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 390화
제 357 장 탐색흉수(探索兇手) (1)
종남산의 하늘에는 오늘따라 짙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금시라도 비가 퍼부을 듯 흐릿한 날씨에 기온마저 평상시와 달리 차갑고 서늘해서 음산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장례식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우울하고 무거웠다.
장례식을 지켜보는 종남파 고수들의 표정 또한 무겁기는 매한가지였다.
열다섯 명의 수신대원과 두 명의 빈객, 그리고 한 명의 문하제자.
이번 습격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수는 열여덟 명에 달했다. 그에 비해 장례식에 참석한 종남파 소속의 제자들은 열한 명뿐이었다. 한 명의 사숙조와 두 명의 사숙, 네 명의 일대제자, 세 명의 이대제자, 그리고 사 년 만에 돌아온 사람 하나…….
장례식장에는 그들 외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와 있었지만, 종남파에 적(籍)을 둔 자들은 그들뿐이었다.
묵묵히 향을 피우고 지전(紙錢)을 태우는 가운데,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늘어선 만장(輓章)이 이리저리 휘날리는 모습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소지산은 하늘을 따라 올라가는 지전의 검은 잔재들을 무심한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깊게 가라앉은 그의 두 눈에는 무어라 형용키 어려운 복잡한 빛이 끊임없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때 한 줄기 그윽한 내음과 함께 누군가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가가.”
소지산은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것이 방취아의 음성임을 알 수 있었다.
방취아의 안색은 유난히 창백했고, 항상 붉은 빛이 감돌았던 입술마저 핏기가 별로 없어서 초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소지산은 묵묵히 그녀를 돌아보고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방취아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꼬옥 움켜잡았다. 마주 잡은 손바닥 사이로 소지산의 체온이 느껴지자 방취아는 자신도 모르게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질식할 듯 무겁고 서늘했던 주위의 분위기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난 것 같았던 것이다.
종남산에서의 두 번째 장례식이었다. 사 년 만에 치러지는 장례식이었지만, 분위기는 그때와 조금 달랐다. 사 년 전, 사부의 장례식 때는 불안한 종남파의 미래 때문에 암담한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앞날에 대한 작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장례식의 분위기는 무겁고 장중했으나, 암울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진한 슬픔과 씁쓸함 속에 말로 형용키 어려운 짙은 분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슬픔은 이제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떠나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고, 씁쓸함은 또다시 본산을 외부의 침략으로 더럽히고 말았다는 수치심 때문이었으며, 분노는 이러한 사태를 야기한 자들에 대한 원한 때문이었다.
그래서 장내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가운데 무언지 모를 긴장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소한 불씨라도 닿으면 그대로 터져버릴 듯한 격렬함이 구석구석에 담겨 있었다.
종남파를 습격한 자들의 수는 모두 열여섯 명이나 되었지만, 그들 중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이 뒤늦게 달려온 노해광과 소지산의 손에 쓰러졌으며,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두 명 또한 사태가 절망적이라는 것을 알고는 스스로의 장검으로 자진(自盡)해 버렸던 것이다.
때문에 그들의 배후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종남파를 습격하여 혈겁을 일으켰는지는 영원한 미궁 속으로 빠져버리게 되었다. 하나 그렇다고 의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 중 대부분이 한때 화산파에 입문했다가 파문당한 자들이라는 말이 시중에 돌면서 온갖 흉흉한 소문과 의심의 눈초리가 화산파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화산파는 일체의 대응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봉문(封門)이라도 한 것처럼 서안과 섬서성 일대에 파견한 제자들을 모두 본산으로 불러들이고 산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는 외부인의 출입마저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화산파를 향한 의혹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으나, 그렇다고 굳게 닫힌 화산파의 문을 함부로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종남파의 고수들 또한 이번 흉사(凶事)의 배후에 화산파의 검단현이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나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이상 아무리 그들이 회람연에서 승리했다고 해도 화산파를 직접 추궁할 수는 없었다. 장례식의 분위기가 무겁고 침중한 가운데 흉흉한 기운이 감도는 것은 바로 흉수를 알면서도 제대로 복수할 수 없는 작금의 답답한 상황에 대한 울분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눈앞에서 가장 친했던 사형제의 죽음을 직접 목격해야 했던 소지산과 방취아의 지금 심정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것이었다.
소지산과 방취아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사람의 위패에 고정되었다.
열여덟 개의 위패들 중 가장 구석에 세워진 평범하기 그지없는 작은 위패.
<두기춘 신위(神位).>
특별한 별호나 호칭도 없이 달랑 이름 석 자만 적힌 위패는 다른 어느 것보다 볼품없고 초라해 보였다. 하나 그 위패를 보는 두 사람의 표정은 더할 수 없이 착잡하고 침울한 것이었다.
스스로 종남파를 떠난 데다 이번 습격의 중심인물 중 하나라는 의구심 때문에 그의 위패를 세우는 것에 의견이 분분했으나, 소지산이 손수 그의 이름을 적은 위패를 만들자 누구도 더 이상은 반대하지 않았다.
소지산은 그 위패에 <종남파 이십일대 제자>라는 문구를 넣고 싶었으나, 그것은 장문인인 진산월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두기춘의 위패를 다른 열일곱 명의 희생자 위패들 사이에 세워두는 것뿐이었다.
지난밤 내내 방취아는 그 위패를 윤이 반질반질 나도록 닦고 또 닦았다. 그래서인지 소지산의 서툴고 투박한 손길로 만들어졌음에도 다른 어떤 위패보다도 더욱 빛나고 고귀해 보였다.
한동안 묵묵히 두기춘의 위패를 바라보고 있던 소지산이 문득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언제 다가왔는지 한 사람이 그들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들처럼 위패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숙!”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노해광이었다. 노해광은 심유한 눈으로 두기춘의 위패를 응시하고 있다가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예전에 본 파를 뛰쳐나가 불과 일 년 만에 화산파의 촉망받는 일대제자가 된 놈이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일어 그에 대해 조사해 본 적이 있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많이 엇갈렸다. 어떤 사람은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한 자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많은 재주를 가지고 있는 숨은 잠룡(潛龍)이라고 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화려함을 좋아하여 밝은 곳만을 쫓아다니는 부나방 같은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지.”
“…….”
“직접 만나본 그놈은 정말 괜찮은 인재였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밑으로 데리고 오고 싶었을 정도로 말이지. 배신의 원죄(原罪)를 지고 있는 그놈의 말로(末路)가 뻔히 보였지만 그래도 한때 본 파에 몸을 담았다는 인연 때문인지 내 예상이 빗나가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결국은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
노해광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여 소지산의 얼굴로 향했다. 소지산의 낯빛은 여전히 무거웠고, 두 눈은 어느 때보다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노해광은 깊은 바다처럼 일렁이는 그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나직하면서도 분명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일전에 너는 그가 세상에 보기 드문 효자이며, 결코 악한 인물이 아니라고 했지. 결국 그를 제대로 본 사람은 너 하나뿐이었다. 이제는 누구도 그를 본 파의 배신자이며 후안무치한 자라고 욕하지 않을 것이다.”
소지산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 문득 입을 열어 눈빛만큼이나 무겁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조금 전에 분향소의 한쪽 담벼락에서 남들의 눈을 피해 소리 없이 울고 있는 한 여인을 보았습니다. 우는 모습이 너무도 처량하여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화월루에서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양소선이라는 여인이라고 하더군요.”
이번에는 노해광이 말없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알고 보니 그녀는 기춘과 미래를 약속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던 모양입니다. 정 사제에게 본 파의 위기를 알려준 것도 그녀였다고 합니다. 기춘이 그녀를 통해 정 사제에게 서신을 전해준 거지요. 그녀는 설마 그 서신이 정인(情人)의 마지막 유품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두기춘의 위패를 응시하는 소지산의 눈빛이 더할 수 없이 침중해졌다. 좀처럼 말이 없는 소지산으로서는 정말 드물게 많은 말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그가 좋은 녀석이었으며, 이제 남들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게 되었다고 말해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고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가 그녀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떠나기 전에 그녀는 몇 번이고 망설이다 어렵사리 저에게 묻더군요. 그는 어느 파의 제자냐고 말입니다. 저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화산파에서는 이번 일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그를 파문했다고 정식으로 선포했고, 본 파에도 그의 자리는 없으니 말입니다. 제가 억지로라도 그의 위패를 저곳에 올려놓은 것은 갈 곳도 없고 머물 곳도 없는 그 녀석에게 마지막 작은 쉼터라도 마련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소지산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노해광 또한 별다른 말이 없었다.
이제껏 한쪽에서 그들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방취아만이 자신의 두 손을 꼬옥 움켜쥔 채 목구멍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은 울어서는 안 되었다. 적어도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복수의 칼날을 예리하게 다듬은 채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진정한 흉수의 목에 칼을 꽂을 기회를 엿보아야 할 때였다.
흉수의 목을 가르고 그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아야만 위패의 넋을 위로할 수 있으며, 그때 비로소 그를 위해 한 줌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강호인(江湖人)이 비명에 간 친우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방취아는 마음속의 슬픔을 내색하지 않고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음울하게 가라앉아있던 노해광의 눈에 서늘한 빛이 감돌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놈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왔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놈은 실종되었다.”
소지산과 방취아의 시선이 못 박히듯 그에게 고정되었다.
“실종이라니요? 종적을 감췄다는 말입니까?”
“회람연이 끝난 후 그놈은 혼자 힘으로는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지. 그래서 그놈의 수하들이 그놈의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동원당(東原堂)으로 데려간 것까지는 확인을 했다. 그런데 그 이후 그놈의 행적을 찾을 수가 없다.”
동원당은 화산파의 속가제자 출신이 운영하는 의방(醫房)으로, 내외상을 치료하는데 탁월한 재주를 지닌 의원들이 많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처음으로 노해광의 눈썹이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살짝 찡그려졌다.
“본 파의 일 때문에 동원당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 것이 신경 쓰여서 사람들을 풀어 장안 일대를 샅샅이 뒤졌는데, 아직까지도 행방을 찾지 못했다.”
회람연에서 화산파를 꺾은 후 종남파의 위세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정도로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게다가 노해광의 손발과도 같은 흑갈방이 적류문과의 처절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서안의 흑도를 완전히 장악한 후로는 적어도 서안 일대에서는 그의 눈과 귀를 피할 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몸으로는 움직일 수도 없는 중상을 입은 자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방취아가 조심스런 음성으로 물었다.
“화산파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요? 화산에서 비밀리에 고수들을 파견해서 그를 데려갔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노해광은 고개를 저었다.
“화산파에는 가지 않았을 거다. 그놈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한세일과 단우진이 모두 꺾인 후, 화산파에서는 그동안 눌려있던 온건파가 힘을 얻으면서 그들 사제의 비호세력은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었다. 만약 그놈이 화산파로 돌아갔다면 어떤 식으로든 내게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숙께서는 그자가 장안 어딘가에 잠적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놈의 몸 상태로는 아무리 영약을 복용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다고 해도 절대로 먼 길을 움직일 수 없다. 그러니 필시 장안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방취아는 노해광의 세력이 서안에 얼마나 넓고 깊게 퍼져있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의아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사숙께서 찾지 못하셨다면…….”
노해광의 눈빛에 기광이 번뜩였다.
“누군가의 조력을 받고 있다는 말이겠지. 내 눈을 가릴 만큼 강력한 누군가가 말이지.”
방취아는 그제야 깨달은 듯 흠칫 놀랐다.
“사숙께서는 짐작 가시는 점이 있으시군요.”
“나는 이미 사람을 풀어 장안 전체에 은밀히 그놈이 본 파의 원수이며, 그를 숨겨두는 자는 본 파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혀 놓았다. 그럼에도 이틀이 지나도록 그놈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은 건 그놈이 본 파를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자의 비호를 받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 종남파의 위세와 명망은 서안을 넘어 섬서성과 중원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종남파를 적으로 돌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가 과연 서안에 존재할까?
방취아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았으나, 그런 인물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녀의 자만이나 착각이 아니라 강호의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분명한 현실이었다. 종남파는 어느새 강호인들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숙께서는 정말 그런 인물이 존재한다고 믿으시나요?”
노해광은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적어도 한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재차 물었다.
“그가 누구인가요?”
노해광은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평상시와 달리 침중하기 그지없는 그의 모습에 방취아가 긴장하여 절로 숨을 멈추었을 때, 노해광의 입에서 어느 때보다 무거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소마 신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