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38화
1273화
민둥산에 삼미터짜리 구멍이 뚫렸다.
마치 산을 그려 놓은 그림에 생긴 것 같은 모양새였다.
라울이 자랑하던 초인들이 결계를 뚫어 만든 입구였다.
“10분 이상 유지하긴 힘듭니다.”
사용 시간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서둘러 주십시오.’
“일단 이 안이 안전한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혹시라도 결계 안쪽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함정이라도 발동한다면 낭패가 아닌가.
“제가 먼저 들어가죠.”
“명예 후작님.”
“저라면 대부분의 상황은 해결이 가능합니다.”
이드가 조용히 앞에 나섰다. 이를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검왕을 맞춘 화살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두가 충분히 납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누가 먼저 들어갈지를 가지고 고민한 시간도 없다. 이백의 인원이 모두 들어가려면 10분의 시간도 결코 넉넉하지 않다.
이드는 누가 뭐라고 할 사이도 없이 성큼 구멍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한걸음에 완전히 달라지는 공간.
결계 안에서 바라보는 마탑 주변의 공간은 밖에서와 완전히 달랐다.
우선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황량한 공간이 아니었다. 달빛에도 푸르게 반짝이는 초록의 대지에 심지어 한쪽에는 잘 꾸며진 정원도 보인다. 오히려 지금 마탑이 선 자리에 멋진 저택이 놓여 있다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랄까. 산속, 땅속에 숨겨 놓은 생명의 관이나 정신의 관과는 그 분위기나 모습부터가 완전히 달라 보인다.
너무 멀쩡해 보인다고 하면 설명이 좀 부족할까?
몰래 숨어 초인을 납치하고, 마법계에서도 금지된 인체 실험에 손을 댄 사악한 마법사들이 사는 곳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보다는 정의롭고 자애로우며 인자한 마법사님들이 있을 것 같은 그런 이미지였다.
“하긴,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잘 꾸며진 곳에 살고 싶은 게 당연한 바람이기는 하지.”
백이면 백, 세상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을 하고. 또 그 비난을 자랑스러워하는 천하의 악당조차 자기 자식에게는 착하고 바르게 크라고 한다고 하지 않는가.
현재 이드가 바라보는 마탑의 모습이 딱 그랬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런 주변 환경이 아니었다. 이 근처에 함정은 없는가.
안광을 번뜩이며 주변을 쓸어 본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감에 걸리는 이상 징후는 없다.
“안전합니다. 들어와도 좋습니다.”
“은색 기사단부터 이동을 시작한다. 서둘러라.”
이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폴이 결계 안으로 냉큼 뛰어 들어왔다. 그녀를 시작으로, 은색 기사단의 기사들이 빠르게 결계를 넘었다. 이후엔 쉴라와 검후가. 그리고 다시 그 뒤를 초인들이 넘어왔으며, 라울은 가장 마지막 순서였다.
그 사이.
이드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구멍에서 멀어져 결계 내부를 살폈다.
결계 안에서 보는 밖의 풍경은 변형 없이 있는 그대로였다. 그래서인지 결계에 뚫린 구멍이 상당히 이질적으로 보였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늘에 달도 별도 있는 그대로였다.
그렇게 살펴본 내부는 굉장히 넓었다. 원형 결계의 반지름만 대략 일 킬로미터.
평생을 살아도 폐소 공포증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넓이다. 누군가는 사람이 살기엔 턱도 없이 좁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당장 이드가 태어난 중원의 촌락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길 벗어나지 않고서 평생을 살다 죽기 때문이다. 정말 필요에 의해서 외부를 다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자기 마을에서만 쭉 사는 것이다.
“히야…… 마탑 놈들, 멋진 곳에서 살고 있었네요.”
기사들이 알아서 정렬하는 모습을 확인하던 스폴이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스폴 경이 보기에도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군요.”
“생명의 관은 몰라도, 정신의 관이나 여기 영혼의 관을 보면 미완의 마탑이라는 놈들. 다른 건 몰라도 스케일 하나는 굉장하다 싶어요. 하는 짓을 생각하면 어디 좁은 곳에 숨어서 꼼지락거리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넓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니.”
세상의 부조리를 새삼 깨달았다는 듯 스폴은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러면서 작게 꿍얼거렸다.
“나쁜 놈들이 우리 기사단 건물보다 좋은 곳에서 살다니, 말이 돼?”
사실 따지고 보면 착하게 사는 사람들보다, 사기나 크고 작은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대부분 더 잘사는 세상이지 않던가.
이드는 그녀에게 이런 현실을 다시 한번 깨우쳐 줄까 하다가 말았다.
“조용하군요.”
그런 이드를 향해 검후와 라울 등이 다가왔다. 그 사이 모든 인원이 다 결계를 넘어온 것이다. 사람들 뒤로 점점 작아지는 구멍이 모였다. 그 주변으로 고도로 압축된 마나가 원래의 형태로 풀려나가는 게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그 모습으로 보아, 아무래도 스폴이 걱정했던 것처럼 나갈 때도 그냥 나갈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도 구멍을 뚫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대신 그땐 더 이상 조심해서 결계에 구멍을 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때쯤이면 마탑에 사는 개미 새끼 하나까지 일어난 뒤일 테니까.
“그나저나. 일단 들어오긴 들어왔는데, 조용하군요.”
“결계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구멍을 뚫었으니까요. 저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조용한데, 혹시 우리가 알기 힘든 뭔가 있는 건 아닐까요?”
“스폴 경, 말을 좀 조심해서………….”
사람이란 때때로 일이 너무 잘 풀리면 걱정을 한다.
너무 잘 풀리기 때문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호사다마라는 말도 그렇다.
좋은 일이 끝까지 좋으면 좋은 것인데, 꼭 있지도 않은 풍파를 찾는다. 물론 좋은 일일수록 더 조심해서 액운을 피하라는 의미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무언가를 향한 불안에 사방을 돌아볼 때였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끼이이이이-
높이 솟은 마탑으로부터 철판이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유심히 보면 마탑이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거기서부터 나는 소리도 평범하지 않았다.
“우와! 귀가!”
“귀를 막아도 소리가 들려!”
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높았고, 성자도 신경질을 부릴 정도로 짜증스럽고 듣기 거북했으며, 귀를 막아도 소용이 없었다.
소리가 얼마나 큰지, 지금쯤이면 진지와 한참 멀리 떨어졌을 타란 백작과 병사들의 귀에 들리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의 소음. 통신 방해 장비가 과연 이 소음도 막아 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소음이 뚝 그쳤다.
발생처럼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멈춘 것이다.
“방금 그게 뭐였죠?”
“마탑에서 나온 소린데.”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 가운데, 기사들 몇몇이 스폴을 향해 눈을 야렸다.
“그보다 스폴 경! 제발 그 입조심 좀 하세요. 괜히 그런 소리를 하셔서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내 말 때문에 그런 건 아니라고.’
스폴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아무렴 이게 고작 몇 마디 말 때문일까.
이런 어수선함 속에 쉴라가 나섰다.
“모두 조용! 아무래도 마탑에서 우리 존재를 알아차린 것 같다. 전원 전투 준비!”
“전투 준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은색 기사들이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그녀들을 따라 초인들 역시 각자 무기와 초인기를 준비해서 전투를 준비했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마탑에서 적들이 쏟아져 나올 모습을 상상했다. 혹은 마탑에서 쏟아질 마법을.
하지만 이드들 앞에 나타난 것은 그런 직접적인 공격이 아니었다.
꼭! 그그그극!
마치 거대한 맷돌이 돌아가는 듯했다. 단단하게 솟아 있던 마탑이 층층이 갈라지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천천히 회전을 시작했다. 중간중간 돌아가던 층이 두셋으로 갈라지기도 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이 위태한 모습.
하지만 보이는 바와 달리, 마탑은 그런 움직임 속에서도 단단하게 서서 흔들리지 않았다.
우우우우-
그리고 그런 사소한 것에 더 신경을 쓸 여유도 없었다. 그러기엔 마탑이 뿜어내기 시작한 기묘한 힘의 파도가 너무 거셌기 때문이다.
휘휘휘휘ᅳ
강력한 힘의 파도는 금세 강풍으로 변해 이드와 일행들을 휩쓸었다.
“설마 이게 공격은 아니겠죠?”
“그럴 리가 있나.”
눈을 뜨기 힘든 강풍이었지만, 고작 이런 바람으로는 아이도 해하기 힘들다. 다만 오히려 이제 막 내공이나 마나에 입문해 걸음마 단계에 들었다면 위험할 수준이기는 했다.
그 속에 든 힘에 겨우 싹을 틔운 기운이, 폭풍 속 갈대처럼 흔들릴 테니까.
“그나저나, 묘한 기운이에요.”
이드는 검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서로 뒤섞여 그 특색이 흐려졌지만, 그 근본적인 흐름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거, 복잡하긴 해도 그 본질은 마력과 초인력입니다.”
“그럼 이게 초인 마법 특유의 마력일까요?”
“글쎄요.”
정신의 관에서 본 초인 마법은 이런 특징을 보여 주지 않았다. 하지만 좀 더 완성된 상태라면 어떨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
이 자리에서 검후의 질문에 답해 줄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더불어 현재 마탑의 변화 상태에 대한 설명도.
그런 의문을 담아 비올라를 찾아 돌아봤다. 그는 결계 밖에서와 마찬가지로 쉴라 옆에 있었다.
아무래도 이 정도로 붙어 있는 걸 보면 절대 우연은 아니다.
일단 누가 누구 옆으로 이동한 건지는 둘째치고, 그렇게 찾아낸 비올라의 표정은 기묘했다.
“……저 인간, 우는 거야. 웃는 거야?”
그랬다.
비올라는 현재 반은 웃고, 반은 울고 있었다. 그야말로 황홀경에 빠진 모습이라고 할까. 그야말로 천국에 도착한 광신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눈이 하나둘 모이자, 비올라 보다 그 옆의 쉴라가 먼저 그런 시선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비올라의 등을 때려 그를 황홀경에서 빼냈다.
찰싹!
“끄・・・・・・ 와압! 무슨 짓입니까!”
“무슨 짓이고 말고, 지금 상황에 대해 설명하세요. 검후님께서 궁금해하십니다.”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합니다. 해요.”
쉴라의 요구에 반발하려던 비올라. 하지만 그런 시도는 금방 쉴라에 의해 제압되었다. 그는 순순히 입을 열었다.
‘미래가 보이는구나. 보여.”
이드는 내심 그려지는 비올라의 미래의 모습 중 하나에 혀를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올라의 말이 이어졌다.
“저거, 무한성이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