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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47화


983화

아무리 싸움이 좋아도 그렇지, 치명적일 만큼 위험한 공격을 앞에 두고 웃는 건 절대 정상이 아니다. 그런 이들은 미쳤거나, 대비책이 있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그렇다면 메르시오는 어느 쪽일까? 이드는 둘 다라고 봤다.

전자야 이미 전투광인 모습을 실컷 보았으니 새삼 확인할 것도 없었고, 후자에 대해서는 스산하게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이 실시간으로 열심히 속삭여 주는 중이다.

쉽게 말해 느낌이 싸하다는 거다. 그리고 몇 번을 말하지만, 고수의 예감은 상상 이상으로 정확한 법. 이번이라고 틀릴 것 같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메르시오를 포함한 혼돈의 파편과는, 오래전이지만 전적이 있다. 이드가 익힌 무공의 정수이자, 하나하나가 필살기인 12대 식의 존재를 모를 리가 없을 터.

아니, 이드와 싸우는 이상 12대 식을 대비하고 견제하는 것은 필수다. 그런데 개중 하나인 광인멸혼류를 보고 웃는다니. 이게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이 똥개 자식. 12대 식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그런 의문을 가질 때쯤, 메르시오가 유독 길게 하울링 했다. 그리고는 맹렬한 기세로 달려 나오는 모습.

이드는 찝찝하긴 했지만, 상대의 꿍꿍이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공격을 거둘 생각은 없었다.

화아아악!

무극신기로 사방으로 뻗어 나가던 빛을 고정했다. 그러자 무게는 없으나 세상 무엇보다 빠르고 날카로운 성질을 가진 빛이, 말 그대로 광속으로 메르시오를 두드렸다.

퍼퍼퍼펑!

“크하하하하!”

순간 빛의 성질을 가진 광인멸혼류와 불길의 성질을 가진 메르시오의 가죽이 부딪히며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빛과 불이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질을 가진 둘은 서로 충돌한 후에도 곧바로 소멸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 충격을 온전히 빛과 열, 그리고 소리로 변환해 주변을 갈아 버렸다.

그리고 그것들을 뚫고 들리는 광소.

이드는 메르시오를 보고 인상을 썼다. 녀석은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부서진 두 팔을 벌리고 있다가, 힘들었던 건지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기세 좋게 달려들어 놓고, 힘에서 밀렸다. 그런데도 저렇게 미친 듯이 웃는 이유는 뭘까? 정말 자신이 강하고, 싸움이 즐거워서?

아무리 그가 전투광이라지만 상황 판단도 하지 못할 정도로 미친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생명의 관과 정신의 관을 도둑놈처럼 은밀히 드나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메르시오는 이드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충분히 솟아오를 만한데도.

‘잠깐만. 그런데 저 밑에 뭐가 있더라?’

문득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맞다! 존 워스! 저 똥개가 그자를 아직 포기한 게 아니구나!”

메르시오를 상대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던 존 워스, 돌 더미에 깔려 죽지 않았다면 대충 세 층 아래쯤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 똥개가 어디서 수작질을!”

발끈한 이드가 메르시오의 뒤를 쫓았다. 아직 운용 중인 광인멸혼류가 깃든 이드의 빠르기는 총알보다 빨라, 마치 빛과 같았다.

이미 두 층 아래로 떨어지는 메르시오를 따라잡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멀어지며 작아지던 메르시오가 갑자기 커진 것이다.

물론 이런 현상 자체는 원근법을 이해한다면 지극히 당연히 받아들일 만한 일이다.

다만 문제는 커도 너무 크다는 사실이다. 코앞에서 보는 것도 아닌데, 아직 백 미터는 더 떨어져 있는데도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커진 것이다.

거기에 달라진 것은 크기뿐만이 아니었다.

“저 똥개, 진짜 늑대가 되어 버렸네.”

메르시오는 더 이상 두 발로 서 있는 웨어울프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았다. 어딜 어떻게 봐도 훌륭한 네발짐승으로만 보였다.

당장 짧았던 꼬리만 해도, 모피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이 관심을 보일 정도로 길고 탐스럽게 길어졌다.

하지만 그 변화에 언제까지고 놀라고만 있을 생각은 없는 이드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원래 변신이 완성되기 전에 약점을 찌르는 것이 적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부부부붓!

좀 전보다 더 강렬한 빛이 터지고, 이드의 손끝에서 광창이 쏘아졌다. 사실 형태만 창이지, 이드의 손끝에서 창으로 이어지는 빛의 흐름은 차라리 레이저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그때, 이미 목표 지점에 도착한 메르시오는 바닥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는 존 워스를 찾아 바로 자신의 입속에 집어넣었다.

메르시오의 영향 때문인지, 존 워스의 초인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놀랍게도 떨어졌던 존 워스의 상체와 하체가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존 워스를 다 삼킨 메르시오가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광창을 향해 컹 하고 짖은 그는 그대로 앞으로 쏘아졌다. 주르륵.

그렇게 메르시오가 지나간 길에는 열기에 녹은 흙과 돌이 용암이 되어 흘러내렸다.

화르르르륵.

불꽃처럼 일렁이던 메르시오의 은색 털이, 어느새 진짜 불길이 되어 닿는 모든 것을 녹여 버리고 있었다.

변신 전도 대단했지만, 지금은 정말이지 전설의 한 구절에서 튀어나온 신랑(神狼)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이드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외모가 잘났건 못났건, 죽여야 할 적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놓치지 않는다!”

이드가 방향을 바꾼 메르시오를 따라 의념을 움직이자, 광창이 바로 각도를 틀어 적을 노렸다.


그렇게 메르시오와 광창이 만들어 내는 파괴의 합주곡에 정신의 관이 두려워 벌벌 떨 때.

탑주 역시 어깨를 부르르 떨고 있었다.

마탑을 부상시키기로 결정한 탑주는 그 직후부터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끝없이 사방을 휘저으며 싸워 대는 이드와 메르시오 때문에 정신없이 마법진을 조율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대응이 늦으면 부상하던 마탑이 좌초해 버릴 테니, 잠시도 방심할 수 없었던 것.

그런데 이드와 메르시오의 싸움은 그칠 기미가 없이 점점 더 격렬해지기만 했다. 심지어 이제는 동산처럼 거대해진 메르시오와 그 뒤를 쫓는 광창이 사방을 부숴 대고 있지 않은가!

“아아악! 이 빌어먹을 종자들이! 싸울 것이면 한 자리에서 싸우라고!”

결국 참지 못한 탑주가 폭발해 버렸다.

그러면서도 손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마법사로서의 본능일까?

탑주는 수정구를 통해 보이는 영상에 뿌득뿌득 이를 갈았다. 무시무시한 두 사람의 전투에 느끼던 두려움은 이미 없다. 그저 남은 것은 독기뿐. 

“좋다. 어디 날뛰어 봐라. 어차피 정신의 관에 있는 이상 내 손바닥 위다. 둘 다 밖으로 끄집어내 바이트 타블렛을 다시 빼앗아 주겠다!”

그렇게 다짐하는 탑주의 손이 점점 더 빨라졌다. 즉, 이드와 메르시오의 파괴 행위가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끈질긴 추격전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중간에 정신의 관 밖으로 벗어나려는 메르시오를 막기 위해 광인멸혼류의 광혼이 추가되었다. 덕분에 현재는 광창과 광검을 비롯해 메르시오를 추적하는 광혼만 5개로 늘어나 있는 상황.

메르시오는 노란 눈을 번뜩였다. 처음부터 이드와의 싸움을 반기던 그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도망칠 이유가 무엇인가. 그저 입에 든 존 워스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 둘 생각이었다.

그러나 몰이 사냥을 하는 듯한 이드의 공격에 그런 여유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그렇다고 이 무시무시한 전투 한 가운데 존 워스를 두기엔 너무 위험한 일.

잠시 본능과 이성 사이에 갈등하던 메르시오는 곧 결심한 듯, 입에 든 존 워스를 꿀꺽 삼켜 버렸다.

‘크흐흐, 오랜 기다림 끝의 재미를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지. 미안하지만 고생 좀 하라고, 친구’

직후 정신의 관 외곽을 돌던 메르시오가 갑자기 방향을 꺾었다.

그의 발이 닿는 곳은 무엇이든 녹아 용암이 되어 흘렀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둘이 밟고 있는 것은 이미 한참 전부터 멀쩡한 땅이 아니었으니까.

“커어헝!”

전의를 다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메르시오를 휘감은 화염이 더욱 격렬해졌다. 얼마나 강한지, 저 지저 마그마의 열기가 호응해 올 정도다. 그 기세 그대로 메르시오가 튀어 나갔다. 저 앞에 있는 이드를 향해서.

“결국 포기한 모양인데. 어떻게 잡은 존 워스고, 똥개인데. 한쪽이라도 그냥 보내 줄 순 없는 일이지.”

꽉꽉 틀어 막히고 붕괴된 벽과 땅을 넘어 자신을 향한 투기를 느낀 이드다. 메르시오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이보다 분명하게 깨달을 수는 없었다.

이드는 넓게 뻗은 두 손으로 무극의 원융을 만들어 냈다.

팟! 팟! 팟! 팟! 팟!

그에 메르시오를 쫓던 다섯의 광혼이 반응했다. 복잡한 움직임이 한 몸처럼 변하며 커다란 원의 고리를 만들더니, 한순간.

단번에 잘라 버리겠다는 듯 메르시오의 목을 졸라 갔다.

“커헝!”

“커헝!”

그리고 다음 순간. 빛의 고리는 불길 속에서 솟아난 두 개의 머리에 물려 멈췄고, 직후 메르시오의 전신에서 뿜어진 청백의 화염에 녹아내리고 말았다.

“아우우우우~”

그에 만족스러운 듯 세 개의 머리가 동시에 하울링을 했다. 그건 더 이상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소리에 열기가 담긴 듯 메르시오가 향해 있는 전방의 모든 것이 단숨에 녹아내리며, 이드가 있는 곳까지 뻥 뚫린 길이 만들어졌다.

순간 이드가 있던 공간이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저기 뒹굴고 있는 바위가 붉게 달아오른 것이 그 증거.

단순히 숨만 쉬어도 폐가 타들어 갈 것 같은 열기. 하지만 정작 이드는 그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미 그런 걸로 힘들어할 경지를 넘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불의 정령을 다루는 이드가 열기에 해를 입을 이유가 없었다.

대신 이드는 주먹을 쥐었다 펴며 무극신기를 가다듬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감추고 있던 한 수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설마하니 광혼을 물어뜯고, 녹여 버릴 정도의 화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광혼이 녹아내리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다. 광혼은 말 그대로 빛으로 이루어진, 광인멸혼류의 정기.

빛을 불로 태운다는 것이 가능한가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이미 결과로 나타났으니까. 저 정도로 무서운 화력은 조심해야 했다.

과연 구십 년의 세월을 허투루 보낸 게 아니라는 것일까.

솔직히 억울하기도 했다. 시간의 흐름이 달랐던 만큼, 같은 수련을 해도 메르시오가 아홉 배는 더 많이 했을 테니까.

물론 그렇다고 기가 죽은 것은 아니다.

아홉 배의 수련으로 정확히 아홉 배가 강해졌다면, 자신은 벌써 나가떨어졌어야 정상이다. 수련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게 바로 수련자의 수준에 맞는 수련의 질이었다.

이드는 자신이 보낸 십 년의 시간이 메르시오의 구십 년에 비해 못하지 않다고 자신했다. 절대, 절~대 1:9의 시간 차가 자신의 실수로 인해 벌어졌기 때문에 하는 변명이 아니란 거다!

“그래도 저 똥개한테 된장 바르는 게 쉽지 않아졌다는 사실은 확실하네.”

어쩐지 남편으로서의 위엄과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것 같은 날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빠지지직.

그런 이드의 발끝에서 귀여운 번개가 번뜩였다. 그 순간.

쿠콰콰쾅!

그 자리에서 사라진 이드가 갑자기 통로 한가운데서 나타나 메르시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현묘함은 버리고, 광인멸혼류의 정수인 속도에서 오는 파괴력을 극대화한 공격.

콰콰콰콱!

첫 일격을 시작으로 수십의 검격이 통로를 난도질하지만, 맞지 않는다. 그 큰 덩치로 재빠르기도 하지.

하지만 그건 이드도 마찬가지. 마차만 한 발톱과 세 주둥이가 공간을 통째로 집어삼킬 듯 뒤흔드는데도 뇌령전궁보의 보법으로 완벽히 회피

중이다.

극한의 속도와 파괴력에 집중하자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주변이 망가지는 정도가 덜해졌다.

고도로 집중된 살기가 살을 벨 정도로 농밀해진 대신, 간간이 터지는 폭음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고요하다.

멈춰진 파괴 행위에 가장 좋아해야 할 탑주. 그러나 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당장은 조용하지만, 마법으로도 관측할 수 없는 속도와 힘을 보이는 전투의 무서움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싸움을 하는 둘 중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메르시오다. 이드야 이미 실력에 대한 정보가 빌어먹을 정도로 틀렸지만, 최소한 정치에 대해서는 확실하다.

그런데 저 웨어울프는 어디서 나타났기에 저런 힘을 소유하고, 저런 신화 속 존재 같은 것으로 변신까지 할 수 있는가. 의문과 의심이 가슴을 눌렀다.

“도대체 누가 감히 내 연구에 손을 댄 것이냐.”

이드에게 침입자에 대해 들었을 때도 느낀 일이지만, 진정 심각하게 조사해 봐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탑주의 생각이 깊어지려는 때였다.

비비비법!

파파파팟!

지금 그렇게 느긋하게 사색에 잠길 때가 아니라는 듯, 시끄러운 알람과 함께 붉은색으로 변한 마법진들이 무더기로 떠올랐다.

마법진들이 전하는 정보는 동일했다. 던전 내부와 그 근처 곳곳에 설치해 둔 마법이 동시에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

두 사람의 전투가 벌어지는 곳을 중심으로 그 일대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있다고, 이대로라면 던전의 핵심 뼈대가 녹아내려 위험하다고 말이다.

“아악! 얌전하면 끝까지 좀 얌전하던가! 이 개새끼야!”

무겁고, 진지하고, 근엄하던 얼굴이 무너지는 건 정말이지 한순간이었다.


같은 시각.

이드가 있는 곳은 이미 모든 것이 녹아 붉은 용암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 이드를 노리고 모여든 열기에, 그 주변이 하얗게 보일 지경이었다.

광인멸혼류의 빛에 메르시오의 불길이 더해지자, 이 녹아내릴 것 같은 빛 속으로 이드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직후, 티끌 한 점 없는 하얀 빛 속에서 나타난 칠흑의 어둠.

마치 빛마저 잡아먹는 블랙홀처럼 미친 광량에도 전혀 약해지지 않는 칠흑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퍽!

빛 속에서 튕겨 나간 어둠이 메르시오의 눈에 박혔다.

절대 빠른 속도가 아니었다.

지금도 이드와 메르시오의 공수는 계속되고 있었고, 그 공격 하나하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다. 그에 비해 어둠은 느린 편이었다.

분명 빠르긴 하지만, 이드와 메르시오의 공격 속도와 비교하면 반의반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메르시오는 그것을 피하지 못했다.

“커허허허헝!”

고통에 찬 울부짖음과 함께, 그나마 열기에 버티고 있던 주변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붉은 용암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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