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96화 - 무료소설365

이드 2부 – 896화

1331화

영혼의 관.

그 안의 모든 것은 내 결정을 따라야 한다.

조용한 기백이란 저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허, 참…….”

그 말에 플레타는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자기 집에서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누가 뭐랄 수 있겠나.

이런 모습에는 이드도 내심 대단하다 여겼다.

저 야생마 같은 플레타를 침묵시키다니. 아니, 이럴 때는 저 야생마도 최소한의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는 걸까? ‘좌우간 대단한 여자네. 아마도 저 여자가 부관주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의 말은 그 정도로 오만한 발언이었다.

문득 이전에 보았던 다른 부관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생명의 관의 랜달과 정신의 관의 해더웨이.

과연 그들과 이 여자를 비교하면 어떠할까.

무게추가 자연스럽게 눈앞의 여자를 향해 기울어진다.

초인 마법의 진짜 정수가 영혼의 관에 있다고 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부하를 구하기 위해 당당히 나타난 용기.

물론 그에 앞서 생포된 부하를 직접 죽여 버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과감한 결단력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아무튼, 그러한 대단한 배포에 더해 그녀로부터 전해지는 강력한 힘.

‘힘’이라는 세상 가장 원초적인 부분에서, 이 여자는 앞의 부관주들을 분명하게 압도하고 있다.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이드만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엘로자를 향해 손을 뻗는 부관주.

하지만 그러한 모습에도 플레타는 바로 검을 들고 제지하지 못했다. 상대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대신 입으로 툴툴거렸다.

“당신의 결정이라. 그것참 이상하지. 여기 들어오는 동안 우리는 누구의 허락도 받은 적이 없는데, 아니면 지금이라도 당신 허락을 받아야 하나?”

“그렇습니다. 그러기 위해 내가 온 것입니다.”

・젠장, 말로는 못 당하겠네.”

알맹이 없이 오가는 대화.

하지만 그 뒷면에서는 그보다 몇천 배 농축된 몸의 언어가 오가고 있었다.

단어 하나가 나오는 사이.

서로의 허점을 노리는 눈치 싸움이 수백 번 오가고, 섬세한 마나의 흐름이 빈틈을 찾아 흐른다.

실제 전투보다 치열한 신경전이 이어진다.

누군가 허점이 보이는 순간 전투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더비히 부관주도 플레타도 절대 만만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칼날 위에 선 것 같은 답답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런 중에 부관주의 손이 엘로자의 머리에 닿았다.

그에 플레타가 참지 못하고 이를 드러냈다.

“이봐, 그놈은 내 것이다.”

“예의를 지키세요. 나는 영혼의 관의 부관주 이더비히입니다. 그리고 여기 플로어 마스터 엘로자는 당신의 것이 아니라, 내 부하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 손 아래 있지요.”

“……끙.”

어쩌면 부관주가 플레타의 천적인지도 모르겠다.

플레타의 말문이 다시 막혔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플레타가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가 엘로자를 두고 물러난 순간 이미 엘로자의 소유권은 부관주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렇게 플레타의 말문을 막아 버린 부관주가 마나를 움직였다.

우우웅!

미리 각인된 마나 패턴에 반응한 영혼의 관은 엘로자의 엉덩이 아래 마법진을 만들어 냈다. 층간 이동을 위한 긴급 공간 이동에 필요한 마법진. 마나와 마법진이 한데 어우러지며 공간 간섭이 발생하고, 그것을 통해 대상인 엘로자를 허수 공간으로 이동시키려는 순간.

퍽!

엘로자의 머리가 잘 익은 수박처럼 터져 버렸다.

비명은 없었다. 뭐, 마비되어 있어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지를 수 없었겠지만.

이러한 엘로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부관주의 눈매가 살짝 일그러졌다.

“왜・・”

엘로자의 피와 뇌수에 흠뻑 젖은 손.

그 손을 털어 내는 부관주의 모습에서는 안타까움은 보여도 슬픔은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서 부하의 머리가 터졌지만, 크게 충격받은 모습 또한 아니다.

아무렴 그렇게 마음이 약했다면 애초에 초인들에 대한 인체 실험도 없었겠지.

“퉤! 거, 그냥 두라니까 억지로 뺏어 가더니 꼴좋구만.”

“당신의 짓입니까?”

슬픔은 없어도 부하의 죽음에 대한 분노는 있다는 것일까.

차가운 눈길이 플레타를 향하지만, 그는 순진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설마. 나도 당신 못지않게 안타까운 사람이라고. 그렇게 쉽게 죽일 놈이 아닌데. 최소한 남은 팔다리는 재가 될 정도로 잘 구워 준 후에 죽어야 했단 말이지. 그래야 용암을 뒤집어쓰고 죽은 내 부하들의 분이 조금은 풀리지 않겠어?”

“…….”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런 섬세한 짓은 못 한단 말이지. 딱 봐도 초인기는 아니지 않아? 굳이 찾자면 나보다는. 마치 걱정을 함께해 준다는 것 같은 뻔뻔한 모습.

플레타는 턱을 슬슬 문지르며 한쪽 눈만 뜨고서는 부관주를 게슴츠레 바라보다 슬그머니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왜 나를 봅니까?”

억울한 표정을 한 이드가 있었다.

“아니, 명예 후작이라면 뭔가 알지 못하는 무공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했습니다만. 아닙니까?”

“전혀요.”

“그럼 누가?”

“범인이라면 저쪽에 있잖아요.”

이드가 스윽 고갯짓한 곳에는 다름 아닌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는 라미아가 있었다. 마침 그녀는 자신을 향해 모여든 시선을 알아차린 듯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더비히 부관주라고 했던가요. 그녀가 전해 달랍니다. 남이 침 묻혀 놓은 물건에는 함부로 손대는 것이 아니라고. 티 나게 잘 묶어 뒀는데, 그걸 왜 무시해서 부서트렸냐는군요.”

이드가 라미아의 말을 전달했다.

자세한 설명은 없다. 대신 모든 책임을 부관주에게 돌리는 말이다.

그러나 부관주에 그에 반박하지 않고 살포시 눈을 내리감았다. 붉은 입술 사이로는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마나 침식 현상에 따른 성질 변환’

부관주는 내심 탄식했다.

엘로자에게 걸려 있던 마법 패럴라이즈, 마법사라면 누구나 익히는 기초 마법이며, 적을 제압하는 것이 목적인 간단한 마법이다.

시전자가 직접 해지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아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풀릴 뿐 아니라, 타인에 의한 해지도 크게 복잡하지 않은 마법이다. 그렇기에 부관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중요한 것은 엘로자의 안전과 치료였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고위 마법사는 기본 마법도 그냥 쓰지 않고 독특한 자신만의 어레인지를 더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간과해 버렸다.

적 마법사인 명예 후작 부인은 패럴라이즈 마법에 외부의 마나가 간섭할 경우 마나 폭발을 일으키도록 설정해 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결과 엘로자의 머리가 폭발한 것.

이건 누가 뭐래도 명백히 자신의 실수가 맞았다.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하지만 후회는 거기까지였다.

“명예 후작 부인의 마법 실력이 매우 뛰어나시군요.”

금방 다시 눈을 뜬 부관주의 눈빛은 고요했다.

화르르륵.

동시에 그녀의 손에 불길이 치솟으며 남은 피와 뇌수를 태워 버렸다. 이런 모습에 플레타는 혀를 찼다.

오가는 이야기대로라면 명예 후작 부인이 숨겨 둔 수법에 당한 것 같은데, 그런데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

그건 그만큼 적이 쉽지 않은 상대라는 의미였다. 아니면, 자신의 언변이 모자란 것일 수도 있고.

“라울, 이 자식은 왜 이렇게 느려 터진 거야!”

부족한 말발을 채워 줄 느려 터진 친구 놈을 씹고 있을 때였다. 마치 그때를 기다린 것처럼 라울이 나타났다.

“누가 느리다는 말이냐?”

“너, 바로 너! 너무 느려 터졌다고!”

“흐음. 그건 인정할 수 없는데. 그리고 그 말은 저분들도 느리다는 의미인데. 그런 거냐?”

엄지손가락으로 등 뒤를 가리키는 라울.

그곳에는 플레타 부대의 뒤를 따라 도착한 은색 기사단과 검후가 있었다. 그들과 함께 움직인 라울이 느리다는 말은, 곧 그들에게 하는 언사가 되는 것이다.

“하아, 젠장…… 뭔 말을 못 해. 됐다. 인사나 해라. 여기 주인 되시는 이더비히 부관주시란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검후와 은색 기사단을 싸잡아 욕하는 꼴이 되었다. 플레타는 자신의 입을 쥐어박고는 이드 옆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겸연쩍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크흠. 조금 전에 제가 한 말은 검후께는 비밀입니다.”

“뭐라고 하셨던가요? 하핫.”

“크흠. 감사합니다.”

이드는 이런 모습에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키득거렸지만, 플레타는 자신의 실수 때문인지 연신 헛기침을 하며 웃음소리를 덮을 뿐이었다. 그사이 라울은 이더비히 부관주에 대한 탐색을 마치고 있었다.

어차피 초면인 적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많지 않았다. 다만 골든아이를 통해 분명하게 알게 된 사실은 있었다.

‘내가 싸워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절대 아니다.’

다른 곳에서 적으로 마주쳤다면 전력을 다해 도망가야 할 인물이었다. 하물며 바벨이라는 이름도 통하지 않으니 더더욱.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바벨이라는 이름은 멀리 있을지 몰라도, 그만큼이나 든든하게 느껴지는 검후와 명예 후작이 바로 옆에 있다.

그렇기에 라울은 부관주를 상대로 당당할 수 있었다.

“이제야 뵙는군요. 바벨의 라울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유명한 이름이지요. 제 소개는 따로 필요치 않겠지요.”

끄덕.

“물론입니다. 이더비히 부관주. 영혼의 관의 주인.”

“틀립니다. 모든 관의 주인은 탑주이십니다.”

“뭐,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말이 통하는 분을 만났는데,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

“항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