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32화
769화
지이이익.
손에 든 십여 장의 종이가 라울의 손에서 찢어졌다.
보고서를 들고 왔던 성주는 그 모습에 아랫배가 찌릿한 긴장감을 느꼈다. 보고서에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것을 먼저 확인한 후이기 때문이다.
“이런 쓰레기를 생산하기 위해서 종이를 사용하는 건 낭비입니다. 차라리 ‘무능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한 줄로 요약해서 가져왔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말입니다.”
명백한 조롱에 성주의 귀가 달아올랐다.
그러나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책임 아래 추적이 이루어졌고, 자신의 부하들이 올린 결과물이다. 그들의 성과도 무능도 자신의 것.
그가 생각하기에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무능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하는 처사도 옳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아무래도 저들 중에 이동과 관련된 초인기를 소유한 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대대적인 추적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그런 성주의 말은 오히려 라울이 눈썹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당연히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계산에 넣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변명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 성주는 조용히 입을 닫는 쪽을 선택했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 라울은 성주를 한심하게 바라보더니 탁자에 올린 지도의 한 부분을 짚었다.
그곳은 검은돌이 숨어 있는 요새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있는 곳이었다.
“이 마을부터 여기까지 다시 조사하세요. 초인기의 이동 능력은 짧으니, 흔적이 없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로 숨었다는 뜻이니까.”
“죄송하지만, 그 마을은 이미 수색이 끝났습니다.”
“그럼 그 위로 거슬러 올라가시오. 성주는 그런 사소한 것까지 지시를 받고 싶습니까?”
라울은 말과 함께 지도의 한 부분을 탕하고 찍었다.
“지금 즉시 조사를 시작하세요!”
“만족하실 만큼 철저히 하겠습니다.”
성주는 지도를 노려보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라울이 깊게 찍어 낸 지도. 그곳과 마을 사이. 그 지점에 이드들이 몸을 숨긴 통나무집이 있었다.
라울에게 망신을 당한 성주는 그 분노를 담아 부하들을 닦달했다. 좋은 것은 위로, 나쁜 것은 아래로 향하는 것은 어디든 다르지 않은 흐름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한 번 마을을 뒤지고 빠졌던 초인들은 침략자처럼 난폭하게 다시 마을로 밀고 들어왔다.
그들은 거친 파도처럼 마을을 휩쓸고는 지나갔다. 그나마 거친 분위기와 달리 마을 사람들을 해하지 않아서 다행이랄까.
이런 움직임은 곧장 스톤을 통해 이드에게 전해졌다.
느긋하게 비바람이 지나길 바랐던 이드는 자세를 바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저들이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올 것 같지?”
스톤의 말에 이드가 자신이 느낀 점을 말하자 톰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섰다.
“상대가 모든 인력을 이쪽 방향으로 쏟아부은 것 같습니다. 저희가 도망친 방향을 예측하고 도박을 건 것이겠죠.”
말을 마친 톰이 과자 부스러기 세 개를 띄엄띄엄 내려놓았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수색 범위라는 것을 깨닫자 에단을 비롯한 나머지 전 트와이스 소속의 기사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범위에 과자 부스러기를 놓았다.
항상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그들은 많은 의견을 듣고 신중하게 움직이는 것이 몸에 배어 있기에 나온 행동이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스톤도 나서서 과자 부스러기를 내려놓았다.
“어떻게 되었건 이 집이 저들의 수색 범위에 든다는 건 같은 생각인가 보네.”
이드는 톰의 과자 부스러기 주변에 옹기종기 모인 과자들을 보며 말했다. 그중 어느 것도 통나무집을 의미하는 과자 부스러기 앞에 자리하지 않은 것이 없다.
“책임자가 바뀐 걸까.”
그 책임자가 라울이라는 것은 모르지만, 분위기의 변화를 느낀 이드가 말했다.
“그렇게 되면 쉽게 물러나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하루, 이틀을 예측했던 것은 그때까지 저들이 보인 모습을 두고 한 것.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가만히 탁자 위를 내려다보던 이드가 다른 과자 부스러기 하나를 들어 통나무집 앞에 놓았다.
“여기서 목표가 나타나면 이 뒤로 오지는 않겠지?”
“목표가 눈앞에 나타나면 다른 곳에 힘을 뺄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칩니까?”
“나는 그게 좋다고 생각해. 이대로 숨어만 있으면 저들이 언제 움직일지 몰라. 질척대는 미련을 깔끔하게 잘라 주면 저들도 예정대로 움직이겠지.” 전격적이지만 틀리지 않은 말에 툼과 스톤, 에단의 눈이 순간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리고 에단이 나서서 말했다.
“그럼 즉시 작전에 나서겠습니다.”
“음? 아! 이 작전은 네 것이 아니야. 내가 직접 움직인다. 그게 빨라. 혹시 모를 희생도 줄일 수 있고.”
이드는 갑자기 나선 에단의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들이 원하는 것은 초인력을 흡수하는 초인이니. 제가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닌지…….”
“어차피 똑같아. 저들이 네 얼굴을 아는 것도 아니고, 또 근처에서 초인이 죽기 전에는 초인력을 흡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네가 나서나 내가 나서나 크게 틀린 건 없어.”
“하지만 한 놈의 목을 따고 나면 벌 떼처럼 몰려 올 겁니다.”
“그게 문제지. 벌떼처럼 몰려들면 감당할 수 있어?”
“문제없습니다. 적진 한가운데서도 살아 돌아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에단이 두 눈을 번뜩이며 호기롭게 답했다.
이드는 그의 모습에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내가 직접 움직인다. 흡수 초인기를 가진 초인을 손에 넣으려는 자들이야. 이대로라면 초인을 죽인 후 발동되는 흡수 능력 때문에 언제까지 쫓기게 될지 모르잖아. 이번에 제대로 끈을 자를 필요가 있어.”
이드의 말은 옳았다. 이번은 도망간다고 해도 지금까지 조용하던 놈들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나설 정도면 이후 언제 다시 추적에 나설지 모른다. 당장 추적을 시작하고, 적 초인을 죽이게 될 경우도 문제다. 그때 자동 발동될 초인력 흡수를 보고 나면, 에단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사냥감이 되어 쫓겨야 할 것이 분명했다.
“염두에 두신 방법이 있으십니까?”
“물론, 저들이 어떻게 추적에 나섰다고 생각해?”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질문에 동료들을 돌아본 에단이 답했다.
“당연히 저들이 착각하고 있는 흡수 초인기 때문이죠.”
“틀려. 그건 목적이고, 추적에 나설 수 있었던 이유. 과연 흡수 초인기를 가진 초인이 네가 아니라, 검왕이나 검후와 같은 실력자였다면 지금처럼 잡겠다고 쉽게 나설 수 있었을까?”
“아!”
검후를 예로 든 말에 에단을 비롯한 기사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다 스톤을 보며 말했다.
“검은돌은 어때? 그런 의뢰가 오면 받을까?”
“하하하, 저희 이름이 검은돌인 이상 절대 받지 않습니다. 불가능한 의뢰를 받을 수는 없죠. 그런 의뢰를 가져 오는 놈이라면 그놈의 목부터 자른 후에 그 의뢰를 가져온 이유를 물었겠지요.”
스톤이 서늘하게 웃으며 답했다. 검은돌을 부수겠다는 목적이 아니고서는 들고 올 수 없는 의뢰니까!
“그렇지. 내가 그렇게 해 주려고, 만만하게 보고 나선 놈들에게 목표가 지들이 감당하기 힘든 맹수라는 사실을 알려 주면 자연히 물러나겠지. 서로 못 죽여 안달인 원수도 아니니까.”
“분명 그렇게 크게 데인다면 차후 에단과 마주치더라도 함부로 나서지 못하겠군요.”
“그렇지.”
“그래도 제 일로 마스터께서 고생하시는 것은…….”
에단이 감사와 사과가 담긴 목소리고 말했다.
“고생은 아니지. 작전의 일부야. 이게 빨리 끝나야 추적도 계속 할 거 아냐.”
이드는 에단의 말을 일축하고는 스톤에게 말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저들의 경계를 조금 흐리려면 초인이 필요한데, 검은돌에서 이번 일에 지원해 줄 초인이 있나? 어떤 초인기를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어.”
“공격 능력과 탐색 능력을 가진 초인이 둘 있습니다.”
“좋아. 그 두 명을 잠깐 빌리지.”
이드는 스톤이 두 명을 부르기 위해서 나가는 것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이드의 손에는 어느새 특색 없는 투박한 검이 들려 있었다. 화려하게 날뛸 만큼 저들이 이드에 대해서 추리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스틸하트나, 일라이져를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저도 따르겠습니다.”
톰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드의 기사가 된 자로서 그의 곁을 검은돌에만 맡겨 두기에는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 톰만 같이 가지. 라미아까지 다섯 명이면 적당해.”
기사들의 분위기를 읽은 이드는 톰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선을 그었다.
이드의 말을 들은 기사들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아깝다. 주군께 어필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였는데.”
기사들의 아쉬움을 뒤로 한 이드는 두 명의 초인이 준비되자 즉시 요새 쪽으로 방향을 잡아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에단들도 주인으로 위장할 검은돌은 두고 통나무집을 잠시 비우기로 했다. 가능성은 적지만 만약을 위해서다.
첩보에 몸을 담고 있는 만큼 사소한 일에도 철저한 모습들이다.
밖으로 나온 이드는 빠르게 달려 내려왔다.
그러자 멀리서 토끼몰이를 하듯 넓게 퍼져 올라오는 병력들이 눈에 들어왔다. 출발이 한 시간만 늦었어도 통나무집 코앞까지 다가왔을 것이다. 발을 멈춘 이드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 길가 나무둥치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 모습에 톰과 검은돌 암살자 둘도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을 따르는 그들의 모습을 본 이드는 라미아가 앉을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 앉으며 입을 열었다.
“한숨 돌리면서 기다리자고. 우리가 피한 건 귀찮기 때문이지, 저들이 두렵기 때문이 아니잖아. 거기다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도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고.”
“명심하겠습니다.”
암살자 둘은 물론이고, 톰도 함께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한가하게 물병을 기울이고 얼마가 지났을까.
삐이이-
멀리서 시작된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며 이드들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부스럭.
잠시 후, 피리 소리가 뚝 끊어지며 수풀을 헤치고 수십 명의 인원들이 나타났다.
“드디어 잡았다. 빌어먹을 쓰레기들.”
그들 중 가장 앞에 선 남자가 뿌드득 이를 갈았다.
그는 어제 이드의 실험으로 수십 번 똥개 훈련하듯 요새 벽을 올랐던 바로 그 남자였다.
이드는 고개를 돌려 느긋하게 손을 들어 보였다.
“이야, 또 보는군.”
“또?”
“아, 이 얼굴은 모르지?”
능청스럽게 이마를 두드린 이드가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이드의 얼굴이 평범한 시골 사냥꾼의 것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변하기 전의 얼굴도 이드의 본래 얼굴은 아니었다.
“그 얼굴! 역시 네놈들이었구나!”
이드의 얼굴을 알아본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드는 얼굴을 바꾸는 모습을 일부러 보여 주었다. 그래야 차후 에단이 초인력을 흡수해도 함부로 하지 못할 테니까.
“왜, 멧돼지 한 마리로는 양에 차지 않던 모양이지?”
이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