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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08화


1143화

혼란에 빠진 이갈의 반응이 제법 볼만하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생각이 들진 않았다. 수다쟁이에게 소비해 줄 감정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일리나는 조금 전 이드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고생했어요. 지금부턴 내가 정리할게요. 아마 바람이 좀 강할 거예요.

온다는 말도 없이 언제 온 걸까.

지원을 요청한 후 검후가 오길 기다리고 있던 입장으로서야 더없이 반가운 일이었다. 다만 말이라도 해 주지 하는 생각에 조금 섭섭하기는 했다. 그때, 이갈이 한 박자 늦게 표정이 바뀌었다. 경악한 기색이었다.

“설마, 명예 후작이…….”

얼마나 놀랐는지, 출혈과 통증으로 창백하던 얼굴이 더욱더 희게 변했다.

일리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는, 별안간 아무것도 없는 왼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스팟.

그 순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번개가 친 것처럼 은빛 잔상이 생겨나더니 뒤이어 나무를 뽑아 버릴 정도로 엄청난 충격파가 들이닥쳤다. 마치 거대한 폭풍과도 같았다.

슈화화화화화확!!

“크윽!”

그렇지 않아도 비틀거리던 이같은 결국 그대로 쓰러져 땅을 굴렀다. 쩍 벌어진 복부는 흙투성이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적을 향한 눈을 떼지 않았던 이갈은 곧 허탈해지고 말았다. 바람에 휩쓸린 자신과 달리, 일리나는 머리카락이 살랑거릴 뿐 너무나도 평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설마 바람이 일리나만 피해 갈리는 없었다.

‘설마 아까 허공을 벤 움직임의 파동인 건가…?’

분명 척 봐도 예사롭지 않지만, 의미를 알기는 어렵던 그 행동. 자신으로서도 알아보기 힘든 검술이었다.

그 폭발적인 능력을 보고 나자 임무 이전에 검을 잡은 자로서의 본능적인 의문이 이갈의 머리 한편에 자리했다. 하지만.

“켁!”

“내・・・・・・ 내 허리가!”

“아아아악!”

“이게 뭐야!”

뒤이은 고통 어린 비명과 베린의 고함에 금방 현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비명을 따라 고개를 돌린 직후,

이갈은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팔과 가슴의 일부가 날아가고, 허리가 잘려 내장이 쏟아졌다. 가슴에 철퇴 크기의 구멍이 뚫리고, 전신에 수십 개의 구멍이 만들어져 사정없이 피를 뿜어낸다.

차라리 목이 깔끔하게 잘린 건 양반일 정도.

바로 직전까지 황제의 목을 끊기 위해 달려들던 부하이자 동료들이었다. 한데 지금은 개중 멀쩡한 자가 하나도 없다. 당장은 살아 있어도, 곧 죽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들도 여럿이었다.

어깨 부위에 어린아이 주먹 크기의 관통상을 당한 베린의 상태가 그나마 가장 나아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베린을 비롯해, 쓰러진 모든 인물이 두려운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것.

우우웅~

황제와 황녀의 머리 위에서 투명한 은빛을 뿌리며 떠 있는 소검이다. 그 모습이 마치 은총을 내리는 듯했다.

베린의 반응을 보면 저기에 당한 게 분명해 보이는데, 정작 소검은 티끌 하나 없이 매끈한 검신을 반짝이며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꼭 경계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

“저게・・・・・・ 남편….”

이 사람, 무슨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걸까.

일리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이갈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를 만난 후 가장 강력한 감정을 내보이는 셈이었다.

아니, 아무렴 검을 남편이라고 소개하면 그게 제정신이겠는가?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으욱・・・・・・ 헉헉. 저런 괴물이 왜 또 있는 건데!!”

때마침 베린이 폐에 차오른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그런 그녀의 이마 위에는 아까 일리나를 찾았을 때처럼 안개 거인의 머리 일부가 나타나 있었다. 

“말이 틀리잖아, 이 개새끼야! 저거.. 헉헉… 저거 어쩔 거야!”

거침없이 튀어나오는 원망과 욕설. 자신을 공격한 자를 향한 것인지, 이갈을 향한 것인지 분명치 않았다.

그녀는 벌벌 떨리는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거긴 황궁을 나온 황제와 황녀가 향하던 고급 주택가가 있는 쪽이었다.

‘그러고 보니 황제는 누굴 만나려고 이렇게 은밀하게 나온 거지?’

이갈은 새삼 그런 의문을 담고서 베린의 손끝을 따라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를 보고 말았다.

수 킬로미터 밖에서 지붕 위를 날아오는 검은 그림자. 마치 반딧불처럼 깜빡깜빡했다. 그리고 한번 깜빡일 때마다 그 크기가 두 배씩 커졌다.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블링크를 연상케 할 정도의 가공할 속도. 아마도 허공에 떠 있는 저 소검의 주인이리라.

그 정체는.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 이드 명예 후작.”

“바로 우리 남편이죠.”

은근히 자랑을 담아 말하는 일리나와 대조적으로, 이갈은 허탈한 얼굴이 되었다.

“부하들도 다 죽어 버렸으니……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요.”

“안다면 검을 버리세요.”

“그보다는……..다음 기회를 노려 보렵니다.”

이갈의 말과 함께 푸쉭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돌연 검막 안에 있던 안개 거인의 두 발이 사라졌다. 그걸 감지한 일리나가 검막을 거두고 기감을 높였다.

그리고 잠시 후, 안개 거인의 발은 그녀와 황제 일행의 머리 위에 나타나 발을 굴렀다.

콰르르르릉!

기습적인 출현과 공격이라서인지 검막을 두드리던 때만큼 그 위력이 강하지는 않았다. 하나 그 역시 일리나를 주춤하게 하고, 황녀와 근위 기사들을 황제에게 바짝 붙어 서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탈출할 틈을 만들기에는.

부웅-

다시 거대하게 변한 안개 거인의 손이 베린과 이갈, 두 사람을 들고 솟아올랐다. 이대로 하늘로 사라져 버리면 추적도 할 수 없었다. 

“얌전히 보내 주진 않아요!”

그 모습을 본 일리나의 검에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솨아아아아

풍화가 불러온 바람. 그 덕에 일어난 흙먼지와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진 공기가 발 쪽으로 몰려간다.

퍼퍼퍽!

직후 먼지를 뚫고 나온 꽃잎들이 현란한 움직임으로 안개 거인의 발에 구멍을 숭숭 뚫는가 싶더니, 벼락처럼 뒤따른 뇌정화의 검강 줄기는 구멍투성이 치즈 같은 발을 아예 두 동강 내 버렸다.

애초 베린과 이갈이 전력을 쏟고도 겨우 상대하던 일리나다.

팡! 파파파팡!

겨우 발 한 짝에 가로막힐 리가 없었다. 허공답보를 사용한 그녀가 먼지와 흩어지는 안개를 뚫고 솟아올랐다.

그 속도는 하늘을 나는 안개 거인의 손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빨랐다.

“야, 가만히 당할 거야? 어떻게 좀 해봐!”

다급해진 베린이 이길을 재촉했다. 손의 비행 속도는 지금이 최고임을 알면서도 조급한 마음에 그리한 것이다. 

“끄응. 넌 지금 내 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나는 뭐 멀쩡하냐? 그럼 이대로 죽을래? 원한다면 떨궈줄 수 있는데. 네가 없으면 속도는 좀 더 낼 수 있겠다.”

“알았다, 알았어. 대신 너도 도와.”

가볍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말이었기에 허투루 답할 수 없었다. 결국 이갈은 부여잡고 있던 복부에서 손을 떼고, 곡도를 들었다. 그런 이갈의 팔다리에 안개 거인의 팔다리가 휘감겼다.

“하나 더.”

“상처도 있으면서, 무리야.’

“조금 전에 날 떨구겠다는 사람이 누구였더라? 걱정 말고 올려. 어차피 저 여자는 두 개로 떨어트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잠시 고민하던 베린.

“……죽어도 내 원망은 하지 않기다.”

그러나 점점 가까워지는 일리나를 본 그녀는 입술을 한번 핥고는, 이갈의 머리 위에 거인의 머리를 투구처럼 올렸다.

피슈슈슛

그러자 겨우 지혈하고 있던 복부가 다시 터지며 피가 뿜어졌다. 몸에 두른 안개 거인의 구성이 늘어나면 외적으로만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힘이 더해졌다. 그 덕에 상당한 압력이 걸리는 듯했다.

‘오래는 못 견뎌.’

일순간 눈앞이 아찔해진 이갈은 이를 악물고 서둘러 곡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곡도에 금세 도강이 차오르더니, 도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강기가 환영처럼 그 위로 떠올랐다.

쿠쿠쿠쿠쿠-

빠르게 덩치를 키운 도강은 순식간에 황궁 기둥만큼 커졌고,

“크아압!”

모든 힘을 쥐어짠 이갈은 마지막 기합과 함께 아래를 향해 도강을 내던지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쿠우우우우-

“이런.”

일리나는 혀를 찼다. 베린과 이갈이 코앞이었는데, 날벼락처럼 떨어진 도강이 시야는 물론 하늘까지 온통 가로막아 버린 탓이다.

단순히 외형만 큰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강맹한 폭류까지 흘렀다. 응당 간단히 뚫고 나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설마하니 세 개의 구성을 더한 것으로 이 정도 출력을 낼 줄이야. 이걸 보면 안개 거인의 손발은 단순한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인 듯했다. 그렇다고 얌전히 놓쳐 줄 생각은 없었다.

일리나는 시야와 기감을 모두 차단한 도강을 앞에 두고서, 심상에 차분히 베린과 이갈을 그렸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가장 선명해졌을 때, 서거거걱!

불꽃을 뿜는 네 줄기 검강이 파도타기라도 하듯 거대한 도강을 타고 넘어 사라졌다. 과연 저것이 목표에 잘 맞을지 아닐지는 순전히 운에 알렸다. 

“문제는 이제・・・・・・ 이 터무니없는 폭탄이군요.”

일리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현재 그녀는 도강과 함께 추락 중이었다. 정확히는, 아무런 대응도 하고 있지 않은 상태. 이대로 이걸 처리하려면 아무리 그녀라도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대로 피해 버리면?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 거대한 폭탄이 되어 최소 그 주변 백 미터는 휩쓸어 버릴 것이다. 이드가 곧 도착하겠지만, 그녀의 계산에는 간발의 차로 도강이 떨어지는 쪽이 먼저였다.

그렇게 되면 황제 일행의 안전도 장담하기 힘들었다.

“휴~ 이드가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좋았을 텐데.’

“나 찾았어요?”

그렇게 아쉬워하는 찰나 허리를 감싸는 부드러운 손길과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드? 아까는 분명 상당히 멀리 있었는데.”

“아무래도 일리나가 날 많이 보고 싶어 할 것 같아서 라미아에게 날려 달라고 부탁했죠.”

이드는 별것 아니라는 듯 상큼하게 웃었다.

하지만 제삼자가 보면 절대 그렇게 상큼하게 웃을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과정이 아니었다.

귀신같은 속도로 달리던 이드는 갑자기 출현한 도강과 그 앞의 일리나를 보고는, 달리는 속도 그대로 라미아를 소환한 후 그녀의 블링크를 통해 단번에 거리를 좁혔다.

“……”

“알아요. 이게 문제라는 거잖아요. 어떤 놈인지 무식하게 힘만 쥐어짜서 똥을 싸고 갔네요.”

이드는 누군지 모를 상대를 거침없이 매도했다.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사실 이드는 현재 매우 화가 난 상태였다.

일리나의 몸에 손을 대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상태와 부상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떤 연놈인지 몰라도, 우리 다음에 꼭 제대로 보자. 제발.

-누군지 몰라도 편히 죽지는 못하겠네.

감초처럼 끼어든 라미아. 그런 그녀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이드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도강을 향해 주먹을 쑤욱 내밀었다. 철관심인.

파칙!

검은 기운이 도강에 닿으며 작은 불꽃이 튀었지만, 그뿐.

그걸로 끝인가 싶은 순간.

콰드드드드!!

이드의 주먹이 닿은 부위에 갑작스레 회오리가 생겨나더니, 도강 전체가 쪼그라들며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커다란 구멍이 난 대야에 물이 빠지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늘을 가득 채울 기세의 도강은 이드와 일리나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게 검은 기운 안으로 사라졌고,

팡.

검은 기운 역시 풍선처럼 터지는 것으로 그 흔적을 감췄다.

그리고.

“아쉽네요. 결국 놓쳐 버렸어요.”

“그래도 팔 하나는 잡았잖아요.”

뒤늦게 팔 하나가 툭 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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