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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024화


1459화

축제의 첫째 날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으어어어…….”

“우웨에에에엑!!!”

“사, 살려…… 줘어~.

소드 팰러스는 저주받은 땅이 되었다. 술을 진탕 마시고 골목 구석구석에 처박혔다가 기어 나온 언데드들이 쓰린 속에 신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잠시.

이렇게 길 잃은 양을 인도하듯, 다양한 굴뚝에서 흘러나오는 고소하고 기름진 해장 수프의 냄새에 술꾼들은 마치 훈련된 개처럼 어기적어기적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 이들이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따뜻한 해장 수프가 아니라 집사람들의 성난 잔소리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소드 팰러스가 평소보다 늦은 아침을 겨우 시작하고 있을 때,

평소와 다름없이 이른 아침을 보낸 검후는 마법사가 발동시킨 통신구 앞에 앉아 황제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통신구를 사이에 둔 두 사람의 표정이 사뭇 상반된다. 황제는 기분이 좋은 듯 웃고 있는데, 검후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할마마마께서 이러실 정도면 정말 어지간히 떠들썩했던 모양입니다. 축제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기는 했지만, 소란에 잠을 설치실 정도였다니 말입니다.

“큰일이에요. 하지 말라고 그리 말을 해도 듣지를 않아요.”

-큰일이긴 큰일입니다. 할마마마의 잠을 설치게 하다니. 기사단을 불러 축제를 중지시키지 그러셨습니까?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무엇보다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뿌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불편했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축제를 막지는 않는 검후.

투정을 부리는 것인지, 자랑을 하고 싶은 것인지. 이런 검후의 반응에 황제는 참지 못하고 큰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런 황제의 마음은 참으로 편했다.

내심 소드 팰러스로 돌아간 검후를 걱정했는데, 그 근심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암요. 찬물을 뿌릴 순 없지요. 다른 것도 아니고 할마마마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여든 백성들이지 않습니까. 빌어먹고 살기 바쁜 백성들이 자진해서 모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저는 그런 할마마마가 부럽고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황제께서 아부도 잘하십니다. 하지만 이제 이 할미에게 나올 건 더 없습니다.”

-이런, 아쉬워서 어쩌나요. 하하하하.

그렇게 또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황제.

아침부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거기에 언급해야 할 좋은 소식도 한둘이 아니었으니, 필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것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들으셨습니까? 할마마마의 복귀에 사방이 아주 난립니다.

“아직 전달받은 것은 없습니다만, 대충 짐작하고 있던 일이 아닙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 텐데. 무엇이 그렇게 난리랍니까?”

검후가 장시간 소드 팰러스를 비우는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속사정을 아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사실 소란스러울 일도 아니었다. 배신을 당했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무사히 복귀한 시점에서 배신은 실패로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검후는 검후였고, 그녀의 뒤에는 제국이 버티고 있었으니까.

-저들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조용한 복귀였으니까요. 당연히 흘러야 할 피가 흐르지 않으니, 영문을 모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황제는 저들의 놀란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배신자들에게 도망갈 구멍을 열어 준다는 검후의 결정에 놀란 것은 황제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뿐인가. 처음엔 검후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말리기까지 했다. 뭐, 결국 검후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당장 사절을 보내겠다고 연락이 들어오고 있답니다. 그중 성질 급한 곳에서는 오늘이라도 사신을 출발시키겠다고 합니다.

“그 성질 급한 놈이 혹 시리카 혈통입니까?”

– 하하하. 그렇습니다.

“쯧쯧쯧.”

단박에 짚어 내는 검후의 말에 황제가 또 웃음을 터트렸고, 검후는 혀를 찼다. 그녀가 말한 ‘시리카 혈통’은 시리카 왕국의 왕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대륙을 다스리는 로열 블러드 중에서 성격 급하기로 둘째라면 서러운 혈통이 둘 있었으니, 그중 하나가 바로 시리카다. 이들의 급한 성격은 대륙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시리카 왕은 뜨거운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뜨거운 음식이 식을 동안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해, 처음부터 식은 음식만 준비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이런 시리카와 함께 성격 급하기로 유명한 곳이 바로 마스다.

사실 시리카와 마스의 급한 성격은 성향에서 조금 차이가 났다. 시리카는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라면, 마스는 충동을 참지 않는 쪽이랄까.

비슷하면서도 확실히 다른 성향이다.

아마 이 두 나라 중간에 드레인 왕국이 없었다면 시리카와 마스 두 나라는 어느 쪽이 없어져도 벌써 없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좌우간 이런 시리카에서 나선 것이다. 평소였다면 바늘과 실처럼 마스도 나섰겠지만, 현재 마스와 제국은 그럴 만큼 관계가 좋지 못했다. 아니, 매우 나쁜 상황이었다.

“그럼 연락이 온 곳은 시리카뿐입니까?”

-그럴 리가요. 시리카가 가장 먼저였을 뿐이지, 각국에서 연락이 다 들어온 상태입니다. 웃긴 놈들이지요.

이처럼 빠른 연락은 다시 말해 검후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밝히는 바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놓고는 그에 대해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다.

물론 각국의 주요 인물 특히 검후와 같은 인물에 감시가 붙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모두 알면서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인 일이다.

그럼에도 절차가 있고 예의가 있는 법인데, 이번 일에 대해서는 그런 예의를 지킬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그만큼 소드 팰러스가 흔들리는 순간을 기회라고 여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웃긴 놈들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할마마마께서 이리 강건하고, 제국에 흔들림이 없는데. 그런데도 기회라고 여기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사실 조금 비틀어 보면 제국을 우습게 여겼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그 정도로 각국의 속내가 빤히 읽혔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야 상관없지만, 최소한 들키진 않아야 할 것이 아니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마주한 황제는 그저 비웃을 뿐, 결코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검후가 강건했고, 제국은 튼튼했다.

거기에 이드라는 전설의 존재가 제국에, 검후와 함께하고 있었다. 당장 황제가 이드를 부릴 수는 없지만, 검후와의 관계도 있기에 도움을 청하면 외면하지 않을 것은 분명한 사실. 거기에 드래곤까지 더해 졌으니.

황제는 그 어느 때보다 든든한 마음이었다.

그래, 제국을 향해 기회를 엿보는 무도한 놈들의 행동이 귀엽게 여겨질 정도로.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들의 짓거리를 그저 보아 넘기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검후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 그런 생각이 부질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 줘야지 않겠습니까.”

-혹 할마마마께서 생각해 두신 바가 있으십니까?

황제의 물음에 검후는 기다렸다는 듯 마르텔의 비급을 들어 보였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작은 책자.

별다른 설명이 없음에도 황제는 그것의 정체를 바로 알아보았다.

-마르텔이 남겼다는 비급이 그것입니까?

“맞습니다. 황제도 대략적인 사정을 아시고 계시지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것을 공개하실 작정이십니까? 전해 들은 바로 상당히 위험한 물건이라고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겉으로 드러난 상황에 대해서만 전달받은 황제다운 반응.

그에 검후는 자신의 생각과 이드의 도움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과연 제국의 황제답게 그는 검후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조치가 가능하다면 공개하는 쪽이 좋을 것입니다. 하하하. 이거 갑자기 기대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할마마마께서 비급을 공개할 때, 그걸 직접 보게 될 사신들의 반응 말입니다. 어찌 빈틈이라도 찾아볼까 왔다가 화들짝 놀랄 얼굴이 벌써 눈에 선합니다.

직접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라고.

“그럼 보러 오세요. 뭘 아쉬워만 하십니까.”

-음? 그래도 되겠습니까?

“제국 땅에 황제가 가겠다는데, 그걸 막을 제국인이 누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황제가 바라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황제의 권위를 세우는 검후의 말.

하지만 정작 황제는 미묘한 표정이다. 황제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검후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한번 시간을 잡아 보겠습니다. 그나저나, 비급을 공개하면 사신들이 자국에 보내 달라고 사정하며 매달릴 것인데요?

귀찮지 않겠느냐.

그렇게 묻는 황제였지만, 사실 그 속내는 조금 달랐다.

어차피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엔 각국의 손에 들어갈 내용이라면 비급을 제공하고 이득을 얻고 싶은 마음인 것.

하지만 검후는 단호했다.

“황제께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차라리 내가 만든 비급이라면 황제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지만, 이 비급은 안 됩니다.” 

-휴우~ 마르텔은 정말 끝까지 제 속을 썩이고 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검후의 말에 황제는 더 부탁하지 않고 깔끔히 자신의 생각을 거뒀다. 어차피 처음 계획엔 비급이 들어 있지도 않았던 것이라면서 말이다. -그래도 해당 비급의 원 내용은 궁으로 보내 주셔야 합니다.

“그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대신 이 책자는 제가 보관해도 되겠지요?”

비급은 내용이 중요하지, 책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마 검후는 저 책자를 다른 추억의 물건과 함께 작은 보물 상자에 넣어 두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딸이 어렸을 때 하던 것처럼.

-그렇게 하십시오. 그런데, 듣기로 아직 검법의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던데. 지금은 정하셨습니까?

“황제도 그게 궁금하십니까?”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혹시 정하지 못하신 겁니까?

“밤새 생각해 둔 이름이 있습니다. 있기는 있는데.”

-그런데요?

“아침 식사 자리에서 꺼내 놓았더니, 모두 별로라고 하지 뭡니까? 나는 나대로 밤새 고민을 해서 만든 이름인데 말입니다. 너무들 한 것 아닙니까?” 

투덜투덜.

검후가 하소연을 했다.

그에 황제도 급 호기심이 동하는 얼굴이 되었다.

-어떤 이름이었기에 감히 할마마마의 결정에 반대를 했다는 말입니까? 제게도 들려주십시오.

옴・・・・・・ 멜팅 블러드라고 지었습니다.”

“음・・”

검후는 아침에 보았던 이드 일행의 반응이 떠올라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자신이 생각한 이름을 꺼내 놓았다.

그리고 그 이름을 들은 황제는.

-・・・・・・아, 이런 급히 처리할 일이 생겼군요. 그럼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

도망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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