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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94화


731화

처음엔 부상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몰라 난감해하던 케마란과 네리베르도 여러 명의 부상자를 돌본 후에는 금방 익숙해졌다. 두 사람이 귀하게 자란 아가씨가 아니라, 매일 검을 휘두르며 가벼운 부상을 달고 사는 수련생 시절을 보냈었기 때문이다.

의식이 있는 기사들은 네리베르로 분장한 이드를 그녀로 알아보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네리베르가 아니라면 전투가 끝날 때까지 땅에 누워 고통 속에서 피 흘려야 했을 테니까. 그리고 남자 기사들 중에서는 간간이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쿨럭! 네리베르 경은 내 생명의 은인이오. 이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 꼭 시간을…….”

“내가 네리베르 경의 손에・・・・・・ 구해지는 것은・・・・・・ 분명・・・・・・ 운명일 것이오.”

꾸역꾸역 피를 토하면서도 멋지게 웃으며 하는 말이 저것이다. 정말 중한 부상을 입은 것만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던져 버리고 싶은 것을 꾹 참아야 했다.

부담스러웠다는 네리베르의 말에 완전 공감이 되었다. 도대체, 저자들은 저런 말을 멋지다고 생각하고 내뱉는 것일까? 이드는 이 기사들이 모솔이라는 것에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그렇게 바쁘게 왕복한 덕분에 위급한 부상자는 모두 옮길 수 있었다. 중간중간 보이는 사상자는 시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따로 챙겨 두었다. “이제 몇 안 남았구나.”

중상자를 모두 옮기고 나니 챙겨야 할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고수들의 전투이기 때문에 경상보다는 중상을 입은 환자나 사상자가 더 많았던 것이다.

이드는 다시 경상자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로 다리나 복부를 당해 기동력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을 옮긴 후 거의 마지막 부상자에게 다가갔을 때였다. 환자를 살피던 이드의 눈이 예리하게 반짝였다.

‘이 기사는 뭐지? 의식이 있으면서도 기절한 척을 하고 있잖아?’

부상으로 기절했다고 하기에는 내력과 생기의 유동이 너무 활발했다. 즉, 기절하거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부상이 아니라는 뜻.

동료 기사들이 최선을 다해 적과 싸우고 있는데, 홀로 땅에 누워 기절한 척을 하고 있다고? 그것도 기사들이 선망하는 오색 기사단 소속의 기사가? 기사들 중에 겁쟁이 기사가 없으란 법은 없지만,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의심을 가지고 살피자 이상한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피를 흘리고는 있지만 피부만 베여 상처가 깊지 않다는 것과 옆구리에 박힌 단검이 절묘하게도 신체에서 가장 위험과 부담이 적은 곳에 깊지 않게 박혀 있다는 점.

그리고 가장 부자연스러운 것은 상처가 딱 그 두 가지뿐이라는 점이었다.

이드가 옮긴 부상자들의 경우 중상자는 말할 것도 없고, 비교적 부상이 가벼운 기사도 한 손으로 다 세기 어려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런 기사들에 비해 기절한 척 중인 기사의 부상은 너무 깔끔했다.

아무래도 따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렇게 결정한 이드가 기사 옆으로 다가가 등을 흔드는 척하며 아주 살짝 혼혈을 찍었다.

“선배님, 선배님. 정신 차려 보세요.”

“으음…… 네리베르 경인가?”

“네. 지금 부상이 심각해요. 피도 많이 흘리셨어요. 어지럽지 않으세요?”

“피?”

기사, 조지는 갑자기 눈앞이 핑 도는 느낌에 깜짝 놀랐다. 자신이 만든 상처는 가벼운 것이라 출혈도 적어 어지러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표정 변화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던 이드는 그가 자신의 상처를 확인하려는 것을 보며 확실히 혼혈을 찍어 그를 진짜 기절시켜 버렸다. 

“거 반응 묘하네. 마치 자신이 스스로 찌르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이야.”

수상한 기사를 성안으로 들고 들어가자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부상자를 넘겨받기 위해 다가왔다.

“괜찮아. 이 사람은 내가 데려갈게. 라미아나 좀 불러 줘.”

이드는 두 사람의 손을 거절하고 다른 환자들과 떨어진 곳에 수상한 기사를 눕혔다. 그 옆으로 라미아가 날아왔다.

[무슨 일이에요?]

“응. 데려온 부상자들은 좀 어때?”

[다행히 사망자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당장 거동이 가능한 기사들은 다시 뛰어나갔어요. 말려도 소용없더라고요.]

“역시 기사라서 그런가. 열혈이네.”

기절한 척 쓰러져 있던 누군가와는 굉장히 비교되는 행동이었다.

[치료한 입장에서는 조심해 주길 바랄 뿐이죠. 그런데 이 사람 때문에 부른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이드는 그가 기절한 척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가 의심스럽게 보았던 점을 이야기해 주었다.

[흐음, 그렇지 않아도 지금 소리를 막는 사일런스가 화원에 걸려 있던 마법진이 발동해 시전된 거라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이자가 그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는걸요?]

“그렇단 말이지.”

몰랐던 사실에 고개를 끄덕인 이드는 기사의 몸에 박혀 있던 단검을 조심히 뽑아 들었다.

“그럼 이거 한번 확인해 볼래? 내 느낌으로는 이거 자신이 직접 찌른 거 같거든.”

[그런 거라면 간단히 확인이 가능하죠.]

라미아는 호언장담하며 아공간에서 휴를 꺼내 들었다.

당연히 마법을 사용할 거라고 생각했던 이드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마법은 안 써?”

[이런 일은 과학적으로 접근해야죠. 비과학적인 증거는 재판에서 받아 주지 않는다고요.]

“그건 지구에서나 그렇겠지. 과학보다 마법이 발달한 그레센에서 비과학적인 증거는 무슨…….”

이드가 기가 막혀 하자 라미아가 씨익 마주 웃으며 말했다.

[히히, 사실은 지금처럼 감정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전장에서 물건의 기억을 읽어 내는 마법을 사용하면 잡음이 생길 수 있어서 그래요. 하지만 이드는 지금 당장 확인하고 싶은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손 펴 줄까?”

[지문이 잘 보이게 펴 주세요.]

두 사람은 빠르게 지문을 채집했다. 뛰어난 성능을 가진 휴는 기사의 손에 있는 지문은 물론 단검에 남겨진 지문까지 즉석에서 채취하고 비교하는 것이 가능했다.

100% 일치. 겹쳐 본 지문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과학 만세로군.”

이건 마법으로 따로 물건의 기억을 읽어 낼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단검에는 이드와 그 기사의 것을 제외하면, 지문이 하나도 없었다. 즉, 적이 찌른 단검을 잡느라 남은 지문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드가 누워 있는 기사를 경멸이 담긴 눈으로 노려보았다. 배신자, 특히 함께 먹고 자며 등을 맡긴 동료를 죽음으로 내몬 배신자는 시대와 종족을 가리지 않고 저주받아 마땅한 자들이었다.

“……”

라미아를 따라와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뜻밖의 사실에 망연한 표정으로 그 기사를 바라보았다.

‘오색 기사단에서 배신자라니!’

꿈에서도 상상해 본 적 없는 현실이었다.

[바로 지하실로 끌고 가요?]

“아니, 일단 좀 더 지켜보자. 청색 기사단의 기사잖아. 동조자들이 있을 수 있어. 일단 엉뚱한 짓은 못하게 조치를 취한 후에.”

타다다닥!

이드는 케마란과 네리베르를 나란히 세워 혹시 모를 기사들의 시선을 가렸다. 그 후 단장을 중심으로 백구십두 개의 혈도를 점혈하는 자기폐맥점혈법으로 기사의 내공에 금제를 가했다. 깨어난 후에는 전신으로 흩어진 내공이 뜻대로 운용되지 않아 굉장히 당혹해할 것이다. 기사로서 가장 큰 힘인 내공을 잃어버리고 당황해서 뜻밖의 실수를 해 줄지도….. 해 준다면 참 고맙겠다.

“케마란, 네리베르.”

“네? 네!”

“헙! 네!”

“상처에 포션만 부어 주고, 다른 기사들 옆에 눕혀 놔. 그리고 이번 일은 비밀로 해야 한다. 알지?”

끄덕끄덕.

얼굴을 가까이하고 속삭이는 이드의 말에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은 말과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두 사람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징그러운 괴물을 만지듯 기사의 팔다리를 잡아 다른 환자들이 있는 곳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이드는 감정이 가득 깃든 두 사람의 티 나는 행동을 보고, 나중에 한 번 더 따로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밖을 살피니 전장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 사이 초인들의 수가 차근차근 줄어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결국 이기긴 하겠지만, 시간만 낭비한 채 사상자만 더 나올 것이 분명했다.

“그만 끝내야겠는데?”

[직접 나서게요?]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일리나가 조금 바쁘게 움직여 주면 금방 마무리되겠어.”

[어떻게요?]

이미 적을 상대로 싸우느라 바쁜 일리나에게 뭘 더 시키려는 것일까?

이드는 궁금해하는 라미아를 두고 일리나에게 전음을 날렸다. 그다음으로는 데일리에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위트 경에게까지. 그리고 잠시 후 바로 변화가 생겼다.

일리나가 그때까지 상대하던 스키퍼를 버리고 데일리와 싸우고 있는 적 대장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이런 젠장!”

그에 낭패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스키퍼가 일리나를 공격했지만, 일리나가 이 열의 초인들을 노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목표를 돌리지는

못했다.

보온 마법으로 데일리와 동수를 이루고 있던 적 대장은, 갑자기 더해진 강력한 공격에 연신 비명과 고함을 질러 댔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다 문득 배신자 기사의 몸에 박혀 있던 단검에 내공을 주입했다.

부우웅.

단검이 허공에 뜨며 은빛 강기가 겹겹이 둘러졌다.

[설마, 그거 날릴 생각이에요?]

“응. 배신자의 물건인데, 이렇게라도 써서 원수를 갚아야 죽은 기사들의 분노가 풀리지.”

핏-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은빛 단검이 공간을 가르며 사라지고, 거의 동시에 배에 구멍이 뚫린 적 대장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방어가 워낙 단단해서 그럴까? 적 대장은 의외로 고통에 약했다. 고통에 대한 내성의 문제가 아니라도 배에 구멍이 난 상태로 계속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아예 공격을 포기하고 다급히 몸을 피하려던 적 대장이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데일리와 일리나의 검 아래 목을 내놓고 말았다.

적 대장이 죽자 흠칫한 스키퍼는 전력을 다해 뒤로 물러났다. 대장이 죽었으니 자신이 다음 목표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일리나와 데일리의 검은 그에게 향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기사들이 상대하고 있는 초인들의 뒤를 노렸다. 데일리와 일리나의 합공이 일개 기사단 이상의 전력을 발휘함으로써 초인들은 두 개 기사단의 협공을 받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그때 이드가 적 대장을 관통하고 돌아온 단검을 들고 스키퍼를 살폈다. 그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그만 도망이나 가시지?”

이드가 보기에 스키퍼는 전력보다는 전령 역할이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습격이 실패했다면 도망가서 그 사실을 전달할 사람이지, 목숨 걸고 싸울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피익- 삐이이-

때마침 화원 밖에서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났다.

그것이 신호인 듯 스키퍼는 즉시 뒤로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고, 그 뒤를 따라 초인들이 달려 나갔다.

이대로라면 스키퍼는 몰라도 초인들이 도망갈 길은 없다 싶은 순간.

쿠우우우우-

화원을 덮고 있던 검은 구름이 화원과 기사들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조심해!”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구름에 기사들은 서로를 향해 급하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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