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340화


777화

묘하게 불길한 말에 움츠러든 이드와 이그렌이 불안한 얼굴로 라미아를 돌아보았다.

“왜? 안전하게 지켜 달라고 잘 부탁했잖아. 시온의 엘프들이라면 백작가의 기사단이 나서도 물리칠 수 있을 텐데?”

시온 숲 엘프들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이드가 장담했다. 백작가 기사단의 전력을 보지는 못했지만, 사무엘을 호위하는 기사의 실력을 통해 대충 기사단의 수준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기사가 검을 들고 달려들 때나 그렇지, 화려한 파티에서 달콤한 와인을 들고 접근하는 여자도 막을까요?]

“아!”

이드와 이그렌은 그녀의 말에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특히 엘프들이 시온 자작을 보호하고 있는 것은 비밀이다. 옆에 붙어 있는 호위 기사들도 막을 수 없는 종류의 공격을 과연 멀리 떨어져 있을 엘프들이 막을 수 있을까? 눈치 없는 이그렌이 생각해도 고개가 저어지는 일이다. 장담하는데, 공격이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파티에 달아오른 욕망으로 볼 것이다.

“이드 님! 어떻게 좀……………”

이드는 즉시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이그렌을 달래고는 말했다.

“진정해. 그 문제는 내가 연락해서 사정을 이야기하면 끝나는 문제니까.”

그렇다. 모르기 때문에 못 막는 거지, 알고서는 당하지 않을 방법이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파티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사무엘의 여동생과도 얼굴을 부딪칠 일이 없고, 약을 먹을 일도 없다.

“라미아 시온 숲을 연결해 줘!”

[이미 연결 중이에요.]

“역시 네가 최고야.’

이드는 자신이 말하기도 전에 이미 마법의 거울을 기동하고 있는 라미아를 향해 엄지를 세웠다.

본래 일리나에게 남겨 둔 거울과 한 쌍으로 만들어져 영상 통신과 공간 이동이 가능한 마법 거울이지만, 제작자인 라미아가 다루면 또 다른 능력을 발휘한다. 알고 있는 이라면 누구와도 연결이 가능한 최고의 통신 장비가 되는 것이다.

잠시 후 이드들을 비추던 거울이 투명해지더니, 깔끔한 모습의 우디가 나타났다.

“연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슨 일인가?”

“안녕하십니까, 장로님. 앞서 부탁드렸던 일과 관련하여 말씀드릴 일이 있어 급히 연락을 드렸습니다. 사실은…….”

이드는 호위를 부탁한 시온 자작을 대상으로 백작가에서 꾸미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 했다.

“쯧, 인간의 욕심이란.”

혼인이라는 신성한 의식을 욕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이야기를 들은 우디가 혀를 찼다.

이드는 그 말에 인간 대표로서 민망하고 죄송해서 눈을 마주치기 불편했다. 그레센뿐 아니라 자신이 태어난 중원도 혼인은 정치적으로 잘 이용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자네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 일단 자네의 말은 알았네. 하지만 소식을 전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네. 직접 가서 전해야 하거든.”

“예? 마법과 풀잎피리는 어쩌고요?”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에 이드가 당혹해 묻자 우디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마을을 나선 인원 중에 마법사가 없다네. 그리고 풀잎피리는 시온 숲 안에서만 통하지. 숲 밖으로 나가면 피리 소리가 닿지 않아.”

“어째서 연락할 수 있는 마법사가 같이 가지 않은 겁니까?”

뜻밖의 사실에 난감해하며 물었다. 마법사가 없다면 모르지만, 있는데 보내지 않는 건 이상하다. 다방면에서 필요한 것이 마법사이고, 특히

이번처럼 마을에서 멀리 나가는 일이 있을 때는 연락이 가능한 마법사가 같이 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마을에 마법을 아는 엘프가 없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에 돌아온 우디의 대답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한 이유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일이 생기면서 경쟁이 붙다 보니, 무투파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 아이들이면 어지간한 상황에서 자작을 지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허락했는데, 이런 상황을 대비하지 못한 내 잘못이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부탁드린 제 잘못이죠.”

이드는 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순수한 호의로 움직여 준 우디의 사과를 받는 것이 어색해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우디는 일리나의 아버지로, 자신의 장인이 아닌가.

“일단 즉시 엘프를 밖으로 보내 자네 말을 전하도록 하겠네.”

“얼마나 걸릴까요?”

“초행인 데다 거리가 있으니, 4일 정도 걸릴 것 같군. 괜찮겠나?”

괜찮지 않다. 이드는 난감한 표정을 감추려 이마를 쓰다듬었다. 사무엘의 말을 엿들을 때 분위기로 봐서 저들은 그렇게 느긋하게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빠르다면 오늘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이다. 4일 후 이드의 부탁이 도착할 때면 시온 자작은 정력이 쪽 빨려 미라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느린 모양이군. 그럼 아홉 가지 중의 하나를 보내지. 절반의 시간이면 도착할 거야.”

이드의 표정을 본 우디의 말에 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제 개인적인 부탁에 아홉 가지가 마을을 비울 수는 없지요.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자신의 경공과 라미아의 마법이라면, 아홉 가지가 줄일 수 있는 시간의 반의반까지 줄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음, 확실히 그러는 쪽이 빠르긴 하지. 마을에서 출발하는 거라면 준비해 줄 것이 있나?”

“당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후를 위해서 호위에 추가할 마법사가 1명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건 이미 생각해 둔 아이가 있네.”

“그럼 잠시 후 뵙겠습니다.”

통신을 마친 이드는 즉시 집사를 불러 다시 며칠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고 말하고는, 앞서와 같이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수련 중이라고 말하라고 일렀다.

이드는 집사를 내보낸 후 이그렌을 보며 말했다.

“이런 이유로 다녀올 테니, 걱정 말고 기다리도록.”

“지금은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거면 충분해.”

이드는 붉어진 눈으로 깊이 고개를 숙이는 이그렌을 보며 가볍게 웃어 보이고는 거울에 손을 올리고 있는 라미아의 손을 잡았다.

[그럼 바로 갈게요.]

그녀의 말에 이드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마나의 발광과 함께 두 사람이 거울 속으로 사라졌다.

이그렌은 주인이 사라진 방에서 조심스럽게, 그리고 정중하게 나서 문을 닫았다.

공간 이동을 한 이드와 라미아가 나타난 곳은 시온 숲에 있는 집이었다. 정확히는 일리나의 집이었다. 숲을 나가기 전 집의 거실에 공간 이동용 대응 마법진을 만들어 둔 것을 지금 사용한 것이다.

유비무환의 준비 정신으로 만들어 둔 것을 잘 이용한 것이다.

대응 마법진이 없었다면, 시온 숲까지의 상당한 거리를 한 번에 이동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드는 살짝 먼지가 내려앉은 집안을 둘러보았다.

“안티로스로 돌아가기 전에 들러서 청소를 좀 해야겠다.”

[그래요.]

지낸 지 얼마 되지 않는 집이지만, 수년을 거주한 지구의 집만큼이나 정이 가는 곳이었다. 어쩌면 일리나가 살고 있던 집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이드가 집을 나섰다.

[우디에게 갈까요?]

“아니, 지금은 시온 자작의 일이 더 급하니까, 돌아가기 전에 뵙는 게 좋겠어. 지금 가 봐야 어차피 엉덩이 붙일 여유도 없잖아.”

[알았어요. 그럼 바로 나가요.]

이드는 라미아의 손을 잡고 마을을 가로질렀다. 정령수와 놀던 아이들이 이드를 알아보았지만, 이드는 손을 흔들어 주고는 곧장 마을의 입구를 향해 달렸다.

입구에 다가가자 마을을 보호하는 결계의 문을 열어 두고 있는 엘프가 보였다.

“장로님께 이야기 들었다. 바로 나가.”

“고마워요.”

이드는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 엘프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살처럼 달려 숲을 벗어났다.

“백작성이 어느 방향이지?”

[이 방향으로 572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어요.]

라미아가 한쪽 방향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려도 반나절을 꼬박 달려야 할 거리다.

이드는 까마득한 지평선을 바라보다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말했다.

“단순하게 달려가기엔 너무 멀어. 위로 가는 게 빠르겠어.”

[확실히 좀 요란하지만 가장 빠른 방법이죠.]

이드의 말에 동감한 라미아는 즉시 사용하던 몸을 아공간에 넣고 견갑의 형태가 되어 이드의 어깨를 감쌌다.

[올라갈게요.]

라미아의 신호와 함께 블링크를 통해 사라진 이드의 신형이 상공 십 킬로미터 지점에 나타나고, 다시 사라진 후 또 십 킬로미터 높은 곳에 나타나길 일곱 번.

이드는 구름보다 높은 지상 칠십 킬로미터 중간권에서 멈췄다.

매우 희박한 공기와 영하 수십 도의 냉기는 보통 인간이 맨몸으로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이드는 호신강기로 최악의 환경을 극복했다. 하지만 견딜 수 있다고 오래 있고 싶은 공간은 아니다.

“방향 유도는 맡길게.”

[영상으로 출력할게요.]

팟!

이드의 눈앞에 우주 비행사가 사용하는 디스플레이처럼 지상의 한 지점을 목적지로 하는 붉은 라인이 그려졌다. 라미아의 일루젼 마법이었다. 이드는 눈앞에 그려지는 목표 지점을 확인하고 숨을 들이쉰 후 힘의 압축을 위해 몸을 웅크렸다.

“지금부터 필요한 건 스피드~!”

장난처럼 말했지만 정말이다. 이제는 오묘한 무리도, 깊은 도리도 필요 없이 오로지 무식한 힘과 끝없이 가속하는 스피드만 필요할 뿐이다. 쿠구구구궁!

이드의 발끝에서 음양이 반전을 반복하며 반발하는 강력한 척력이 형성되었다. 강력한 힘의 반발에 진공이 된 공간으로 쏟아진 희박한 대기가 다시 산산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뿌옇게 흩어지는 모습은 마치 발사 직전의 로켓과 같았다.

그리고 뿌연 공기 사이로 이드의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

콰쾅!

폭음과 함께 이드의 발을 중심으로 지상과 우주를 향해 꿈틀거리는 용과 같은 중력의 뒤틀림이 발생했다.

그것이 바로 운룡대팔식을 분해하여 뇌정전궁보의 모자란 부분을 보완, 오로지 미친 듯한 쾌의 극한에서 탄생한 비행법 뇌룡노도(龍怒渡)! 중력의 폭발. 그것은 한순간이지만, 이드를 중력이라는 우주의 절대 법칙에서 자유롭게 만들었다. 중력의 한계에서 벗어난 이드는 무한히 가속하며 하늘을 달렸다.

그 압도적인 속도에 호신강기와 부딪힌 대기가 불타며 불이 붙었고, 이드의 발끝에서 형성된 중력의 뒤틀림에 휘말리며 구불거리는 불의 꼬리가 생겼다.

보통은 최첨단의 기술로 만들어진 우주 비행선 안에서 우주복을 입고도 힘겹게 진입해야 하는 공간을, 이드는 무려 맨몸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니, 불꽃에 휘감긴 속에서도 목적지를 향해 방향을 수정하고 있으니 비행이라고 해야 할까.

쿠구구구구구ᅳ

“우와! 별똥별이다!”

“소원 빌어야지!”

공기를 떨어 울리며 날아가는 이드를 본 아이들이 두 눈을 꼭 감고 소원을 빌었다.

[도착 5분전. 2분 전부터 속도를 줄여야 해요.]

“알았어, 투명화 마법도 부탁할게.”

지금은 불꽃에 휩싸여 괜찮지만, 속도를 줄이며 불타던 대기가 사라지고 그 속에서 사람이 튀어나오면 그게 또 얼마나 소문이 날지. 물론, 그 말을 믿어 줄 사람이 있어야겠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상공 오 킬로미터에 이르렀을 때, 이드는 몸을 보호하던 호신강기를 전면으로 폭사하며 속도를 줄였다.

그로 인해 대기는 또 다시 폭발하고, 이드의 모습은 라미아의 모습에 의해 불꽃 속에서 사라졌다.

혹여 이 장면을 누군가 보고 있었다면 유성이 공중에서 폭발해서 사라진 것으로만 생각할 것이다.

일부러 꾸민 것은 아니지만, 안전한 착지를 연구하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유성처럼 보이게 됐다. 그로 인한 부작용은 하나!

“유성을 찾자! 비싸게 팔 수 있다.”

“유성 파편으로 보검을 만들겠다! 성창을 만들겠다!”

유성을 찾아 일확천금을 손에 넣으려는 사람들을 생산한다는 점뿐이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