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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394화


394화. 얽히고설킨 실타래 (2)

쿠쿠쿠쿠쿠!

번개와 스파크.

각종 마력들이 한 곳에 응집되자, 미궁 전체가 흔들렸다.

“오래 기다렸다.”

“그래. 드디어 반격의 시간이로군.”

“전부다 발할라로 보내주지.”

라그나로크에 속에 있는 전사들이 어금니를 드러냈다.

비참하게 영토를 유린당하고. 수많은 동료들과 휘하의 거주자들을 잃기만 했던 지난 세월.

그 뼛속까지 사무친 한을 100배로 되돌려줄 차례다.

“이, 이게 대체….”

셰리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설마, 이 타이밍에 라그나로크에서 개입할 거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비루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41층 구석으로 도망치던 게 그들이 처한 현실이었으니까.

“…….”

충격을 받은 건 올림포스의 선발대인 테세우스 쪽도 마찬가지였다.

“테세우스 대장!”

“측면에서 거인들입니다!”

“토, 토르와 로키까지 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겁니까?”

패닉에 빠진 병사들이 테세우스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30여 명의 정예가 진혁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을 정리하는 데 충분한 건 사실이었다.

만약 안 되더라도 본대가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고.

하지만.이 많은 수의 적들을 상대하는 건 아예 계획에 없던 일이다.

테세우스가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우리가 올 것까지 계산하고 있었단 건가….’

미궁에 처음 왔을 때부터.여포와 자신들을 포함한 모든 변수들을 상정하고 있던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타이밍에 헤임달을 부른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으니.

“소수의 선발대로 움직이는 걸 좋아하더라고, 너희들. 이 정도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뿌리면 반드시 올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뭐, 생각보다 더 손쉽게 걸려줘서 이쪽으로선 고맙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하지만.”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독안에든 쥐가… 우리였군.”

완전히 외통에 몰렸다.

그러나.

스릉!

“겁쟁이 녀석들과 손을 잡았다고 기고만장해하지 마라. 애초에 최전선에서 저 녀석들을 쓸어버리던 게 바로 우리였으니까.”

“흐음. 일당백쯤은 문제없다 이건가?”

그런데 어쩌냐?

지금 이곳에 있는 괴물은 테세우스 하나만이 아닌데?

부우웅!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시무시한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파치치… 칙!

푸른 스파크와 함께 등장한 건, 북유럽 천둥의 신. ‘토르’였다.

최강의 망치라 칭송받는 묠니르가 허공 높게 솟구쳤다.

“네놈은!”

“그리스의 애송이…! 오랜만이군!”

콰아아앙!

망치와 검이 충돌했다.

소닉붐이 일어나며, 테세우스가 서 있던 지면이 아래로 꺼졌다.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수많은 거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쿠웅!

“크오오오!”

“크아아아!”

거대한 몽둥이가 가차 없이 허공을 갈랐다.

“끄아악!”

“피, 피해라!”

방패로 무장한 전사들이 그 일격에 곤죽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든든한 방어구를 갖췄다고 한들, 십 미터가 넘는 거인들의 근력을 뛰어넘을 순 없었다.

“모조리 쓸어버려라!”

“크하하! 아주 토막을 내 주지!”

도끼를 든 전사들이 미친 듯이 내달렸다.

거인들의 비호 아래 미꾸라지처럼 도망 다니는 적들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순식간에 전장이 피바다로 변했다.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고막을 쩌렁쩌렁 울렸다.

상황이 몰리자, 테세우스가 마지막 한 수를 꺼내들었다.

“아스트몰리스! 신수 해방을 허가한다!

“그 말을 기다렸습니다.”

턱수염을 기른 거구의 남자가 즉시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우우웅!

아공간이 찢어지며, 부드러운 바람이 흘러나왔다.

“히이잉!”

“히잉!”

말의 울음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새하얀 페가수스들이 거인들의 방망이를 피하며 테세우스를 향해 쇄도해왔다.

기동성이 뛰어난 건 물론, 자유로운 공중전까지 가능케 하는 사기적인 능력.

이것이 바로 올림포스가 자랑하는 최강의 신수다.

페가수스에 올라탄 테세우스가 단숨에 토르를 떨쳐내고 거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도망치는 거냐!”

“무식하게 힘만 센 멍청이와 일일이 상대해주고 있을 시간이 없다. 넌 다음에 다시 상대해주마.”

테세우스가 불의 거인의 목덜미로 향했다.

날아오는 팔을 피하고.

서걱!

그대로 목을 베어버렸다.

“크오오오!”

둔중한 거인의 몸으로는 날렵하게 날뛰는 페가수스를 잡아낼 수 없었다.

하나. 둘….

페가수스들이 거인들 사이를 누빌 때마다 폭포수 같은 핏줄기가 뿜어졌다.

“활을 쏴라!”

“날파리처럼 날아다니기는!”

“전사의 긍지도 모르는 놈들 같으니라고!”

거리에서 차이가 벌어지니,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아까와는 달리 전장에 맴도는 기류가 묘하게 바뀌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고유 능력 ‘트리플 매직’이 발동됩니다!]

진혁의 머리 위로 무수히 많은 마법진들이 나타났다.

육망성 속에 잠재되어 있는 서로 다른 원소들.

“가만히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그런 사기적인 걸 꺼내들면 내가 나설 수밖에 없잖아.”

어느새 검을 집어넣은 진혁이 양 손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천마신공 때와는 전혀 다른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어이가 없군. 페가수스에게 마법이 통할 거라 생각한 거냐?”

“그냥 마법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섭섭한데….”

이건 평범한 것과는 조금 다를 거다.

콰콰콰콰콰콰!

불과 얼음이 날아다니는 페가수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좌표 계산이 끝난 터라, 명중률은 80%에 육박했다.

“으… 으아아악!”

“끄으으… 크아아!”

결과는 참혹했다.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새카맣게 탄 페가수스들이 지면으로 추락했으니까.

그저 테세우스를 비롯해 가장 강한 몇몇 전사들만이 가까스로 폭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위력의 마법이…. 페가수스가 견디지 못할 정도라고?”

페르세우스가 타던 원류는 아니었지만, 여기 있는 페가수스들도 엄연히 그 종(種)을 이은 신수들이다.

마계 리치들의 마법 폭격에도 견디는 게 바로 이들이란 말이다.

하지만,

테세우스가 간과했던 건….…

리치들 수백보다도 강한 마법 계열 플레이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성이 있다는 건, 그저 견디는 힘이 다른 놈들보다 뛰어나다는 것뿐이지. 아예 면역인 건 아니야.”

진혁의 왼손에 푸른 마력이 일어났다.

파츠츠….

오른손에 붉은 화염이 솟구쳤다.

화르륵!

‘빙하조형’으로 만든 눈송이들이 ‘화룡의 숨결’로 만든 불꽃과 함께 흐드러졌다.

“제우스에게 전해. 위그드라실을 정복하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그리고 두 개의 마법 사이로.

‘데이라이트’가 한 줄기 빛이 되어 허공을 가로질렀다.

***

하얀 빛줄기 한 번으로 인해 모든 게 달라졌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셰리가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이미 상황은 통제가 불가능한 지경.

남은 건 실패를 인정하고 도망치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할까?

‘이번 임무를 실패했다간 어차피 죽게 될 거야.’

니알라토텝은 실패에 그리 관대한 성격이 아니다.

특히나 공을 들이고 있는 일을 망친다면 더욱더 말이다.

정말 운이 좋아 살아남는다 해도 최상층과의 연줄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셰리의 시선이 진혁에게 향했다.

으득.

저 가증스러운 인간만 없었다면…

아니, 저 인간이 그저 다른 이들처럼 이용해먹기 쉬운 인간이었다면,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사용해 태양의 샘물을 손에 넣었을 거다.

“어떻게 해서든…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수를 마련해 오겠다.”

조용히 숨어 있다 진혁이 태양의 샘물을 찾아내는 타이밍만 잘 노린다면, 아직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흐응. 미안하지만,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겠구나. 계약자가 널 보내라고 하지 말았거든.”

셰리의 등 뒤에서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 누구냐!”

셰리가 황급히 옆으로 몸을 날렸다.

분명, 전장과는 떨어진 구석으로 몸을 숨겼거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어떠한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촤촤촤촤!

수십 마리의 박쥐들이 모이더니 이내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정확히는 뱀파이어의 형상을.

“당신은….”

하필이면!

셰리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

50층을 제외한다면, 가장 싸우고 싶지 않던 괴물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호오. 날 아는 것이냐?”

“모를 리가 없죠. 한때 상층부의 거대 세력과 신격들도 경원시했던 아타락시아의 진조를요.”

“……음? 내가 뭐라고?”

“역대 진조들 중에서도…. 가장 강했던 분이라고 했었습니다.”

“더 해봐.”

“예?”

“더 해보라고. 빨리. 내가 얼마나 강하고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위대한지 앞으로 3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으니까 빠짐없이 꼼꼼하게 읊어봐.”

지금까지 진혁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엘리스가 더욱 셰리를 닦달했다.

“지금 절 놀리는 건가요?”

“아니, 나 진심인데? 귀에 꿀 떨어지는 것 같으니까 빨리 좀 더 해줘.”

엘리스가 어린아이처럼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끝까지! 좋습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힘을 잃은 이상 예전만은 못할 터. 저 역시 그리 쉽게 당하진 않을 겁니다.”

셰리가 단검을 잡은 채 전투자세를 취했다.

“진짜 싸우려고? 단검만 주면 끝날 일인데 일을 크게 만들려고 하네.”

[고유 능력 ‘블러드 로드’가 발동됩니다!]

“뭐. 굳이 벌주를 마시고 싶다면 마시게 해드려야지. 그 눈으로 똑똑히 지켜 봐 . 내가 예전만 못한지 아닌지.”

붉은 핏방울들이 지면에서 하늘로 솟구쳤다.

***

쿠쿠쿠쿠!

몰아치는 폭풍 속. 진혁이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전투.

남은 건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뿐이다.

‘셰리 쪽이야 엘리스가 알아서 잘 처리해줄 테고….’

테세우스까지 처리하면 베스트지만, 그건 좀 힘들 거다.

페가수스를 타고 있는 이상, 제 한 몸쯤은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상관없다.

‘이곳에서 빠져나가 올림포스 쪽 지원을 부른다고 해도 놈들이 올 때쯤엔 이미 상황은 끝나 있겠지.’

놈들이 발견할 수 있는 거라곤 텅 빈 소패성이 전부일 것이다.

저벅.

진혁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 앞에선 천유성과 여포가 치열하게 치고받고 있는 게 보였다.

콰콰콰콰콰콰!

마치, 두 개의 작은 소용돌이가 충돌하고 있는 것만 같다.

“진짜 대단하긴 대단하네. 치마 입고서도 저렇게 잘 싸울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너… 진짜로 죽고 싶은 거냐?”

천유성이 싸우다 말고 진혁을 죽일 듯 노려봤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자기 나름대로 부끄럽긴 한 모양이다.

“어허. 기껏 도와주려고 온 사람한테 협박하지 말고. 어떻게, 저쪽은 대충 마무리됐는데 넌 혼자서 가능하겠어?”

일대일이면 모를까.

지금 천유성은 여포와 부관들에게 둘러싸여 맹공을 받고 있었다.

누군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서서히 말라죽게 된다는 뜻이다.

콰앙!

“죽어라!”

여포가 더욱 거칠게 몰아붙였다.

적토마에서 휘두르는 창은 아무리 천유성이라고 해도 받아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물론, 그 사이사이로 날아오는 창과 화살 역시 매섭긴 마찬가지였고.

“……큭!”

천유성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계속 고집을 부리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도와…줘라.”

결국, 천유성이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 천하의 검성이 부탁하는 건데, 당연히 도와줘야지. 근데 말이야.”

진혁이 손바닥을 쫙 폈다.

“방천극이랑 나머지 아이템들은 전부 내 거다, 알지?”

당연한 말이지만, 거절 따윈 없다.

싫으면 죽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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