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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262화


262화. 일곱 개의 대죄 (3)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계획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니라샤의 손이 멈칫했다.

그러자 트리스탄의 입가에 더더욱 짙은 미소가 맺혔다.

“강진혁.”

한 인물의 이름.

그거면 충분하다.

예상했던 대로 니라샤의 얼굴빛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 인간을 제거하자고 하는 건가? 너희와 손을 잡고?”

“당신들도 강진혁에게 꽤나 당한 게 많지 않습니까? 저희 역시 이를 갈고 있기는 마찬가지고요.”

“확실히 그 녀석을 죽이는 게 올해 크리스마스에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긴 해. 하지만, 너희랑 엮인 게 들통 났다간 길드 이름에 먹칠을 하는 수준이 아니야. 아예 길드 자체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거든.”

플레이어들이 탑을 오르는 궁극적인 목표가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라면, 마인들의 최우선 관심사는 마족들을 이 세계에 현현시키는 거다.

그게 아니더라도 전원이 수배가 되어 있는 범죄자 출신들과 함께한다는 건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일일 터.

“뭐, 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 모든 건 저희 동맹이 외부에 알려졌을 때에나 일어날 일이죠.”

“생방송까지 진행할 수 있는 유적에서 정보 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너무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착각이 아닙니다. 물론, 근거 없는 헛소리도 아니고요.”

왜냐하면…….

“저희는 현재 유적의 주인과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저주와 결계에 능통한 대마녀.

한 마리를 부리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게이트 가디언을 무려 일곱 마리나 만든 보스몬스터라면…….

방송 시스템에 간섭할 수 있는 결계 또한 펼칠 수 있었다.

니라샤의 얼굴에서 비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보스몬스터와 마인 협회 그리고 상위 길드의 연합.

“확실히…… 그런 거라면, 가능성은 있겠네.”

고작 플레이어 하나 따위가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일개 국가의 전력이라 하더라도 쉽지 않을 테니까.

“그 말은 저희와 함께하시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우선 계획부터 들어보고.”

말을 그렇게 했지만, 이미 마음은 반쯤 기울어져 있었다.

여기선 살짝만 확신을 더해 주면 된다.

“니라샤 님과 간다라 길드에서 해 주셔야 할 일은 간단해요. 놈들의 보급과 후방 지원을 끊어 주시기만 하면 나머지는 저희 쪽에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보급로라면…… 올림포스 길드를?”

“예. 바로 그거입니다.”

현재 제2 공격대는 진혁을 포함한 네 사람과 올림포스에서 온 플레이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네 사람이 공략을 맡고 나머지가 후방을 담당하는 형태였으니…….

그 뒤를 전멸시킬 수만 있다면 앞쪽에 있는 놈들은 완벽하게 고립이 되는 꼴이 된다.

한 마디로 독 안에든 쥐라는 뜻이다.

“최대한 깊숙이 끌어들이려고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건가. 재밌네. 마인들이 이렇게나 참을성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지.”

“가벼운 일이지 않습니까? 주력인 알맹이들은 쏙 빠지고 잔챙이들만 맡아 주시면 되니 리스크는 거의 없다시피 할 텐데요.”

“좋아…… 하지만. 우리끼리만 올림포스를 치지 않을 거야.”

“설마, 지원을 해 달라는 건가요? 당신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후방을 쓸어 버릴 수 있는데, 어째서죠?”

“만에 하나 계획이 실패하기라도 하면, 발을 뺄 수 있는 구석을 만들어 두고 싶거든. 적어도 나는 그 자리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거다.”

니라샤가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선을 그었다.

결국, 트리스탄이 한 발 물러섰다.

“그럼, 저희 쪽에서 사도 하나를 지원해 드리도록 하죠. ‘분노’를 관장하는 사도를요. 그리고 가웨인 역시 당신들을 돕게 하겠습니다.”

사도와 마인 간부의 지원.

그거라면 충분하다.

충분하고말고.

***

쿠쿠쿠쿠쿠!

유적 전체의 석벽이 동시에 움직였다.

가로막고 있던 장애물들이 한순간에 사라졌고 영역을 지키기 위해 날뛰던 각종 몬스터들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훤히 뚫린 길.

“오빠…… 이거 좀 이상한데?”

“형. 벌레들이 전부 물러갔어요.”

유연화와 이태민이 한 마디씩 내뱉었다.

“주위에 마력 반응도 느껴지지 않아요. 아마 유적 전체에 있는 결계와 함정들을 전부 해제한 것 같은데…….”

탐지 마법을 사용하던 마리아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진혁의 입에선 묘한 실소가 흘러나왔다.

‘과연.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는 건가.’

이건 초대장이다.

자신 있으면 이 앞으로 오라는.

대놓고 미끼를 뿌려대는 게 심하게 티가 나긴 했지만, 그만큼 준비를 많이 해 뒀다는 뜻이겠지.

어차피 가야 할 길을 터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시간을 줄여 줬으니 이쪽으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가 보죠.”

“아니, 오빠. 이거 함정 같지 않아? 그냥 가자고?”

함정이라…….

“치밀하게 숨통을 조일 수 있어야 그게 함정인 거고.”

이건 그냥 그렇게 되길 바라는 소꿉장난에 불과하다.

“늦으면 두고 간다?”

진혁이 앞장섰다.

“형의 자신감은 진짜…… 하. 갈게요. 간다고요.”

그리고 그 뒤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세 사람이 뒤따랐다.

그렇게 얼마나 들어갔을까?

길고 긴 통로를 지나 도착한 곳은 수많은 몬스터들의 석상으로 가득찬 방이었다.

소위 참회의 방이라 불리는 장소.

이곳이 통곡의 마녀에게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다.

동시에 일곱 개의 대죄 중 가장 까다로운 놈이 지키고 있는 곳이기도 했고.

“크르르…….”

가래가 잔뜩 낀 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쿠웅! 쿠웅! 쿠웅!

석상들 사이로 3m가 훌쩍 넘는 사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초록빛 피부에 툭 튀어나온 엄니.

터질 듯한 배와 근육질의 양팔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나 녀석이 끌고 있는 거대한 수레였다.

정체불명의 기괴한 고깃덩어리들과 식물들이 가득 담겨 있는 수레는, 녀석이 왜 ‘탐식의 사도’라 불리는지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띠링!

모두의 앞에 보라색 상태창이 나타났다.

[탐식의 사도에게 유효한 공격을 가하기 위해선 녀석이 끌고 다니는 수레 안의 식재료를 섭취해야만 합니다.]

[그 외에는 모든 고유 능력과 스킬의 효력이 무효화됩니다.]

수레에 담긴 고기와 식물에는 ‘펙테크로신’이라는 특수 성분이 있는데, 그걸 마력에 녹여야만 저 사도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었다.

문제는…….

저 식재료들의 외형이 끔찍한 건 둘째 치고 평범한 인간이라면 입 근처에도 가까이 가져가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향과 맛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비위가 강한 사람이라도 절대로 무리다.

“저, 저걸 먹으라고요?”

마리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방법이 저것밖에 없다면 시도는 해 보긴 해야 할 텐데…… 골치 아프겠네요.”

온갖 경험을 다 해 본 유연화와 이태민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바로 그때.

“그오오오오!”

침입자를 발견한 탐식의 사도가 수레 안쪽에서 철퇴를 꺼냈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콰앙!

철퇴가 진혁의 머리를 스치고 바로 뒤에 있던 몬스터의 석상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여전히 빠르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몸놀림이 물 찬 제비 같다.

최대 가속을 하기 전 새끼발가락이 3도 정도 안쪽으로 모아지는 특징을 몰랐다면, 머리가 깨졌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지.

“그롸아아아!”

탐식의 사도가 다시 한 번 철퇴를 휘둘렀다.

이번에도 진혁은 각도를 살짝 트는 것으로 그 공격을 흘려 넘겼다.

아니, 흘려 넘겼다고 생각했다.

치익!

어깨에서 느껴지는 시큰한 통증.

철퇴 때문이 아니다.

철퇴 주위로 피어오른 초록색 연기에 닿자 살갗이 타들어갔다.

“상한 것만 주워 먹더니 독기까지 두른 거냐?”

진혁이 더욱 거리를 벌렸다.

시스템의 설명에 따르면 이쪽의 통상 공격은 통하지 않으니, 피해 다니는 것 외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적어도 저 음식을 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방법을 아는 것과 실천을 할 수 있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우, 우욱……! 혀, 형. 이거…… 웩!”

“밥경찰 수준이 아니라 검찰청 수준이야 이거. 이걸 무슨 수로 먹으라는 건데 대체!”

이를 악물고 음식물을 쑤셔 넣으려던 이태민과 유연화가 씹던 걸 그대로 내뱉었다.

물컹물컹한 회색 고깃덩어리들이 바닥에 철퍽 떨어졌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해도 이건 도저히 못 먹겠다.

그러자 갑자기 탐식의 사도가 수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음식이라는 건 이렇게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루루 그와아아아!”

우걱! 우걱!

고깃덩어리가 목구멍을 따라 꿀떡꿀떡 넘어갔다.

[공격력이 +10만큼 상승합니다!]

[민첩성이 +12만큼 상승합니다!]

[이동 속도가 +8만큼 상승합니다!]

연거푸 나타나는 상태창들.

먹으면 먹을수록 스탯이 오른다.

가뜩이나 굵은 팔이 조금 더 커진 것 같은 건 착각이 아닐 거다.

“맛……있게 먹네. 다 좋은데 꼭꼭 좀 씹어 먹어라. 체할라.”

진혁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오오오오!”

거칠게 포효한 탐식의 사도가 다시 한 번 날뛰기 시작했다.

***

콰콰콰콰콰!

콰아앙!

더욱더 기세가 등등해진 탐식의 사도와 달리 일행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유일한 공략법을 알면서도 사용할 수 없게 됐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석상 사이를 요리조리 도망 다니고 있었지만,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전황이 압도적으로 한쪽에 쏠리자…….

“이제야 좀 얌전해졌네요.”

“남의 집 안방에 쳐들어와서 날뛰는 꼴을 보느라 속이 다 뒤틀릴 것 같았다. 이젠 어떻게 해야 가장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을지 고민 좀 해봐야겠구나.”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오싹!

공기가 얼어붙는다.

불길하고도 검은 기운이 석상들이 가득한 방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앞에서 걸어오는 흑발의 미녀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정작 위험한 건 낡아빠진 로브를 뒤집어 쓴 백날의 노파였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사도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이 마력.

이 느낌.

……틀림없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 노파가 통곡의 마녀군.’

수천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이번에는 어떤 외형으로 올지 궁금했는데.

‘저 노파가 통곡의 마녀겠군.’

드디어 만났다.

이번 레이드에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당사자를.

“명색이 마인과 보스라는 자들이 뒤쪽에 숨어 있다가 우리 체력이 다 바닥나고 나서야 쪼르르 나와? 너무 비겁한 거 아니야?”

“후후. 현명하다는 표현이 좀 더 맞지 않을까요?”

“……너는?”

“트리스탄이라고 합니다. 당신과 맞섰던 랜슬롯의 동료……라고 할까요.”

단순히 동료라고 하기엔 뭔가 조금 더 감정이 실려 있는 것 같긴 한데.

확실한 건 곱게 보내 줄 생각은 없어 보인다는 거다.

진혁이 슬쩍 유적의 입구를 향해 곁눈질했다.

“혹시라도 지원을 기대하는 거라면, 포기하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건 왜지?”

“올림포스가 있는 쪽으로 간다라 길드와 가웨인 그리고 분노를 관장하는 사도가 전부 갔거든요. 뭐, 이렇게 쩔쩔매는 꼴을 보니 굳이 협공을 할 필요도 없을 것 같긴 했지만요.”

트리스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그럴 수가…….”

청천벽력 같은 말에 마리아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마인과 유적의 보스가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기가 막힌 일인데, 설마 간다라 길드까지 배신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희망 따위는 없다.

전력 차는 심각하다 못해 아예 상대가 안 될 정도였으니까.

철저하게 각개격파 당한 뒤, 결국 앞뒤에서 포위가 되는 형국이 되겠지.

하지만.

모두가 절망에 빠진 상황 속에서도 진혁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너희가 착각하고 있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저 덩어리를 상대로 시간을 끌고 있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어.”

“흐음. 일부러 그랬다는 말인가요?”

“너희들이 기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거든. 혹시라도 꼬리를 말고 도망쳐 버리기라도 하면 추적하는 데 꽤나 골치 아파질 테니까.”

완벽하게 사냥을 하려면, 상대방이 자신이 사냥감이 아닌 사냥꾼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편이 가장 좋다.

어설픈 착각이야말로 방심으로 이어지는 가장 큰 이유였으니까.

“둘째로, 너희가 간다라와 손을 잡을 거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어.”

마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모조리 생각해 뒀다.

통곡의 마녀와 함께한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었겠지.

그러니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니라샤에게 접근할 거라는 점 또한 어렵지 않게 예상이 가능한 일이었다.

“전력을 분산해 우리와 올림포스를 각각 친다는 게 나쁜 계획은 아니야. 전술의 기본이 후방 지원을 끊고 전력을 약화시키는 거니까.”

정석 중의 정석이다.

하지만…….

정석이라는 건 그만큼 예상하기 쉽다는 뜻이기도 하다.

“허세는 적당히 부리시죠. 그 모든 걸 예측했다는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뒤늦게 상황을 끼워 맞추는 식으로 저희를 흔들 생각이라면 크게 착각하는 거예요.”

“허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어차피 조금 있으면 알 수 있을 거야. 내 말이 둘 중에 어느 쪽인지.”

“그게…… 무슨 말이죠?”

트리스탄의 목소리가 미미하게 떨렸다.

계속되는 진혁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조금은 확신을 잃어버린 것처럼.

“나 역시 후방에 대한 방비 정도는 해 뒀다는 뜻이다.”

믿을 만한 지원군을 불러 뒀다.

아마…… 너희가 준비한 것보다는 훨씬 더 강력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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