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29권 절대암류(絶代暗流)편 : 11화
제 302 장 일부함원(一婦含怨 )
비무가 벌어진 날 저녁, 단봉공주 일행이 진산월이 머무르고 있는 숙소로 찾아왔다.
은밀한 방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네 마리 말이 이끄는 향차를 타고 적지 않은 천봉궁의 인물들을 대동한 거창한 행렬이었다. 그런 탓에 가뜩이나 주위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던 청연각 일대는 온통 저잣거리처럼 시끄러워졌다.
“단봉향차다! 천봉궁의 단봉공주가 신검무적을 찾아왔다.”
“천봉궁과 종남파의 만남이라. 대체 무슨 일일까?”
“낸들 아나? 하지만 바로 뒤쪽에 형산파가 머무르고 있는데도 단봉공주가 공개적으로 종남파의 숙소를 방문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네.”
“그게 뭔가?”
“적어도 천봉궁이 형산파보다는 종남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지.”
중인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입술을 깨물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구양현성이었다.
혁리공이 세우고 구양현성이 이끌던 계획은 실행하기도 전에 이미 실패하고 말았다. 가장 큰 전제조건이었던 당각의 승리가 날아가 버렸으니, 그 뒤의 모든 계획들이 공염불이 된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패를 모르던 구양현성에게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 고통은 이내 거대한 불길이 되어 그의 몸을 태워 버렸다.
‘길은 하나뿐이 아니다. 조금 돌아가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결과는 마찬가지다. 종남파가 구대문파로 복귀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구양현성을 은밀히 주시하는 시선도 있었다.
‘역시 혁리공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군. 틀림없이 그와 혁리공 사이에 접점(接點)이 있을 텐데, 쉽게 드러나지 않는구나.’
그 시선의 주인은 다름 아닌 이정문이었다.
구양현성을 응시하는 이정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구양현성과 천봉궁이 같은 객잔에 머문 것이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어떤 곡절이 있는지 알기 어렵구나. 내일이면 모두 무당산으로 들어갈 텐데, 아무래도 이번 일은 당초 예상처럼 무척이나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될 것 같군.’
구양현성이 몸을 돌려 청연각 앞을 떠날 때 이정문도 청연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이토록 요란한 방문이라니. 단봉공주의 의중은 대체 무엇일까?’
이정문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천천히 청연각 안으로 사라졌다.
연회는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으나 소소한 가운데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종남파의 숙소에서 벌어지는 연회이기에 중앙의 상석에는 진산월이 앉아 있고, 주빈의 자리에 단봉공주가 자리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었기에 조용한 밀담을 나누기는 힘들었으나, 연회 자체의 성격상 어쩔 수가 없었다. 밀담은 연회가 끝난 후에나 좀 더 은밀한 공간에서 진행될 것이다.
이번 방문에는 천봉궁뿐 아니라 유중악 일행과 철면군자 노방 노소연 부녀도 동행하였기에 종남파로서도 상당히 예를 갖추어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갑작스런 연회를 준비하는 종남파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곤해하거나 짜증 내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 장문인인 진산월이 천수나타를 쓰러뜨린 후로 종남파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힘든 줄을 몰랐으며, 시종일관 입가에 미소가 그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낙일방의 심정은 더욱 흥겨워서 가만히 있어도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손풍이 장강십팔채의 잔당들이 있는 곳을 발견했다고 알려왔을 때도 그들에게 경고를 전하는 선에서 그쳤다. 오늘같이 좋은 날, 손에 피를 묻히기 싫었던 것이다.
물론 느닷없이 나타난 그를 본 장강십팔채의 무리들이 사색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낙일방은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에게 차분한 음성으로 한 번 더 무당산 근처에서 자신의 눈에 뜨이면 이유를 불문하고 한 줌의 고혼(孤魂)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정중하게 경고했다.
그가 장내를 떠나자마자 장강십팔채의 무리들은 꼬리를 말고 도망쳤고, 그 후로 호북성에서는 더 이상 그들을 볼 수 없었다.
지금 낙일방은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은 채 한 사람을 슬쩍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 그녀도 그를 보고 있었는지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되었다. 낙일방의 눈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빛났고, 그녀는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낙일방이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때, 난데없는 전음성이 그의 귓전에 들려왔다.
“적당히 좀 해라.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잊은 거냐?”
낙일방은 돌아보지 않아도 그 음성이 전흠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흠은 오늘따라 유난히 멋을 내고, 머리에는 동백기름까지 발라서 뒤로 단정하게 묶고 있었다. 강호에 미모로 유명한 천봉궁의 선자들이 단봉공주와 함께 찾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자신의 방에 콕 처박혀 나오지 않더니, 막상 방에서 나왔을 때는 딴사람처럼 변해서 모두들 눈을 휘둥그레 떴을 정도였다.
전흠은 지금 낙일방의 옆자리에 과묵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는데, 얼굴빛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 이토록 외모에 신경을 썼음에도 천봉선자들 중 누구도 자신에게 시선을 주거나 관심을 표하지 않아서 단단히 심통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낙일방은 천봉선자 중의 한 사람과 서로 뜨거운 시선을 교환하고 있으니, 어찌 열불이 나지 않겠는가?
낙일방은 그를 힐끔 돌아보며 멋쩍게 웃었다.
“전 사형, 술 한 잔 따라드릴까요?”
전흠은 못마땅한 눈으로 그를 꼬나보았다. 가뜩이나 잘생긴 낙일방이 미소를 짓자 주위가 온통 환해지는 것 같았고, 덩달아 모든 여자들의 시선이 그에게만 쏠리는 것 같았다.
‘이 자식은 하필이면 왜 내 옆자리에 앉아서…….’
낙일방이 잔을 따르려고 술병을 들자 전흠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일없다. 어이, 네가 따라라.”
전흠의 시선이 제일 끝 쪽에 앉아 있는 손풍에게로 향했다.
손풍은 누산산의 눈을 피해 최대한 조용하게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는데 전흠의 말에 좌중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리자 우거지상을 지었다.
‘왜 또 나한테 시비야?’
하나 사숙이 술을 따르라는데 감히 거절할 수가 없어서 엉거주춤하게 다가와서 공손하게 술을 따랐다.
전흠은 그가 따른 술을 단숨에 들이켜더니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요새 잘하고 있다며? 계속 정진해라.”
전흠은 단순히 격려하기 위한 말이었을 테지만, 손풍에게는 그것도 자신을 놀리는 말처럼 생각되었다.
더구나 그때 누산산이 얄밉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종남파의 막내 제자께서 요즘 무공 수련에 열심인가 보죠?”
전흠은 천봉선자들 중에서도 가장 취향에 맞는 여자가 자신에게 말을 걸자 옳다구나 하고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늦은 나이에 본 파에 입문했으나,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하여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소.”
“전 소협은 과연 자상하시군요.”
전흠의 입꼬리가 절로 실룩거렸다.
“그야 문파의 어른으로 당연한 일 아니겠소?”
“당연한 일을 제대로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
누산산이 자신을 치켜세우자 전흠은 금시라도 함박웃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이었다. 누산산은 자연스럽게 술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저도 종남파 제자의 잔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전흠은 주저 없이 술병을 잡아들었다.
“이를 말이오? 소저께 한 잔 따라드리겠소.”
누산산은 예쁘게 웃으며 턱으로 손풍을 가리켰다.
“이왕이면 열심히 노력한다는 막내 제자의 잔을 받고 싶군요.”
전흠은 웃으며 손풍에게 술병을 내밀었다.
“알겠소. 누 소저께 한 잔 따라드리도록 해라.”
손풍은 어쩔 수 없이 누산산의 잔에 술을 따랐다. 옆에서 전흠이 눈도 깜박이지 않고 쳐다보고 있는지라 건성으로 따를 수도 없어서 두 손으로 공손히 따르자 누산산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예의범절이 몸에 박인 제자로군요.”
손풍의 얼굴이 일그러졌으나, 누산산은 못 본 척하고 맛있게 술을 한 잔 마신 다음 손풍이 내려놓은 술병을 집어 들었다.
“한 잔 받았으니 돌려주는 게 강호의 예의죠. 이번에는 제가 한 잔 따라드릴게요.”
손풍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그녀를 멀거니 쳐다보다가, 그녀가 여전히 술병을 든 채 자신을 보고 있자 엉겁결에 술잔을 내밀었다.
‘이 계집이 갑자기 돌았나?’
아니나 다를까? 금시라도 손풍의 잔에 술을 따를 듯하던 누산산이 갑자기 몸을 돌리며 전흠의 앞에 놓인 술잔을 향해 술병을 내밀었다.
“찬 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전 소협이 받으셔야죠.”
전흠은 입을 함지박만 하게 벌리며 그녀의 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캬! 역시 좋은 술이오. 누구와 대작하느냐에 따라 술맛이 달라진다는 말을 믿지 않았는데, 오늘에서야 그 말이 사실임을 알겠구려.”
“역시 전 소협은 풍류를 아시는군요.”
두 남녀가 시시덕거리며 웃고 있는 광경을 보는 손풍의 얼굴은 보기에 애처로울 정도로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때마침 동중산이 그를 부르지 않았다면 손풍은 거기서 무슨 엉뚱한 짓을 했을지도 몰랐다.
“손 사제, 잠깐 나 좀 도와주게.”
동중산의 말에 손풍은 말없이 전흠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뒷등을 본 누산산은 예상과 다른 그의 침착한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못된 망아지 같은 놈이 그새 종남파 물을 단단히 먹었나 보구나. 이 정도 놀렸으면 약이 올라서라도 험한 말 한마디는 할 줄 알았더니…….’
하나 앞만 보고 걷고 있는 손풍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는 것은 그녀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손풍이 다가오자, 동중산은 그의 어깨를 가만히 두들겼다.
“잘 참았네. 오늘은 우리가 주인의 신분임을 잊지 말게.”
손풍은 연회장을 나온 다음에야 비로소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로 미친 사람처럼 마구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해대는 손풍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동중산이 한숨을 내쉬었다.
‘좀 차분해졌나 했더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군. 하긴…… 저 성질에 지금까지 참은 게 용한 거지.’
손풍은 한참이나 허공을 향해 화풀이를 하고는 그제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동중산을 돌아보았다.
“시킬 일이 뭐요?”
동중산은 금시라도 터질 듯하던 손풍의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는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화는 모두 풀렸나?”
“누구에게 화를 낸단 말이오? 장내에는 모두 윗분들만 계시고, 그 계집은 나보다 훨씬 고수인데.”
동중산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손풍이 신기한지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거요?”
“아닐세. 이제는 자네도 사람을 가려가며 상대할 줄 아는 것 같아서 말일세. 별실 담당지기에게 말해서 후원의 내실에 있는 큰 방 두 개를 깨끗이 치워두라고 하게. 조금 후에 연회가 끝나면 장문인께서 쓰실 것이네.”
“동 사형은?”
“나는 주방 쪽에 가서 음식을 조금 더 주문해야 할 것 같네.”
“그런 일을 동 사형이 직접 한단 말이오?”
“그럼 누구에게 시키나?”
그러고 보니 연회장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사람들은 그들뿐이었다. 그렇다고 아직 어린 유소응에게 일을 시킬 수도 없지 않은가?
손풍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양팔을 휘적거리며 걸어갔다.
“주방에도 내가 갔다 올 테니까 그냥 여기 있으시오. 명색이 종남파의 대사형이란 사람이 그런 자잘한 일까지 해서야 되겠소?”
후원 쪽으로 가는 손풍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동중산은 희미하게 웃고 말았다.
“확실히 십이경맥을 타통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군. 다른 건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성장한 게 분명하니 말이야.”
연회는 별 탈이 없이 무사히 끝이 났다.
그리고 진산월은 자리를 옮겨 단봉공주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가 독대를 원해서, 두 사람은 동중산이 마련한 후원의 방으로 향했다.
제법 넓은 방에 둥근 다탁(茶卓)이 있었고, 그 다탁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본 채 앉았다. 이번에는 그들 외에 누구도 배석하지 않았다. 늘 단봉공주의 옆을 지키고 있던 태모모도 보이지 않았다.
방 안에 두 명의 남녀만이 자리하게 되니 약간은 어색하고 경직된 분위기가 흐를 법도 하건만, 그들은 전혀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진산월은 담담한 눈으로 단봉공주를 바라보았다.
처음 소림사의 선실에서 만났을 때처럼 그녀는 여전히 붉은 색 봉황 무늬가 새겨진 궁장을 입고 있었고, 눈 아래로 붉은 빛 망사를 쓰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참으로 영롱해서 도저히 사람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지 않았다.
진산월은 그녀를 여러 번 만났으나,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단둘이 있게 되자 잠시 기이한 상념에 빠져들었다.
한때는 그녀에게서 매혹을 느낀 적도 있었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모욕감과 치욕을 경험한 적도 있었다.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숱한 의문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
이제 그녀를 지척에서 마주하게 되자 진산월은 새삼 그녀가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수렁 같은 여인이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더할 수 없이 맑고 영롱하게 빛나는 두 눈 속에 무슨 생각이 담겨 있는지 전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녀도 또한 진산월을 보고 있었다.
사 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커다란 체구답지 않게 부드럽고 다소 어리숙해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는데, 이제 그때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불과 사 년 만에 한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은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기 힘든 일이었다.
특히 자신을 향한 담담한 눈빛은 정말 깊고 묵직해서 기이한 현기(玄機)조차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태도는 장중한 가운데 비범함이 엿보였고, 내뱉는 말 속에는 강한 자신감을 동반한 여유가 배어 있었으며, 전신에서 흐르는 분위기는 고적한 가운데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그녀는 진산월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성장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적어도 주위의 말이나 행동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거목(巨木)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진산월이었다.
“연회는 잘 즐기셨소?”
단봉공주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좋았어요.”
하나 그녀의 말과는 달리 진산월은 그녀가 연회를 그리 즐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음식도 거의 먹지 않았고, 술은 아예 입에도 대지 않았다. 심지어는 쓰고 있는 면사도 벗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 소림사의 선원에서 있었던 작은 연회에서도 그녀가 음식을 먹거나 면사를 벗는 장면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가려 했는데 공주께서 이쪽으로 오신다고 해서 조금 의외였소. 어려운 걸음을 해주셨소.”
“생각해 보니 매번 진 장문인께서 오셨던 것 같아서 한 번쯤은 내가 찾아오는 게 순리일 것 같았어요. 우선 오늘의 비무에서 승리하신 것을 축하드려요.”
“운이 좋았소.”
“천수나타는 단순히 운이 좋은 것만으로 쓰러뜨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어요.”
단봉공주는 진산월이 겸양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으나, 진산월은 진심이었다.
“아니, 정말 운이 좋았소.”
그렇다. 진산월은 자신이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천수나타가 비무 날짜를 하루만 앞당겨 잡았어도, 때마침 스스로 찾아와 속문으로 들어온 육천기가 비무 전날 억지로 천절뢰의 기법을 알려주지 않았어도, 그리고 그날 밤에 정체 모를 청의 중년인이 자신을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이번의 비무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 모든 일 중 한 가지만 부족했어도 진산월은 어쩌면 패하거나 동사(同死)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확실히 운이 좋았다. 하나 그 운도 그 자신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암기 무공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고 짧은 이틀의 시간 동안에 일파의 장문인 신분임에도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 조언을 다각도로 분석하여 현실에서 쓸 수 있는 최적의 대응 방안을 찾아냈다.
천절뢰의 기본인 취선호는 태을신공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무공이었다. 진산월은 이미 태을신공을 십이성 완성한 상태였기에 육천기에게서 천절뢰의 구결을 듣는 것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천절뢰를 펼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난 몇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철혈홍안이 보여준 열두 걸음을 연마해왔다. 그래서 청의 중년인이 남긴 여섯 걸음을 보자마자 바로 몸에 적응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운이란 언제나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운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작은 행운일 수도 있고, 일생에 몇 번 보기 힘든 대운(大運)일 수도 있다.
진산월은 자신에게 찾아온 운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대화시켜 일생일대의 어려운 싸움을 극적인 승리로 이끌어내었다. 운은 삶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운을 살릴 수 있는 행동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그 가치를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단봉공주는 오늘의 승리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진산월의 말에 굳이 토를 달고 싶지 않았는지 이내 화제를 돌렸다.
“내가 진 장문인을 만나려고 한 건 진 장문인께 드릴 말씀이 있기 때문이에요.”
“경청하겠소.”
단봉공주의 음성은 나직하면서도 조용했다. 흡사 옆에서 소곤거리는 듯한 음성이었다. 그럼에도 너무도 선명하게 들렸다. 그래서 그녀의 음성을 듣고 있으면 자꾸만 듣고 싶어지는 묘한 충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진 장문인은 그동안 본 궁의 행사에 몇 가지 의문을 가지거나 불만을 느끼신 적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속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요. 이제는 진 장문인도 그 사정을 아셔야 할 것 같아서 그걸 말씀드리려고 해요.”
진산월은 별다른 반응 없이 담담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으나,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의 말대로, 천봉궁의 행사에 진산월은 약간의 의혹을 느끼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천룡궤 때문에 벌어진 몇 가지 일들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노군묘에서의 일은 특히 그러했다. 사 년 만에 그녀는 불쑥 만남을 청했고, 찾아온 진산월에게 천룡궤의 행적을 물었다. 그리고는 그 대답을 듣자 그날 밤에 연락도 없이 훌쩍 떠나고 말았다. 나중에는 금교교를 통해 천룡궤와 봉황금시를 지닌 사람이 한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속사정을 알아야 한다며 자신이 먼저 찾아와 이야기를 꺼내려 하고 있었다.
그녀도 청의 중년인처럼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때는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상황이 바뀌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진산월이 이제 그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생겼다는 말일까?
어찌 되었건 진산월로서는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의중이야 어떻든, 단봉공주는 특유의 음성으로 속삭이듯 말했다.
“진 장문인이 구궁보에 전해준 천룡궤에는 사실 커다란 비밀이 담겨 있어요. 그 비밀이 너무 막중해서 본의 아니게 진 장문인에게 몇 가지 사실을 숨겼지만, 이제는 진 장문인도 그에 대한 비밀을 아셔야 할 때가 되었어요.”
천룡궤에 얽힌 비밀. 진산월은 물론 궁금했다. 하나 그보다는 그녀가 왜 하필이면 이 순간에 그런 말을 꺼내는지가 더욱 궁금했다.
하나 진산월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묵묵히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천룡궤는 진 장문인도 알고 있겠지만 원래 천룡객 석동의 물건이었어요. 석동은 철혈홍안과 결혼하면서 결혼예물로 천룡궤를 그녀에게 주었지요. 철혈홍안은 천룡궤가 수화불침(水火不侵)의 기보임을 알고 그 안에 자기 가문의 가장 중요한 무공비급을 넣어 보관했어요.”
그녀의 말은 진산월이 알고 있는 사실과는 조금 달랐다.
진산월은 천룡궤 안의 물건이 석동이 아끼는 무공비급이라고 들었다. 그에게 그 말을 해준 사람은 낙양에서 사귄 손검당이었으며, 손검당은 천룡궤에 얽힌 석동과 철혈홍안, 백모란의 사연에 대해 말해 주었었다.
그런데 지금 단봉공주는 석동의 무공비급이라고 알고 있던 것이 사실은 철혈홍안의 집안의 가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공의 원주인이 누구든 천룡궤 안에 절세의 무공비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모용봉은 그 비급이 조각상의 형태로 보관되어 있으며, 그것을 취와미인상이라 부른다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전에 모용 공자는 천룡궤 안에 취와미인상이 있다고 했는데, 그럼 취와미인상이 원래 철혈홍안의 물건이었다는 말이오?”
“엄밀히 말하면 철혈홍안의 오빠의 물건이었어요. 그가 조씨 집안의 적장자였으니 말이에요. 철혈홍안은 그를 대신해 잠시 물건을 맡고 있었을 뿐이에요.”
진산월은 뜻밖의 말에 약간의 당혹감을 느꼈다.
“철혈홍안에게 오빠가 있었단 말이오?”
단봉공주의 별빛 같은 시선이 그의 눈에 고정되었다.
“진 장문인은 혹시 조익현(趙益玄)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진산월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드는 이름이오. 그가 철혈홍안의 오빠요?”
“그래요.”
“그렇다면 철혈홍안은 자기 가문의 가보를 오빠의 허락도 받지 않고 석동에게 주었다는 말이오?”
“철혈홍안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그녀로서는 그것이 석동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으니까.”
단봉공주는 그 안에 숨은 사정을 말해 주었다.
원래 철혈홍안과 석동의 금슬은 처음에는 제법 좋은 편이었다. 하나 석동이 아내와 함께 있는 것보다는 무공을 익히는 것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두 사람 사이는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들 사이를 결정적으로 벌어지게 한 일이 일어났다.
석동에게 또 다른 여인이 생긴 것이다. 그녀는 다름 아닌 백모란이었다.
백모란은 낙양 제일의 미인으로 예전부터 이름이 높았고, 그녀를 직접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를 당대 제일의 미인이라고 인정했다. 심지어는 고금 제일의 미녀라고 떠드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석동은 백모란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에게 빠져들었고, 백모란 또한 사내다운 매력과 열정을 지닌 그의 접근을 싫어하지 않았다.
아마 석동이 결혼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두 남녀는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 석동에게는 이미 철혈홍안이라는 아내가 있었다.
철혈홍안이 두 사람에 대한 이상야릇한 소문을 들었을 때는 이미 두 사람의 사이가 상당히 가까워진 후였다. 철혈홍안으로서는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신혼 때를 제외하고는 무공 수련에 미쳐 자신을 등한시하더니 이제는 다른 여자에게 빠져 자신을 멀리하고 있는 것이다. 철혈홍안은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모두 실패하자 마침내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가문의 비보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그 비보는 하나의 신공비급과 세 개의 미인상이었는데, 그것은 모두 그녀의 오빠가 무공 수련을 떠나면서 그녀에게 맡긴 것이었다. 세 개의 미인상 중 하나는 그녀의 오빠가 소지하고 있고, 그녀에게는 두 개의 미인상이 남겨져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신공비급과 미인상 하나를 건네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준 높은 무공에 대한 갈망에 빠져 있던 석동은 뛸 듯이 기뻐하며 신공비급과 미인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녀의 의도대로 백모란과는 멀어지게 되었으나, 단지 그것뿐이었다.
석동은 미인상을 연구할수록 그 속에 담긴 무학의 대단함을 깨닫고 미친 듯이 무공 수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철혈홍안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신공비급은 몰라도 미인상은 절대로 석동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 미인상에 담긴 무학은 너무도 심오막측한 것이라 결코 일조일석에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무공에 천부적인 재질을 지니고 있는 석동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자타가 공인하는 절대의 기재였던 철혈홍안의 오빠조차 하나의 미인상에 빠져 그녀에게 가보를 맡기고는 심산유곡에 칩거하는 신세가 되었지 않았는가?
하나 그녀의 후회는 너무 늦은 것이었다.
미인상을 얻은 후 석동은 하루 종일 그에 대한 탐구에만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침식도 거를 정도라 그녀가 몇 번 타박을 했더니 나중에는 아예 작은 밀실에 처박혀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
자연히 그녀의 가정생활은 엉망이 되었고, 석가장의 안위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더욱 큰 일이 벌어졌다.
무공 수련을 떠났던 철혈홍안의 오빠가 돌아온 것이다. 조익현은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미인상 중 하나가 석동에게 돌아갔음을 알고 크게 분노하여 굳게 잠긴 밀실 문을 박살 내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맹렬한 싸움을 벌였다. 싸움의 여파가 어찌나 강력했던지 밀실은 물론이고 밀실이 있던 석가장의 후원 전체가 파괴될 정도였다.
그 싸움의 결과, 승자는 아무도 없었고 온통 패자들뿐이었다.
조익현과 석동은 양패구상하여 모두 단기간 내에는 완치될 수 없는 커다란 부상을 입었고, 철혈홍안은 남편과 오빠 모두에게 버림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세 사람은 서로를 믿지 못한 채 철천지원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에 크게 분노한 철혈홍안은 조익현과 석동에게 낙양의 십 리 이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만약 두 사람이 이를 어기면 마지막 취와미인상이 담긴 천룡궤를 파괴해 버리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그녀가 일단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성격임을 알고 있던 두 사람은 훗날을 기약하며 낙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진산월은 예상치 못했던 전개에 여러 가지 의문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은 정말 그 뒤로 낙양에 오지 못했소?”
단봉공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그들 중 누구도 낙양 근처에도 접근한 적이 없어요.”
“취와미인상이 그토록 대단한 보물이라면 나머지 하나를 얻기 위해서라도 그녀를 설득해 볼 수 있지 않소?”
“그건 진 장문인이 철혈홍안이 어떤 여인인지 몰라서 그래요. 그녀의 이름에 ‘철혈’이란 글자가 들어간 것이 단순히 그녀가 냉철한 수단을 지녔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칼날 같은 성격이어서 일단 그녀의 눈 밖에 벗어난 사람은 누구도 용서하지 않았어요. 과거에 석동도 그녀의 그런 성격에 질려서 그녀를 멀리하게 되었던 거예요.”
“그들이 낙양 근처로 오면 정말 그녀가 천룡궤를 파괴했을 거란 말이오?”
“그들 두 사람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어요.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점을 의심하지 않았을 거예요.”
진산월은 잠시 자신이 만났던 철혈홍안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지극히 차갑고 냉정하다는 것이었다. 극도로 가라앉은 무심한 그녀의 눈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정도였다.
하나 막상 그녀와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눈 후 그녀에 대한 인상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단순히 차갑고 냉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음 깊숙한 곳에 뜨거운 무언가를 지닌 여인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이 열정인지, 원한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는 진산월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짧은 동안의 만남이었으나, 지금까지도 그녀의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될 정도로 그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준 만남이었다는 사실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진산월은 다시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그들 두 사람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소?”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요?”
단봉공주의 반문에 진산월은 별로 깊게 고민해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들의 이름이 강호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도 어딘가에서 미인상의 절학을 수련하고 있거나, 상대의 미인상을 얻기 위해 서로 싸우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그 후유증으로 이미 한 줌의 백골이 되어 있을지 모르겠구려.”
단봉공주의 눈이 순간적으로 가늘어졌다. 아마 입술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을지도 몰랐다.
“재미있는 추측이군요. 진 장문인의 추측은 절반쯤은 맞았어요. 그들은 계속 싸움을 벌였죠. 장장 백 년에 이르도록 말이에요.”
“정말 그들이 백 년이나 싸움을 계속했단 말이오?”
“그래요. 처음에 그들은 십 년을 주기로 싸움을 했으나 승부를 가르지 못하자, 나중에는 제자들을 보내 싸움을 계속했죠. 사실 지난 백 년간 강호의 역사는 그들 두 사람이 벌인 격전의 흔적이 남긴 것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뜻밖의 말에 진산월은 내심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강호의 역사가 그들의 싸움의 흔적이라니……. 이건 너무도 광오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두 사람의 싸움이 강호에 그토록 커다란 영향을 끼쳤단 말인가? 그리고 그 흔적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리고 만약 그녀의 말대로라면 어째서 당금 강호에는 그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일까?
“제 말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군요. 진 장문인은 지난 백 년간 강호에서 벌어진 일들 중 가장 큰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녀의 말에 진산월은 문득 예전에 자신이 이와 비슷한 질문을 해수 모인풍에게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모인풍은 백년삼사에 대해 말해주었다. 백년삼사란 백 년 내 강호에서 벌어진 세 가지의 커다란 사건으로, 바로 검성현신, 법왕현세, 그리고 신검산화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진산월은 당시 모인풍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으나, 신검산화는 이미 백 년이 넘는 머나먼 과거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조금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아무래도 검성 모용 대협이 등장하신 것과 서장에 야율척이란 존재가 탄생한 일, 그리고 본 파가 구대문파에서 방출된 일 등이 아니겠소?”
모인풍이 말한 백년삼사에서 신검산화 대신 기산취악을 집어넣은 것은 종남파 장문인으로서 당연한 것이기도 했지만, 또한 그 일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었다. 기산취악을 바로잡기 위해 종남파는 정말 멀고 험한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이번 무당파 집회에서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에 따라 앞으로의 강호의 역사도 그만큼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단봉공주는 진산월의 의견에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진 장문인의 안목은 예리하군요. 저도 그 세 가지 사건이 가장 중요한 일들이라고 생각해요. 모용 대협의 등장은 석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아실지 몰라도 검성 모용 대협은 석동의 제자예요. 조익현과의 싸움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던 석동이 어린 시절의 모용 대협을 만나 그를 제자로 삼으면서 비로소 검성이 현신하게 된 것이지요.”
그것은 진산월도 모용봉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일은 벌써 오십 년이 훨씬 넘은 까마득히 오래전의 일로, 당시 모용단죽은 홍안의 소년이었다. 모용단죽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한 석동은 모용단죽에게 몇 가지 무공을 알려주고 하나의 취와미인상을 건네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전설의 시작인 셈이었다.
석동은 과연 무슨 의도에서 그 귀중한 미인상을 모용단죽에게 주었던 것일까?
진산월의 뇌리에 문득 그들이 제자들로 하여금 싸움을 계속하게 했다는 단봉공주의 말이 떠올랐다.
석동은 모용단죽의 재질이 범상치 않음을 보고 자신의 후계자가 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조익현 또한 다른 누군가를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
석동의 제자가 모용단죽이라면, 조익현의 제자는 과연 누구일까?
떠오르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단봉공주의 다음 말은 그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해 주었다.
“조익현도 당시의 싸움으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어요. 오히려 그의 부상은 석동보다 더욱 커서, 그는 석동의 추적을 피해 서장으로 갔어요. 그곳에서 한 명의 사미승(沙彌僧)을 눈여겨보게 되었지요. 그가 바로 아난대활불이에요.”
아난대활불!
천룡사의 절대적인 존재이며, 서장 무림의 최고고수가 아닌가? 야율척이 등장하기 전만 해도 아난대활불은 자타가 인정하는 서장 밀교사상 최고의 고수였다. 그와 모용단죽이 벌인 세 번의 싸움은 중원은 물론 서장 무림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위대한 결투였다.
그런데 지금 단봉공주의 말은 그 격전이 석동과 조익현의 싸움의 연장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럼 아난대활불과 모용 대협의 세 차례에 걸친 격돌은 결국 그들 두 사람의 싸움을 대신한 것에 불과했단 말이오?”
“아마 처음 싸웠을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을 거예요. 하나 결국 그들은 십 년에 한 번씩 싸우게 되었고, 그것은 석동과 조익현이 싸우던 방식과 같은 것이었어요.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결과적으로 그들의 싸움은 석동과 조익현의 투쟁의 연속선에 있었던 거죠.”
진산월은 모용단죽이 평생에 걸쳐 이룩한 모든 일들이 단순히 백 년 전 인물들의 투쟁이 다른 형식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단봉공주의 말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모용단죽이 강호에 남긴 업적이 너무도 거대하지 않은가?
한 사람의 일생을 그런 식으로 재단한다는 것은 그에게나 그를 믿고 의지했던 많은 강호인들에게 너무도 가혹한 일일 것이다.
하나 단봉공주의 다음 말은 그에 대한 생각을 더 이상 이어지지 않게 했다.
“종남파가 구대문파에서 축출당한 일도 그들과 아주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어요.”
진산월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번뜩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모용 대협과 아난대활불의 싸움은 미세한 차이로 모용 대협이 계속 승리를 거두었지만, 석동과 조익현은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어요. 그들은 좀 더 확실한 승부를 원했죠. 그런데 그때 야율척이란 존재가 나타난 거예요.”
진산월은 그녀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야율척이 기산취악과 어떤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진산월은 단봉공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석동은 처음 야율척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아난대활불은 모용 대협이 상대하고 조익현은 자신이 감당한다고 해도, 야율척을 막을 자는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거지요. 그만큼 야율척의 등장은 파격적인 것이었어요.”
석동 같은 인물이 충격을 받을 정도라면 대체 야율척의 재질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진산월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석동은 야율척을 상대할 자를 찾기 위해 오랜 칩거를 깨고 다시 강호로 돌아왔어요. 그는 인재를 찾기 위해 천하를 뒤지고 다녔는데, 그것을 철혈홍안이 알게 되었어요.”
철혈홍안은 석동에게 깊은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를 사랑하기에 귀중한 무공비급을 그에게 내놓았고, 결국 그 때문에 그와 친인을 모두 잃게 되었다.
석동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점차 사랑에서 원망으로 넘어갔고, 시일이 흐를수록 그 감정은 더욱 깊어져 증오로 변해 버렸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그녀는 석동의 행방을 찾지 못해 마음속으로만 그에 대한 증오를 키워오고 있었는데, 마침내 그의 행방을 알게 되자 깊숙이 억눌렀던 원한의 불길이 화산처럼 터져 버렸다.
그녀는 석동을 유인하기 위해 한 가지 계획을 준비했다. 그것이 무림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석동은 무림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인재를 발견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 마침 소림사에서 구대문파의 회합이 벌어진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어요. 석동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림사로 향했어요. 구대문파의 제자들이라면 하나같이 당금 무림에서 가장 뛰어난 기재들일 테니 그들 중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인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었죠.”
단봉공주가 기산취악이 벌어졌던 이십여 년 전의 소림사 집회를 언급하자 진산월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그녀의 말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단봉공주는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석동이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순간이었어요. 그 후로 석동의 존재는 강호 어디에도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의 행방은 물론 생사(生死)조차 확인되지 않았죠.”
진산월은 그녀의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석동이 소림사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실종되었다는 말이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림사 인근에서 잠깐 모습을 보인 이후로 아무도 그를 본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옳겠죠.”
“공주께서는 그것이 철혈홍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당시 소림사에서 열리는 집회의 배후에 철혈홍안이 있었다는 것이 단순히 추측만은 아니에요. 좀처럼 낙양을 벗어난 적이 없던 철혈홍안이 소림사가 있는 등봉현에 나타난 것을 목격한 사람이 적지 않거든요. 철혈홍안이 석동을 유인하기 위해 소림사에서 구대문파의 집회를 열게 했을 거라는 건 저의 짐작이지만, 그 이후 석동이 실종되고 종남파가 구대문파에서 축출된 것은 결과로 드러난 분명한 사실이에요.”
진산월은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몇 달 전에 소림사에서 만났던 대방 선사는 당시 기산취악을 주도했던 무당파 장문인의 배후에 한 여인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단봉공주의 말대로라면 그 여인이 철혈홍안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그녀는 대체 왜 종남파를 구대문파에서 쫓아내려고 한 것일까?
그것은 단지 석동을 소림사로 유인하기 위해 구파회합을 열려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가 미처 모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복잡한 상념들이 떠올랐지만 진산월은 한 가지씩 해결하자고 생각했다. 일단 과거 기산취악을 주도한 인물은 당시의 무당파 장문인이 분명했고, 그의 배후에는 철혈홍안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것의 사실 여부와 진정한 내막은 자신이 무당파로 가서 직접 밝혀내면 되는 것이다.
단봉공주는 생각에 잠겨 있는 그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굳이 오늘 진 장문인을 만나려고 했던 것은 진 장문인께서 적어도 무당파로 들어가기 전에 이 사실을 알고 계셔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왜 그전에는 이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을까? 아마도 진산월이 그 사실을 알아도 그것을 밝혀낼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진산월은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어 그녀에게 물었다.
“석가장주가 나로 하여금 천룡궤를 구궁보로 운반하게 한 것은 결국 철혈홍안이 지시한 일이겠구려?”
“그래요. 그녀가 승낙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그녀의 품에서 천룡궤를 꺼내올 수 없어요.”
“그렇다면 철혈홍안이 이제 와서 나에게 천룡궤를 모용 대협에게 전하라고 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자신이 은밀히 사주하여 몰락시킨 종남파의 젊은 장문인에게 굳이 그런 일을 맡긴 철혈홍안의 의도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단봉공주는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들려주었다.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소림사의 집회에서 석동을 사로잡으려다 실패하여 아직까지도 그의 행방을 찾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서 마지막 수단으로 천룡궤를 석동의 제자인 모용 대협에게 전해주어 그가 등장하기를 기다린 거지요. 천룡궤가 모용 대협에게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반드시 석동이 나타날 테니까.”
“그렇다 해도 그 일을 굳이 나에게 맡길 필요는 없지 않소?”
“진 장문인이라면 천룡궤를 무사히 구궁보까지 운반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겠지요. 아시다시피 천룡궤는 노리는 자들이 적지 않으니, 아무에게나 그런 중요한 물건을 맡길 수는 없지 않겠어요?”
“다른 한 가지는 뭐요?”
“석동이 당시에 그녀에게 사로잡혀 있다가 최근에 목숨을 잃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녀가 석동에게서 완전히 마음이 떠났을 가능성도 있지요. 그럴 경우 그녀는 천룡궤를 원주인인 자신의 오빠에게 보내 그와 화해하려 하겠지요. 두 사람 사이가 멀어진 것은 순전히 천룡궤 때문이었으니까 말이에요.”
“오빠에게 준다면서 왜 구궁보로 가져가게 한 거요?”
단봉공주의 영롱한 시선이 진산월의 두 눈을 빤히 응시했다.
“그건 진 장문인도 짐작하고 있을 거예요.”
그렇다.
그녀의 두 번째 의견을 들은 순간, 진산월은 자신이 만났던 가짜 모용단죽이 혹시 철혈홍안의 오빠인 조익현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모용단죽 같은 인물을 제압하고 그로 변장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석동과 조익현뿐이다. 석동이라면 굳이 제자로 변장하지 않아도 그의 곁에 머무를 방법이 있을 테니 결국 가장 의심이 가는 인물은 조익현이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의견이 옳은 것일까?
하나 진산월은 왠지 그렇게 쉽게 판단 내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무사히 천룡궤를 전달할 능력이 있기에 일을 맡겼을 거라는 단봉공주의 말과는 달리 석가장의 후원에서 만났던 철혈홍안은 마치 자신의 일이 실패하거나 몹시 어렵게 진행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혹시 자신이 실패하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실패할 줄 알면서 그 일을 자신에게 맡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진산월은 그 안에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무언가 전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진정한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에야 비로소 천룡궤에 얽힌 모든 비밀이 풀릴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단봉공주가 떠나간 뒤에도 진산월은 자신의 숙소에서 한동안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
문득 고개를 드니, 언제 들어왔는지 임영옥이 조용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자지 않았어?”
“사형의 방에 불이 켜져 있기에 들어와 봤어요.”
진산월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다가와서 그의 손을 잡았다. 체내의 음기 때문에 그녀의 손은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진산월은 더할 수 없이 따뜻한 손을 만지는 것처럼 꼬옥 움켜잡았다. 마치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이.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서로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특별한 말은 하지 않았어도 상대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그런 눈빛이었다. 한동안 그런 자세로 있다가 진산월은 담담한 음성으로 단봉공주와 대화한 내용을 말해 주었다.
임영옥은 아무런 대꾸 없이 그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다만 가끔씩 고운 손가락으로 그의 손등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차가운 손이었으나,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진산월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따스한 기운이 손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를 마친 진산월은 나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영옥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특유의 낮게 가라앉은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과거의 일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미래의 일이에요.”
“당연하지.”
“내일 우리는 무당파로 갈 거예요. 지금은 그것만 생각하세요.”
“사매는?”
임영옥의 아름다운 눈이 그를 향했다.
“내가 뭘요?”
진산월은 한 손을 내밀어 그녀의 삼단 같은 고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그녀의 머리에 꽂혀 있는 봉황 문양의 금비녀에 손이 닿았다.
“천룡궤를 받은 자가 조익현이라면 반드시 이 봉황금시도 얻으려고 할 거야.”
“……!”
“만약 누군가 노리는 자가 있다면 가져가게 놔둬. 이걸 지키기 위해서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그렇게 해도 되나요? 천룡궤 안에 절세의 무공비급이 들어 있다면서요?”
“어떤 것이라도 사매보다 중요하지는 않아. 그러니 내 말대로 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 그냥 줘버리라고.”
임영옥은 그 말을 하는 진산월의 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윽하게 웃어 보였다.
“알겠어요.”
진산월은 다짐을 받듯 그녀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정말이지?”
“그럴게요.”
그제야 진산월은 그녀를 향해 웃음을 보였다. 단지 살짝 미소 짓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그 미소의 작은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도 깜박이지 않고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그냥요.”
“그냥?”
“사형이 웃는 게 너무 보기 좋아서.”
진산월은 말없이 그녀를 꼬옥 안아주었다. 그의 듬직한 품속에 푹 파묻힌 그녀는 엄마 품에 안긴 한 마리 작은 새처럼 한없이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그녀는 속삭이듯 물었다.
“이번에는 될 수 있겠지요?”
그녀가 특정한 것을 지칭하지 않았어도 진산월은 그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묵직하면서도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반드시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고야 말 거야.”
그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었다.
그의 소망, 그녀의 소망, 그리고 모든 종남파 제자들의 간절한 소망!
구대문파로의 복귀를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굳건한 다짐이었다.
다음 날인 오월 이십구일.
진산월과 종남파 일행은 드디어 무당산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훗날 ‘악산대전(嶽山大戰)’이라 불리며 오랫동안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거대한 싸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30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