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91화
1326화
할 말을 잃은 마법사들.
부관주는 이런 모습에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비록 지금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적은 아직 멀리 있다. 그럼에도 이리 허둥대는 모습이라니. 적들을 눈앞에 마주하면 어떻게 하려는지,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영상 속에 비치는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4층 층간 벽이 뚫렸습니다악!”
“기, 긴급 전개된 그래비티컨버젼필드가 파괴되었습니다!”
“플로어 마스터들은! 플로어 마스터들은 아직인가?”
“현재 이동 중입니다만, 시간이!”
그에 따라 마법사들이 악다구니에 가까운 고함을 질러 댔다. 이성적인 마법사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해 못 할 상황도 아니었다.
강력한 적이, 굳게 잠긴 성문을 무자비하게 뚫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누가 겁먹지 않을 수 있을까.
어지간한 담력이 아니고서는 흔들리지 않기가 더 어려우리라.
무엇보다 마법사들을 가장 떨게 만든 것은, 이러한 적군을 막을 뚜렷한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무언가 수단을 강구하기에는 적의 침투 속도가
너무 빠르다.
현장과 가장 가까이 있는 플로어 마스터들이 달려가고 있고 실제 뚫리기 직전에 도착한 플로어 마스터도 있지만, 적의 침투를 막아 내는 일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절대 그 하나의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가로막고 있는 그 무엇이라도 깎아 내고 파괴하는 저 무지막지한 검강의 고리가 너무 강했다.
이미 4층까지 뚫려 버렸다. 5층도 뚫리기 적전이다.
5층이 뚫리면 곧 6층.
그런데 아무리 봐도 거리상 5층과 6층의 플로어 마스터들이 바닥이 뚫리기 전에 도착하기는 늦은 것 같다.
즉, 현장의 대처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게 현 상황이다. 그렇다면 결국 대처 방안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자신들의 몫인데. 암울하게도 당장 떠오르는 방법이 없다.
지금 침입자들은 그들이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그런 상황에 계획도 없이 나서 봐야 펠튼과 같은 꼴이 날 뿐이다.
‘아니지. 그것도 운이 좋은 경우고, 자칫 잘못하면 조셉 꼴이 된다.’
그야말로 아무도 원치 않는 상황.
그렇기에 누구도 자신이 나서겠다고 선뜻 달려 나가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책임자를 애타게 찾았다.
상관이란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부하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한 존재.
“부관주!”
“부관주께서 나서 주십시오!”
“위험합니다. 부관주께서 직접 나서실 것이 아니라, 차라리 우리가 잠시 영혼의 관을 비우는 건 어떻겠습니까.”
“도망을 가자는 말인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다급해진 마법사들이 아우성을 쳤다.
이런 모습에 요크 장로가 지팡이를 내려찍으며 노성을 터트렸다.
“닥치게! 명색이 마법사란 작자들이 부관주를 앞에 두고 이 무슨 행패들인가!”
“자, 장로, 그렇지만 지금 상황이…….”
“어허!”
부관주만큼이나 장로가 어려운 것일까. 아니면 장로가 그만큼 존경을 받는 이이기 때문일까.
약간의 반항이 있었지만, 마법사들은 금세 잠잠해졌다.
요크 장로는 그제야 굳었던 표정을 풀고 혀를 찼다.
그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못난 모습을 보여 죄송합니다. 부관주.”
“괜찮습니다. 저라고 마법사들의 다급한 심정을 모르겠습니까. 확실히 그냥 둘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요?”
“……그렇습니다. 저 상태라면 곧 6층에 도착할 것이 확실합니다.”
“기껏 준비해 둔 공간 중첩 소환진이 쓸모없어지겠군요.”
부관주가 영상 속 관통된 층을 보며 아까워했다.
공간 중첩 소환진.
그건 무차원을 기반으로, 특정한 환경 조건을 소환해서 공간에 덧씌우는 마법이다. 이때 소환하는 환경은 모래사막일 수도 있고, 마그마가 흐르는 화산일 수도 있으며, 저 깊은 바닷속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인간이 견디기 힘든 극한의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적의 입장에서는 전투가 문제가 아니다.
우선 극악의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싸움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가령 깊은 심해의 환경을 만들어 냈다고 가정하자. 깊은 바닷속에서 싸우려면 우선 물속에서 숨을 쉴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해결되면 뒤이어 심해의 압력을 견뎌야 하고, 그걸 어떻게 견디고 나면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과연 침입자들 모두가 이런 해결 방법을 가지고 있을까?
조금이라도 대처가 늦어 버리면 대량의 사망자가 나온다. 숨을 쉬지 못해 죽고, 심해의 압력에 터져 죽어서 말이다.
침입자가 조금만 멍청하거나, 능력이 부족하다면 영혼의 관에서는 굳이 싸울 필요도 없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이 공간 중첩 소환진이다. 그 응용 방법도 실로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여기에 비하면 1층의 무차원은 맛보기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침입자들은 2층부터 공간 중첩 소환진에 빠져 고생해야 했다. 그랬다면 침입자 중의 상당수를 처치할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정작 플로어 마스터인 펠튼은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네트나의 성능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간 중첩 소환진의 도움이 없이 네트나만으로도 충분히 침입자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
물론 그 결과 꽁무니를 빼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말이다.
“저들이 6층에서 막힌다면 아직 쓸모가 있을 겁니다. 그보다 부관주.”
“말씀하세요.”
“마법사들이 호들갑을 떨기는 했지만 현 상황이 좋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
“지금이야말로 탑주가 내려 주신 해결 방안을 써야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부관주 이더비히는 요크 장로의 말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대신 주변의 마법사들을 살폈다. 그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자신과 탑주에 대한 신뢰.
탑주가 현 상황을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
부관주는 그런 믿음에 어깨가 무거웠다.
탑주가 해결 방법을 주셨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탑주는 기다리라고만 말했다. 그러나 그것을 사실대로 밝힐 수는 없었다. 그건 탑주를 기다리는 많은 이들을 실망시키는 일일 테니까.
그랬다면 당장 도망가자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탑주가 결코 허락하지 않을 일이었다.
어쩌면 마법사들과 탑주의 의견이 갈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실대로 밝힐 수 없었다. 그때는 침입자들이 2층에 있었으니까.
탑주가 진짜 답을 줄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 상황이, 명예 후작이 나섬으로 인해 급변했다.
당장 저들을 막을 방법을 꺼내 놓아야 하게 생겼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탑주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직은 탑주께서 내려 주신 방법을 사용할 때가 아닙니다.”
“아직이라니요, 부관주께서도 보셔서 하시겠지만 현 상황이…….”
애타는 마법사들의 마음을 납득시키기에 부관주의 설명은 많이 모자랐다. 흥분한 이들을 탓하던 요크 장로도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요청하려 할 때다.
가란의 거울 앞에 붙어 있던 마법사가 또다시 다급한 고함을 내질렀다.
“6층이 뚫리고 있습니다! 곧 뚫릴 것 같습니다!”
“플로어 마스터는! 엘로자 마스터는 아직인가!”
“아무래도 늦은 것 같습니다…….”
“이런! 6층이면 바로 우리 발아래가 아닌가!”
그야말로 발바닥 바로 아래까지 적이 밀고 들어온 상황.
그에 요크 장로에 눌려 있던 이들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보십시오. 부관주, 적이 지금 코앞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쓴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적들이 6층을 넘어오면 탑주는 물론이고, 그간의 연구 자료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옳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연구 자료를 잃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 대응하든 일단 연구 자료부터 챙겨야 합니다.”
과연 마법사들이라고 해야 할까.
연구 자료에 대한 언급에 마법사들의 중론이 단번에 하나로 합쳐졌다. 부관주나 장로의 허락을 구하지도 않았고, 반대하는 이도 없었다. 당장 모여 있던 마법사 중 일부가 연구실 쪽으로 빠져나갔다.
그와 함께 가란의 거울 앞에 있던 마법사가 다시 소리쳤다.
“6층이 뚫렸습니다. 엘로자 플로어 마스터께서 도착하셨지만, 간발의 차로 저지 시도는 하지 못하셨습니다.”
상황을 알리는 목소리를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영상을 향했다. 그 안에서 6층에 막 발을 들이는 엘로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반으로 나뉜 또 다른 영상 속에선 2층에 있던 침입자들이 6층까지 뚫린 통로 속으로 뛰어오르는 모습이 비쳤다.
저들이 도착하면 그들을 막는 엘로자와의 전투가 시작되리라.
“엘로자 플로어 마스터가 침입자들을 저지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엘로자의 초인 마법이 뛰어나긴 하지만 침입자들의 저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상당한 수의 적을 처지할 수는 있겠으나 아무래도….”
요크 장로가 오래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답했다.
상대는 검후와 명예 후작이다.
그들의 힘은 이미 충분히 본 상태. 엘로자의 실력을 모르는 것도 아니기에 답은 금방 나왔다.
답을 내어놓은 요크 장로가 다시 한번 말했다.
“부관주, 혹시 탑주께서 주셨다는 해결 방법이라는 것이…………….”
조심스럽게 이어진 은밀한 목소리. 부관주는 그 목소리를 더 듣지 않고 중간에 끊어 냈다.
“일단 지금은 엘로자 플로어 마스터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지켜보겠습니다. 그 후에..”
“…..”
“엘로자 플로어 마스터가 실패하면 제가 6층으로 갈 것입니다.”
“그건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부관주. 저들에겐 검후와 명예 후작이 있습니다.”
요크 장로가 굳은 얼굴로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부관주는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또한 결정을 바꾸지도 않았다.
“압니다. 하지만 바로 지금이 제가 나설 때입니다. 물으셨지요? 탑주께서 내려 주신 해결 방법이 무엇이냐고. 그 답이 바로 장로님 앞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