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650화
1085화
별빛 아래 잘 꾸며졌던 정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쩌저저적.
쿵.
나무가 쓰러지고, 잔디가 뒤집어졌으며, 꽃은 짓밟혀 흉하게 변했다. 담을 넘은 이는 적이지만, 정원을 파괴하는 데는 아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 써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보다 나와 내 동료의 목숨을 챙기는 것이 먼저였으니 말이다.
“진형 유지! 진형을 유지해!”
“이놈들 강합니다! 어중간한 용병 따위가 아니에요!”
“동쪽 지원 바람! 지원 바람!”
기습적으로 담을 넘은 적들이지만, 저택에선 이미 이드의 경고를 받고 준비해 둔 상태였기에 큰 득을 보진 못했다.
그들은 오히려 정원에 은신해 있던 초인들의 공격에 적잖이 놀란 듯했다. 그와 함께 저택에서 나머지 초인들이 달려 나왔다.
문과 창을 넘은 그들은 그 기세로 적을 밀어내며 저택을 중심으로 단단히 벽을 쌓았다.
“우선 저택부터 지키겠다는 것 같지?”
“그렇겠죠. 막을 수 있을까요?”
라미아의 말에 이드는 비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으론 어림없지. 수성전도 아니고. 그럼 망해.”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과 달리, 방어는 절대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공격 이상으로 어려운 것이니까. 특히 기회가 올 때까지 무작정 버텨야 한다는 점에서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다. 이런 사실은 적도 알고, 라울도 안다.
그에 적은 단숨에 진형을 무너트릴 전력을 준비했다. 이런 상황에 그 라울이 단순히 방어만 하는 멍청한 짓을 할 리는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힘들긴 해도 방어선이 자리를 잡자,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일단의 초인들이 정문을 향해 성난 황소처럼 돌진을 시작했다.
이드는 그중 선두에 선 덩치에 관심을 가졌다. 저들 중 그가 가장 강하다는 사실을 단숨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스폴보다 살짝 처지는 정도인가. 제법인데?’
물론 내부에 쌓인 힘에 대한 이야기다. 단순히 육체적인 면만 보면 스폴이 뭔가, 은색 기사단이 나서도 안 될 거다.
전신에 달린 저 근육을 봐라. 저게 어디 오우거지, 인간의 근육이겠는가 말이다.
혹시 저 무식한 몸뚱이가 저자의 초인기가 아닐까 하고 짐작해 보는 순간.
근육 덩치의 전신에서 진한 수기가 출렁이며 일어났다.
“이 칼잡이 개자식들이 누구 허락받고 담을 넘어!! 끄아아압!”
근육만큼이나 커다란 목소리.
쏴아아아아~
그 뒤를 이은 것은 황당하게도 커다란 파도였다. 처음엔 푸르스름한 빛이었지만, 빛은 곧 진짜 물이 되어 사 미터 높이의 너울을 만들며 적들을 들이쳤다.
진짜 파도는 아닐지언정 물의 힘은 강력했다. 그 결과 앞에 버티고 선 적들이 휩쓸리며 순식간에 빈 공간이 만들어졌다.
근육 덩치와 초인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거길 차지하고 들어갔다.
이드는 그 모습에 작게 손뼉을 쳤다.
“허허. 난 완전히 육체계인 줄 알았는데. 누가 보면 물의 정령이라고 할 것 같지 않아?”
“저 덩치가요? 꿈에 나올 끔찍한 소리 하지 마요.”
“그건 나도 싫네.”
근육질의 귀여운 정령? 이드는 곧 맘속으로 자신의 실언에 대해 물의 정령에게 사과했다.
그렇게 이드가 끔찍한 상상에 몸을 떠는 중에도 전투는 이어졌다. 근육 덩치를 중심으로 적을 향해 뿜어지는 초인기. 꽈르르릉!
“끄아아악!”
충격파와 함께 적들이 갈대처럼 쓰러졌다. 양 떼 사이로 뛰어든 늑대 같은 모습이다. 방어선을 넘어 적 앞에 나선 것이 괜한 호기가 아님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러는 중에 근육 덩치가 한 남자의 머리를 틀어쥐었고,
“아악! 놔…… 놔아아아아…….”
퍼억!
끔찍한 비명과 함께 머리가 터져 버렸다.
근육이 장식이 아니라는 양 순수한 악력만으로 인체의 가장 단단한 부위인 머리뼈를 부숴 버린 근육 덩치는 곧 머리를 잃은 적의 몸뚱이를 들어 올리며 외쳤다.
“아가리와 몸뚱이가 따로 노는 비겁자들! 감히 이곳에 발을 들인 죄, 살아 돌아갈 자는 단 한 놈도 없을 것이다! 왜? 내가 네놈들 대가리를 모두 터트리고, 그 목구멍에 공기 대신 지옥의 똥물을 채워 줄 테니까!”
말과 함께 들고 있던 시체를 던져버린 근육 덩치는 야수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러니 거기서 알짱거리지 말고, 죽고 싶지 않으면 모조리 덤벼!”
그건 마치 적들에게 자신을 보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그에 라미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저 덩치는 왜 저런데요? 관종인가?”
“진짜 관종인진 몰라도 일단 지금은 적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싶은 거겠지. 그래야 안정될 테니까.”
당장 굳건해 보이는 방어선이지만, 가만히 보면 위기가 없는 건 아니다.
방어선을 위협할 수 있는 강자가 불규칙적으로 두드리는데, 내부에선 그걸 보충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상황.
저것이 계속되면 분명 방어선은 무너진다.
근육 덩치의 퍼포먼스는 그런 강자들을 자신에게 불러 모으기 위한 것이다.
방어선에 대한 위협 요소만 빠지면 이 전투는 그대로 고착될 테니까.
“흐응~ 쓸데없는 짓이네요.’
다만 그에 대한 라미아의 평가는 냉혹했고, 이드 역시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 어디 녀석들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만만한 놈들이 아닌데. 그걸 아직도 모르나?”
그 말 대로였다.
“흥!”
근육 덩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롱 가득한 코웃음이 날아왔다.
“웨엑~!”
그 코웃음엔 내력이 깃들어 있었다. 근육 덩치는 굵은 눈썹을 꿈틀거리는 것으로 끝났지만, 그 뒤 방어선을 유지 중인 초인들 중 몇몇은 속의 것을 토해냈다.
후웅!
직후 적의 후미에서 허연 그림자가 백호처럼 불쑥 튀어 오르더니 벼락처럼 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적!
초열의 검력이 공기를 태우고, 호랑이의 송곳니를 연상시키는 검기가 날아왔다.
그에 파도가 살아 있는 듯 움직여 벽을 만들었지만, 뜨거운 열기로 단번에 물을 증발시킨 검기는 이내 근육 덩치의 머리를 때렸다.
즈즈즈즈즛—
순간 막대한 양의 허연 수증기와 함께 백염의 번개가 기름 위의 물방울처럼 근육 덩어리의 몸을 타고 땅으로 미끄러졌다.
근육 덩치의 몸을 감싸고 있는 물의 장벽이 열과 뇌력을 띈 기운을 막은 것이다.
“재미있는 돼지군.”
그 모습에 비웃음을 머금은 남자가 소리 없이 내려서자, 그전까지 초인들을 상대하던 적들은 즉시 자리를 비우며 방어선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도 근육 덩치를 비롯한 초인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적들이 비켜선 뒤로 뇌열의 검기를 일으킨 남자와 같은 기도를 품은 검사가 여럿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근육 덩치는 내심 침음했다.
‘2차 대응 실패. 그에 대한 대처가 현장 굳히기였지.’
근육 덩치는 미리 설명받은 대로 움직였다.
콰르르륵-
땅을 향해 펼친 근육 덩치의 손아래로 바다에서 일어나는 용오름을 연상시키는 물의 회오리가 생겨났다.
“똥물을 삼킬 준비는 되었느냐, 말라깽이 놈아!”
“뚫어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뇌력을 품은 백염의 검기와 커다란 물회오리가 충돌했다.
그걸 시작으로 방어선과 같지만 다른, 또 다른 전투가 시작되었다.
쿠쿠쿠쿵!
다만 방어선 밖에서 펼쳐지는 전투는 그 레벨이 확연히 달랐다. 검기와 초인기가 번뜩이고, 땅과 공중에서 동시에 전투가 이어졌다. 가까이 있다가는 애먼 공격에 맞아 죽을 것 같은 전투.
힐끔 힐끔.
방어선을 구축한 초인들은 물론, 그들을 공격하는 적들까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포함해 이드는 이제야 볼만한 거리가 생겼다는 듯 눈을 반짝거렸다.
“라미아, 저 전투 녹화 좀 부탁할게.”
“돌아가서 보여 주게요?”
“그래야지.”
지금 담을 넘은 적들은 모두 무기를 들었다. 또 그 대부분이 검이었다.
초인기를 사용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바벨을 공격할 초인이 있을까마는, 삼검왕이 부린 것으로 의심되는 황궁 침입 미수범들처럼 바벨에 속하지 않은 초인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저 이 자리에 없을 뿐.
좌우간 현재 저택을 지키는 초인들은 적을 완벽히 소드 팰러스의 기사들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비겁한 칼잡이 놈들!”
“기사면 기사답게 정정당당하게 붙어!”
“자고로 기사는 모조리 개자식들이야!”
힘든 전투 중에 쏟아 내는 욕설만 들어도 더 볼 것도 없을 정도다.
“이드가 보기에는 어때요? 삼검왕이 부리는 기사들 같아요?”
휴는 물론이고, 영상 저장 마법까지 사용해서 이드의 부탁을 들어주고 있던 라미아가 물었다.
“가장 혐의점이 높기는 하지.”
“저들이 사용하는 무공을 살피면 단숨에 알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녹화해 달라고 한 거야. 저놈들이 사용하는 무공, 소드 팰러스의 흔적이 거의 없어.”
삼검왕이 훈련시킨 기사들이라면 소드 팰러스의 무공을 익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런 흔적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가 없다.
비슷한 수준이라면 꼬고, 변형시켜 다른 껍데기를 뒤집어씌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 알맹이라고 할 수 있는 핵심 무리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이드의 눈을 피할 수 없다.
기량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수준 차이도 있겠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현재 그레센에 퍼진 무공의 근원은 이드에게 있다.
그런 만큼 더욱더 이드의 눈을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잠시 소드 팰러스에 머무는 동안 이드는 소드 팰러스의 대부분의 무공을 봤다. 수련생들과 오색 기사단을 통해서다.
그렇게 확인한 소드 팰러스의 핵심 무리는 검후의 난화십이식이었다. 다만 갈라져 나온 무공에 따라 그 성격이 얼마나 변하고, 어떤 개성을 따르느냐의 차이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초인들을 몰아붙이는 저들의 무공은 어떠한가.
분명 그 속을 파헤치면 검후의 흔적은 찾을 수 있다.
그건 이드에게 시작된 무류가 검후를 통해서 퍼진 만큼 어떻게 해서도 지울 수 없는 흔적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저들의 무공에는 소드 팰러스와는 근원을 공유하면서도 분명히 다른 흐름이 있었다.
저 정도의 차이라면 강호에서도 이미 개별로 취급받아도 좋을 정도라고 하겠다.
과연 검후나 쉴라는 이런 무공을 접한 적이 있을까?
“보면 충격 좀 받겠는데?”
“그 정도예요?”
“응, 소드 팰러스의 무공에 전혀 뒤지지 않아. 특히 저 근육과 싸우는 검사의 무공에 담긴 속성력이 대단해. 마법과 정령이 있는 땅이라서 그럴까, 한 번 보면 잊지 않을 정도로 개성이 분명해.”
재밌어 죽겠다는 이드의 모습에 라미아는 대충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드의 턱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래도 저기에만 정신 팔면 안 되는 거 알죠? 저기, 진짜가 왔어요.”
라미아에 의해 돌아간 이드의 고개가 한쪽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