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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78화


78화 고인물이 디펜스를 하는 법 (3)

“많이 먹어, 우리 귀염둥이 앵두야.”

진혁이 붉게 물든 식인 식물을 쓰다듬었다.

창고에 있는 식량을 모조리 먹어치웠기에 그 크기와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자.

“키에에에엑!”

높이만 10m에 이르는 거대한 식물이 거칠게 포효했다.

대기가 쩌렁쩌렁 울린다.

앙증맞은 애칭과는 달리, 녀석과 맞서는 플레이어들에겐 이보다 더 끔찍한 악몽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오, 온다!”

“빌어먹을, 모두 산개해라! 뭉쳐 있으면 몰살당한다!”

콰콰콰콰콰콰!

거대한 넝쿨이 순식간에 마트 내부를 휩쓸었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황보군악이 정신없이 몸을 날리며 고함을 질렀다.

“응?”

“바로 옆에 있는 이 거점을 파괴했다간, 너희들한테 가는 좀비들의 수도 훨씬 많아질 거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멍청한 일을 저지르냔 말이다!”

4층은 경쟁 구도인 동시에 최소한의 협업을 요구하는 층이다.

대놓고 트롤짓을 했다가 ‘그 놈’이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모조리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설령 20층에 있는 무림에 소속된 일원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저 멍청한 플레이어 놈이 그걸 알 리가 없지.’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안다면, 감히 이런 일을 벌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황보군악은 답답한 듯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여왕이 두렵나 보군.”

진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완전히 예상을 뒤엎어 버렸다.

“여, 여왕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물론 알고 있지.”

4층에서 특수 보상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최다 킬을 달성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구독자 투표를 통해 인기 거점으로 당선되는 것.

이렇게 말이다.

허나, 사실 보상을 얻을 수 있는 또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얻을 수 있는 세 번째 방법이.

히든 퀘스트 ‘죽은 자들의 모태(母胎)’.

좀비들의 여왕을 처치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층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믿을 수가 없다. 어떻게 탑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인간 따위가…….”

“3웨이브 전에 200명이 넘는 플레이어가 지키고 있는 대형 거점 중 하나가 파괴당하면, 특수 이벤트가 발생하지. 바로 지금의 경우가 거기에 해당하고.”

‘나야 싸구려 진흙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는 편법으로 이 방법을 찾아낸 거지만.’

통상적으로 200명 이상이 방어하고 있는 대형 거점이 3웨이브 이전에 함락될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인간의 전력이 압도적으로 약하다는 게 알려질 경우 좀비들을 부리는 여왕이 깨어나게 된다.

상대할 가치가 없는 적들을 일거에 쓸어버리기 위해, 직접 인간들이 있는 거점으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막힘없이 대답하는 진혁의 말에, 황보군악은 더 이상 의심할 명분을 잃어버렸다.

사실이다.

상대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여왕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불러 올 생각이란 건가?”

“50웨이브나 되는 좀비들을 일일이 막긴 싫거든. 따분하잖아. 심신이 피로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정상적으로 진행한다면 최소 몇 주 동안이나 이런 음침한 폐허 속에 있어야 할 터.

고생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갈 이유는 없다.

물론, 처음에는 정공법으로 공략하려고 했었다.

3웨이브 안에 대형 거점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일반 플레이어를 대량 학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녀석들을 마주한 순간부터.

그리고 이 녀석들이 마트라는 대형 거점 중 하나를 골랐을 때부터.

계획은 변했다.

먼저 칼을 들이댄 놈들을 상대로는 그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낄 이유는 없었으니까.

“이걸로 너희 거점은 모두 박살났다.”

아무리 중층에 있는 실력자들이라고 한들, 거점 없이 좀비들을 상대하는 건 무리다.

병력의 규모와 체력의 한계는 개인으로선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었으니까.

“그러니 남은 시간. 어디 한번 재주껏 살아 보라고.”

이곳에 온 목적은 모두 이뤘으니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진혁이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이 찢어 죽일 놈이 어디서 자기 할 말만 하고 도망가려고 해!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카카캉!

제갈천의 검에서 불똥이 튀어 올랐다.

하지만, 진혁은 그런 제갈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마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상대해 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키에에에엑!”

거점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줄 식물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고 있었으니.

***

같은 시각.

쾅! 쾅! 쾅! 콰아앙!

상암 경기장에선 미친 듯이 물려오는 검은 물결이 바위 식물을 두드렸다.

[바위 식물이 Lv1 ‘깊은 뿌리’를 발동합니다!]

워낙 단단하고 가파른 몸을 갖고 있는 바위 식물인지라 좀비들도 그 벽을 쉽사리 넘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엔 좀비들이 자신들의 몸을 발판 삼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크르르!”

“크아아!”

무게로 인해 아래쪽에 깔린 좀비들의 몸이 으깨졌으나, 애초에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놈들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좀비가 방패 식물을 넘어 경기장에 들어선 순간.

“키에?”

좀비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육탄 식물이 Lv1 ‘전신 도약’을 사용합니다!]

쿠우우웅!

몇 톤은 족히 나갈 법한 육중한 크기의 육탄 식물이 그대로 좀비를 깔아뭉갰다.

거기에 얼음꽁꽁 식물들이 냉기를 발산하며, 좀비들의 이동 속도를 감소시켰다.

그야말로 깔끔한 방어.

남은 네 사람은 그저 뒤처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진짜 대단하네요. 벌써부터 플레이어들이 개입하지 않아도 자율 방어가 가능할 정도라니. 진혁 씨는 이 모든 걸 전부 계산해 둔 걸까요?”

테레사가 감탄과 경외심이 섞인 얼굴로 중얼거렸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은 광경이다.

“형이라면, 아마 그랬을 거예요.”

“우리도 오빠랑 같이 다니곤 했어서 오빠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이태민과 유연화도 한 마디씩 덧붙였다.

“…….”

반면, 천유성은 모든 게 불만인 듯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넘어야 할 경쟁자가 보면 볼수록 엄청난 괴물이니 짜증이 날 수밖에.

단순히 개개인의 전투 실력을 넘어 상황까지 설계하는 적은 극도로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대형 거점 ‘마트’가 함락되었습니다.]

모두의 앞에 갑작스럽게 상태창이 나타났다.

“뭐, 뭐죠?”

테레사가 깜짝 놀라 외쳤다.

“마트라면, 아까 전에 그 중국 쪽 플레이어들이 있던 곳인데. 거기가 뚫렸다고요?”

“말도 안 돼…….”

“설마…… 오빠랑 관련이 있는 건 아니겠지?”

진혁이 활짝 웃으며 떠났던 시간과 거점이 함락된 타이밍이 너무나도 절묘하게 일치했다.

무엇보다 그게 아니라면, 그 강력한 전력을 보유한 대형 거점이 고작 두 번째 좀비 웨이브 하나 막아내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게 말이 되질 않았다.

틀림없다.

무언가 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증명하듯.

[특수 이벤트가 발생했습니다.]

[나약해 빠진 플레이어들을 응징하기 위해 4층의 주인 ‘펜다리엘’이 움직입니다.]

붉은색 상태창이 이어서 나타났다.

“4층의 주인이라니……. 저게 대체 뭐야?”

“말도 안 돼. 여기는 좀비 웨이브를 막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

4층에 보스 몬스터가 있다는 건 이곳을 제집 드나들 듯이 드나들던 이태민과 유연화조차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 또한 펜다리엘이란 존재에 대해선 짐작도 못 하고 있었다.

“무언가 또 엄청난 짓을 꾸미고 있나 보군.”

천유성이 경기장 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마트에서 나온 진혁은 건물 옥상을 옮겨 다녔다.

아이템을 사용할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여기다.’

진혁의 발걸음이 멈췄다.

주위에 다수의 거점이 있어 마력의 흐름이 복잡하게 엉켜있는 데다, 상암 경기장과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완벽하다.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꺼냈다.

3층의 보스 몬스터인 무혼을 쓰러뜨리고 얻은 특수 아이템.

‘태양을 가리는 돌’이었다.

[태양을 가리는 돌]

입수 난이도: 알려지지 않음

내용: 고대 마야제국에서 사용했던 의식용 성유물로서, 태양을 가리고 어둠을 불러올 수 있게 합니다. 사용시 5대 원소(물, 불, 흙, 바람, 빛) 능력을 50%만큼 감소시키며, 어둠 속성 능력은 100%만큼 증가시킵니다.

[흉폭화 옵션이 강제 발동됩니다.]

결코 4층에서 써서는 안 될 아이템이다.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능력은 5대 원소 능력 중 하나에 해당했으니까.

반면, 좀비들은 어둠 속성으로 흉폭화까지 받는다면,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까지 2배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두둑!

진혁은 그 모든 걸 비웃기라도 하듯 돌멩이를 부숴 버렸다.

박살난 파편들이 옥상에 떨어졌다.

그러자 바로 그 순간.

우우우웅!

어둠이 태양을 집어삼켰다.

건물 위로 짙은 융단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걸로 4층을 공략하는 난이도는 비약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물론, 단순히 스릴을 즐기기 위해서 이 아이템을 사용한 건 아니었다.

일부러 위험을 자초할 경우 또 하나의 이벤트가 발상한다.

바로.

[인간. 무슨 생각?]

역시나.

상식과는 동떨어진 행동에, 보스 몬스터만이 사용할 수 있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회랑에서 엘리스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메시지였다.

“보니까 네 녀석이 거점들을 쑥대밭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같은데, 맞나?”

[고작. 정찰병도 못 막는. 놈들 상대. 힘 아낄 필요 없으니까.]

“우습게 보인 건 미안한데, 다른 거점은 건드리지 말고 나한테 와라. 저 뒤쪽에 보이는 상암 경기장이 내 거점이다.”

[인간. 혼자서. 희생. 한다고?]

“희생이라기 보단, 좀비 따위 100만 마리가 몰려와도 시시해서 말이지.”

[시시하다? 나와. 내 아이들이?]

펜다리엘의 목소리가 변했다.

지능이 부족했기에, 번역체의 어투까지 고쳐지진 않았지만, 말투에서 분노가 묻어나왔다.

화가 나겠지.

한 층의 보스 몬스터를 고작 인간 하나가 무시했으니까.

“네가 갖은 모든 병력을 퍼부어서 도전해 봐. 모조리 쓸어 버려 줄 테니.”

진혁이 한껏 이죽거렸다.

[좋다. 인간. 네놈 거점. 가장 먼저 박살내고. 모든 인간들에게 경고한다. 감히 우리에게 덤빈 걸 후회하도록.]

여왕의 메시지는 거기서 끝났다.

이제 잠시 뒤엔, 그녀의 분노를 가득 담은 병력들이 이곳까지 몰려올 것이다.

‘잘 녹화됐겠지?’

진혁이 방송 시스템을 살폈다.

[대형 거점 ‘마트’에서부터 조금 전까지의 영상 편집본이 업로드되고 있는 중입니다.]

영상이 업로드되는 걸 확인한 진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모든 게 계획대로 됐다.

멍청한 중국 쪽 플레이어들이 거점 하나 지키지 못해 히든 퀘스트를 발동시켰다.

때문에 최악까지 각오해야 하는 상황.

바로 그때 강진혁 플레이어는 모두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위험을 자초했다.

‘태양을 가리는 돌’을 사용해 좀비들이 자신의 거점으로 몰리도록 말이다.

모두의 눈엔 마치 영웅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최다 킬 보상과 인기투표. 거기에 보스 몬스터를 잡는 보상까지 모두 챙기겠다.’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사람들을 구하는 건 덤이다.

주요 목적은 모든 보상을 싹쓸이하는 거고.

이것으로. 대중들의 인기와 단물까지 독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스스로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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