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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63화


899화

한참 황금 둥지의 성능 시연을 해 보인 쉴라가 황녀를 데리고 돌아갔다.

라미아와 일리나만 남은 막사 안에서 이드가 기지개를 켰다.

“저 정도면 확실하게 쉴라 경의 전력에 도움이 되겠어. 갑옷, 화염, 소환수, 모두 합격점이야.”

소유자에게 대가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 한계가 확실하지만, 반대로 그것만 잘 조절하면 위기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저런 좋은 물건도 내놓을 줄도 알고, 미쳐도 곱게 미쳤나 배포는 큰 것 같아.”

“크기는요. 악질적인 좀생인데.”

막사 안쪽 문으로 가려진 침실에서 잘 준비를 하던 라미아가 고개를 내민다.

무려 명예 후작이 사용하는 막사다. 일반적인 좁고 불편한 막사를 상상하면 큰 오산이다. 지구라면 몰라도 다양한 마법이 있고, 수많은 마법사를 보유한 황실의 지원을 얕보면 곤란하다.

이드는 무려 접객, 침실, 욕실과 화장실을 겸한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 넓은 막사를 받았다. 토벌대 안에서 이보다 큰 막사도 몇 없다.

대표적으로 토벌대의 대장군인 록마틴 후작의 막사와 황녀의 막사는 이드의 것보다 세 배나 크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적인 크기일 뿐. 그 내부의 실상은 다르다. 다름이 아니라 라미아가 나섰기 때문이다.

자신과 가족들이 머물 막사이기에 다양한 편의 시설과 함께 마법적 조치를 취해 둔 것. 접객실은 많은 사람이 드나들어 손대지 못했지만, 침실과 욕실은 다양한 생활 마법, 공간 마법, 보호 마법으로 도배를 했다.

당장 침실과 욕실의 문을 열면 원래 크기보다 열 배나 큰, 밝고 화려한 공간이 나타난다. 문이 잠겨 있어 다행이었지, 장난으로라도 문을 열었다면 황녀나 케마란 모두 입이 떡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왜? 황금 둥지 쓸 만하잖아.”

“바보.”

눈이 가늘어진 라미아가 대답도 없이 쏙 침실 안으로 들어가자, 일리나가 이드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말했다.

“분명 황금 둥지는 굉장한 물건이에요. 하지만 비올라가 그 사실을 알려 주지 않고, 라미아가 확인과 함께 사용법을 밝혀 주지 않았다면, 오랜 시간 마법사들을 괴롭히는 애물단지로 남았을 거예요.”

가만히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니다.

당장 황금 둥지보다 난이도가 떨어지는 상자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분명 초인 마법에 대한 가닥이라도 잡으려면 연 단위의 시간이 걸려야 할 것이다.

당장 마탑이 수십 년에 걸쳐 연구하고 있는 마법이 아닌가. 쉽게 밝혀낼 수 있을 만한 물건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그렇게 하나하나 뜯어 보고, 분석하다 보면 과연 결과가 나왔을 때 황금 둥지가 온전하기는 할까?

이드가 생각하기에 높은 확률로 복구 불가의 폐기물이 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마탑이 온전히 토벌되지 않는다면. 혹은 어느 왕국이 모든 반발을 끌어안고 그들을 품는다면. 그 연구조차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라미아가 악질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틀린 것이 아니리라.

“과연, 그런 거군요.”

“그런 거예요. 그것도 몰랐어요?”

침실 정리를 마친 라미아가 나왔다.

“모를 수밖에 없지. 나야 누구 덕분에 마법적으로 막혀서 곤란을 겪은 일이 없으니까.”

“훗, 그거라도 알고 있으니 다행이네요.”

이드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우쭐해서는 고양이를 만지듯 이드의 머리를 쓰다듬는 라미아다.

그 부드러운 손길에 머리를 맡기던 이드는 곧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피식 웃었다.

“그런데 그런 의도였다면 말이야. 내일 당장 쉴라 경이 황금 둥지를 들고 던전 공략을 시작하면 과연 어떨까? 탑주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급 궁금해지지 않아? 안 그래요?”

“확실히・・・・・・ 보고 싶네요.”

일리나와 라미아 두 사람이 서로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정말이지 자신만만하던 그 얼굴이 당혹으로 일그러지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그나저나. 정말 황금 둥지 깨끗한 거 맞지? 쉴라 경이 사용하는 걸 보고 무슨 수작을 부리거나 하면 곤란하다고.” “걱정을 말아요. 제가 누군데요. 부품 단위로, 룬어 단위로 다 쪼개 봤어요. 거기다…… 음.”

“거기다? 거기다 뭐? 혹시 황금 둥지에 뭐라도 해뒀어?”

문득 실수한 듯 급히 말을 끊는 라미아에 묘한 불길함을 느낀 이드가 추궁했다.

“별건 아니고, 세상에 완벽은 없는 만큼. 만약에 만약을 대비해서 자폭 장치를 작게 좀 달았어요. 요만한 걸로.”

묘하게 애교 부리는 목소리로 콩알만 한 크기를 강조하는 라미아다. 가면으로 가려져 있지만, 그런데도 꽤 귀여워 보이는 제스처다. 하지만 이드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급 아파 오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니, 자폭 장치 같은 걸 왜 달아!”

“이드도 걱정했잖아요. 그래서 나도 만약을 생각한 거죠.”

“그럼 다른 방법도 있을 거 아냐. 가령 작동 중지라거나, 해체라거나, 소환이라거나 등등! 왜 하필 자폭이냐고. 그러다 쉴라 경의 팔도 같이 날아가는 거 아냐?”

“에이, 제가 그런 걸 모르겠어요? 그런 계산은 다 했죠. 절대 다칠 일 없어요. 조금 불 맛을 볼 수는 있겠지만.”

끝까지 자신감을 뽐내며 잘못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 라미아다. 그 옆에서 일리나가 묘하게 재밌는 구경거리에 웃고 있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하여간 영화가 사람을 버린다니까.”

“영화가 어때서요? 그리고 자폭은 과학과 마법의 로망이라고요!”

이드의 말에 자폭 장치에 대해 말할 때보다 더 강하게 반발하는 라미아다. 그러나 그럴수록 영화에 대한 이드의 원망은 더 커질 뿐이다.

다름이 아니라 지구의 영화와 애니를 통해 라미아가 자폭의 로망을 배웠기 때문이다.

‘도대체 과학의 로망이 자폭이라고 한 인간이 누구야?’

알기만 하면 절대 가만히 두지 않았을 텐데. 그나저나 아무래도 황금의 둥지에 자폭 장치가 달렸다는 사실은 쉴라에게 비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마음먹은 이드다.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자폭 장치가 달린 방패라니. 이드 본인도 그런 건 사용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건 주고도 욕먹는 단계를 넘어선다.

“일단 자폭 장치에 대해서는 무조건 비밀이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일리나도 마찬가지예요.”

“알았어요.”

“그럴게요.”

두 사람에게 단단히 다짐을 받은 이드가 묘하게 지친 얼굴로 일어났다.

“아무래도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그래요. 내일 던전에 진입하려면 일찍 쉬어야죠.”

이드의 조는 내일 재개되는 던전 공략의 첫 스타트를 끊기로 되어 있었다.


날이 밝자 새벽부터 토벌대의 기사들이 활기를 뿜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이 힘의 덩어리인 만큼 그들이 뿜어내는 열기는 대단했다. 그러는 중에 황녀와 이드가 지휘하는 삼 조는 유독 조용하다.

아니, 조용한 것이 아니라 단단히 마음을 다잡으며 기세를 가다듬고 있었다.

오늘 던전 공략의 첫 타자이기 때문이다.

“쯧, 그냥 처음 정해진 순서대로 세 번째가 좋은데 말이야. 모이엔 그 인간 여러 가지로 재수 없네.”

팔짱을 끼고 던전 앞에 선 이드가 투덜거렸다.

원래는 세 번째로 진입하는 것이 맞다. 이전의 사 조가 마지막으로 5층까지의 공략을 끝냈으니까. 하지만 그 순서가 흐트러져 버렸다. 이렇게 된 이유는 모두 전날 전체회의에서 있었던 모이엔의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전쟁이 없어 평화로웠던 제국의 기사들이 지금처럼 많이 모인 것이 좋은 기회라며, 이 기회를 잘 살려 기사들이 서로 교통하고, 호흡을 맞추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현재 꾸며진 조를 고정시킬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그 구성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각 조의 컨디션과 재량에 따라 진입 순서와 조의 인원도 유동적을 구성하자고 했다.

어떻게 들어도 틀리지 않은 그의 발언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록마틴 후작까지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였다.

당장 현 토벌대의 최고 인기인인 황녀와 이드, 두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도 그런 변화가 꼭 필요했다.

덕분에 적극적인 사람들의 찬성에 모이엔의 의견은 빠르게 받아들여졌다.

대신 한 텀의 유예를 두기로 했다.

탑주와 생포된 두 포로가 하나같이 6층부터 진짜 던전이라며, 던전의 난이도가 극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자랑과 경고를 했기 때문이다.

정보의 출처가 출처인 만큼 신뢰도는 낮으나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록마틴 후작은 6층을 통해 그 말의 신뢰도를 가늠해 본 후 그에 따라 각 조의 구성에 대한 변화를 주자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6층에 가장 먼저 진입할 조로 삼 조를 지명했다.

당장 조원을 바꾸는 것은 반대했지만, 가장 컨디션과 실적이 좋은 조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는 모이엔의 말은 바로 받아들인 것. 그리고 현재 토벌대 안에서 가장 실적이 좋고, 사기가 높은 조는 삼 조였다. 토벌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짧은 시간에 3개 층을 단숨에 정복한 유일한 조였으니까.

덕분에 삼 조에 속한 기사들은 부러움과 질시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아이넬 기사단의 인기는 최고였다.

처음에는 여기저기서 차출해 온 어설픈 기사단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완벽히 분위기가 바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기사단 안에 남아 있던 미세한 어색함도 깔끔하게 사라진 상태로 아이넬 기사단은 완전히 하나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신이 난 기사단과 달리.

그 단장인 이드의 심기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인기는 둘째 치고, 모이엔의 뜻에 따라 흘러가는 상황이 탐탁잖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모이엔의 목적을 알고 있는 이드다. 도청을 위해 고생해 준 라미아의 공이었다.

초인파. 그 상징과 같은 청색 깃털 초인 기사단과 그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고 있는 크고 작은 초인 기사단들. 바로 그들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모이엔의 입장에서는 현재 네 개 조로 나뉜 토벌대의 운영은 그 자체로 방해다.

“전체 회의에서의 주장은 그걸 위한 밑밥인 거지. 낚시를 위한 밑밥.”

그러니 평소 알력이 있던 세력은 물론이고, 동료까지 같이 갈아 넣으려는 흉악한 흉계가 좋게 보일 턱이 없다.

거기에 그 밑밥을 위해 이드와 황녀의 인기까지 이용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그것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드였다. 

“사고 칠 때 보자.”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던 관계에 사사로운 원한까지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스폴이 삼 조의 진입 준비가 끝났음을 알려왔다.

첫 진입 때와 마찬가지로 황녀를 중심에 두고 보호하는, 단단한 방어에 치중한 진형이다.

6층이 위험하다는 말이 있었음에도 황녀는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다.

덕분에 기사들은 그녀의 용기에 감탄하면서도, 황녀를 지키기 위해 긴장하고 있었다.

이드는 그들을 돌아보며 주먹을 들어 올리며 크게 외쳤다.

“삼조 진입!”


이드가 선두에 선 삼 조는 빠르게 5층을 지나 6층을 막고 있는 문 앞에 섰다.

“열겠습니다.”

문 앞에 선 기사가 말했다.

위층과 달리 잠기지도 않은 문이었다.

그만큼 던전 내부가 더 위험하다는 뜻일까.

쿠르릉,

끙 하고 힘을 쓴 기사의 기합과 함께 문이 열린 순간.

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이야, 이제야 좀 던전 같은데?”

문이 열린 던전 안.

그 앞으로는 어둡고 긴 통로가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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