 떡하니 받아들인 그의 무모함에 이드는 기막혀하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련 내용을 바꿔 줄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지만 말이다.

엘론드도 뭔가 미묘한 느낌을 받았는지 기쁜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발을 이드의 발 옆에 붙이고, 손을 몇 번 쥐었다 편 후 조심스럽게 이드의 손등에 대었다.

그리고 황녀가 기다렸다는 듯 힘차게 손수건을 휘둘렀다.

“시작!”

한번 허공을 날았던 엘론드는 똑같은 수모를 피하기 위해 중심을 낮추고 단단히 준비했다. 아쉽게도 쓸데없는 짓이었다. 이드는 그를 날려 버릴 생각이 없었다.

대신 이드는 손목을 튕기며 엘론드의 얼굴을 향해 찔러 들었다. 그저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 중심을 아래에 두고 있던 엘론드는 황급히 손을 휘둘러 이드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한 번 막는다고 끝나는 공격은 아니었다. 이드의 팔꿈치와 손목에서 일어난 수백의 변화가 엘론드를 치고 꺾고, 때리기 시작했다.

파팡! 팡!

공방은 순식간에 수십의 격돌로 이어졌다. 점점 더해지는 속도를 따라 내공이 돌며 만들어진 손 그림자가 어지럽다.

무공을 모르는 사람의 눈으로는 진짜와 그림자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엘론드의 표정에는 점점 여유가 생겼다. 어떻게 당했는지 깨닫지 못한 처음과 달리, 검만 들지 않았을 뿐 손을 검처럼 사용할 수 있는 지금의 공방이 그에겐 쉬웠기 때문이다.

손목을 잡아채려는 이드의 손가락을 뿌리치고 손날로 이드의 어깨를 베려는 엘론드의 눈에 자신감이 어렸다.

“이제 슬슬…….”

“익숙해진 모양이지만, 아직 하체가 부족하군.”

이드는 엘론드의 말을 가로채며 공방과 함께 위로 올라간 중심으로 허술해진 무릎을 쳤다.

빠악!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엘론드의 몸이 기울었다. 다리에 충격이 가해졌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이드의 손바닥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고 작은 회오리의 꼬리를 만들며 가슴을 두드렸다.

뻥!

이드의 손바닥에서 폭음이 났다. 그리고 그 못지않은 충격으로 엘론드가 다시 튕겨 나갔다. 이번엔 위가 아니라 뒤다. 그 모습에 지켜보던 관객들이 급히 비켜섰다. 바닥에 부딪힌 충격으로 인해 숨 막히는 가슴의 통증이 느껴지자 엘론드가 기침을 토했다.

엘론드가 고개를 들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드가 손을 까딱거렸다.

주먹을 부르르 떤 엘론드가 다시 이드와 마주 섰다. 세 번째 대련이다. 감사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흐르던 내공을 전력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자 전신에서 뿜어지는 힘에 옷자락이 파드닥 날렸다. 날카로워진 눈빛이 억지를 부리던 분위기를 순식간에 지워 버렸다.

한 호흡으로 변해 버린 기도에, 구경하던 레이디 중 몇몇이 작게 환호하며 얼굴을 붉혔다. 수도와 황궁을 수호하는 황색 갈기 기사단의 상급 기사는 레이디들에게 최고의 신랑감이었다. 무엇보다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대련이 그녀들의 기분을 가볍게 했다.

화르르!

엘론드의 팔에서 뿌연 수기(氣)가 일렁였다. 안개 같지만 검기와 같이 강철도 자르는 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 번의 꼴불견을 보여서일까. 비장함이 엿보인다. 내공이 만들어 낸 바람에 날리는 머리를 쓸어 넘긴 이드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꼭 그래 주길 바라오. 갑자기 돌기 시작한 소문도, 경의 주장도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오. 초인이라니, 도대체 날 어디 가져다 붙이는지. 하핫.”

웃으며 하는 말이었지만, 이드의 손에 두 번이나 바닥을 구른 후라서 그런지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즈즈즉!

그때 이드가 손등을 가져다 댔다. 아무런 기운도 담기지 않은 맑은 손에 엘론드의 수기가 상극의 자석처럼 밀려났다. ‘검기에는 검기로 강기에는 강기로.’ 라고 알고 있던 엘론드는 그 모습에 놀라더니 곧 이드의 손을 노려보았다.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 초인기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닌지 의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드는 그가 천천히 관찰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마주한 손이 대나무처럼 낭창거리며 엘론드의 팔을 흔들었다.

엘론드가 내공으로 강력하게 버텼지만 소용이 없었다. 처음에는 미세하던 흔들림이 점점 커졌다.

그그극. 뿌드득.

그에 따라 관절이 갈리고, 근육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밀려오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차라리 오우거나 트롤 따위의 대형 몬스터가 힘으로 팔을 잡아 뜯으려 하면 이해라도 하지, 장난처럼 손목을 감아 휘휘 돌릴 뿐인데 왜 내공으로 강화한 팔이 갈대처럼 흔들리는 것인가!

그렇다고 힘을 뺐다가는 당장 중심이 무너질 것 같아 그럴 수도 없었다.

그때 원형을 그리던 이드의 손이 점점 타원형으로 변했다. 그에 따라 엘론드의 상체가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막아 보려 움직이던 무릎도 상체의 흔들림을 잡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참고로 알고 있으면 좋겠소. 이 팔씨름은 말이오, 대련보다 수련에 주로 쓰인다오.”

말을 마친 이드가 이화접목으로 적립한 힘을 차력미기의 수법으로 오른쪽으로 흘리며 손을 털었다. 저택의 한쪽 벽을 일격에 가루로 만드는 힘의 유동에, 단번에 쓰러진 엘론드가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으하! 저런…….”

엘코란 등 내심 엘론드를 응원하던 사람들이 차마 못 보겠다는 듯 눈을 가렸다.

그런 사람들의 뒤쪽에서 한데 모여 흥미롭게 바라보던 사람들이 있었다.

“정말 사정없이 망신을 주는군요.”

“엘론드 경이 무례했으니 당연한 꼴을 당하는 겁니다.”

“그보다 저 수련법, 우리 기사단에도 써 봐야겠습니다. 힘에 대해서 몸이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데 좋을 것 같군요.”

끄덕끄덕. 모여 있던 자들이 동의를 표했다.

그 사이 이드의 손짓에 엘론드가 다시 원래 자리에 섰다.

이드는 이를 꽉 물어 불룩해진 턱을 힐끗 보고는 손등을 대며 물었다.

“어떻소. 내게 초인력은 느껴지오?”

“……”

초인력 이전에 온전한 내력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엘론드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세 번 바닥을 구르고 나서 슬슬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물릴 수도 없는 노릇.

“시작!”

복잡한 그의 마음을 봐 주지 않는 황녀의 시작 신호와 함께 또 바닥을 구른 후 돌아온 엘론드를 보며 이드가 좀 전과 똑같이 물었다.

“내게 초인력이 느껴지오?”

“……”

“이제 두 손을 써도 좋소. 좀 더 노력하시오.”

이드의 말에 사람들은 노력이라는 말이 참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다고 느꼈다.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대련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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