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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 411화


제 363 장 괴인교리(怪人狡狸) (3)

대라삼검이란 말을 들었을 때부터 진산월은 왠지 가슴 한구석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교리 같은 인물이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검법이라고 할 정도의 무공이라면 대체 어떠한 것일까? 진정 그러한 무공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강호에 알려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막상 교리의 입에서 조익현이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진산월의 마음은 오히려 담담해질 수 있었다. 그의 뇌리에 한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교리가 최고의 검법이라고 인정한 삼 초의 검법!

그리고 종남파 사상 최고의 고수였던 검선 매종도가 남긴 세 개의 취와미인상!

전혀 다른 두 무공이 왠지 유사하다고 느낀 것은 진산월의 착각일 뿐일까?

대라삼검은 그중 한 초식의 절반만으로도 당대 제일 검객인 진산월로 하여금 전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또한 취와미인상은 하나하나에 담긴 비밀을 풀기 위해 조익현과 석동 같은 무공의 절대천재들이 수십 년의 세월을 바쳐야만 했다.

두 무공의 연관성에 대해 조익현이라는 공통점이 없더라도 진산월로서는 충분히 의심해볼 만한 일이었다. 하물며 대라삼검의 한 초식인 대라궁해를 조익현이 완벽하게 익히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의심이나 착각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래서 진산월이 교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대라삼검의 다른 두 초식에 대해서도 말해줄 수 있겠소?”

교리의 대답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다른 한 초식은 대라장천(大羅長天)이라는 것이오. 마치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보듯 호탕하기 그지없는 초식이오. 빠르고 주저함이 없는 강맹함을 가지고 있지.”

그 이름 또한 진산월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그 초식에 대한 교리의 설명도 곱씹어볼 구석이 있는 묘한 것이었다.

“마지막 초식은 어떤 거요?”

지금까지 진산월의 물음에 순순히 대답하던 교리가 이번에는 어찌 된 일인지 멋쩍은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한 초식의 이름은 나도 모르오.”

진산월이 그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그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으나 교리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직은 아무도 익힌 사람이 없으니 그 초식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도 없소.”

진산월은 교리의 말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익힌 사람이 없다고 해도 초식의 이름은 있을 게 아니오?”

“대라삼검의 초식들은 처음 익힌 자가 이름을 붙일 자격을 가지고 있소. 대라궁해도 그랬고, 대라장천도 마찬가지요. 세 번째 초식은 아직 아무도 익히지 않았으니 당연히 이름을 붙일 수 없었던 거요.”

진산월은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혹시 대라삼검이란 이름도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제일 처음 세 초식 중 하나를 익혔던 조익현이 붙인 것이오. 그 전에는 아무런 이름도 없었지. 조익현은 첫 번째 초식을 완성하고 대라궁해라 이름 지었고, 세 초식을 아울러 대라삼검이라 불렀소. 두 번째 초식을 완성한 사람 또한 그를 따라 자신이 완성한 초식에 대라장천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이오.”

“…….”

“세 번째 초식은 아직 익힌 사람이 없으니 자연히 이름이 없을 수밖에 없었던 거요. 하지만 머지않아 그 초식에도 이름이 붙게 될 것 같소.”

“누군가가 그 초식을 익히고 있단 말이오?”

진산월의 물음에 교리는 묘한 빛을 띤 시선으로 진산월을 쳐다보았다.

“얼마 전에 조익현이 세 번째 초식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얻었다고 하더군.”

‘열쇠’라는 말은 상징적인 의미였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진산월의 뇌리에 봉황금시가 떠오른 것은 단순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굳게 잠긴 천룡궤를 열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 봉황금시!

천룡궤에는 조익현과 석동이 얻지 못했던 마지막 취와미인상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얼마 전에 강일비에게 봉황금시를 넘겨주었지 않은가?

강일비에게 건네진 봉황금시의 최종 목적지는 과연 어디였을까?

그동안 그의 머릿속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던 많은 생각의 단편들이 조각을 맞춘 듯 하나씩 짜 맞추어지더니 이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진산월은 어느 때보다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조익현이 얻었다는 세 번째 초식은 혹시 하나의 미인상에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오?”

교리는 말없이 진산월을 응시하고 있었다. 진산월의 말이 자신의 대답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산월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재차 질문을 던졌다.

“대라삼검의 두 번째 초식인 대라장천을 익힌 자의 이름은 혹시 석동이 아니오? 조익현과 석동이 익힌 대라삼검이란 혹시 세 개의 미인상에 새겨진 무공을 이르는 말이 아니오?”

교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진산월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교리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 세 개의 취와미인상이 본 파의 사조인 태을검선의 유진(遺眞)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소?”

교리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었소.”

진산월의 눈은 어느 때보다 강렬한 빛을 번뜩인 채 교리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지난 백 년간 조익현과 석동 두 사람이 본 파에서 파생된 무공을 두고 강호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투를 벌여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언뜻 교리의 무심한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우스운 일이지.”

“그건 무슨 의미요?”

교리는 희미하게 웃었으나, 그의 두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말 그대로의 의미요. 그들 두 늙은이들은 대라삼검만 얻으면 세상을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하에 백 년 동안 추악한 싸움을 일삼아 왔소. 하지만 생각해 보시오. 대라삼검이 정녕 태을검선이 남긴 비학(秘學)이라면 그건 이미 이백 년 전에 만들어진 무공이란 뜻이오.”

그의 음성은 평소와 다름없었으나, 진산월에게는 어느 음성보다 뜨겁고 격정적인 열기가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미 이백 년이나 지난 무공을 얻기 위해서 그들은 중원은 물론 서장까지 발칵 뒤집어 놓았고, 수많은 피를 강산(江山)에 흘리게 만들었소. 이백 년 전에 만들어진 낡은 무공 하나를 얻기 위해서!”

침착하면서도 차분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안에 담긴 격정과 분노를 느낄 수 있는 그러한 음성이었다.

진산월은 태을검선의 비학이 이백 년이나 지난 낡은 무공이라는 교리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 비학을 얻기 위해서 종남파의 많은 고수들이 흘린 땀과 눈물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 그 무공 하나를 얻기 위해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는 부분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장무림과 중원무림의 세 번에 걸친 치열한 싸움도 그 배후를 따져보면 결국 그 바탕에는 조익현과 석동의 대립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대립의 여파는 지금까지도 천하를 뒤흔들고 있었다.

진산월로서는 단 두 사람의 행보 때문에 강호무림이 백 년간이나 크고 작은 소란에 휩쓸렸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종남파는 어찌 보면 그 소란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 아니겠는가?

교리의 생각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는 그들의 그러한 행태를 제지할 때가 되었소. 당신은 어떻소?”

진산월은 지금까지 교리가 조익현의 지시를 받거나 행동을 같이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었는데, 이제 비로소 교리와 조익현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기에 교리의 물음에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교리의 무심한 눈에 평소와는 다른 기광이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하려 하오.”

“무엇이오?”

“조익현과 석동은 어느 한 사람이 제어할 수 없는 자들이오. 하지만 우리라면 그들 중 한 사람은 가능하지. 내가 조익현을 맡겠소. 당신이 석동을 맡아주시오.”

진산월은 뜻밖의 제안에 안광을 번뜩였다.

“맡는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이오?”

“더 이상 그들로 하여금 이전과 같은 행세를 할 수 없게 만든다는 말이오. 어떤 식으로든.”

진산월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왜 조익현을 맡으려 하오?”

조익현은 대라삼검의 초식 중 두 개를 얻었으니, 석동에 비해 한발 앞서 나갔다고 할 수 있었다. 둘 중 상대하기 더 까다로울 게 뻔한 조익현을 교리가 맡겠다고 하니 진산월로서는 의구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교리의 대답은 분명했다.

“조익현에 대해 당신보다는 내가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오.”

“그가 대라삼검의 초식을 두 개나 익혔는데도 말이오?”

언뜻 교리의 얼굴에 의미를 알기 어려운 미소가 떠올랐다.

“두 개가 아니라 세 개라 해도 마찬가지요.”

“세 개라니?”

“조익현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잊지 마시오.”

그 말에 진산월은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조익현은 모용단죽으로 변신한 채 구궁보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구궁보에는 조익현이 익히지 못한 취와미인상의 절초 한 가지를 알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모용봉이다.

아직까지 모용봉은 조익현의 수중에 떨어지지 않고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언제까지고 그런 상황이 유지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교리의 다음 말이 그런 의구심을 더하게 했다.

“모용봉이 제아무리 천하에 다시없는 기재라 해도 조익현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가 가지고 있는 취와미인상을 얻어내려 할 거요. 그가 모용단죽도 없는 구궁보를 떠나지 않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오.”

만약 조익현이 모용봉이 가지고 있는 취와미인상마저 얻게 된다면 세 개의 취와미인상을 모두 소지하게 되는 셈이다. 조익현의 능력으로 보아 취와미인상에 새겨진 비학을 푸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매종도의 비학은 조익현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교리는 자신이 조익현을 맡겠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교리는 대라삼검을 모두 완성한 조익현을 꺾을 자신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름대로 조익현을 상대할 비책(?策)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교리는 복잡한 생각에 잠겨 있는 진산월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가 다시 음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석동을 상대하기에는 나보다는 당신이 더 적당하오.”

“왜 그렇소?”

되묻는 진산월의 음성에 교리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석동을 찾는 것에는 나보다는 당신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오.”

“나도 그의 행방은 모르오.”

“하지만 당신은 천봉궁과 상당한 친분이 있소.”

진산월은 퍼뜩 놀라 물었다.

“석동이 천봉궁에 있단 말이오?”

“석동은 과거 조익현에 당한 부상 때문에 열흘에 한 번 음공(陰功)의 고수에게 치료를 받아야 하오. 그리고 천봉궁에는 음공에 관한 한 강호무림 최고의 고수가 있지. 그래서 석동은 그에게서 열흘 이내의 거리에 항상 붙어 있어야 하오.”

“그가 누구요?”

교리의 대답은 진산월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백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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