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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 379화


제 352 장 수구초심(首丘初心) (2)

소지산은 처음부터 낙하구구검의 절초들을 연거푸 사용했다. 이미 오늘 살계(殺戒)를 열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터라 그의 손속에는 추호의 자비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파파파팍!

소지산을 향해 맹공을 가하려던 삭주삼살은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로 폭발하듯 줄지어 피어오르는 수십 개의 검영에 안색이 핼쑥하게 굳어졌다. 종남파에 신검무적 외에 이와 같은 놀라운 검법을 펼칠 수 있는 자가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검영들은 빠른 속도로 세를 확산하더니 이내 무서운 기세로 그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수십 개의 칼날이 달린 거대한 수레바퀴가 질주해 오는 것 같았다.

“제…… 제길!”

그들 중 누군가의 경악에 찬 외침이 흘러나왔다. 삭주삼살은 제각기 자신들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무공으로 맞섰으나, 이내 급격한 열세에 처하고 말았다.

일 대 삼의 대결이었음에도 오히려 그들이 각기 세 사람에게 공격당하는 것처럼 정신없이 몰리고 있었다. 그만큼 소지산의 검은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세찬 검광을 끊임없이 뿌려대고 있었다.

갈수록 검광이 뿜어져 나오는 속도와 기세가 거세어지자 삭주삼살은 간신히 막거나 피하는 것에만 급급할 뿐 체계적인 반격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원래 삭주삼살은 개개인의 무공 실력보다는 특이한 합격진으로 명성을 얻은 자들이었다. 처음부터 자신들의 장기인 합공으로 대항을 했으면 소지산도 쉽게 그들을 상대할 수 없었을 텐데, 방심하여 다소 느슨하게 맞섰다가 자신들의 실력을 절반도 발휘해 보지 못하고 각개 격파를 당하게 생긴 것이다.

뒤늦게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그들은 자신들의 합격술인 삼살마라진(三殺魔羅陣)을 펼치려 했으나, 각각의 위치가 너무 동떨어져서 있어서 제대로 된 진형을 짤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일단 진부터 구축해야 한다!’

삭주삼살은 서로의 눈빛으로 의견을 교환한 후 다소간의 피해를 무릅쓰고라도 삼살마라진의 진형을 짜기로 결심했다.

하나 그들의 그런 의도는 소지산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소지산은 그들이 다급한 와중에도 특정한 위치를 고수하려는 것을 보고 그들이 무언가 수작을 부리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소지산의 검이 다시 한 차례 변하며 거센 파도와 같은 기세로 그들을 향해 몰아쳐 갔다.

마침 황급히 검광을 피하던 삭주삼살의 셋째가 눈을 번쩍 빛냈다. 삼살마라진의 방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옆으로 반 장쯤 더 이동해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소지산의 검초가 새롭게 변하면서 공세의 방향이 살짝 바뀌면서 그쪽 방향의 공격이 다소 허술해진 것이다.

그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재빨리 그쪽으로 이동했다.

그 순간, 다른 방향을 향했던 검광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제야 그는 빈틈으로 보였던 그 공간이 사실은 소지산이 만들어낸 함정임을 깨닫고 사색이 되었으나, 이미 그의 몸은 수십 개의 검광 아래 그대로 노출되어 버렸다.

파파팟!

“크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그는 시뻘건 피를 사방으로 뿌리며 허물어지듯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가뜩이나 간신히 소지산의 공격을 버티고 있던 삭주삼살의 두 사람은 동료가 처참한 시신이 되어 버리자 더욱 손발이 어지러워졌다가 이내 한 사람씩 비슷한 꼴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으윽!”

삭주삼살의 마지막 인물마저 검하고혼(劍下孤魂)이 되어 버리자 그제야 소지산은 검을 거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갈외를 비롯한 장승표와 소년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평소에 침착하고 조용하기만 했던 소지산의 또 다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우문화룡은 두 명의 장한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팽팽하던 접전이 소지산의 승리를 기점으로 조금씩 우문화룡의 우세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두 명의 장한들이 삭주삼살의 죽음에 불안감을 느꼈는지 급격히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아직도 청년과 중년인이 무시무시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의 격전이 어찌나 치열했던지 그 일대가 폐허처럼 변해 버렸고, 그들의 전신에도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다. 그야말로 보는 이의 모골을 송연하게 할 만큼 지독한 혈전(血戰)이었다.

중년인은 머리를 묶고 있던 두건이 풀어져 봉두난발을 한 채 옆구리와 허벅지에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유난히 창백한 얼굴에 괴이한 미소를 머금은 채 미친 듯이 양손을 휘두르고 있었다. 진득한 살기로 번들거리는 두 눈과 얼굴에 떠올라 있는 미소만 하면 광인(狂人)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나, 갈고리처럼 변한 손가락과 손목, 팔꿈치 등 상반신 전체를 이용한 무공은 그야말로 가공스러운 것이었다.

소지산조차도 그 중년인의 박투술(搏鬪術)에 섬뜩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를 상대하는 청년의 검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화려한 변화도 없이 아무렇게나 찔러대는 검초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상대의 요혈(要穴)만을 노리는 살초(殺招)들이어서 잠깐이라도 방심했다가는 그대로 숨이 끊어지고 말 것이 분명했다. 일체의 변식을 생략하고 오직 상대의 숨통을 끊기 위해 날아드는 그 검을 보고 소지산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무서운 검이구나. 오직 살인만을 위한 검이라니, 대체 이런 검을 창안한 사람의 심성은 얼마나 잔인한 것일까?’

청년 또한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는 데다, 이마에 상처를 입어서 얼굴이 온통 땀과 피로 물들어 있어 용모를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었다.

피 묻은 머리카락 사이로 번뜩이는 청년의 두 눈은 무섭도록 냉정하게 가라앉아 있어 광기와 살기로 번들거리는 중년인의 모습과 좋은 비교가 되었다.

무심코 청년을 바라보던 소지산의 고개가 살짝 갸웃거렸다.

어딘지 모르게 청년의 모습이 눈에 익었던 것이다. 소지산은 얼굴을 절반이나 가리고 있는 청년의 젖은 머리카락을 치우고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

‘혹시…….’

무언지 모를 예감에 그의 가슴이 조금씩 두근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빠르게 그에게 다가왔다.

“소 노제.”

어느새 다가온 장승표의 얼굴에는 다급한 표정이 가득했다.

“어서 빨리 북쪽으로 가보게.”

소지산은 장승표의 초조한 모습에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방 소매가 적들 중 실력이 뛰어난 자들 몇 명을 그쪽으로 유인하여 끌고 갔네.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고수들 같으니 더 늦기 전에 어서 빨리 가보는 게 좋겠네.”

소지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곳에 방취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그녀가 본산 쪽에 있는 줄 알았거늘 그렇지 않다고 하자 절로 마음이 다급해진 것이다.

“그녀를 쫓아간 자들은 누구입니까?”

“정확히 모르네. 무슨 삼흉(三兇)인가, 삼악(三惡)인가 하는 자들일세. 하지만 방 소매가 몇 수 겨루어 보고는 표정이 좋지 않게 변한 걸 보면 보통 고수들이 아닌 게 분명하네.”

그때 멀리 떨어져 있던 제갈외가 그의 말을 들었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황하삼흉(黃河三兇)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 바보 자식아!”

장승표가 자기의 머리를 툭 쳤다.

“아, 그렇지. 황하삼흉! 그런 이름이었네.”

소지산의 입에서 낮은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황하삼흉이라면 막씨삼형제(莫氏三兄弟)?”

황하삼흉은 황하 일대를 주름잡는 흑도의 고수들이었다.

거대한 황하를 배경으로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르고 다녔으나, 그들 개개인이 모두 뛰어난 고수들일 뿐 아니라 행적이 신출귀몰하고 거처가 일정치 않아서 누구도 그들을 막거나 제지하지 못했다.

황하 일대에서는 지옥의 사신(死神)보다도 더욱 무서운 존재로 군림하는 그들이 이곳에 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검단현의 입김이 그들마저 움직일 정도였단 말인가?’

소지산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황하삼흉이라면 방취아로서는 결코 당해낼 수 없었다. 그들 중 한 명이라면 모르지만, 그들 셋이 모두 모여 있다면 소지산도 이긴다고 자신할 수가 없는 무서운 실력자들인 것이다.

“그녀가 어느 쪽으로 갔습니까? 정확한 위치를 아십니까?”

다급히 물어보는 소지산의 말에 장승표는 답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네. 방 소매가 태화전 쪽으로 움직이자 그들과 한두 명이 그녀의 뒤를 따라간 것이 내가 본 전부일세. 그 후에 수신대의 고수들이 다른 자들을 막는 사이 제갈 노인과 나는 다른 제자들을 데리고 암동으로 피신한 것일세.”

소지산은 절로 마음이 급해져서 그에게 답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황급히 신형을 날렸다.

황하삼흉 외에도 몇 명이 더 따라붙었다면 그녀가 아무리 신법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들의 추격을 뿌리치기 힘들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태화전 너머의 북쪽 계곡이 본산 일대에서 가장 지형이 험하고 벼랑이 가파르다는 것이었다. 그 일대는 방취아가 어려서부터 신법을 연마하기 위해 자주 뛰어다닌 곳이기에 다른 누구보다도 지형에 밝고 익숙한 곳이었다.

소지산은 모쪼록 그녀가 지리상의 이점을 잘 살려 자신이 갈 때까지 버티고 있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듯이 달려가는 소지산의 마음과는 달리 북쪽으로 갈수록 지형은 험악해지고 산세는 가팔라졌다. 그곳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는다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이었다.

다행히 소지산은 어렵지 않게 싸움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점점이 뿌려져 있는 핏자국과 나뭇가지에 걸려 찢긴 옷자락을 발견한 것이다. 그 옷자락이 방취아가 즐겨 입고 있는 의복의 일부분임을 알아본 소지산의 얼굴이 침울하리만치 무겁게 굳어졌다.

흔적을 발견한 소지산은 더욱 빠르게 산을 올라갔다.

그가 작은 하나의 능선을 넘는 순간, 멀리서 폭음 소리가 들려왔다.

콰앙!

소지산은 가쁜 숨을 몰아쉴 사이도 없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전력을 다해 신형을 날렸다.

유난히 기암괴석이 많고 뒤쪽으로 절벽이 솟아 있는 작은 공터 앞에서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공터를 향해 가던 소지산은 공터의 한쪽에 시신 한 구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나 이내 그것이 여자가 아닌 남자의 시신임을 알아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목에 커다란 구멍이 난 채 쓰러져 있는 그 시신은 언뜻 보기에 등 뒤에서 암습을 당한 모습 같았다.

그 시신에서 멀지 않은 곳에 두 명의 중년인과 한 명의 청년이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소지산은 두 중년인이 입고 있는 의복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신의 그것과 똑같음을 보고 그들이 바로 황하삼흉임을 알아차렸다. 황하삼흉을 상대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청년을 본 소지산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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