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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46화


882화

워낙 덩치가 큰 골렘이었다. 그 파편이라고 해도 어른 머리만 하다. 당연히 무게는 더 무겁다. 맞으면 최소한 두개골 함몰이고, 스쳐도 뇌진탕이다. 그런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다.

토벌대 머리 위로 접근하기 전에 처리하긴 했지만, 워낙 천장이 높아서 파편이 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토벌대 기사들은 머리 위를 조심해라!”

이드가 급히 주의를 주었지만,

쿵!

경고보다 파편이 떨어지는 것이 먼저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파편의 첫 희생자가 골렘이라는 것일까? 파편에 맞아 찌그러진 골렘의 머리에, 놈을 상대하던 기사가 깜짝 놀랐다.

“우와! 이게 뭐야!”

처음엔 공격인 줄 알고 당황하던 기사들. 그들은 곧 위를 올려다보고는 우수수 떨어지는 파편에 아연한 표정이 되어 소리쳤다.

“피, 피해!”

“야! 거기 패턴 기사단. 맞으면 죽는다. 조심해!”


천장에서 기사들이 혼비백산한 모습을 지켜보던 이드는 늦어 버린 경고에 큼큼 헛기침했다.

“그래도 잘 피하니, 별일은 없겠네.”

사실 경고도 필요 없는 일이었다. 파편에 맞아도 할 말이 없는 것은 기사 쪽이었다.

지금 우왕좌왕한 것이야, 점점 진해지는 승리의 맛에 취해 있어서 그렇지. 검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기사들이 수 미터 위에서 떨어지는 돌덩이 하나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실력 미달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잠시 지켜본 결과 과연 삼 조에는 그런 실력 미달자는 없는 것 같았다.

“일리나 쪽도 끝난 것 같고.”

고개를 돌리자 거미 골렘을 모두 처리한 일리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드는 그녀에게 수고했다고 미소 지어 주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끼이…… 이익…….”

거기에는 반으로 잘린 채 고장 난 라디오처럼 분명치 않은 소리를 내고 있는 화염 골렘이 있었다.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놈은 반으로 잘리고도 작동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미완의 마탑. 전공을 잘못 택한 것 같단 말이지.”

초인 마법이 아니라 골렘 마법을 팠으면 벌써 마법계에 혁명을 일으킬 결과물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못 든 길을 되돌리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거기에 돌리라고 한다고 쉽게 돌릴 마법사들도 아니다. 마법에 대한 마법사의 고집은 대단하다. 가수 하겠다고 건들거리는 자식새끼

설득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데. 이미 결과가 나왔다고 자신만만한 마법사를?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미 시작된 토벌이 아닌가. 늦어도 한참 늦었지.

이드는 틱틱거리며 계속 화염을 생성하려 애쓰는 골렘에 은빛 강기 구름을 씌워 주고는 자리를 떴다.

지이이잉!

그리고 이드가 떠난 자리. 무형기류의 강기무는 기묘한 진동과 함께 골렘의 관절 사이사이로 파고들며 모든 결합을 끊어 냈고, 다음 순간. 쿠쿵쾅, 쾅, 콰쾅.

부품 단위로 분해된 화염 골렘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배경 삼아 기사들이 남은 골렘들을 몰아쳤다. 그들도 천장에 붙은 이드와 일리나, 그리고 조각난 골렘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차렸다.

자신들이 알지 못한 사이 기습이 있었고, 일리나와 이드가 이를 막아 준 것이다. 그 사실이 기사들의 기를 살리고 믿음으로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었다.

짝짝짝.

“정말 대단해요. 두 분의 실력이 이만큼 굉장한 줄 이제 알았네요.”

돌아온 두 사람을 보며 황녀가 박수를 쳤다. 그녀의 눈은 순수한 감탄과 감동으로 반짝거렸다. 좀 전까지 그녀를 들뜨게 하던 전장의 열기는 이드와 일리나 두 사람이 보여 준 강력한 힘에 흔적도 없이 쓸려 나가고 없었다.

기사들의 얼굴도 볼 만했다. 둘로 충분하다는 이드의 말을 믿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거미 골렘들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고 불신에 아까운 경악 반, 존경 반으로 엉망이다.

그나마 본래 은색 기사단 소속인 여기사들만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몇 가지 사건을 함께하며 이드와 일리나의 실력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고, 또 이렇게나 강한 그들이 은색 기사단과 가까워서다.

고작 친한 거 가지고 그런다 할 수 있지만, 사실 지연, 학연, 혈연으로 대표되는 인맥만큼 큰 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드와 일리나는 특급 도우미라고 할 수 있다.

황녀도 그런 의미에서 아쉽기만 했다.

게일을 쉽게 상대하는 것을 보고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분명히 말해 예상 이상이었다.

“별말씀을.”

“정말 명예 후작님 말씀처럼 두 분과 청색 기사단은 달랐네요.”

황녀가 싸우기 전 이드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비유인 줄로만 알았는데, 말 그대로의 사실이었다니.

막말로 전투력 측정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 싸워 보기 전에는 양자 간의 전력을, 특히나 단체의 전력을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동일한 적을 상대로 청색 기사단은 부상자가 발생했고, 이드와 일리나는 단둘이서 수 분 만에 처리했다.

외부에서 볼 때 기사단과 두 명이라는 압도적인 전력 차에도 불구하고.

이만하면 어느 쪽의 힘이 강한지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다. 이만큼 압도적인 차가 나면 상성이란 말을 꺼내는 것도 우습게 된다.

“어디든 예외가 있는 법이지요.”

“알아요. 하지만 두 분의 힘이 청색 기사단보다 강할 줄은 몰랐습니다.”

“청색 기사단이 아무리 명성이 높아도 삼검왕을 이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어찌 들으면 자신과 일리나가 삼검왕급이라고 자랑하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기사들 중 그에 반감을 표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불만이 나올 수 없을 만큼 청색 기사단과 두 사람의 실력 차는 극명했다. 거기에.

“참, 그러고 보면 명예 후작님은 블러디 혼, 마르텔 경을 이기셨죠?”

“이미 한참 전의 일이지요.”

고작 수개월 전의 일인데?

황녀는 고개를 돌리는 이드에 질문을 멈췄다. 마무리되어 가는 전장을 돌아보는 이드가 더 이상 질문을 원하지 않는 듯해서다.

대신 짧은 시간 이드에게 배웠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떠올려 보았다. 이드의 강력한 힘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자, 그때 그가 가볍게 흘린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새삼 귀하게 느껴져서다. 물론 그렇다고 흘려 넘긴 가르침이 몽땅 되살아날 리 없겠지만 말이다.


골렘이 모두 부서졌다. 서 있는 골렘이 하나도 없다.

전투 시작 후 토벌대가 2층의 골렘을 모두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사십 분이다. 토벌대의 숫자를 생각하면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다.

그만큼 골렘이 튼튼하고 숫자가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고생한 토벌대에 잠시 재정비와 휴식 시간을 주었다.

“휘익. 진짜 정신 나갈 정도로 크네. 어떻게 만든 거야?”

그 후 토벌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던전 내부를 살피던 이드가 휘파람을 불었다.

“이 던전, 규모로만 따져도 대륙 역사에 꼽힐 거예요.”

“사실 이렇게 클 필요가 있나 싶어요.”

그 곁으로 다가온 라미아와 일리나의 말이었다. 황녀의 호위를 잠시 스폴에게 넘긴 그녀들은 다정히 팔짱을 끼고 있었다.

“성능 실험장 겸 오늘을 대비한 힘자랑의 무대라는데…………. 이놈들 드워프라도 잡아 놓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예요.”

두 포로에게서 얻어 낸 정보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듣던 것 이상이다. 대충 봐도 축구장 세 개 넓이는 되어 보이는데, 구조 또한 훌륭하고 탄탄하다.

“드워프의 솜씨는 아니에요.”

일리나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이드는 의심을 접었다. 아무래도 드워프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교류가 적은 자신보다 일리나가 더 잘 아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나저나 록마틴 후작님 속상하시겠네요.”

“왜요?”

“애써 얻어낸 정보가 벌써 빗나가고 있으니까요. 2층에 있는 골렘의 숫자도 너무 다르고.”

전쟁에서 정보 획득은 기본 중의 기본이며 필수다. 거기에 잡아 둔 포로도 있으니, 안전을 대가로 정보를 얻어 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쉴라가 이끈 일 조의 피해가 적었던 것은 이 정보의 덕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의 신중함이 빛이 바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그 정보가 힘이 된 것도 1층까지였다. 당장 2층에 와 보니 골렘이 있다는 정보는 맞았지만, 그 규모에 있어서 어이없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그렇긴 하죠. 500기 정도 있다고 하더니, 저게 어딜 봐서 500기겠어요? 천은 가볍게 넘겠구만.”

한쪽으로 치워진 골렘의 잔해가 산더미 같다. 아무리 적게 봐도 가볍게 천은 넘는다.

“정확히 2139기에요.”

일리나의 말이다.

이드는 숲속을 달리며 나뭇잎의 숫자를 세고 놀던 엘프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풋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것일까!

“크큭. 그래요. 2139. 포로가 있으니 구조나 배치를 바꿀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500에서 2139는 경우가 아니죠.”

네 배가 넘는 차이다. 이 정도 차이면 골렘이 있다는 정보도 의미를 잃는다.

“아래로 갈수록 점점 더 달라지는 게 많을 텐데.”

분명 그럴 것이다.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록마틴 후작 입장에서는 포로에게 약속한 대가가 점점 더 아까워질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독단적인 결정도 아니었고.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니.

이를 탓하는 사람은 없을 터.

이드는 언제부턴가 조용히 있는 라미아를 돌아보았다.

“변하는 것도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죠. 가령 연구실이라거나. 주거 공간이라거나, 창고라거나 하는 곳 말이죠.”

프리실라와 베일록. 두 포로를 토벌대에 넘기기 전 이드는 그들에게서 정신의 관의 구조에 대해 들었다.

그들에 따르면, 연구와 주거를 위한 공간은 위층과 그 목적이 다른 만큼 규모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했다.

연구 시설과 자료. 수많은 재료들은 하루 이틀 사이에 옮기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정보는 그뿐 아니다. 두 사람도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한 바이트 타블렛의 대략적인 위치까지 들었다.

단 한 번이지만 그 강렬한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아 기억하고 있었다고 했다. 두 사람이 탑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바이트 타블렛이었다고 할 정도니까.

“만약 확보하면 딱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줘.”

얼마나 뇌리에 깊이 박혔으면, 대화를 끝내고 일어서는 이드를 향해 이런 말을 할 정도였다. 포로 주제에 말이다.

마법사에게 바이트 타블렛은 세계를 이루는 진리의 한 조각을 품은, 말 그대로 보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보를 얻은 이드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한 가지 시도를 해 보기로 했다.

바로 바이트 타블렛의 도굴이다.

혼돈의 파편, 검후, 초인파와 삼검왕. 메르시오 등 많은 사건의 중심에 있는 토벌이고, 과연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를 토벌이지만,

그런 중에도 한 가지 분명한 목표는 있었다. 토벌대보다 먼저 손에 넣어 빼돌려야 할 물건.

바로 바이트 타블렛이다.

라미아조차 단번에 해석하지 못한 이 귀물은 그냥 두면 엄청난 폭탄이 될 것이 분명했다.

당장 던전에 진입하기 전, 링스피어의 에고를 깨우고, 몬스터들을 강화시킨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니 누군가의 손에서 터지기 전에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것은 토벌과는 별개였다. 전투는 이미 시작되었으니, 바이트 타블렛이 있건 없건 토벌은 계속될 것이고.

이드는 그 과정과 무관하게 정신의 관이 빈틈을 드러낼 때를 노릴 테니까.

그리고 그런 중요한 임무의 진행자가 바로 라미아다. 목표는 10층도 더 아래 있다는 연구 층과 바이트 타블렛.

이드의 무공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 깊이까지 티 나지 않게 접근하는 것은 무리다. 이미 시도해 봤지만 정령도 소용이 없었다. 정신의 관에서도 나름 경계하고 있어서 몰래 접근하기는 어려웠던 것.

하지만 몸을 변형시킬 수 있는 라미아라면 어떨까?

이드와 일리나가 라미아를 가운데 두고 쪼그려 앉았다.

“어때? 닿을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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