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14화
1249화
검후가 이드에게 전쟁을 말하고 있는 그 시각.
검왕도 제국으로부터 날아온 전문을 받아 읽고 있었다. 전문은 마법으로 전달된 내용을 받아 적은 것으로 많은 말이 쓰여 있었지만 핵심은 간단했다.
“황제께서 선전포고를 하실 모양이군.”
“그런! 정말입니까?”
한 기사가 놀라 물었다. 그러다 곧 상대가 누구인지를 떠올린 기사가 허둥지둥 말을 바꿨다.
“죄, 죄송합니다. 검왕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알고 있으니, 너무 그러지 말게. 그러고 보면 자네도 참 어지간해. 이번 임무를 하며 함께 지낸 지도 꽤 지났는데 말이야.”
“어떻게 익숙해지겠습니까. 검왕님을 바로 옆에서 모실 수 있다니. 매일이 꿈만 같습니다.”
첫사랑을 앞에 둔 소년처럼 얼굴을 붉히는 중년 기사의 모습이 분명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대신 순수해 보였다.
무엇보다 자신을 향한 존경의 마음이기에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는 검왕은 껄껄 웃으며 손에 든 종이를 건넸다.
“자네도 읽어 보게.”
“검왕께 온 전문을 제가 봐도 될지…….”
“나야 중간에 끼어든 입장이고, 이번 일의 원래 책임자는 자네가 아닌가. 당연히 읽을 권한이 있어.”
“그럼…….”
안티로스 습격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던 추적조의 대장, 우그라임이 두 손으로 공손히 전문을 받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그라임이 전문을 살피는 사이 추적조의 부대장이 손을 들었다.
“마스 놈들과 전쟁을 하는 겁니까?”
“황제께서 선전 포고를 하신 후라면 그렇게 되겠지.”
“그럼 저희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현재 추적조는 마스 왕국 한가운데 들어와 있다.
그런 상황에 전쟁이 나면 이들은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될 수 있었다. 더욱이 지금 그들은 이미 적군과 대치하고 있는 상태였다.
처음엔 죄인들의 추적을 위해 협조해 주던 마스의 기사들이 갑자기 자신들을 습격했기 때문이다. 검왕 덕분에 거의 피해는 없었지만, 그 후 대군이 나타나 추적은 멈추고 말았다.
그나마 검왕의 존재로 인해 대치라도 가능한 것이지. 그가 없었다면 추적조는 벌써 전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전쟁이라니.
적진 한가운데 서 있는 추적조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 대치하고 있는 적군이 바로 공격을 시작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뿐인가.
마스 깊이 들어온 그들은 그야말로 사방이 포위된 형국이나 다름이 없었다.
“안티로스에서 방법을 궁리 중인 모양이네. 두려운가?”
“놀랍게도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호오~ 어째서?”
“검왕께서 저희와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하하. 자네 제법 말을 잘하는군.”
추적조의 모든 기사들이 지극히 자신을 믿고 있는 모습이 부담될 만도 하련만 검왕은 그런 것도 없는지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그사이 전문을 모두 읽은 대장이 종이를 곱게 접어 검왕에게 내밀었다.
“마스의 허가를 받은 저희 추적조와 검왕님을 기습했을 때 알았지만, 마스 놈들이 단단히 미친 모양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대장.”
“마스가 우리와 싸워서라도 미완의 마탑 놈들을 끌어안기로 했다는 말이다.”
“미완의 마탑? 갑자기 그놈들이 왜 나옵니까?”
“그건…….”
“우그라임 경. 설명은 밖에서 해 주겠나? 잠시 생각할 것이 있군.
“옛. 그럼 물러나겠습니다.”
“그래. 다른 기사들에게도 간략하게 설명을 해 주도록 하게.”
“충.”
두 기사가 물러나자 그때까지 검왕 뒤에 말없이 서 있던 기사가 막사의 문을 닫았다.
검왕은 그에게 빈자리를 눈짓해 보이고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존은?”
“죄송합니다. 전력을 다해 추적하고 있지만, 아직 존 님을 찾지 못했습니다.”
“연락도 없고?”
따지고 보면 소드 팰러스도 제국에 그 영향력이 국한되어 있지 않은 대륙적인 거대 조직이다.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는 자체적인 연락망도 가지고 있었고, 삼검왕이 뜻을 함께하며 은밀하게 사용 중인 비밀 연락망도 살아 있는 상태였다. 다시 말해 존 워스가 원한다면 언제든 연락을 해 올 수 있었다는 말이다.
즉, 그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다는 것은 존 워스가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렇습니다.”
“쯧, 철저히 숨었군. 존이 원하지 않는 이상 너희들이 쉽게 찾을 수는 없겠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죄송합니다.”
기사가 깊이 고개를 숙였지만, 검왕의 눈은 이미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무슨 짓을 꾸미는가. 존.’
처음엔 그저 속을 썩이는 친구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러나 연락이 끊어진 시간이 길어지고, 자신이 모르는 사이 영혼의 관을 다녀갔다는 사실이 검왕의 신경을 건드렸다.
과연 존은 무슨 목적으로 영혼의 관을 다녀간 것인가.
이 의문은 가슴 한쪽에서 의심으로 자라났다.
물론 존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존과 마르텔은 검왕에 있어 혈육보다 가까운 형제였다. 그 신뢰는 이후 가지게 될 영광을 함께 나눌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그렇게 강했던 믿음이 흔들렸다.
본인부터 검후를 배신한 전적이 있기 때문일까. 커져만 가는 의심을 도무지 멈출 수가 없는 요즘이었다.
“시간이 걸려도 좋다. 어떻게든 존을 찾아라.”
“충!”
“존의 일은 그렇게 넘어가고. 곧 전쟁이 있을 것이다.”
“마스가 확실히 미완의 마탑 쪽으로 마음을 정한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마스의 태도는 설명할 수 없지. 하지만 의문은 있다. 망설이던 마스가 무엇을 계기로 마음을 정했을까. 마스의 왕과 안데르 재상은 매우 음흉한 자들이다. 질 전쟁이라면 하지 않을 자들이지.”
빙글.
질문이지만, 질문이 아니었다. 마치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 같은 검왕. 그는 손에든 검 자루를 굴렸다.
익숙한 감촉이 정신을 맑게 한다.
“마탑에서 어떤 결과를 내놨을 가능성이 높겠어.”
“초인 마법 말씀입니까.”
“그래. 그것이 아니라면 마스가 저렇게 강하게 나오기는 힘들지. 아깝구나. 조금만 더 빨랐다면…….”
검왕이 까끌한 입술을 핥았다.
바짝 마른 입술에 미칠 듯한 갈증이 났다. 검왕은 미완의 마탑을 후원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이 무엇을 목표로 어떤 연구를 하는지, 또 그 결과로 만들어 낼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후원의 결과가 나오기 전 미완의 마탑이 세상에 드러나 버렸다. 변변찮은 성과도 없는 상태였기에 검왕은 미련 없이 마탑을 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버린 마탑을 마스 놈들이 주웠고, 때맞춰 기약 없을 것 같던 연구 성과마저 나온 것 같지 않은가.
그야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번다고. 오랜 시간 기다리며 후원한 건 자신인데, 정작 그 끝에 열린 달콤한 열매는 마스가 가져가게 생겼지 않은가. “하지만 결국 주군께서 가지게 되실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제국의 이름으로 토벌을 선언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나만의 것이 되지 못한다.”
지금 영혼의 관 토벌에 연결된 이들만 해도 한둘이 아니다. 특히 마스는 그 열매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던 검왕이 문득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래도 바벨 놈들보다는 내가 낫구나.”
“초인들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놈들은 누구보다 마탑의 연구에 관심이 컸지. 마탑의 연구 주제가 주제다 보니 연구 과정은 물론이고, 성과로 나오는 것 모두가 초인에 직접 관련될 수밖에 없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바벨 놈들로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탑이 내놓은 결과를 알고, 손에 넣으려고 할 것이다. 힘을 써서라도 말이다.”
“마스와 제국의 전쟁에 바벨이 간섭할 수 있겠군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
검왕은 막사 너머 블레인 영지를 향해 눈을 빛냈다.
“나라면 직접 영혼의 관을 친다. 놈들의 목적은 오로지 초인 마법. 마스나 영혼의 관 토벌에 신경 쓸 이유가 없는 것이지.”
“그렇다면 바벨이 움직이기 전에 저희가 먼저….”
마탑의 초인 마법을 검왕의 손에 쥐여 주겠다 말했기 때문일까. 기사는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것 같은 기세를 뿜어냈다. 그에 검왕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다. 우리는 좀 더 상황을 본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초인 마법 따위가 아니니까 말이야.”
“충!”
검왕은 기사의 복명을 귓등으로 들으며 손바닥 위에서 굴리고 있는 검 자루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중요한 건 초인 마법 따위가 아니지. 아니고 말고………….’
하지만 그런 생각 중에도 마음 한 조각은 계속 블레인 영지를 향하고 있었다. 존 워스의 이름이 그곳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영혼의 관을 감싸던 결계가 열리고, 그 사이로 일단의 인물들이 들어섰다.
“영혼의 관에 잘 오셨습니다. 영혼의 관의 부관주, 저 이더비히가 귀빈들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더비히가 그들 앞에서 방문자들을 맞이했다.
그중 제일 앞에 선 남자. 타란 백작이 말에서 내리며 영혼의 관을 둘러보고는 이더비히 앞에 섰다.
“환영에 감사하오. 부관주. 타란 백작이오.”
“명성 자자하신 백작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내 명성이 아무리 높아도, 부관주의 마탑만 하겠소. 무려 제국이 그 무거운 엉덩이를 직접 움직이게 만든 마탑이 아니오.”
타란 백작의 말 속에는 마탑에 대한 불편함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러자 함께 말에서 내린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한마디 한다.
“크흠. 지금은 누구의 명성이 높은가를 다투기보다는 다른 문제를 더 급히 다뤄야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반갑습니다. 부관주. 나는 림몬에서 온 베나이온 자작이오.”
“베나이온 자작님이셨군요. 환영합니다.”
“감사하오. 하지만 내가 말한 것처럼 먼저 살피고 싶은 것이 있소이다만? 바로 확인시켜 주실 수 있겠소? 옆에 성격 급하신 분이 계셔서 그것부터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 말이오.”
“흥.”
성격 급하다는 말을 들은 타란 백작은 굳이 부정하지 않고 콧방귀를 뀌었다. 사실 그는 이곳에 온 것 자체가 불만이었다.
자신이 있을 곳은 자신의 영지가 있는 변경이었다. 제국과 전쟁을 코앞에 둔 지금은 국경을 지켜야 했다.
그런 자신을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향하게 만든 림몬에 어떻게 불만이 없을 수 있을까.
초인 마법에 대해 수정을 요청한 것이 자신이긴 했지만, 그 확인을 굳이 직접 해야 하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