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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49화


1084화

퍼블이 매번 메이드 차림으로 이드를 응대하긴 하지만, 그녀는 결코 평범한 메이드가 아니다. 초인인 동시에 라울을 돕는 유능한 비서다. 결코 어리숙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 밤. 이곳에 와야 할 사람은 오로지 이드뿐이다.

있는 약속도 뒤로 미뤄 시간을 비워야 할 대단한 인물인데, 다른 이가 있을 리가 있나. 만약 있다면 그건 초대한 적 없는 손님이다. 퍼블의 눈매가 대번에 날카롭게 변했다.

“저희에게 방문하려는 자를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이드는 분위기가 돌변한 와중에도 정중함을 유지 중인 퍼블에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을 겁니다. 분명 이 저택으로 오는 손님들입니다.”

대답과 함께 다시 하늘을 향하는 이드.

그러자 그의 눈에 비치던 별빛이 눈동자로 흡수되더니, 신안이 열렸다.

그와 함께 세상의 이면이 드러나며 평범한 사람은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보였다.

가령 한쪽 하늘을 가리고 몰려오는, 적의가 뭉쳐진 먹구름 같은 부류 말이다.

저와 같은 것은 결코 한둘이 모이는 정도로 생겨나지 않는다. 최소 수십에서 수백.

‘대담하네요. 수도에서 이렇게 크게 일을 벌일 생각을 하다니.’

‘소드 팰러스가 막가기로 한 모양이야.’

아직 누군지 확실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드는 소드 팰러스일 가능성을 가장 크게 봤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 먹구름 같은 적의 속에 담긴 정련된 투기는 초인이나 마법사는 따라할 수 없는 무인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순간.

이드는 부산한 느낌과 함께 저택 전체에 긴장감이 퍼지는 것을 느끼고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퍼블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자신과 라미아처럼 모종의 방법으로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은 모양이다.

눈이 마주치자 퍼블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정중히 말을 이었다.

“정문까지 마저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초대받은 손님이 아닌 모양이군요?”

“그런 듯합니다.”

그런 듯하다. 정중한 대답이지만, 그런 한편 아직 미심쩍어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드의 말이기에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두 눈으로 적을 확인한 게 아니니 확신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바쁘게 전투를 준비하는 것은 오로지 이드가 주는 무게감 때문이었다.

사실 이드는 몰랐지만, 현재 저택 내 인물 중 가장 예민한 사람은 라울이었다.

발터의 일로 인해 그가 이 저택에 자리 잡은 후 주변에 거미줄 같은 감시망을 깔아 놓은 상태였다.

한데 이드가 그런 그도 알지 못하는 적을 이야기했으니 의문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저 명예 후작이 거짓말할 이유는 없지. 그러니 찾아! 감시망을 다시 점검해!”

“넵!”

“개미새끼 한 마리도 빠트리지 말란 말이야!”

“빠뜨리지 않겠습니다!”

그로 인해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다름 아닌 중간 관리를 하던 비서들이었다.

저택 안의 상황이 뻔하게 그려진 퍼블은 이런 날벼락을 떨어트린 이드가 원망스러우면서도 고마운 복잡한 기분이었다.

당장의 날벼락은 잠깐 지나고 나면 조용해지겠지만, 정말 자신들을 향한 공격이 있다면 아군 중에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는 문제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혹시 귀찮은 일이 없으시도록 마저 안내하겠습니다.”

날카로워진 눈빛과 대조적으로 여전히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앞에 선 이드는 턱을 쓸며 라미아에게 말했다.

‘어쩔까?’

‘수도에서 이런 대담한 일을 벌이는 놈들이 어떤 녀석들인지 보고 싶은 거죠?’

‘당연하지. 수도에서 저 정도 전력이면 거의 전쟁인데, 겸사겸사 이 저택의 전력도 보고 싶고.’

그리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전투보다 그 후의 모습이 더 궁금한 이드였다.

도대체 수습을 어떻게 하려고 이만한 사건을 벌이는지 말이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수습할 생각이 없는 것일지도?

‘그럼 잠시 용병으로 뛰어 보는 건 어때요?’

‘비싸다고 고용 안 할 것 같데?’

아무렴 관람을 위해서라지만 공짜로 검을 휘둘러 줄 생각은 없는 이드다.

무엇보다 자신이 앞장서서 설쳐서야 이 저택과 라울의 전력을 제대로 보기도 힘들 것이다.

‘그럼 일단 빠지죠? 꼭 여기서 봐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까.’

마침 적당한 높이의 건물이 몇 개 보였다. 결정을 내린 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안내도 여기까지면 충분할 듯하고. 혹시 발터 단장님은……?”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과연 오늘도 늦는 모양이다.

발터의 부재에 대한 확인을 마친 이드는 툭 하고 땅을 박차 올랐다. 그리고 그대로 허공에 녹아들듯 그 모습이 사라졌다.

직후 퍼블이 정원을 향해 날카롭게 외쳤다.

“전원 전투 준비!”

“……!”

힘찬 대답이나 번뜩이는 검광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변화는 확실했다. 당장 정원에 반짝이며 내리던 별빛부터 칙칙해졌으니까.

숨어 있는 초인들이 뿜어내는 기운이 별빛을 밀어내는 것이다.

“그럼 전 손님맞이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퍼블은 조용히 저택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이제 그들이 할 일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적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정말 적이 오는 것일까?’

의심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은 기다려 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정확히 5분 후.

그때까지 그런 의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어졌다. 감시망의 점검을 통해 라울이 적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이미 코앞에 도착했다!

우우우웅!

초인들의 초인기가 폭발을 위한 예열을 시작했다.


이드는 그런 발터의 저택과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저택의 옥상에 올라 있었다.

라미아의 의견에 따라 돌아가는 척 자리를 뜬 후, 현장이 잘 보이는 특등석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덕분에 저택은 물론 그 주변으로 모여드는 적들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흩어져 있던 적들이 목표가 가까워짐에 따라 무리를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저나 저놈들, 수도의 경비병과 기사들은 어쩔 생각인 걸까?”

힘없는 평민 가정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무려 수십의 초인들이 웅크리고 있는 발터의 저택이다. 게다가 존 워스의 건으로 인해 발터가 한껏 가시를 세우고 경계 중이란 걸 모르지는 않을 터. 자연히 수십의 인원이 부딪히면서 소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저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만한 소란을 모를 수가 없었다. 수도의 치안을 맡은 병사들과 기사들이 불같이 달려올 게 분명했다.

그러자 이런 이드의 의문을 풀어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웬 마법이 저택을 뒤덮는 규모로 발동했다.

“소리를 막았어?”

당장 기척이 끊어진 것이 그 증거다. 그에 오랜만에 새의 모습이 된 라미아가 이드 어깨 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결계네요. 척 보기에도 구성이 나름 치밀해요.”

“당연히 그렇겠지. 안에서 음악회를 할 건 아니니까. 그런데 저걸로 완전히 눈을 가릴 수 있을까? 저거 소리만 막는 거야?”

“설마요. 검기는 둘째 치고 화려한 초인기들이 얼마나 많은데, 진입을 시작하면 결계에 환영이 일어날 것 같아요.”

“쳇, 그럼 다시 자리를 옮겨야겠네.”

신안을 열면 결계를 꿰뚫어 볼 수도 있겠지만, 고작 싸움 구경하자고 그렇게 심력을 소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싸운다고 정신없을 텐데, 그 와중에 자신의 존재를 찾아낼 인간은 없을 것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면서. 그런데 아까 발터는 왜 찾은 거예요?”

라미아가 궁금해했다.

“당연히 발터가 있고 없고가 크니까. 딱 봐도 알겠지만, 적들의 전력이 상당하잖아? 설마 저놈들이 발터가 없다는 걸 모르겠어?”

“그럴 리가 없겠죠. 수도에서 저런 대담한 짓을 하는데.”

만약 그런 것도 모르고 덤빈 거라면 정말 앞뒤 없는, 말도 안 되는 놈들인 것이고,

이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라미아를 본인의 손 쪽으로 옮겼다.

“그런 거지. 그럼에도 저런 전력이잖아. 그 말은, 발터가 없는 저 집에 발터만큼 대단한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 아니겠어?”

“라울의 존재가 들켰다고 말하는 거예요?”

“콕 집어 라울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그와 비슷한 인물이 있으리라는 정보는 가지고 있다는 거지. 그게 아니면 굳이 발터도 없는 저택을 목표로 할 이유가 없잖아.”

주인도 없는 빈집을 털고 초인들을 죽여 봐야 발터의 분노와 논란만 커질 뿐, 무언가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저택에는 라울이 있지 않은가. 만에 하나 저들이 라울을 확보한다면?

“발터도 존 워스에 대한 문제를 접을 수밖에 없겠네요?”

“저놈들을 움직이는 것이 소드 팰러스라는 게 확실하다면 그렇지.”

그리고 이드의 말이 다 끝나기 전, 사방에서 저택을 조여 오던 적 중 하나가 담을 넘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번뜩.

사방에서 담을 넘는 적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은신해 있던 초인들의 공격이 시작되는 순간.

스스슥.

마치 화면이 바뀐 듯 그런 모습이 사라지고, 별빛 아래 세상 조용한 저택의 모습이 나타났다. 환영 마법을 통해 전투의 모습마저 지워 버린 것이다. 그에 이드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환영 마법이 발동된 것과 상관없이, 그의 눈은 여전히 치열한 전투 중인 저택의 정원을 담고 있었다.

환영 마법과 동시에 신안을 연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이런 일에 심력을 낭비할 생각은 없다.

단순히 엄청난 안력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법을 꿰뚫고 세상의 이면을 보는 신안은 대단한 만큼 소모되는 힘이 컸으니 말이다. 스스슥.

이드는 곧 허공을 가로지르며 저택을 향해 곧게 날았다.

부운귀령보의 공능도 있겠지만, 치열한 전투를 시작한 저택에서는 그 누구도 이드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이드가 결계 앞에 서자.

쩌억.

마치 주인을 알아본 강아지처럼 결계가 얌전히 문을 열어 이드를 그 안으로 들였다. 당연히 라미아가 센스를 발휘한 것이다. “그런데 이 결계는 어느 쪽이 사용하는 거야?”

침입을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소리와 빛, 그리고 기운의 차단에 특화된 용도였다. 엉성하지도 않다.

라울 측에서 쓴다기에는 전투를 예상한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저택 쪽에서 시작된 마나 흐름을 보면 라울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라미아의 얘길 들어 보니 그쪽이 맞는 듯했다.

“음,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막을 필요가 있나?”

그냥 두면 자연히 소란을 감지한 기사들이 움직일 텐데 말이다.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그리고 저 숫자를 봐요. 이런 결계 하나 준비하지 않고 왔겠어요?”

즉 라울이 먼저였을 뿐, 그가 아니라도 저택을 노린 자들이 어떤 수를 썼을 거라는 추측이다.

이드는 라미아의 말을 뒤로하고 저택 지붕 난간에 턱하니 올라섰다.

적들이 저돌적으로 담을 넘은 탓인지, 이곳을 지키던 초인들 역시 모두 정원으로 뛰어내린 덕분에 지붕은 텅 비어 있었다. 

“자, 실력 좀 봅시다. 까득.”

그 자리에 주저앉은 이드가 땅콩을 씹었다. 역시 싸움 구경에 최고의 주전부리는 땅콩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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