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33화
770화
이드가 만든 미소 때문일까, 멧돼지 때문일까. 바뀐 이드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던 남자의 눈이 회까닥 돌아가 버렸다.
“감히 쓰레기 따위가 날 농락해!”
솨솨솨-
버럭 소리를 지른 그의 손에서 투명한 칼날이 솟아 이드를 향해 쏘아졌다. 그러나 실력 부족인지, 분노로 인해 손이 떨린 탓인지 칼날 간의 구성에 틈이 생겼다.
이드에게는 태평양 바닷물을 모두 담을 만큼 커 보이는 틈이다. 그가 발뒤꿈치를 몇 번 들었다 놓자 칼날들이 제가 알아서 피해 간 것처럼 주변을 스치고 사라졌다.
“쯔쯔쯧, 멧돼지를 뺏어갈 때 알아봤지만 당신, 손버릇이 나쁘군. 무턱대고 사람을 죽이려 하니 말이야.”
이드의 말에 얼굴이 벌게진 남자가 당장이라도 공격에 나서려는 듯 초인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며, 부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려 할 때였다. 푸스슥거리며 수풀을 헤치고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때 요새에서 봤던 그놈들인가?’
이드가 요새에 숨어들었을 때, 단련된 기사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초인들이 있었다. 새로 나타난 이들 중 절반 이상이 그때 보았던 자들과 복장이나 분위기가 같았다.
그때, 새롭게 등장한 자들 중에서도 유독 떡 벌어진 어깨에 돌덩이 같은 사각턱을 가진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이드와 흥분한 남자를 번갈아 보고는 무뚝뚝한 얼굴로 남자에게 걸어가 손바닥을 휘둘렀다.
빠아악!
펀치 같은 따귀를 맞은 남자가 휘청이던 몸을 바로잡자 한쪽 코에서 붉은 코피가 쏟아졌다. 하지만 따귀를 날린 남자는 그에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호머, 이 병신 같은 놈. 얼마나 멍청하기에 명령받은 일조차 제대로 처리를 못해. 목표를 확보하라고 했지, 누가 공격하라고 했다. 출발하기 전에 성주가 네게 했던 경고를 밤사이의 실수와 함께 벌써 잊은 거냐? 잊지 못하게 다시 새겨 줘?”
잊었다고 하면 칼과 정으로 피부에 새겨 줄 것 같은 박력 터지는 남자의 말에 호머라 불린 남자가 코피를 닦으며 대답했다.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 쓰레기가 제게…….”
“그만. 지금 명령보다 네가 우선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 명령이 우선인 것이 당연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본심이야 세상 그 무엇보다 자신이 우선이지만, 사실대로 떠들고 다녀서야 세상 살기 힘들다. 호머는 앞에 있는 남자가 주는 압박감에 겨우 돌아온 이성이 시키는 대로 고개를 숙였다.
그에 호머의 뒤통수를 보던 남자가 이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목표냐?”
“어젯밤 제가 확인한 사냥꾼의 얼굴이 확실하고, 저쪽에서도 절 알고 있습니다. 헹크 님과 비슷한 변신 초인기를 가진 것 같습니다.”
호머는 말을 마치고 한 걸음 물러섰다.
자연 한 발 앞으로 나온 것과 같아져 버린 헹크를 보고 이드가 빙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이런, 새로운 손님이네. 아무래도 날 찾아온 것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군.”
“생각대로다. 알아볼 것이 있으니 조용히 따라와라. 해가 될 만한 짓은 하지 않는다.”
위협적이지만 종소리처럼 짧고 굵은 목소리는 묘하게 믿음이 간다.
그러나 그의 말이 모두 다 진실이라도 따라갈 수 없는 것이 이드의 입장이지 않은가.
“미안하지만, 우르르 몰려와서 안전을 보장한다는 헛소리를 해 봤자 믿기지 않는걸?”
“우리는 너와 같은 초인이다. 약속하지.”
“후훗. 같은 영지, 같은 마을 사람도 못 믿는 세상이야. 진실만 이야기하는 초인기라도 가진 게 아니라면 되지도 않는 요구를 하기 전에 목적부터 밝히는 게 어때? 뒤에 있던…… 호마던가?”
호마는 꼬리가 짧은 들쥐의 한 종류다.
“호머다!”
“미안. 일부러 그래 봤다. 뺏긴 멧돼지의 원한이 생각보다 커서 말이야.”
원래 먹을 것에 관한 원한이 큰 법이다.
발끈하던 호머는 헹크의 눈치를 보고는 땅을 차며 화를 쏟았다. 이드는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보다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저 도둑놈의 얼굴을 보면 대충 그날 밤 일 때문에 온 것 같은데. 좀 과한 거 아닌가? 우리가 귀찮게 했을지는 몰라도 그쪽에 피해 준 건 없다고. 아, 들어 보니 상단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비밀은 지켜 주지. 같은 초인의 의리로 말이야.”
헹크는 그 말에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그 사이 요새에서 나온 초인들이 은밀하게 주변을 포위했다.
이드는 기감으로 그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저들의 최선을 제대로 부숴 주어야 이드의 강함을 제대로 인정할 테니까.
“피해가 없다는 말을 정정하는 것이 어떤가. 그날 밤 우리 쪽에 피해를 준 것이 있을 텐데?”
“아아, 그 일은 노린 게 아니야. 일종의 사고지.”
순간 이어지는 이드의 말에 헹크의 눈이 묵묵히 번뜩였다.
“그럼 그날 우리 쪽 초인의 초인력을 흡수한 걸 인정하는 건가?”
“이런, 곰 같이 생겨서는 의뢰로 여우과군. 그게 목적인가? 초인력 흡수?”
이드가 과장된 움직임으로 머리를 쓸었다. 하지만 내심 만족 중이었다. 헹크가 던진 질문의 의도는 바로 알았다.
역시 이들이 노리는 것은 초인력을 흡수하는 에단이 확실하다. 거의 확신하고 있긴 했지만, 확신과 확실은 다르니까.
“그렇다. 초인으로서 무시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알 테지? 서로 간의 불필요한 피는 흘리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 권유다. 따라와라.”
“이봐, 해치지 않겠다더니 벌써 말이 바뀌잖아. 다시 말하지만 관심 없다. 그러니 그쪽도 관심 끄라고. 초인력을 흡수한 능력은 당신들 생각하고 조금 다르니까. 거기다 초인력을 흡수하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왜 이렇게 질척거려?”
이드는 국경 도시의 하이탈 자작을 떠올리며 말했다. 순간 헹크의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불쾌함의 표시였다.
“같은 초인을 희생시키는 그딴 썩어 빠진 흑마법 따위 관심 없다. 마지막 권유다.”
“말 똑바로 해. 어딜 봐서 권유야? 협박이지. 이쪽도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싫다. 그리고 나도 경고하지. 잘 판단하는 게 좋아. 초인력을 흡수할 수 있는 초인기가 왜 소문이 나지 않았을 것 같아? 이후에 일어나는 불행한 사고는 모두 당신들의 선택에 의한 거니까”
위협에 위협으로 응하는 이드의 말에 헹크가 침묵했다.
‘이상하다 싶지? 감은 나쁘지 않은데, 운이 없어. 어차피 네 선에서 물러나지는 못할 일이니까.’
이드의 잠작은 틀리지 않았다.
헹크는 압도적인 전력 차를 눈앞에 두고도 시종 여유와 당당함을 잃지 않는 이드의 모습을 경계하고 있었다. 믿는 것이 없고서야 그러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러날 수도 없었다. 그가 받은 명령은 목표의 확보. 그 속에 후퇴는 들어 있지 않았다.
“돈에 팔려 다니는 쓰레기 따위가 무슨 개소리를 나불대는 거냐!”
헹크가 퇴로 없는 고민에 빠진 순간 호머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섰다. 순간 가만히 있으라는 헹크의 말이 떠올라 움찔하던 그는 아무런 제재가 없음에 무언의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기회다.’
호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드 때문에 여기저기서 쓸모없는 놈으로 찍힌 것을 만회할 기회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도 사냥꾼으로 변장해서 자신을 농락하고, 지금도 빙글거리고 있는 놈을 징벌할 기회가 아닌가! 행여 지금이라도 헹크가 멈추라고 할까 싶어 호머는 앞으로 나선 그대로 이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쓰레기는 쓰레기답게 땅에서 기는 법을 가르쳐 주마!”
“쯧쯧, 불쌍한 놈.”
이드는 천지분간 못하고 날뛰는 호머를 보며 혀를 찼다.
헹크가 정말 그의 선전을 기대하고 그냥 두었을까?
아니다. 호머를 제물로 이드의 실력을 보려는 것이다.
한데 호머는 그 사실을 모르고 좋다고 달려들고 있으니 이드의 눈에 불쌍해 보일 수밖에.
“뭐, 그렇다고 해서 봐 줄 생각은 없지만.”
멧돼지의 원한도 있고,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먹을 것의 원한은 큰 법이다!
우우우-
묘한 공명음과 동시에 호머의 양손에 생겨난 투명한 칼날이 이드를 향해 휘둘러졌다. 보통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일 것이다.
하지만 호머에게는 안타깝게도 이드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모든 바람을 밀어내고 초진공 상태로 굴절된 공간이.
“바람이 아니고 중력인가. 호마에게는 과분한 초인기네.”
“호머라고 이 개자식아!”
이드의 코앞에 이른 호머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검을 휘둘렀다. 분명 처음의 엉성한 공격보다는 나았지만, 기사보다 검법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 인간이 이드 앞에서 검법이라니.
그 행동 자체가 가장 큰 실수가 아닐까?
한동안 소드 팰러스에서 수련생들을 가르친 영향일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교정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 호머의 검법에 이드는 시간을 사용하는 것을 낭비로 보고 손을 들었다.
뿌득-
호머의 팔이 펼쳐지기도 전에 이드의 금나수에 낚인 호머의 두 팔목이 꺾였다. 그리고 한쪽도 아니고, 두 팔의 뼈가 부러지는 통증에 호머의 입이 벌어지려는 찰나 팔목을 분지른 금나수가 이번에 그의 목을 낚아챘다.
“그…… 어…… 어…….”
목을 제압당한 호머가 제대로 된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자 이드가 헹크에게 말했다.
“내 실력을 보기에는 좀………… 수준이 떨어지는 제물이지 않아?”
그것도 많이. 굉장히, 아주아주 많이.
“……철저하게 쓸모없는 놈.’
헹크는 구해 달라는 듯 자신을 향해 눈을 치켜뜨고 있는 호머를 무시하고 한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사방에 숨이 있던 자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대충 봐도 백 명이 넘는 적들의 손에는 번뜩이는 무기가 들려 있었다.
이드는 입맛을 다시며 잡고 있던 호머를 바라보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한없이 제로에 가까운 인질의 가치에 상대를 협박할 의욕도 사라졌다.
“다시 말하지만 이후에 벌어지는 일은 그쪽 때문이라는 것은 기억하라고.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 확보해.”
“와아!”
헹크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기하고 있던 자들이 일제히 앞으로 달려 나왔다.
이드는 그들이 움직임과 동시에 라미아가 톰과 두 명의 암살자를 실드로 보호한 것을 느끼며 손에 든 호머를 달려드는 적들에게 암기를 날리듯 쏘아냈다.
쿠당탕!
“켁!”
“저 새끼, 도대체 사람을 뭐로 보고!”
뭐로 보긴, 적으로 보지.
설마 사람을 무기로 사용할 줄은 몰랐는지, 가장 앞서서 달려오던 자들 일곱이 호머와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질량만큼 충격이 큰데 거기에 내공을 실어 던진 덕분에 호머와 초인들이 피를 토해야 했다.
이드는 적들이 그 모습을 보고 채 다 놀라기도 전에 전궁보로 초인들 사이를 가르며 검을 번뜩였다.
에단의 안전을 위해 그의 대역으로 나선 만큼 그 목적을 확실히 하려는 생각인 이드의 검은 냉혹했다. 촤아아악-
적들이 이드의 접근에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 섬광 같은 검에 다섯 명의 머리가 동시에 허공으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