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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94화


1129화

말과 함께 꺼내 놓은 드래곤 하트를 당겨 가는 라미아다. 털어 놓지 않으면 자신도 말하지 않겠다는 제스처다.

“오구오구~ 많이 궁금했구나. 그렇게 궁금해서 여태 어떻게 참았대? 우후후.”

이드는 그 모습이 귀여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퍽!

“장난 아니거든요!”

직후 내장까지 파고들 것 같은 라미아의 주먹을 허락해야 했지만.

“쿨럭, 알았어. 그만할게.”

“두고 보겠어요.”

이드는 쉽게 누그러지지 않는 라미아를 보며 장난할 때가 아님을 알아차리고는 얌전히 두 손을 들었다.

하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날카로울 일인가 의아하긴 했다.

사실 라미아가 이렇게 답답해하는 건 이드가 이해해 줄 필요가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이 겹친, 그러니까 일종의 동기화 상태일 때 일어난 일에 대해 라미아가 알 수 없었다는 것은 최악의 경우 둘 사이의 연결에 문제가 있는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살폈음에도 마법 자체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사실 두 사람을 영자 단위에서 하나로 묶고 있는 ‘영혼의 약속’이라는 마법의 맹세는 실로 강력하지만, 오직 하나의 조건만을 충족하는 만큼 매우 단순했기에 웬만해서는 문제가 생길 수가 없었다.

그럼 도대체 왜 이드가 무언가를 얻을 때 자신이 몰랐을까.

호기심으로 포장하고 티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 라미아의 가슴엔 그에 대한 걱정이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라미아를 상대로 장난을 쳤으니 이드는 어쩌면 옆구리에 주먹이 박히는 정도로 끝난 데 감사해야 할지도 몰랐다.

똑똑똑.

그때, 돌연 이드가 라미아의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고, 침대에 마주 앉은 상태에서 굳이 그렇게 대화할 필요가 있나?

라미아가 그런 심보를 담아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한 대 더 맞고 싶냐는 뜻이었다. 그러자 이드가 바로 답했다.

“장난 같은 건 아니고, 그냥 그 순간을 좀 더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거야.”

“설마…… 얻었다는 게 물건이 아니었어요?”

“응, 아닌데?”

“그런 건 진작 말했어야죠!”

이드는 억울한 마음이었지만,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라미아의 눈치를 봐야 했다.

하지만 높아진 목소리와 반대로, 그 순간 라미아의 가슴을 채우던 근심의 절반이 날아갔다.

물리적인 부분이 아니라면 그녀가 모르고 지나쳤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드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보면 명확해질 것이다.

“쓸데없는 짓 말고 그냥 말로 해요. 핵심만 간단하게!”

“그런 거면 더더욱 마음으로 전달하는 쪽이…..”

“지금은 싫어요!”

혹시라도 마음을 겹쳤다가 이드가 자신의 걱정을 아는 건 싫었다.

해서 라미아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고집이라면 어쩔 수 없었기에 이드는 결국 라미아의 말에 따라 핵심만을 추려 짧게 설명했다.

“암흑 공간에 길이 생겨 내계와 외계가 이어지는 순간, 차원의 인이 반응을….커억! 하라는 대로 했는데 왜 또 때려!”

“몰라요! 내 걱정 물어내!”

이유도 모른 채 또다시 옆구리를 얻어맞고 억울해하는 이드와 침대를 퍽퍽 두드리며 괜히 소리치는 라미아.

조용하던 침실에 혼돈이 강림하는 순간이었다.

‘차원의 인 관련한 거면 당연히 내가 모르지. 이게 다 이드가 이상하게 이야기해서 그래!’

모든 잘못을 이드에게 돌리고 투덜거리는 라미아지만, 그래도 근심 걱정이 모두 가신 그녀의 마음은 한결 개운해져 있었다.

잠시 후, 혼돈이 물러간 침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드도 더 따지고 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화나 있던 라미아의 기분이 풀렸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차원의 인이 있는 손목을 괜스레 치던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그것과 관련한 모양이었다.

하나 이미 끝난 일, 아무렴 어떤가.

괜히 꺼진 불을 다시 살릴 필요는 없었다.

해서 이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차원의 인이 그렇게 외계에 반응해서 깨어난 덕분에 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거기에 있는 혼돈의 파편을 관측할 수 있었어.”

잠시 그때를 떠올려 보던 이드는 라미아에 의해 붉어진 팔목을 쓸었다.

“굉장한 감각이었어. 우주처럼 광활한 차원이 무척이나 섬세하게 느껴졌거든. 차원의 경계를 막고 있는 혼돈의 파편의 존재는 그 뒤에 알았어.”

“차원 공간이라면 정말 한없이 넓을 텐데, 그 안에서 혼돈의 파편을 정확히 찾아냈다니. 어쩌면 그게 차원의 인의 진짜 능력일지도 모르겠네요.” 

메르시오 땐 녀석이 근처에 와서야 알려 줬었고, 존 워스도 그 정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한데 이드에게 들은 능력은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뛰어난 성능이었다.

“내 생각도 같아. 아직 완전한 상태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외계에 반응한 게 아닐까 싶어. 아무튼 정말 중요한 건 이거야. 혼돈의 파편을 찾아낸 순간, 차원에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짧게나마 볼 수 있었어. 한데 원래 네 명이서 경계를 했었는데, 그중 두 명이 안쪽으로 들어가 버리더라는 말이지.”

“그거, 설마 세레니아가 말했던……”

“음. 그녀의 예측이 옳았다는 거지.”

세레니아는 일전에 안에서 날뛰면 경계를 막고 있는 혼돈의 파편도 언제까지 자리만 지키고 있을 수는 없을 거라고 했었다.

메르시오가 소멸된 만큼 그녀의 말대로 되지 않았을까 막연히 바라고는 있었지만, 이번에 그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 거다. 

“하나도 아니고 무려 둘이 빠졌으니, 세레니아가 돌아오는 날도 더 당겨지겠네요.”

“대신 존 워스의 전력도 메르시오가 있을 때보다 두 배 커지겠지. 그만큼 우리도 더 조심해야 할 거고.”

혼돈의 파편 셋의 합공이면 이드도 도망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나마도 당연히 쉽지 않을 테고.

즉, 혼돈의 파편이 메르시오의 경우와 소멸을 조심하는 것처럼 이드도 그들을 조심해야 했다.

“내 이야기는 이걸로 끝. 이제 세레니아가 보낸 택배를 뜯어 보자. 단순히 안부 편지 같은 건 아닐 거 아냐.”

“지금 드래곤 하트를 앞에 두고 안부 편지라는 말이 나와요?”

“하하. 아무래도 그건 좀 그렇지?”

가치도 가치지만, 드래곤 하트가 눈앞에 있다는 건 까놓고 말해 그걸 가지고 있던 드래곤이 죽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 사체의 일부에 안부를 담다니, 그건 그야말로 악취미다.

그렇게 이드가 멋쩍게 웃자 작게 고개를 저은 라미아가 드래곤 하트에 걸려 있는 락을 간단하게 해제했다.

“그래서, 안에서 뭐가 좀 나왔어?”

이드는 말과 함께 드래곤 하트를 살폈다.

잠금을 풀었다고 해서 딱히 외적으로 달라진 점은 없었다. 드래곤 하트 속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는 붉은 액체가 신경 쓰이는 것도 여전했고. 

“그건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손 내밀어 봐요.”

갑작스러운 요구에도 반사적으로 손을 내민 이드는 문득 자신의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반지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이것도 반지와 연동시켜 둔 거구나?”

“맞아요. 일리나에게 고마워하세요. 일리나가 끼워 주지 않았으면 이 드래곤 하트는 물론, 혼돈의 파편에 대한 정보도 없었을 테니까.”

“그렇기는 하지.”

이드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그건 세레니아가 남긴 것으로, 원래는 일리나에게 있어야 할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드와 라미아가 카논으로 떠나기 전, 일리나는 그 반지를 이드에게 줬다.

메르시오가 소멸했으니 세레니아와 드래곤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고, 그렇게 되면 그들은 가장 먼저 이 반지를 찾을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그때 이드는 그 행동이 본인을 두고 가는 데 대한 불만을 에둘러 표현하는 건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받아 온 반지가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

모르긴 몰라도, 세레니아가 암흑 공간을 넘어 드래곤 하트를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이 반지가 이정표가 되어 준 덕분이리라.

“쩝. 이것도 여자의 감이라는 걸까.”

“우연이에요. 운이 좋았던 거죠. 고마우면 다음부턴 일리나와 함께 다니자고요. 일단 여기에 손을 올려 봐요.”

그에 이드는 라미아의 말을 따라 드래곤 하트 위에 손을 올렸고, 이윽고 드래곤 하트에 공명한 반지에서 이전에 한 번 만났던 미니 사이즈의 세레니아가 얍 하고 튀어나왔다.

그녀는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다 이드와 라미아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이드 님, 라미아 잘 있었어요?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세상일은 정말 예측 불가네요.’

“그러게요. 그보다, 우리에게 해 줄 말이 있죠?”

“드래곤 하트 말이죠? 제 본체가 남긴 정보는 손실 없이 전송받았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날아오른 세레니아가 드래곤 하트에 손을 댔고,

푸스스스-

직후 드래곤 하트는 빛 가루를 흘리며 떠올라 세레니아의 손이 가리키는 곳으로 날았다.

목적지는 차원의 인이 있는 이드의 손목.

그 위에 도착한 드래곤 하트는 위성처럼 손목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느긋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세레니아는 그제야 손을 내렸다.

“1단계 고정 작업은 끝났어요. 2단계와 미세 조정은 라미아가 할 수 있을 거예요. 자, 이제 그 증폭기의 기능을 말해 줄게요.”

“증폭기요?”

“네. 사실 본체가 따로 이름을 정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우선 그것이 가진 기능을 이름처럼 불러요. 거기, 하트 안에 붉은 액체 있죠? 혼돈의 파편의 혈액을 마법으로 가공한 거예요.”

“이게 피란 말인가요?”

이드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드래곤 하트를 다시 살폈다. 과연 혼돈의 파편과 관련이 있어서 계속 눈길이 갔던 모양이다.

“본체가 외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손에 넣은 거예요. 본체는 그레센으로 돌아왔을 때를 대비해서 그걸 만들었어요. 혼돈의 파편을 찾아야 하니까요. 다만 문제는 아무리 혈액을 구했어도, 그것 단독으로는 혼돈의 파편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게 차원의 인이었죠.”

“그럼, 증폭기라는 말은 혼돈의 파편에 반응하는 차원의 인의 기능을 증폭시켜 준다는 의미로군요.”

“맞아요. 대신 혈액의 주인 단 한 명뿐이지만요. 다행히도 그가 마침 그레센으로 돌아갔다던데요?”

“그거 굉장한 소식이군요.”

“기뻐해 주니 흐뭇하네요. 하지만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 그것도 차원의 인의 탐지 범위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렇다 해도 이 증폭기는 큰 분명 도움이 될 터였다.

“고마워요. 정말 꼭 필요한 기능이었다고요.”

“참, 그 증폭기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어요. 마나가 흘러내리는 걸 보면 알겠지만, 기능할 때 마나 소모가 극심해요. 그래서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걸 추천할게요.”

거기까지 말한 세레니아는 한숨을 돌린 뒤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가 드래곤 하트에 대한 설명이고, 다음은 본체가 보내는 메시지인데 부탁을 해결해 줘서 너무 고맙대요. 덕분에 큰 희생 없이 그레센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조만간 직접 찾아갈 테니 기대해 달래요.”

“기쁘게 기다리도록 하죠.”

“오면 환영 파티도 준비할게요.”

이드와 라미아의 말에 가볍게 웃은 세레니아는 사라지기 전, 추신을 덧붙였다.

“라일로시드가도 건강하게 살아 있으니 걱정하지 말길, 이래요.”

분명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지만, 이드는 솔직히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라미아와 함께 비어 있는 그의 레어를 털어 버렸기 때문이다.

“한번…..들러야겠지?”

“…….”

반가움과 아쉬움이 섞인 이드의 말에 라미아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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