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49화
786화
마법진 덕분에 시온 숲으로 복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마법진이 설치된 일리나의 집에 도착한 엘프들이 서둘러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인구 밀도가 급격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리나의 집은 세 사람이 생활하기엔 모자라지 않지만, 백작성에서 돌아온 인원이 모두 서 있기엔 많이 좁았다.
“후~읍, 좋네요. 숲의 향기가 이렇게 좋은 줄은 처음 알았어요.”
“그렇지? 역시 숲이 제일 좋아.”
첫 외출에서 돌아온 엘프들이 집의 소중함에 반가움을 표시했다. 모두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을 실감한 듯한 얼굴들이다.
넉넉한 자금과 백작성의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의 실력이 있지만, 역시 집처럼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곳은 없는 법이다.
백작성에 있을 때도 컨디션이 나빠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엘프들이 숲에 돌아오자마자 푸릇푸릇 솟아나는 새싹처럼 생기가 돌았다.
“모두 제 부탁 때문에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드가 자신의 부탁에 나서 준 엘프들에게 감사를 표하자 그들은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말했다.
“가족의 부탁인데 당연히 들어줘야죠. 힘든 일도 아니고.”
누군가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드는 그 모습에 옆구리가 간질간질했다. 이런 모습도 인간과 엘프의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푸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가족 간이라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요.”
“알았어. 그보다 난 이만 가 봐야겠어. 밖에 나가 있느라 돌보지 못한 어린 나무가 있거든.”
“나도 그래. 같이 가지. 내가 돌보던 녀석은 병에 걸려 회복 중이었는데, 어떤가 모르겠네.”
“나는 집에 가서 자야겠어. 숲 밖에서는 잠자지 못한다는 걸 처음 알았어.”
이드의 감사 인사를 받은 엘프들은 곧 자신들의 할 일을 찾아 순식간에 흩어지고 윌만 남았다.
“윌은 할 일 없어요?”
“있죠. 나도 아끼는 꽃나무가 있어요. 하지만 그 녀석에게 가기 전에 장로님께 일이 끝났다는 말씀을 드려야 해요. 그래도 책임자니까요.” 모두 너무 자연스럽게 흩어져서 깜빡했지만, 이들은 오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길이었다. 보통은 모두 모여 상급자에게 보고 후 휴식을 명령받아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엘프라서 그 형태가 다른 모양이었다.
그나마 윌이라도 남았으니 다행인가?
까딱 잘못했으면 엘프들의 임무에 대한 보고를 이드가 할 뻔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윌이 이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니면, 이드가 대신 해 줄래요?”
“빨리 가죠. 장로님이 기다리시겠어요.”
“쩝…….”
이드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윌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엘프 사회는 가끔 너무 격이 없을 때가 있어 너무 당혹스럽다.
우디의 집 앞에 있는 정령수에 다가가자 언제나처럼 그 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우디가 보였다.
하긴 그 많은 인원이 마을 안으로 공간 이동을 해 마나가 움직였는데, 그가 모를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이 윌과 이드를 보고 반가워 손을 흔들었지만, 이전처럼 놀아 달라고 달려들진 않았다. 녀석들도 우디가 이드를 어려워하는 것을 느끼고 눈치를 보는 듯했다.
대신 새로운 얼굴인 라미아를 향해 무시무시하게 눈을 반짝였다.
아이들은 전날 이드와 함께 자신들을 스쳐 지나갔던 라미아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면을 쓰고 모자가 달린 로브로 모습을 감추었으니, 아이들에게 얼마나 신기하게 보일까.
“저기 이드, 옆에 가면 누나는 누구에요~?”
그 중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한 한 녀석이 우디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이드는 녀석이 참 눈썰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살짝 가슴이 봉긋한 것을 제외하면 로브를 뒤집어쓴 라미아의 모습에서 성별을 구분할 구석이 없는데, 그걸 잡아 낸 것이니까.
그런데 라미아의 정체를 묻는 말이 꼭 ‘우리에게 줄 새로운 장난감인가요~’ 하고 들리는 것은 착각이겠지?
이드가 그렇게 생각하고 라미아를 힐끗 돌아보자 그녀가 정령수 아래로 다가가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꼬맹이들. 설마 벌써 누나를 잊은 건 아니겠지?]
“앗……!”
“라미아다!”
과연 꼬마라도 엘프의 청각은 뛰어났다. 단번에 라미아의 목소리를 알아본 아이들이 나뭇가지를 뛰어다니는 다람쥐처럼 라미아를 향해 뛰어내렸다.
아이들은 라미아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전혀 중요하거나 궁금하지 않은지 오로지 반가움만 가득했다.
라미아를 아이들에게 내어준 이드는 윌과 함께 우디 앞에 섰다.
“잘 다녀왔습니다, 장로님.”
“탈 없이 돌아왔으니 됐다. 여긴 시끄러우니 이야기는 들어가서 나누도록 하자.”
우디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라미아의 모습을 눈에 담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나처럼 베일이 찻잔을 내려놓자 우디가 창밖으로 보이는 라미아의 모습을 보며 감탄을 쏟아냈다.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직접 보니 대단하군. 설마 인형을 만들어 육체로 사용하다니.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생각이고, 방법인데 말이야.”
“라미아이니까 가능한 일이죠.”
“그녀가 있다고 일리나에게 소홀해선 안 돼.”
이미 라미아와 이드의 관계에 대해서는 첫 만남에서 들었던 우디가 일리나의 아버지의 입장에서 경고를 날렸다.
“맹세코 절대 두 사람에게 소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드의 맹세 후에는 백작성에서 있었던 일을 우디에게 보고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이드의 부탁에 의한 일이었지만, 일단 엘프들이 외부에 나가 한 일이기 때문에 그가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태풍을 부르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이 은밀했던 임무가 나중에 어떤 일이 되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다면 마을의 지도자로서 미리 알고 있어야 대비하고,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일이 잘 해결되었다니 다행이군. 자네가 직접 나서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
백작성에 나간 엘프들과 급히 연결해 달라는 이드의 부탁에 아홉 가지를 보내려 했던 일을 떠올리며 우디가 말했다.
“어쩌면 제가 아니었어도 괜찮았을지 모르죠.”
이드는 오늘 아침 독기가 넘실거리던 자작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는 마냥 말랑말랑 약한 남자가 아니었다. 어쩌면 정말 그런 일이 닥쳤어도 냉정히 모든 사실을 부정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반응이 보통의 귀족들의 행태이기도 했다. 잠시간의 유희로 태어난 아이가 부정당하고 버려지는 일은 귀족 사회에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니까.
“그럼 자넨 또 돌아가서 토벌 준비를 하겠군?”
“준비랄 것도 없죠. 제가 챙길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으니까요.”
“만약에라도 자네 이름으로 된 병력이 필요하다면 말하게.”
아무래도 명예 후작씩이나 되어서 거느린 기사단에 병사도 하나 없어서야 모양이 말이 아니다. 우디의 말은 이번 일처럼 그 부분을 엘프들을 파견해서 도와주겠다는 말이었다.
이드는 우디의 배려심 깊은 말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러나 위험한 전투에 엘프들을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는 이드였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저와 일리나만으로도 차고 넘칩니다.”
정말이다. 마인드 마스터라는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지간한 백작가의 힘보다 강력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있었던 소드 팰러스의 습격을 막아 내며 소검후라는 말이 슬슬 나오는 일리나의 이름값을 더하면 이드가 이끄는 기사단이나 병사들이 없다고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괜찮지만, 우리가 언제든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때론 힘보다 숫자가 필요한 때도 있으니까. 그럼 두 사람 다 나가 보게.”
짧은 당부를 마친 우디가 이드와 윌을 내보냈다.
우디의 집을 나서자 정령수 주변을 날아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꺄르르륵!”
“꺅! 꺅!”
라미아가 마을을 떠나가 전과 같은 방법으로 아이들과 놀아 주고 있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윌이 이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전 제 꽃나무에게 가 봐야겠어요. 다음에 마을에 들르면 그때 다시 봐요.”
“윌도 수고했어요.”
이드는 가볍게 돌아서는 윌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라미아를 돌아보자 아이들이 그녀의 앞을 막아서고 나섰다. 요 영악한 녀석들이 놀이는 이제 끝이라는 분위기를 읽은 것이다. “라미아는 절대 못 줘요!”
“옜다, 받아라!”
이드는 그 모습에 사탕을 한 움큼 잡아 뿌렸다.
“앗! 사탕이다!”
이미 라미아를 통해 사탕의 위대함을 맛본 아이들이 정신없이 사탕을 향해 달라붙었고, 이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용에게 잡혀 있는 공주를 구출하듯 라미아를 빼내 일리나의 집으로 도망쳐 간단한 청소를 시작했다.
어차피 다시 쌓일 먼지지만, 눈에 보인 이상 그냥 두기엔 찝찝하니까. 그래도 잠깐 환기를 하고, 먼지를 터는 것만으로 집안은 깨끗해졌다.
짧은 시간에 한결 깨끗해진 집안에 만족한 이드는 라미아의 손을 잡고 안티로스의 저택으로 복귀했다.
이드가 사용하던 방은 떠날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이그렌이 잘 말해 출입을 막아 놓은 듯했다.
이드는 탁한 공기의 환기를 위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황성의 첨탑 위에 반투명하게 떠오른 황제의 모습과 함께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이번 토벌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황제의 목소리는 이미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것이다! 제국을 지키는 검이여, 정의를 수호하는 영웅들이여. 지금이야말로 그대들이 검을 들어 제국에 반하는 악을 징벌해야 할 때다.
“와아아아아!”
-나영광의 홀의 주인이며, 대 아나크렌 제국의 지배자 필리푸스 드 페렌티움 아나크렌의 이름으로 흑마법사에 대한 토벌을 선포한다!
앞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상관없다. 황제의 마지막 선언에 그가 이야기한 모든 엑기스가 모여 있었으니까.
문을 열다 황제의 영상과 마주했던 이드는 선포와 함께 사라진 황제의 모습에 라미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정말 쉴 시간을 안 주네. 이제 막 돌아왔는데, 정말 쉴 틈이 없네.”
[그레센으로 돌아오기 전에 많이 쉬었으니까. 쉰 만큼 열심히 일해야죠.]
라미아가 어깨를 으씩이며 말했다.
이드는 쿨내 진동하는 라미아의 말에 입술을 삐죽였다.
직접 모습을 드러낸 황제의 선포는 순식간에 안티로스를 너머 제국 전역에 퍼져나갔다.
황제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안티로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의 특권이지만, 황제의 말은 제국의 구석구석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해졌다.
그만큼 아나크렌이 안정되어 있다는 뜻이며, 황제의 권력이 탄탄하다는 뜻이었다.
토벌에 대해 듣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환호했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사악한 흑마법사의 토벌에 제국민들은 황제를 칭송하며 제국의 승리를 기원했다.
그리고 황제의 선포가 있은 날 밤.
푸드드득.
검은 새 한 마리가 소드 팰러스 위로 날아와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