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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21화


1256화

“그래서, 이 사태가 전부 내 탓이다?”

”…..”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겠죠?”

“・・・빌어먹을.”

제정신으로 그런 개소리를 하는 건 아니지? 그런 의미를 담은 이드에 라울의 고개가 푹 떨어졌다.

엉뚱한 화풀이에 남탓을 하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아무렴 이드의 개입 때문에 미완의 마탑이 하루아침에 주제를 바꿔 초인의 무력화를 연구했을까. 어림도 없는 소리다.

마법이란 그렇게 만만한 학문이 아니다.

더욱이 이드가 문제였다면 무인을 연구했어야 했다. 초인을 무력화시켜 이드에게 무슨 피해가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헛소리다.

이드가 미간에 주름이 깊어진 라울을 보며 팩트를 날렸다.

“이번 사태는 내 탓이 아니라, 바벨의 무능이라고 봐야 할 것 같은데요. 마탑의 속내를 간파하지 못한 무능. 아니, 이것도 아닌가.”

이드는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미완의 마탑이 목표로 한 것은 초인 마법이다. 더 정확히는 초인이 각성하는 초인기를 마법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 그러자면 초인기를 해석할 필요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인공적으로 초인기를 재연, 무효화시키는 방법도 연구 주제 중 하나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초인 마법’이라는 대주제 안에 포함될 수밖에 없던 사항이란 말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사실을 바벨이 몰랐을까?

그걸 몰라서 자신을 탓한 것일까.

‘그럴 리가. 바벨에 인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당장 있는 대로 인상을 쓰고 있는 라울만 해도 그 속에 능구렁이를 몇 마리나 키우고 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인간이다.

그런 라울이 자신도 금방 떠올릴 간단한 사실을 모를 리가 있나.

“혹시 말입니다.”

“……?”

“바벨에서는 버서커에 대한 해결 방법이 나오면 미완의 마탑을 처분하려고 했던 겁니까?”

달그락.

눈을 가늘게 뜬 이드.

그에 라울이 심란한 눈빛으로 찻잔을 들었다 놓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생각해 보니까. 천하의 바벨이 미완의 마탑에서 이런 연구를 하고 있다는 걸 몰랐을 리가 없다 싶어서 말입니다. 그럼 알면서도 방관했다는 건데, 그건 어떤 식으로든 미완의 마탑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그리고 해가 될 만한 연구를 처분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연구 결과와 함께 관련된 모든 걸 파괴하는 것, 그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어디 있겠나.

“명예도 모르는 치졸한 계획이군.”

어느새 이쪽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검후의 평가다. 그에 라울은 반박 대신 이마를 감싸 쥐며 얼굴을 가렸다.

이드가 그 모습을 보다 말했다.

“엉뚱한 화풀이는 사양입니다.”

“푸후~ 인정합니다. 마탑의 연구가 바벨에서 정한 금기에 닿기 전에 처리할 예정이었습니다. 아마 마탑에서도 이런 사정을 대충 알아차리고 있었겠죠.”

결국 필요에 의해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였던 거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칼을 뽑아 드는 타이밍 싸움에서 바벨이 진 거로군요.”

“연구에 진척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확실한 결과물이 나왔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라울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했다.

누가 먼저 칼을 뽑아 들 것인가. 그건 온전히 상대를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에 달린 일이었다.

다시 말해 얼마나 신속하게 정확한 정보를 얻어 내느냐가 관건인데.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오롯이 라울의 책임이었다.

바벨의 모든 정보는 바로 그를 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울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게, 초인 마법의 완성은 분명 생명의 관의 붕괴를 시작으로 급진전이 이뤄졌다. 그야말로 바벨이나 라울이 예상하지 못한 속도였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미완의 마탑에 대한 토벌이 이뤄지면서 바벨과 라울은 미완의 마탑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니 명예 후작님이 이번 사태와 아주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분명 엉뚱한 화풀이는 사양이라고 했습니다만?”

“화풀이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이드는 끈질기게 자신의 책임을 물고 늘어지는 라울이 여간 이상하지 않았다. 그가 원래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쓰는 인물이었던가? 무엇보다 지금 와서 누가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를 물어서 무엇 한단 말인가. 이미 사건은 벌어졌는데,

“아무래도 내 입에서 책임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싶은 모양인데. 그게 오늘 방문한 목적입니까?”

“……아닙니다.”

“정말 아니에요? 무언가 부탁할 것이 있다면 솔직한 게 좋습니다. 나는 진실한 거래를 좋아하지, 책임을 억지로 전가하는 태도는 매우 싫어합니다.” 

이드의 눈매가 서늘해졌다.

더 이상 헛소리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라울이 말을 멈춘다.

그때, 이런 라울의 모습을 살피고 있던 검후가 돌연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겠군. 명예 후작. 아무래도 바벨에서 그대의 힘을 빌리고 싶어 하는 모양이오.”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자작. 그대도 보기 흉한 억지는 그만 부리고, 솔직해지는 게 어떤가. 지금 그대 모습은 내가 보기엔 재미있지만, 꽤 보기 흉하다네.”

하지만 재미있었다는 말과 달리 라울을 향한 검후의 눈빛에는 살짝 실망감이 섞여 있었다.

그걸 본 것일까.

짧게 고민하던 라울은 천장을 향해 짧은 욕설과 함께 깊은 한숨을 훅하고 뱉어 냈다.

“젠장. 그러게 이런 수작은 안 통한다고 말했는데.”

아무래도 억지로 책임을 돌리던 모습은 누군가의 권유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건 이드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거기에 검후의 말까지 더해지자, 라울도 쓸데없는 짓은 그만두기로 한 것 같았다.

다시 자세를 바로 한 라울의 눈빛이 선명하다. 평소 그가 보이던 눈빛이다.

‘이제야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모양이네.’

이드는 과연 어떤 소릴 할지 귀를 기울였다. 저 라울이 이런 바보 같은 억지까지 부린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앞서 못난 모습은 잊어 주십시오. 사실 오늘 방문한 목적은, 예상하셨다시피 저택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입니다.”

“바벨이 우리 힘을 빌릴 이유가 있습니까?”

쓰지 않아서 그렇지, 작정하고 전력을 끌어모으면 국가와도 해볼 수 있는 곳이 바벨이다.

물론 그러지 않는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바벨에서는 이번 초인 마법의 실전 배치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거야 이미 이야기했던 부분 아닙니까?”

“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의견을 내놓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수준에서 직접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드는 ‘직접적’이라는 말에서 짙은 피 냄새를 맡았다.

“초인 마법을 없애려는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명예 후작께서 말씀하신 대로, 위험이 탄생하기 전에 바벨이 해야 했을 일을 더 늦지 않게 지금이라도 처리하려고 합니다.”

“영혼의 관?”

검후가 툭 하고 말을 던지자, 라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영혼의 관을 파괴하고, 그들이 가진 초인 마법을 수습할 계획입니다.”

“토벌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움직이려는 거로군?”

“그럴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사태는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초인 마법의 존재를 생각할 때, 영혼의 관이 제국이나 다른 세력의 손에 파괴되어서는 매우 곤란합니다.”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바벨로서는 영혼의 관이 토벌되어 봤자 초인 마법의 주인이 바뀌는 것뿐일 테니까 말이죠.

어떻게 보면 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미완의 마탑은 비록 금기를 범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 본질은 마법사들이 모인 마탑이다. 하지만 미완의 마탑을 토벌한 후 초인 마법을 손에 넣을 자들은 국가다.

국가의 탐욕은 마법사들이 모인 마탑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륙의 모든 초인을 손에 넣고 휘두를 방법을 얻은 국가가 무슨 짓을 할까. 아마 어린아이라도 쉽게 답할 수 있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바벨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태.

그러니만큼, 이대로 시간이 흘러 미완의 마탑의 초인 마법이 마스로 흘러 들어가는 상황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바벨 입장에서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미완의 마탑 영혼의 관을 파괴하고 초인 마법을 수습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바벨의 힘만으로 영혼의 관을 공격하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럴테지. 초인 마법이면 바벨의 전력이 무력화될 테니까.”

검후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무력화가 영구적이진 않지만, 잠시나마 그렇게 되었을 때 바벨을 지켜 줄 만한 전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은색 기사단이란 건가. 하지만 바벨에도 기사와 마법사가 있을 텐데?”

“있지만 모두 각지로 흩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소집에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저희 기사들의 실력이 은색 기사단보다 뛰어나지도 않고요.”

무엇보다 은색 기사단은 개개인의 실력도 뛰어나지만, 누군가를 보호하는 능력이 특히 탁월했다.

검후를 지키기 위해 쉬지 않은 훈련.

그러나 너무 강력한 주군 때문에 쓸 일이 없었던 능력. 하지만 그런 훈련으로 쌓은 성과가 어디 가진 않는다.

“그게 전부는 아니겠죠? 더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이드가 말했다.

물론 은색 기사단은 믿음직한 전력이다. 그러나 바벨의 이름으로 끌어 모은다면 그만한 전력을 모으는 게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굳이 저택을 찾은 것에는 진짜 이유가 있으리라.

“혼돈의 파편이 튀어나올 경우를 대비한 거겠죠?”

“……”

머리에 떠오른 것을 꺼내 놓은 이드의 말에 라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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