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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82화


819화

뿌드득.

게일의 턱에서 저러다 이빨이 가루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소리가 났다.

주변에 있던 청색 기사단의 기사들은 대략 상황을 짐작하고는 못 본 척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어이쿠, 내 애마 똥 싸는 것 좀 봐. 겨우 변비가 나았나보이.”

애마의 변비가 뭐가 중요하다고. 어처구니없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혼자 남은 게일이었지만, 그에게 그런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네까짓 놈까지 날 비웃는다는 말이지.’

높은 안력으로 밀알만 한 코넬리온의 얼굴을 정확히 알아본 게일이었다.

사실 코넬리온은 자신감을 미소로 표시했을 뿐이지만, 황녀에게 접근하는 하루살이들 때문에 심사가 꼬여 있는 게일의 눈에는 웃는 것 하나조차

뒤틀려 보였다.

무엇보다도 코넬리온은 게일도 아는 기사였다. 독보적인 실력의 게일을 제외하고 같은 나이대의 기사들 중 손꼽히는 실력을 가진 기사.

하지만 게일이 황녀의 곁을 지킬 때는 감히 황녀의 근처에도 다가오지 못하던 자였는데, 이제는 그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어 버렸다.

코넬리온은 적극적으로 황녀에게 다가가고, 자신은 그것을 지켜만 봐야 한다니.

“당장 속이 터질 것 같군.”

게일은 옷깃을 펄럭이며 열을 식혔다. 그날 이드만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은 오늘도 황녀의 곁을 지키고 있었을 텐데.

게일은 후회와 함께 황녀 주변을 기웃거리는 하루살이들의 얼굴을 눈에 새겼다.

감히 겁도 없이 자신의 것을 탐하는 놈들에게 그 대가가 어떤 것인지 맛보여 주기 위해서다. 그렇게 옹졸한 다짐을 가슴에 새기던 게일이었지만, 다음 순간 이드와 눈이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아…….”

게일은 자신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는 사실에 진한 패배감을 느꼈다. 이드 때문에 자신은 황제의 신뢰를 읽고, 황녀에게 경멸받고, 황색 갈기 기사단에서 퇴출당하기 직전이며, 동료 기사들로부터 불신을 얻었지 않은가.

분명 자신이 저지른 실수이지만……………

“실수에 비해 나는 너무 많이 잃었다. 그런 내가 왜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 뿌득.”

불끈 치솟는 반감에 게일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지만, 이드는 이미 자리를 옮긴 뒤였다. 순간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분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비집고 끼어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초인들과 함께 저놈도 같이 사라져 버린다면..”

흠칫.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게일은 흠칫 놀라 주변을 살폈다. 다행이 기사들이 비켜 준 덕분에 그의 말을 들은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충동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빠르게 살이 붙기 시작할 때 모이엔이 그를 불렀다.

“게일 경. 잠시 볼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대답과 함께 모이엔에게 달려가는 게일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라 있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는 충동에 살을 더하는 작업이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한번 시작된 황녀의 기사단 방문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황녀의 방문을 바라지 않는 기사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황녀가 방문할 때마다 환호성과 함께 기사단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고, 다음은 자신의 기사단에 방문해 달라며 이드에게 읍소하는 자들이 줄을 섰다.

“아니, 내가 무슨 황녀 매니저도 아니고 말이야. 모조리 나한테 달려오면 어쩌자는 거야.”

이드는 기사단장의 일보다 황녀의 방문 계획을 짜느라 더 바쁜 상황에 허탈해하며, 자신이 기사단장인지 황녀 매니저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한탄해 봤자 소용없네요. 자업자득인데 누굴 탓해요.]

“아니, 그래도……”

이드는 라미아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이렇게 된 이유도 이드가 코넬리온의 부탁을 들어준 때문이었으니까.

거기다 다른 사람의 부탁은 실전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무시하던 황녀가, 이드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따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황녀의 섭외를 위해 이드에게 몰려드는 것은, 벌이 꽃을 찾고 개미가 사탕 주변으로 몰려드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멈출 수도 없었다.

“이제 기사단 방문은 거절하도록 할까요?”

매니저 짓이 지겨워 황녀에게 말을 꺼낸 이드였지만, 뜻밖에 황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계속하겠어요.”

“힘들지 않으십니까? 단순히 기사단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가볍게 말을 달리며 훈련을 하고 있고, 아이넬 기사단과의 훈련도 병행하고 있는데.”

강도는 좀 약해졌어도, 훈련양은 오히려 늘어 있는 황녀였다.

“힘들어요. 하지만 절 반기는 기사들의 모습을 보니 그만둘 수 없네요. 그들이 절 이만큼이나 반가워하고 기뻐할 줄은 몰랐어요. 무엇보다 단순히 황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말을 달리는 동료로서 절 반겨 줘요. 그리고 덕분에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가까워질 수도 있었고요.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저는 그들의 생생한 생각을 황제께 전하고 싶어요.”

이드는 두 눈을 반짝거리는 황녀의 모습에 쩝쩝 입맛을 다셨다. 너무 옳은 생각이라 뭐라 말릴 만한 말이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대견하다 싶기도 했고 말이다.

뿐인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록마틴도 토벌대의 사기가 오른다며 황녀의 활동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이러니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있나.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 저렇게 의욕 만만인데.

“그럼 앞으로 황녀 전하의 기사단 방문 순서를 조율하는 것은 지휘부에서 해 주십시오.”

어차피 막을 수 없는 일. 이드는 지금 가장 귀찮은 일을 떠넘기고자 했다.

“아니, 그 일은 계속 명예 후작이 맡아 주시오.”

“어째서입니까? 지휘부에서 차례를 정해 주면 휴식 시간마다 아이넬 기사단 앞에 모여드는 호객꾼들도 정리가 될 텐데요.”

록마틴과 그 부관은 부탁을 위해 모여든 귀족들을 호객꾼으로 표현한 이드의 말에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그게 문제요. 아무래도 내가 맡아서 순서를 정하게 되면 그게 곧 토벌대 내의 권력 순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오.”

그것은 공에서도 차별받을 수 있다는 신호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곧 적과의 전투를 앞둔 토벌대에 결코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전 아니라는 겁니까?”

“그렇소. 이미 코넬리온 자작의 기사단을 처음으로 찾고, 그 후에는 고벤 남작, 그 후 카날리안 백작 등의 순으로 방문하게 하지 않았소. 권력이나 전투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얼마나 열심히 부탁하느냐는 성의에 달려 있음을 그들 또한 알고 있소. 덕분에 토벌대 내에서도 잡음이 없다오.” 

물론 완전히는 아니었다. 귀족의 자존심상 하위 귀족에게 밀렸는데 기분이 좋을 수는 없으니까. 다만 상대가 황녀이고, 이드이기 때문에 겉으로 표시하지 못할 뿐이다.

“결국 앞으로도 제가 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이드가 푹 고개를 숙이자 그 모습이 안 되어 보였는지, 록마틴 후작이 말했다.

“토벌대와 황녀 전하를 위해 고생을 해 주시오. 대신 명예 후작의 일을 도울 수 있도록 똘똘한 부관을 붙여 드리도록 하겠소.”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이드는 감사를 표하며 록마틴 후작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다고 이드의 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이드가 기사단의 방문 순서를 정하는 것은 단순히 정성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간 살핀 기사단의 훈련 수준과 해당 기사단 주인의 실력을 살펴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은 이드가 직접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요즘 굉장히 바쁘신 것 같습니다, 단장님.”

그런 중에 코넬리온이 다시 나타났다.

“덕분에 바쁘다오. 그런데 어쩐 일이오?”

지금 이 사태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의 등장에 이드가 삐뚜름한 시선을 향했다.

그러나 앞서도 천연덕스럽게 이드에게 매달린 사람답게 이드의 눈길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름이 아니라, 황녀 전하께서 한 번 더 저희 기사단에 방문해 주실 수 없는지 부탁을 드리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작은 성의입니다.” 

이드는 코넬리온이 내미는 최고급의 포도주를 손에 들고는 기막혀했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때에 재방문까지 가능해지면 당장 일이 두 배로 늘어나게 되는데, 그걸 부탁한다고?

‘이 악덕 사장 같은 놈!’

이드는 코넬리온을 불타는 눈으로 노려보던 이드가 음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 아쉽구려. 황녀 전하께서 방문할 기사단이 너무 많아 재방문은 힘들겠소. 하지만 이런 좋은 술을 선물받고 그냥 있을 수는 없으니, 황녀

전하를 대신해 내가 직접 기사단을 방문해서 자작과 기사단의 실력을 보아 주도록 하겠소.’

아무리 황녀에게 눈이 먼 코넬리온이라도 이쯤 되면 이드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모를 수가 없다.

이드의 방문이 영광이긴 하지만, 최근 밤늦게 이어지는 아이넬 기사단의 훈련을 보고 있으면 결코 반갑지만은 않은 일.

“예? 아니, 꼭 그러실 필요는………….”

“아니, 절대 거절은 받지 않겠소. 내 오늘 저녁에 방문하리다. 꼭 기다려 주길 바라겠소!”

“……예.”

고개를 저었다가는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 같은 무시무시한 압력에 결국 고개를 끄덕여 버린 코넬리온은 자랑스러운 자신의 기사단을 향해 내심 용서를 빌었다.

‘나의 기사들이여 겁쟁이 같은 주인을 용서해 주기 바란다. 하지만 절대 그대들만 지옥에 가는 일은 없으리라~’

과연 코넬리온은 그 다짐을 지켜 그의 기사들과 함께 그날 밤 이드와 아이넬 기사단을 마주해야 했다.

오로지 황녀와 일리나만을 쏘옥 뺀 아이넬 기사단을 말이다.

“자, 오늘은 내가 기사단을 지휘한다. 적은 코넬리온 자작과 페가수스 기사단이다. 공격!”

알뜰살뜰하게 화풀이도 훈련에 이용하는 이드였다.

실제 전투를 방불케 하는 격렬한 훈련은 그날 자정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백 명이 넘는 기사들 속에서 이드는 한 마리 야수가 되어 날뛰었고, 코넬리온을 포함한 수십 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덕분에 록마틴 후작으로부터 전투 전에 부상자가 생겼다며 주의를 받았지만, 어차피 신관들이 조금 피곤하면 해결될 일.

스트레스의 원흉 중 하나를 제거한 이드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거기에 더해 부수 효과도 있었다. 전날의 격렬한 훈련을 관전한 때문인가 황녀의 방문을 요청하기 위해 이드에게 모여든 호객꾼들의 행동이 선 자리에 나온 아가씨처럼 얌전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좋네. 다시 세일 판매대처럼 변하면 적당한 놈을 잡아서 훈련을 뛰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렇게 사소한 사건 몇몇을 치른 토벌대가 목적지의 삼분의 이 지점을 지날 때였다.

점점 빨리 다가가던 토벌대의 이동 속도가 해당 지점을 기점으로 조금씩 느려졌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이어질 전투를 대비해서 체력을 비축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토벌대의 속도가 느려진 것은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신의 관을 감시하던 감시자들의 보고가 끊어졌소.”

목적지를 밝히던 날처럼 이드와 사람들을 불러 모은 록마틴 후작이 굳은 표정으로 꺼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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