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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00화


1235화

이드의 재촉에 라울이 혀를 차며 돌아섰다.

그러자 정면에 마주한 스케스틱과 함께, 연무장 주변에 가득한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일이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모르겠군.’

뜻하지 않은 대련도 그렇지만, 이제는 기사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생겼다. 어째서인지 이 저택에만 오면 묘하게 목적에서 어긋난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이것도 업보 탓인가.’

잠깐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한 라울은 이내 어깨에 잔뜩 든 힘을 뺐다.

지금처럼 직접 싸움에 나서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간 업무의 특성상 직접 싸울 일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물론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긴장은 불가피했을 것 같긴 하다. 무려 드래곤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현재 그레센에 살아 있는 인간 중 누구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을 하게 되었단 말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긴장으로 대련을 망칠 순 없었다. 목숨이 걸린 싸움은 아니지만, 그 이상의 것을 두고 시작된 대련이니까. 라울은 마음을 다잡았다.

다만 한편으로 아쉬운 자꾸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펠로우 그놈을 동행하는 거였는데.’

라울은 자신의 저택행에 함께하기를 요청하던 동료를 떠올리다가 이내 그런 스스로의 생각에 곧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아쉬워도 그건 아니었다. 만약 펠로우를 동행했다면, 스케스틱에게서 초인에 대한 말이 나온 순간 지금처럼 얌전한 대련이 아니라 이미 싸움이 일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목숨을 건.

‘아무렴 그놈을 동행하는 것보단 내가 고생하는 편이 훨씬 낫지, 나아.’

평생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동료 놈이지만, 덕분에 긴장이 완전히 풀렸다. 라울의 눈이 은은한 황금빛으로 물들더니, 이내 그의 시야에서 기사들의 존재가 사라졌다.

“제 초인기는 골든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 무기, 만상안입니다.”

라울의 손에서 황금의 수레바퀴가 굴러 나왔다.

처음엔 동전만 했던 바퀴는 한 바퀴를 구르는 동안 라울의 키만큼 커졌다.

휘리릭.

바큇살은 그 상태에서도 멈추지 않고 천천히 회전했고, 그걸 타고 흐르는 바람이 라울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그리고 이 모습에 상대인 스케스틱보다 먼저 반응한 사람이 있었다.

“저 빌어먹을 물건.”

바로 검후였다.

이전에 라미아가 보았던 물건이기에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이드는 검후의 모습을 보고는 물었다.

“만상안에 대해 아십니까?”

“모를 수가 없답니다, 명예 후작. 내가 저 물건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요.”

그렇게 묻는 이드의 말도, 또 답하는 검후의 말도 듣는 사람들을 의식한 듯 정중하게 바뀌어 있었다.

라울이 만상안을 꺼내는 순간부터 모두의 눈은 연무장을 향했지만, 귀는 사방을 향해 열려 있는 만큼 조심하는 것이 옳았다.

그럼에도 답하는 검후의 ‘고생했다’는 말은 허튼소리가 아니었는지, 수레바퀴를 바라보는 눈이 날카롭게 세모꼴을 하고 있었다. 그에 이드가 잘되었다는 듯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저 물건에 관해 알려 주시겠습니까?”

“어렵지 않아요. 사실 만상안이라는 이름은 저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예상대로 멋대가리 없네요.

“거, 검후님…….”

거침없는 검후의 말에 곤란해하는 쉴라의 이마를 검후가 밀어냈다.

“얘는 무슨 말을 못 하게 하는구나. 이 정도는 괜찮지 않니? 또 들으면 어때? 어차피 전부 내 식구들인데.”

지금 이 말을 정신없는 검은 돌 요원들이 들었다면 감동했을까.

“아무튼, 저 만상안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무기로서의 의미가 없어요. 굳이 쓴다면 마차 바퀴로나 그 역할을 할까. 그런 의미에서, 저건 무기라기보다는 차라리 도구에 더 가까워요.”

“도구라면……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지팡이 같은 것 말인가요?”

“정확해요. 라울이 저 물건을 꺼내 들었을 때, 그 용도는 항상 초인기를 좀 더 세밀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쓸 때였으니까요. 예를 들어 내공의 봉인 같은 거 말이에요.”

“만상안 때문에 고생했다는 말이 그럼・・・”

“맞아요. 제가 갇혀 있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라울이 저 물건을 이용해서 제 내공을 봉인해 버렸기 때문이죠. 그것도 겹겹이 봉인에 재봉인까지 해 가면서 말이에요. 그 봉인을 풀어낸 명예 후작이라면 얼마나 지독한지도 알겠지요?”

“과연…… 빌어먹을 물건이로군요.”

검후의 구출 이후에 확인한 그녀의 내공에 대한 금제는 끔찍할 정도로 대단했다. 아마 이드와 라미아가 아니었다면 그걸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리라.

혹시나 풀어낸다 해도 검후의 몸에 심각한 무리가 생겼을 터였다. 내공 금제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역사가 깊은 무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지독했기에 그 금제의 출처가 무엇인가 싶었는데.

지금 밝혀진 것이다.

“그렇지요? 제가 당해 보니, 공간이 절 압박하는 감각이 드는 게, 아무래도 중력을 이용할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드가 자신의 편을 들어 주는 느낌을 받아서일까.

검후는 부모님께 이르는 아이처럼 라울이 만상안을 통해 발산하는 초인기에 대해 일러바쳤다.

하지만 그런 검후도 스르릉 하고 옆에서 들리는 검 뽑는 소리에는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는 성난 황소처럼 핏발이 선 눈을 하고 콧바람을 풍풍 뿜으며 당장 달려나가려는 스폴이 있었다.

“감히! 감히 저 똥통에 백 년을 처박아 놔도 모자랄 물건으로 검후님을 농락하………… 읍!”

“제발 급발진 좀 하지 마. 무엇보다 유언비어를 네가 뿌리면 어쩌자는 건데!”

물론 이런 스폴의 난동은 항상 그녀보다 한발 빠른 쉴라에 의해 진압되었다. 더욱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폴의 입에서 나올 뻔한 ‘농락’이라는 위험천만한 말도 말이다.

‘감금 당했다’라는 것과 감금되어 ‘농락 당했다’는 그 해석의 여지에 있어서 천지 차이 아니던가.

쉴라가 그 상태로 스폴과 함께 한발 물러서자, 검후와 이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화를 이어 갔다.

“크흠. 그런 형태라면 라울도 저 무기를 이용해서 근접전을 펼치진 않겠군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모양부터가 근접전엔 적합하지 않잖아요.”

“뭐, 일단 그건 그렇다고 치도록 하죠.’

“음? 지금 그 반응은, 저렇게 생긴 근접전 무기가 있단 말씀인가요?”

사실 모양부터 근접 전용이 아니라는 검후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는 이드였다. 무림에는 륜과 권이라는 훌륭한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다. 륜이나 권은 날이 달린 무기인데, 만상안은 끝이 평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범위다.

그레센에도 별별 이상하게 생긴 기병이 많음에도 검후가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륜과 같은 종류의 무기는 없거나 매우 드문 것 같았다.

하지만 대륙에 무공이 퍼지고 있는 이상. 머잖아 륜이라는 훌륭한 무기가 나타날 터였다. 그도 그럴 게, 륜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내공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내가 공부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무기가 있는지, 무공이 있는지는 검후께서 따로 궁리해 보시도록 하고, 지금은 대련을 계속 볼까요?”

아무래도 만상안에 대한 검후의 정보는 신통치 않은 듯하니, 직접 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마침 스케스틱도 만상안에 대한 파악을 끝내고 있었다.

“독특한 무기로군. 그대의 능력에 특화된 건가. 형태로 보아 무기라기보단 도구에 가깝군.”

“……정확하십니다.”

단 한 번 본 것만으로 물건의 용도와 사용 형태를 정확히 집어내는 스케스틱에 라울은 더 이상 놀란 감정을 숨기지도 않았다.

대신 드래곤이라는 종족에 대해 은근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드래곤들은 모두 이런 건가.’

과연 이런 존재들이 한둘이 아니라면, 바벨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두려움이란 놈은 바벨과 드래곤이 적이 아님에도 절로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라울은 몰랐지만, 지금 그가 느끼는 두려움이 과거 드래곤을 마주한 모든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기도 했다.

드래곤에 대해 서술한 모든 서적은, 바로 그 두려움을 최대한 이성적으로 풀어낸 결과물인 것이다. 감히 드래곤이라 적지 못하고 위대한 존재라 칭하는 그 단어 선택까지도.

“그렇다면 나도 그에 맞추도록 하지.”

마치 장난감을 가져온 조카에 맞장구를 쳐 주겠다는 삼촌 같은 발언과 함께 스케스틱의 앞 공간이 쩌억 벌어지더니, 그 안에서 2미터 길이의 창이 무색한 형태의 로드가 튀어나왔다.

그나마 창과 다른 점이라면 끝에 날이 달려 있지 않고, 끝을 길게 늘여 놓은 다이아몬드 형태의 정체 모를 보석이 박혀 있다는 점뿐이었다. 

“나는 이걸 사용하도록 하지. 이것의 이름은 아마…………… 바이첼로였을 것이다.”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물건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라울은 감히 그 발언에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이 스케스틱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이 울려 대는 경보를 통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이첼로, 어쩐지 들어 본 것 같은 이름입니다만. 묻지 않도록 하지요.”

오히려 라울의 눈길을 끈 것은 바이첼로라는 지팡이였다.

일반적으로 마법 지팡이라면 보통 마법사의 눈높이 정도의 길이가 보통이다. 즉, 저처럼 긴 마법 지팡이는 매우 드물다.

그리고 그 드문 모양 중에서 바이첼로라는 이름을 가진 지팡이는 그가 알기로 역사책 안에 등장하는 하나뿐이다.

한 마디로 역사책에 나올 만큼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보물이라는 뜻이다. 그런 보물을 고작 창고에 처박아 먼지만 쌓다가 지금에서야 꺼내 들다니.

‘과연 드래곤!’

라울은 새삼 자신의 상대를 실감했다. 드래곤의 레어에 보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말은 헛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체감하는 중이랄까. 동시에 불만도 차올랐다. 저런 보물을 꺼내 들고서 봐주는 양 행동하는 것은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스케스틱 입장에선 그런 생각은 정말이지 티끌만큼도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스케스틱이 가진 아공간에 든 마법 지팡이 중, 그나마 쓸 만한 지팡이가 오직 바이첼로뿐이었으니까. 그 외의 무기는 그 위력에 있어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라울이 알았다면 다양한 의미로 전율했을 진실이지만, 그걸 라울이 알게 될 일은 없었다.

서로 무기의 장비까지 끝난 상황.

스케스틱이 선공을 양보했다. 아니, 라울에게 실력을 보일 기회를 주었다.

“그대에게 먼저 공격할 기회를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만, 제가 반격기에 자신이 있어서 말입니다. 먼저 시작해 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그렇다면 요청대로, 스톤 엣지.”

스케스틱은 라울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퉁.

쩌어어억.

퍼억!

주문 같지도 않은 조용한 목소리.

그리고 그가 바이첼로의 끝으로 살짝 바닥을 찍는 순간.

한 줄기 마나가 번개처럼 구불거리며 뻗어 나가, 라울의 바로 앞에서 바위의 창이 되어 치솟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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