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87화
1322화
위를 향한 손가락.
그건 천장을 부수고 가자는 의미였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이 너무 분명해서 뭔가 다른 의미로 해석할 여지도 없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둘로 갈렸다.
우선 검후와 은색 기사단은 괜찮은 방법 같다고 했다.
쓸데없는 전투를 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오히려 왜 진작 그런 쪽으로 생각하지 못했는지 제 이마를 치는 기사도 있었다. 평소 성격 급하다는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었다. 반대로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플레타와 오탄을 시작으로 한, 그의 부대원들이다.
이들은 천장을 뚫는 것이 부정적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부술 수 있냐는 쪽이었다.
그들의 뇌리에는 아직도 선명했다.
천장을 폭격하던 네 발의 철황파산포.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님에도 등허리가 저릿할 정도의 강맹한 강기의 포탄이라니.
한 명의 전사로서 감탄, 또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위력. 한데 저놈의 천장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그런 강기의 포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저 움푹 패이고, 금이 생겼을 뿐.
그런데 그런 천장을 뚫고 가자고?
‘우리 실력으로는 온종일 두드려도 한 뼘이나 긁어 낼 수 있을까?’
‘그전에 내 검이 부러지거나, 내 손이 터지겠지.’
‘플레타 대장이 나서면 좀 다를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부대원들은 서로를 힐끔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플레타와 오탄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명예 후작은 무슨 생각일까요?’
‘글쎄다.’
‘천장을 뚫는 것도 그렇지만, 그 과정도 간단하지는 않을 텐데요.’
‘간단하지 않지.’
과연 저 천장은 단단하기만 할까? 그럴 리가.
애초에 돌로 된 천장이 강기를 버티는 것이 말이 안 된다. 분명 마법적인 조치가 있었으리라.
그게 끝이 아니다. 방어력만 해도 그 정도인데, 과연 추가적인 다른 조치가 없을까?
그런 따뜻한 기대를 한다면 그야말로 양심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방어력을 저 정도로 올려 뒀다면, 그 뒤를 따르는 후속 조치 역시 그에 못지않을 거라고 추측하는 편이 옳았다.
아마도 기상천외한 마법적인 트랩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2층을 몽땅 무너뜨려서 자신들을 압사시키려 할지도 모르는 일.
거기까지 상상이 되자 플레타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과연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도 굳이 천장을 뚫고 올라갈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해서 올라간다고 해도 그렇다. 그 과정에 얼마의 시간이 소모될 것인가.
‘계단을 이용하는 쪽보다 더 오래 걸리면 그야말로 본말전도’
플레타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뭉뚱그려 말했다.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겠습니까?”
“가치라면?”
“층을 붕괴시키는 것도 아니고, 작은 구멍을 내서 다음 층의 전투를 피할 수 있겠냐는 겁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해서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요?”
“저도 그것이 의문이었습니다.”
라울이 미묘한 얼굴을 하고서 플레타의 말을 받았다.
천장을 뚫고 올라가면 3층이 나온다. 4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천장을 뚫어야 한다. 과연 3층에서 기다릴 적은 그 모습을 구경만 하고 있을까? 설마 그럴 리가.
최악의 경우 천장을 뚫고 3층에서 전투까지 벌어져 시간이 두 배로 소모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라울은 이런 부분을 강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명예 후작이 그걸 모르고 천장을 뚫자고 했을 리가 없다.’
분명 숨겨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라울은 그렇게 확신했다. 최소한 지금까지 관찰한 명예 후작은 그 정도로 생각이 없는 멍청한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라울의 예측은 옳았다.
그 증거로 플레타의 질문에 이드는 당황이 아닌 미소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드는 잠시 말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확실히 설명이 좀 모자랐던 것 같군요. 일단 천장을 뚫고 가자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음 층으로 넘어가자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다음 층이 아니라면?”
“당연히 최상층이지요. 그게 아니라도 그 바로 아래층까지는 직통으로 길을 낼 생각입니다. 그 중간에 있는 층은 전부 건너뛰겠다는 겁니다. 그럼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겠지요?”
이드의 물음에 라울의 입가에 미소가 점점 진해졌다.
“그럴 수만 있다면 시간을 단축할 최고의 방법일 겁니다.”
“아니, 잠깐만. 여러 층을 한번에 뚫겠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겁니까? 명예 후작도 아시겠지만, 저 천장은 굉장히 단단합니다. 직접 두드려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를 부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플레타가 즉시 의문들을 쏟아 냈다.
동시에 실수라고 생각했다. 말을 하고 보니, 어쩐지 의문이라기보다는 이드의 의견을 반대하는 양 비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뱉어 놓은 말.
혹시 상대가 불쾌해한다면 사과를 해야 할까 고민하는 플레타였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이드는 그의 말에 티끌만 한 불쾌감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 인간은 그렇다.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난 일에 대해서는 쉽게 납득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법이니까. 플레타도 그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뿐이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웃기지. 현재 대륙에서 가장 비상식적인 영역에 있는 초인이 상식에 갇혀 있다니.’
초인기의 각성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오대 속성은 물론이고, 인간의 정신이나 감정을 움직이는 등 마법보다 더 마법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어쩌면 초인기 중에는 저 단단한 천장을 단번에 건너뛸 능력도 있을지 모른다. 실제 차원진 때문에 마법사들의 텔레포트가 제한되었을 때도 초인들은 마음대로 공간을 넘나다녔으니까.
찾아보면 플레타 부대원 중에도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대원이 있을 수도 있다. 소수 정예 부대인 만큼 다양한 임무 해결에 필요한 갖가지 능력들이 준비되어 있을 테니까.
다만 지금 같은 때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혼자서 이동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정말 그런 초인기를 가진 대원이 있다면 말이다.
“분명 말씀하신 대로 천장이 단단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에요. 두 분이 보셨던 게 제 실력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여 자신이 이드를 만만히 보고 있는 것처럼 비치지 않을까 플레타가 황급히 부정했다. 그런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라울이 끌끌거리며 웃자 플레타가 두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라울에게 먹힐 리가 있나.
“저 바보는 무시하시고, 계속 말씀해 주시죠. 어떻게 모든 층을 한번에 관통한다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최상층, 혹은 그 아래층까지라고 했지, 모든 층은 아니에요.”
“……”
이드는 라울의 말을 수정했다. 사실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문득 천장에서 떨어진 돌조각이 발에 밟힌다. 이드는 그걸 툭 차 버리고는 말을 이었다.
“두 분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할 자신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감각적인 부분이라서요. 그래도 간단히 설명하자면, 도미노 같은 겁니다. 대신 좀 특이한 도미노겠죠. 각각의 조각은 쓰러져도 닿지 않을 만큼 떨어져 있어서 연속으로 넘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미노 사이에 단단한 물이 있다면 어떨까요? 도미노는 쓰러지면서 그 물을 밀고, 밀려난 물은 그 앞의 도미노를 밀어 쓰러트리겠죠? 제가 최상층까지 길을 내겠다는 건 그런 겁니다.”
나름 설명한다고 했는데, 잘 전달되었을까?
그런 생각으로 플레트와 라울을 살핀 이드는 조금 민망한 기분에 머리를 긁적이고 말았다.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을 만큼 두 사람의 표정이 묘했기 때문이다.
특히 플레타가 그랬다.
“도미노가 천장인 건 알겠는데, 도대체, 단단한 물이라는 게.
끙끙거리던 플레타.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그는 금방 궁리하기를 그만뒀다. 이곳에는 굳이 자신이 아니라도 대신 머리를 굴려 줄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보다 훨씬 머리 좋은 친구가.
‘친구. 믿고 있다고!’
플레타는 망설임 없이 라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좀 알겠냐? 알면 좀 가르쳐 주지?”
“하아…… 넌 그냥 닥치고 있어라.”
라울은 자신의 옆구리를 찌르는 플레타의 손을 쳐 내고는 이드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제 생각이 맞는다면 도미노는 천장이고, 단단한 물이라는 건・・・・・・ 혹시 마나입니까?”
“조금 차이가 있지만, 비슷합니다.”
이드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기 위한 비유였을 뿐이다. 다행히도 라울은 그걸 잘 알아들은 듯하다.
“그렇다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위층에 있는 마나를 어떻게 단단하게 만든다는 말입니까? 그것도 한 층이 아니라 여러 층으로 나누어져 있는 마나를 말입니다.”
“어려운 일이죠. 영혼의 관의 각층은 완전히 분리된 공간이고, 그만큼 각층에 분포된 마나의 성격도 완전히 다르니까요.”
그뿐이 아니다.
마나를 다루기 위해서는 다루려는 마나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영혼의 관은 저 단단한 천장이 가로막고 있어 다음 층의 마나를 탐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얼마나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는지, 이드의 기감도 천장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운 좋게 다른 층을 엿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저거죠.”
이드가 움푹 팬 천장을 가리켰다.
“네트나를 처리할 때 마나의 공명이 일어났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덕분에 다른 층에 분포된 마나의 성격을 알 수 있었죠.”
이드가 말한 것처럼 정말 운이 좋은 경우였다.
단순히 이드의 내공뿐이었다면 층을 나눈 벽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공과 벽 사이에 네트나의 마나가 스며들며 그것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네트나는 뼛속부터 영혼의 관에 속한 존재였다.
하나의 존재로서 분명 독립된 마나의 흐름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영혼의 관에 흐르는 그 특유의 마나가 섞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내공과 영혼의 관에 흐르는 마나를 섞는, 일종의 융합제 역할을 했던 것.
덕분에 이드는 위로, 위로 계속해서 뻗어 나가는 마나의 흐름을 양손에 새겨 넣을 수 있었다. 덕분에 정해진 길이 아닌 전혀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던 것이다.
“……아까 말씀하시던 지름길이 이거였군요.”
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