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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25화


961화

말 그대로 빛과 같은 속도로 사방으로 퍼져 나간 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웅크리고 있던 초인들의 공격이 빛의 꽁무니를 쫓는 것처럼 터져 나왔다.

“오래 기다렸다. 이 개자식들아!”

“어디 사냥감의 화끈한 번개 맛 좀 봐라! 블링썬더!”

“이 세상 모든 초인을 대신해 너희를 죽이겠다!”

“가드들은 자리 지켜! 흥분하지 마!”

짜자작!

퍼퍼퍼펑!

초인들의 공격은 그들의 감정만큼이나 거칠었다.

사냥감이라고 했다. 실험 재료 수확이라고도 했다. 자신들을 몰아넣고 인간 이하의 물건을 보듯 깔보며 하찮게 말했다.

좋은 초인기를 각성하고 영광스러운 제국의 기사가 되어 뭇 사람들의 선망을 받아 온 그들로서는 꿈에서조차 상상해 보지 못한, 실로 끔찍한 경험이다.

동시에 까마득히 오래전 선배 초인들이 이런 박해를 받았구나 싶은 깨달음과 함께.

그들은 이 던전의 주인에게, 마탑의 마법사들에게 격렬한 분노와 살의를 느꼈다.

그것이 지금 터져 나온 것이다.

초인들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인공 초인과 마법사들은 급히 대응했지만, 큰 피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조심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힘을 잃었다는 사실에 마음 한편에 방심이 자리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그 방심이 대응을 미세하게 늦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동쪽 공격조는 앞으로!”

“서쪽 공격조도 전진한다!”

“내 뒤를 따라라!”

완벽한 기습이었다. 기세가 오른 공격조가 가드들을 넘어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대천사 라미아 님의 가호가 우리를 지켜 주신다!”

“대천사 라미아 님을 대신해 천벌 펀치!”

초인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위기에서 자신들을 구한 라미아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으아아아~”

이드는 괴로움에 몸을 떨었다.

와이드블렌에 대응할 좋은 방법을 만들어 놨다고 자신만만할 땐 그런가 보다 했다. 당연히 이름은 묻지도 않았다. 어떤 방법이고,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알면 됐지.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런데 설마 그 방법에 자기 이름을 붙였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거기에 대천사라는 타이틀까지 더해서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대천사는 너무한 거 아냐?’

보는 사람은 없지만 부끄러워서일 것이다. 그런 반감 어린 생각이 떠오른 것은.

그러자 그걸 귀신같이 캐치한 라미아에게서 반응이 왔다.

-대천사가 어때서요? 검후를 납치하고, 우리를 죽이려고 공격한 원수에 살길을 만들어 줬으면 충분히 천사라고 불러 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래. 좋은 일 했어. 그건 인정해 인정하는데…………….”

“대천사 라미아 님의 다중 굴절을 받아라!”

자기 초인기를 라미아가 내려 준 것처럼 외치는 놈들은 도대체 뭐냔 말이다!

“왜 부끄러움이 내 몫이어야 하냐고!”

대천사 라미아를 찾는 소리가 간간이 터져 나올 때마다 이드는 얼굴을 두 손에 더 깊게 묻었다. 물론 그런 이드의 마음속에서는 자신이 대천사라고 불리는 것이 그렇게도 싫으냐는 라미아의 투덜거림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이드가 부끄러움에 괴로워하는 사이.

석실에 내려가 있던 마법사들은 목이 터져라 비명과 고함을 질러 대기 바빴다.

“아악! 내 파, 팔! 내 팔이~!”

“진정해! 지금 치료할 테니까.”

“치료는 나중이네. 지금은 힘을 합쳐 조금이라도 방어마법에 마력을 더해야 해!”

인공 초인이 고기 방패가 되어 앞에 있었지만 마법사들의 피해는 컸다. 일반 기사와 달리 마법과 같은 원거리 공격기를 가진 초인들이 많았기 때문이고, 그들이 인공 초인보다 마법사를 집중적으로 노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에 초인들은 반격의 순간을 기다리며 단순히 웅크리고만 있던 것이 아니라, 각자 어떤 방향의 누구를 집중 공격할 것인지, 목표와 순서까지 정해 두고 있었던 것.

그런 준비가 마법사들의 피해를 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공격 중에는 석벽 위에 서 있는 마법사들을 향한 공격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노린 공격은 금방 멈췄다.

투투퉁!

과연 마법사라고 해야 할까. 석벽 위에 있는 마법사들 앞에는 보호 마법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

그로 인해 공격이 모조리 막히는 것을 본 칸이 보호 마법을 파괴하는 것보다 석실에 내려온 마법사들을 처리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석벽 위에 있는 마법사들을 그냥 두지는 않았다.

“아래에 있는 마법사들을 돕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꽈르르릉!

칸의 말에 따라 번뜩이는 초인기가 허공을 가득 날아 보호 마법을 두드렸고, 보호 마법 뒤에 있던 마법사들도 그에 대응해 공격과 함께 동료 마법사를 구하기 위해 미친 듯이 움직였다.


그런 정신없는 와중이다.

팅! 티팅!

허공을 나는 초인기와 마법이 한 지점에서 튕겨 나거나 소멸하기를 반복했다.

“라미아 이름이 더 나오지 않는 건 좋은데. 이게 별 게 다 귀찮게 하네. 자리를 옮겨야 하나.”

그 원인인 이드는 다시 날아오는 얼음 창을 걷어 내며, 아래를 살피다 훌쩍 뛰어내렸다. 가만히 견디기엔 여간 귀찮은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어느 순간부터 싸우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는 발터와 존 워스의 상황이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튀어 오른 커다란 돌덩이 위에 엉덩이를 걸친 이드가 귀를 기울이자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철벽의 검왕께선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생각이오! 협력하기로 약속했다면 당장 우리를 도우시오!”

벌써 몇 번째 요청인지 모르지만, 여전히 존 워스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의 눈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발터를 향하고 있다.

그건 발터 역시 마찬가지.

“역시 노리고 있으셨군요.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기를.”

“내 입장에선 초인도, 초인을 만들어 내는 마탑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 서로 공멸해 준다면 기쁜 일이지.”

“도대체 어째서 그렇게 초인을 혐오하시는 겁니까?”

“글쎄, 그 이유를 심각히 생각해 본 적은 없군. 하지만 대단한 건 아닐 거야. 벌레를 싫어하는데 깊은 이유가 없는 것처럼.”

초인과 벌레를 동일시하는 발언.

“조원들을 돕고 싶나?”

이드는 당연한 걸 묻는다 싶었다.

이미 역습을 통해 얻은 기세는 사라지고 없다. 마법사들은 냉정을 찾았고, 인공 초인들은 온몸을 던져 그 앞을 지킨다. 이제는 다시 반격까지 나서고 있다.

그에 마법사들을 덮쳤던 초인들이 다시 진형을 좁히며 뒤로 물러선다.

적의 수를 줄였지만 아직 마탑의 전력은 강력하다. 무엇보다 이곳은 적의 배 속, 마탑은 언제든 전력의 보충이 가능한 상황이니 전투가 길어질수록 절대로 초인들이 불리하게 된다.

거기에 짧게나마 마법사들을 물리친다 해도 그 뒤에는 복면을 하고 있는 이 조의 기사들이 있다.

하지만 이게 위기의 끝이 아니다. 진짜 위기는 따로 있었다.

바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마법의 종료 시간.

“대천사 라미아의 은혜는 유지 시간이 짧지. 슬슬 유지 시간이 끝나갈 때가 되어 간단 말이야. 그럼 공격은 고사하고 방어하는 것도 고생이지.”

대천사 라미아의 은혜라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을 때 라미아는 말했다. 애초에 임시방편이라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만들었다고.

불을 끄기 위한 소방차가 아니라, 탈출할 길을 만드는 소화기 용도라고 말이다. 마나석을 교환하고 준비하면 다시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 준비에 제법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적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오조 입장에서 일분일초도 치명적인 상황.

방금 역습과 함께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선 것도 조금이나마 적을 줄여 놓으려는 의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어쩌면 지금 발터는 일, 삼 조와 헤어진 걸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게 이드의 생각이다.

그런 상황에 존 워스가 조원들을 돕고 싶냐고 물은 것이다.

그렇다는 답 말고는 할 말이 없는 발터는 너덜거리는 양팔의 소매를 거칠게 뜯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철벽의 검왕께 사람을 놀리는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돕고 싶다면 비켜 주기라도 하실 겁니까?”

“하하하. 맞아. 그렇지. 비켜 주긴 힘들지. 자네 말처럼 내가 좀 흥분한 모양이네. 이렇게 시원하게 세상을 청소할 기회가 흔하지 않았으니까.” 

“이젠 당신의 그 혐오도 슬슬 지겹군요. 다시 시작해 보지요. 저와 오 조도 이렇게 당할 수는 없는 처지니까.”

콰드드득

말과 함께 발터가 힘을 쓰자 다시 흙이 발터의 전신에 거미줄처럼 얽혀 들어 몸을 부풀렸다. 다만 앞서의 그것과는 달랐다.

앞서도 오우거처럼 몸이 컸지만, 지금은 그 이상으로 몸이 계속 부풀었다. 뿐인가, 형태조차 인간의 그것을 버렸다.

우선 거미처럼 여섯 개의 다리가 생겼고, 가슴을 중심으로 중력 밴드가 회전하며 나타났으며, 머리 위에는 뿔과 같은 중력구가 뾰족하게 솟았다. 어떻게 보면 잘 만든 키메라처럼 보이는 모습.

“쯧, 흉측한 꼴이군. 실망이네.”

웃긴 말이다. 어차피 싸우기 위한 모습인데, 강하고 공격에 용이하면 된 거지 예쁠 필요가 어딨나? 몸이 괴물로 변한 것도 아니고, 흙으로 강화한 것뿐인데 말이다.

그래서일까. 발터는 대답도 하지 않고 움직였다.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진 발터는 신기루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존 워스를 공격했다.

떠더더덩!

전신이 무기였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랐다. 가슴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중력 밴드는 방어와 함께 존 워스를 묶을 기회만 노렸고, 머리에 솟은 뿔은 검처럼 휘둘러졌다.

마치 전설에 나오는 마왕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그에 맞서는 존 워스는 마치 정의의 기사 같았다. 그것도 위기에 힘겨워하는 기사가 아니라, 마왕과 당당히 맞서 싸우는 기사. 그런 두 사람의 전투는 점점 더 강렬해져 갔다.


“마법이 끝날 시간이 다 되어 가니까 발터도 출력을 조종할 여유가 없는 거겠지.”

앞서 두 사람이 싸우던 모습도 굉장했지만, 사실 그게 전력은 아니었다.

발터와 존 워스 두 사람 모두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았다. 아니, 내지 못했다.

다름 아니라 이곳이 지하기 때문이었다. 굉장히 튼튼하다고는 하지만 지하 수백 미터라는 사실이 머릿속에 박혀 있어서, 저절로 손에 힘이 빠졌던 것.

그러나 이대로는 죽음보다 더한 위험을 앞두게 생겼기 때문인가.

어느새 심리적 브레이크를 놓아 버리고 있는 발터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존 워스를 떨쳐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지. 거기다 마법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고.”

그렇지 않아도 이미 오 조는 거북이처럼 단단히 껍질 속으로 숨은 상태.

그리고 다음 순간 마법의 효과가 끝이 났다.

“놈들의 마법이 한계에 달했다! 쏟아부어!”

마법사들이 힘을 냈다.

이드는 그 모습에 몸을 일으켰다. 뒤로 물러서 구경 중인 이 조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무래도 좀 일찍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슬슬 움직일 때…….”

부르르르르.

“……가 아닌가?”

이드는 엉거주춤하게 일어서던 자세 그대로 멈춰 허리춤에서 격렬히 몸을 흔들고 있는 수신기를 바라보았다.

일리나와 연결되어 있는 수신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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