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 11화
11화 미궁 리바린토스 (5)
미궁에 들어온 지 어느덧 열흘이 지났다.
곳곳에 산재해 있는 각종 함정들과.
끊임없이 추적해 오는 미노타우르스.
게다가 굶주림과 수면 부족까지.
사람이 생존하기에 하나같이 너무나 가혹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7명으로 시작했던 레이드는 어느새 3명으로 줄어 있었다.
진혁과 박하나, 장철식.
이렇게 셋으로.
“이대로 가면 다 죽어.”
장철식이 비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저 악마 같은 놈한테 이용만 당하다가 결국 버려질 거야.”
박하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함정을 피하기 위한 장기 말로 쓰이든가.
미노타우르스의 시선을 끄는 버림패로 쓰이든가.
둘 중 하나겠지.
이혜민과 장미나도 그런 식으로 죽었다.
진혁을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결국엔 실컷 이용만 당하다가.
-익명1: 그냥 포기하고 얌전히 있지 그래? 딱 봐도 너희들론 안 될 것 같은데?
-익명6: 내가 볼 때 10층은 가 본 놈 같음. 걍 까불지 말자.
-익명3: ㅇㅈ. 뉴비 두 명이면 고인물한테 바반그릇 뚝딱 수준.
-익명4: 게다가 성격도 싸패잖어. 지 죽이려는 거 알면서도 계속 존댓말 쓰면서 같이 델고 다님. 소오오름.
-익명9: 내 옆자리의 살인마가 상냥해. 엉엉ㅠㅠ
박하나의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검은 까마귀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만, 탑을 오르지는 않는 이들.
한 마디로 탑 외에 있는 서포팅 그룹이었다.
“저 인간에 대한 정보는 뭘 좀 찾았어요?”
-익명5: [시련의 탑] 관련된 과거 영상들 전부 락 걸려서 알 수가 없음.
-익명3: 아예 싹 다 막아 놨더라. 뷰튜브나 개인 블로그. 심지어 폰에 저장해 둔 것까지 해킹당함.
-익명2: 얼굴이라도 알면 hoxy 모르겠는데.
-익명1: ㅇㅇ. 근데 저 가면 24시간 내내 쓰고 있으니 답이 없네.
-익명6: ㄹㅇ 오페라의 유령인줄.
-익명4: 궁금해서 그러는데 똥 쌀 때도 저거 씀?
-익명7: 검색해 보니 방송 채널도 안 만들었더만?
-익명3: 구독자 모을 생각도 없는 것 같고 완전히 솔플각 세게 잡은 듯.
불길한 느낌을 주는 기묘한 형태의 가면.
미궁에 들어온 첫날까지는……. 저 가면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패닉에 빠진 박하나가 방송을 켰을 때는 이미 진혁이 코인 거래소에서 검은색 가면을 구매한 뒤였다.
그 이후로는 완전히 자신의 얼굴을 숨겼다.
-익명3: 젠장. 근데, 이럴 줄 알았으면 예전에 미친 듯이 할 걸. 갑자기 겁나 부럽네.
-익명4: 공략법이나 성유물 위치 죄다 알고 있으면 진짜 개꿀이잖어.
-익명7: ㅆㅇㅈ. 대뇌 전두엽까지 전기가 찌릿찌릿 올라올 듯.
-익명1: 와 근데, 그 때 오래 했던 놈들 하나같이 다 잠수네. 팁 좀 풀지. 우리도 먹고 살게.
-익명2: 니 같으면 알려주겠냐?
-익명3: ㅋㅋ. 사실 나였어도 나 혼자 독식할 듯.
‘이런 머저리들을 탑 외에서 서포팅하라고 뽑아 놨다니…….’
박하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낄낄대고만 있지, 정작 영양가 있는 정보는 하나도 건져오지 못했으니까.
당연히 답답할 수밖에.
“닥치고. 오빠한테 이쪽 상황 전했어요?”
-익명1: ㅗㅜㅑ. 우리 하나 까칠하누.
-익명5: ㅇㅇ. 전했음.
-익명9: 근데, 졸라 깊이 있어서 찾기 어렵다드라.
-익명3: 무리데스. 킹시국이지만, 절대로 무리데스.
-익명4: 베어그릴스 등판해도 조난각임.
-익명2: 킹병만 형 오다가 유턴함.
-익명6: 애초에 이 미궁,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어. 너 있는 곳까지 따라잡으려면 최소 삼주는 더 필요함.
삼주…….
열흘 만에 두 명 빼고 전멸했는데.
앞으로 삼주를 더 견뎌야 한다고?
‘불가능해.’
박하나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쿨쿨 자고 있는 진혁이 보였다.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성공하진 못 했던 괴물 같은 놈!
그래.
이건 살인이 아니라 미수다.
왜. 법에도 있잖아.
미수범의 형량이 훨씬 낮은 그런 법이.
그런데 고작 시도를 한 것 가지고 우리 전부를 죽이려 하다니.
너무했다.
정말로 너무했다.
‘여섯 명의 목숨이 당연히 한 명의 목숨보다 귀한 거 아냐?’
당장 지금만 하더라도 이쪽은 두 명이다.
그러니 죽어 줘야 한다.
다수를 위해서.
소수가.
“어떻게, 지금 칠까? 자고 있을 때가 기회인 것 같은데?”
장철식이 바닥에 있는 바위를 집어 들었다.
투박하긴 했으나, 살상력 하나만큼은 고대부터 증명된 무기다.
쿨쿨 잠들어 있을 때 콰직!
머리가 으깨진다면 생명체는 죽을 수밖에 없다.
“아니.”
박하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인간, 반응 속도가 완전히 괴물이야. 정면 승부를 하든 기습을 하든. 싸움으로는 승산이 없어.”
꼭 어설프게 암살을 시도하는 놈들이 있다.
상대방의 실력은 감안하지 않은 채, 일단 저지르고 보자면서.
그런 감정적인 시도는 대개 안 좋은 결말을 맞이한다.
“그럼, 어떻게 하자고? 이대로 순순히 당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잖아?”
“누가 당하고만 있겠대?”
싸늘하게 내뱉은 박하나가 품에서 날카로운 침을 꺼냈다.
투명한 액체가 맺혀 있는.
자이언트 애호박벌의 독침이었다.
“그건…….”
“아무리 괴물이라도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니야?”
식사 준비를 하는 건 박하나와 장철식, 두 사람의 몫이다.
미궁 내부에 있는 이끼와 버섯을 채취하는 것도.
그걸 불로 조리해 그릇에 담는 것도.
전부,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준비해 주자고. 놈이 먹을 최후의 만찬을!”
박하나는 진혁이 지독한 신경독을 씹어 먹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상상을 해 보았다.
후후.
지금까지의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
툭! 툭! 툭!
무언가 진혁의 어깨를 찔렀다.
“저기……. 일어나세요.”
곧바로, 박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뭡니까?”
진혁이 슬쩍 한쪽 눈을 떴다.
“식사 다 됐어요. 와서 드세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아. 이번에도 이끼 버섯볶음인가요?”
“여기 먹을 게 그것 밖에 더 있어요? 박쥐나 나방이라도 잡아먹든가.”
박하나가 톡 쏘아붙였다.
‘까칠하긴.’
진혁이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가볍다.
일주일 간 올린 ‘간극’ 스탯은 모두 21.
거기에 강력한 보스 몬스터와의 실전을 통해 전투 감각 또한 극도로 끌어올렸다.
수치상 레벨은 1이지만.
결코 1이 아니다.
‘절대 아니지.’
최강 1레벨.
그렇기에 기대되었다.
이 미궁이 끝나고 밖으로 나갔을 때, 그 날이!
진혁이 박하나와 장철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쾨쾨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외양부터 끔찍하게 생긴 혼합물.
이끼와 버섯으로 만든 요리는 정말로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수준이었다.
‘완전히 생존물 찍는 기분이네.’
미각을 완전히 포기한 채 욱여넣어야만 했으니까.
그나마 영양분을 고루 갖추고 있으니…….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거기 박하나 씨. 뒤에서 물 좀 주시겠어요?
“……물 말이죠?”
“장철식 씨는 버섯이랑 이끼 조금만 더 퍼 주시고요.”
“이 맛없는 걸 더 먹겠다니. 실컷 드쇼.”
가벼운 대화와 함께 밑 준비가 끝나고.
진혁이 박쥐 뼈로 갈아 만든 젓가락과 식기를 들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식기를 들었다.
세 사람이 동시에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런데.
“흐흐.”
“훗. 먹었네요.”
두 사람이 동시에 실소를 흘렸다.
평소와는 다르게 차가운 공기.
기분 나쁘게 가라앉은 분위기.
이건…….
“……독을 썼군.”
진혁이 천천히 식기를 내려놨다.
“맞아. 혈관을 통해 퍼지는 극독이니까. 발악해 봤자 소용없어.”
-익명1: ㅋㅋㅋㅋ. 목구멍으로 꿀꺽했누!
-익명3: 이것이 [밥도둑]이라는 거시다.
-익명7: 식도가 따~땃하재?
-익명2: 예림이, 그 패 까 봐. 사쿠라여? 손모가지여?
어느새 공용 채팅창까지 활성화됐다.
기다렸다는 듯이 낄낄대는 걸 보면 모두들 죽음을 확신하는 게 틀림없었다.
물론 그렇겠지.
치사성 맹독을 해독하는 아이템은 가격이 매우 비쌌으니.
지금 보유하고 있는 코인으론 어림도 없다.
그렇기에 필살(必殺).
독이 퍼지면 심장은 멎는다.
만약.
“내가 독을 먹었다면 말이야.”
진혁의 말에 장철식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독이란 걸…… 알고 있었나?”
“너희들이 이런 시도를 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주는 음식을 넙죽넙죽 받아먹을 것 같냐?”
이토록 살얼음판 같은 곳에서 남을 믿을 리가.
음식이 담긴 그릇을 바꿔치는 노력 정도는…….
언제나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하나는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그 정도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누가 음식물에 독을 넣었다고 했지?”
상대방의 눈치가 빠르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음식물이 아닌, 젓가락에 독을 발랐다.
아무리 고인물이라도 당할 수밖에 없도록.
“컥? 커헉! 케에엑! 케엑!”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입에서 붉은 피가 뿜어졌다.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혈관과 핏줄이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연출했다.
하지만.
“어, 어째서?”
입에 피거품을 문 건 진혁이 아니었다.
“끄르르륵……. 끄윽 컥!커억!”
정철식이 온몸을 비틀었다.
손톱으로 목을 마구 긁어 대는 모습이 처절해 보였다.
물론, 그 고통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순식간에 퍼진 독이 심장을 멈춰 버렸으니까.
“이것……까지 눈치 챘다고? 대체, 대체! 어떻게?”
“평소와는 달랐으니까.”
미궁에 들어온 후 박하나는 결코 먼저 식사를 하자고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장철식이나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도맡아 했었지.
하지만 오늘은 먼저 밥을 다 차려 놓는다고?
마치 생명보험 만기가 되는 날 가까운 바다에 드라이브가자는 것과 뭐가 달라?
“단지, 그런 사소한 것 때문에……?”
“그런 사소한 게 중요한 거야.”
내가 시련의 탑을 끝까지 돌파할 수 있었던 이유.
반사 신경이 뛰어나서?
집념이나 끈기가 남달라서?
물론, 그런 것도 있다.
중요한 요소인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내가 고인물이 될 수 있던 건…….
남들과는 다른 눈썰미 때문이었다.
아무리 사소한 정보들이라도 놓치지 않고 수집하고 분석해 하나의 결론을 도출했다.
그렇기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탑을 오를 수 있었다.
-익명1: ㅁㅊ.
-익명4: 저 한 마디로 그런 것까지 다 생각했다고? 말이 됨?
-익명2: 이열. 시청자들도 박하나의 시야랑 동일하다는 점을 이용한 건가.
-익명5: 음식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젓가락까지 바꿔 버린 건 씹소름인데.
-익명7: 코난 씨 김전일 씨 등판 좀요.
-익명3: 오바들 하지 마. 솔까 이 정도는 초등학교 나왔으면 다들 예측 가능. ㅇㅈ?
-익명2: ㅇㅈ. 사실 나도 눈치 챘었음.
-익명6: 222222
-익명8: 333333
“그리고 너희들…….”
진혁이 공용 채팅창에서 낄낄 대던 놈들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한 것뿐이지만.
-익명3: 엌ㅋㅋㅋ 이번엔 우리임?
-익명2: 무섭게 노려보면 뭐 어쩔 건데?
-익명6: 이거 현피 신청 각 날카롭게 섰누?
-익명8: 형 삼대 몇 침? 내가 도봉초 일짱 출신인데.
-익명3: 이 몸의 냥냥펀치로 옥수수 다 털리기 싫으면 눈 까셈.
“아직까지 주둥이가 살아 있네. 하긴. 모니터 너머에 있으니 뭐가 무섭겠어?”
진혁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머리에 견과류가 아닌 뇌가 있다면, 내가 왜 너희들의 존재를 묵인하고 있었는지 생각들 좀 해 봐.”
방송을 못 하게 막았으면 귀찮게 연기할 필요도 없었다.
하루 종일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아도 됐고.
하지만 모든 수고스러움을 감수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박하나가 어느 쪽과 선이 닿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놈들이 편법을 썼다는 증거를 잡아내기 위해서.
“밖에 있느라 잘 모르나 본데, 생방송이 가능한 경우는 딱 하나뿐이야.”
시련의 탑에는 규칙이 있다.
-생방송은 오직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한 보스몬스터를 상대할 때만 켜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규칙을 어겼을 경우에는…….
-조회수 조작이나 기타 부정행위 등이 적발될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그에 따른 처벌이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처벌은…… 글쎄.
온화한 것과는 거리가 많이 멀 것이다.
[익명이 해체되었습니다.]
-‘까마귀는 까악까악’ 님이 채팅창에서 나가셨습니다.
-마님은돌쇠에게: 뭐. 뭐야?
-잭빠우어: 갑자기 왜 나감?
-‘마님은돌쇠에게’ 님이 채팅창에서 나가셨습니다.
-tyg123: 자, 잠깐만.
-조옌: 기다려 봐!
-‘잭빠우어’ 님이 채팅창에서 나가셨습니다.
-노트20: ㅅㅂ. 방금 누가 우리집 현관문 부심.
-다람이S2: 뭔데 이거? 뭐냐고?
공용채널에 있던 놈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현재 접속 중인 시청자: 0]
“마, 말도 안 돼.”
혼자 남은 박하나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