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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503화


503화. ‘순혈의 전쟁’ (4)

이검일합.

수십, 수백 번 싸워온 천유성과는 이미 몇 번인가 성공시켰다.

하지만, 엘리스와는 이번이 처음.

그렇기에 다소 어설플 수밖에 없었지만….

어째서일까?

오히려 그 어색함이 지금의 검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었다.

화르륵!

붉은 강기가 유려하게 검로를 만들어갔다.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만, 무슨 발악을 하든 소용없을 거다!”

어느새 브레스를 완성시킨 엑센시온이 고함을 질렀다.

그 말대로 검 끝에 응축된 브레스는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적어도 왕관이 있는 한, 지금의 브레스는 고대룡의… 어쩌면 일전에 봤던 고구마의 브레스에 육박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우우웅!

피로 만든 브레스가 개방되었다.

“죽어라!”

한 줄기 섬광이 점멸했다.

곧이어 질풍이 폭풍이 되어 쇄도했다.

닿는 것이라면 뭐든지 태워버리는 적색의 빛.

진혁이 엘리스를 바라봤다.

검을 잡은 손의 따스함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눈동자가 보인다.

차분한 호흡과.

그와 대비되는 격양된 마력의 파장.

그 속에서 전해지는 감정들까지.

모든 것들을 보고 느끼며 동기화한다.

진혁과 엘리스가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일검일합(一劍一合)]

두 개의 몸에서 발현되는 하나의 검격.

한 쌍의 붉은 날개가 좌우로 펼쳐졌다.

……간다.

최강을 자랑하는 브레스에 맞춰, 진혁과 엘리스의 검이 움직였다.

콰아아앙!

칼날이 브레스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순간, 엄청난 열기와 압력이 전신을 집어삼켰다.

“크읍!”

“윽!”

역시 브레스를 맨 몸으로 받아내는 건 미친 짓에 가깝다.

보통이라면 닿는 즉시 뼈까지 증발해 사라질 테니까.

그러나 일검일합으로 인해 강화된 신체는 기존의 물리력 그 이상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차원 베기.

시간으로 치면 1초 남짓에 불과한 찰나.

인지를 하고 그 인지를 바탕으로 검격을 구현하기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다.

하나.

‘나라면 충분해.’

진혁이 브레스와. 브레스를 뿜어내는 엑센시온의 검 끝을 바라봤다.

……벤다.

두 손이 하나로 포개지며.

날개에서 나오는 마력이 좌우로 흩어지며.

서걱!

붉은 선으로 이어진 검이 브레스를 갈랐다.

⁕ ⁕ ⁕

“쿨럭!?”

엑센시온이 멍하니 어깻죽지에서 허리춤까지 난 검상을 바라봤다.

아직까지 어떻게 브레스를 베어버리고 자신의 몸까지 자른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푸슉! 푸슈슛!

상처에서 핏줄기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내가… 졌다…고?”

믿을 수 없지만, 몸에 남은 상처는 어느 쪽이 승리했는지를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한 발 늦게 지독한 통증과 그걸 뛰어넘는 공포심이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죽고 싶지 않다.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지고 싶진 않았다.

엑센시온이 엉금엉금 기어 엘리스에게 다가갔다.

“사, 살려다오.”

엘리스에게서 혈액을 공급받는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터.

피가 필요하다.

가주급에 해당하는, 마력이 가득 담긴 순혈의 피가.

“제발… 날 사, 살려다오.”

떨리는 손끝이 엘리스의 신발에 닿았다.

“…….”

엘리스가 가라앉은 눈동자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방금 이걸로 그동안 쌓였던 모든 응어리가 풀리는 것만 같았다.

“엘…리스.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아니, 아타락시아가 다시 부흥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필요할 거다. 그러니 한 번만.”

한 번만 봐 다오.

처절하고 비굴하게.

엑센시온이 생명을 애걸했다.

하지만.

엘리스는 엑센시온의 손을 지그시 밟는 것으로 그 답을 대신했다.

“지금 느끼는 그 절망. 최대한 오래오래 간직하며 죽어라. 죽은 다음엔 그럴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으아아악! 모, 몸이. 내 몸이….”

엑센시온이 서서히 가루가 되어 흩어져가는 몸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재가 되어 흩날리는 가루를 다시 맞출 수는 없었다.

[아타락시아의 현대 가주 엑센시온이 소멸했습니다.]

이걸로 아타락시아의 가주가 다시 한 번 바뀌었다.

붉은 별이 지고.

기존의 별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타락시아의 문양’을 획득하셨습니다!]

[성유물 ‘순혈의 왕관’을 획득하셨습니다!]

[성유물 ‘선혈의 대검’을 획득하셨습니다!]

[아타락시아의 새로운 가주가 등극했습니다.]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의 호감도가 허용치를 초과했습니다.]

[엘리스를 포함한 아타락시아의 혈족들은 앞으로 영원히 당신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일 겁니다.]

연이어 나타나는 알림 메시지.

올라가는 레벨의 숫자가 심상치 않다.

이거 어쩌면….

진혁이 재빨리 개인 상태창을 활성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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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강진혁

성별: 남

레벨: 194

힘 109 민첩 121 체력 85 마력 429 간극 100 행운 10 적응형 78 정기 141.55

보유한 스탯 포인트: 75

보유한 코인: 11,231,494

직업: 룬의 지배자

고유 성창: 역천(逆天)의 륜, 페이즈 2, 8개의 늪, ‘백야(白夜)’, ‘파이널 제네시스’

고유 능력: ‘융합(融合)’, ‘검의 무덤’, ‘별의 가호’, ‘아누비스의 심판’, ‘혈마기(血魔氣)’, ‘만다라(曼茶羅)’, ‘1초 무적’, ‘천독(千毒)’, ‘하얀 맹수’, ‘만상공유(萬祥共有)’, ‘태양의 성역’, ‘흑천마황공(黑天魔皇功)’, ‘트리플 매직’, ‘거신의 일격’, ‘화룡의 숨결’, ‘고속검(高速劍)’, ‘툼그레이브의 오른팔’, ‘버서커’, ‘바람의 영역’, ‘음영극살(陰影亟殺)’, ‘태초의 불꽃’, ‘혈폭(血爆)’ ‘검은 눈물’, ‘툼그레이브의 다리’, ‘괴력난신(怪力亂神)’, ‘군단의 핵’, ‘고대 결계’, ‘천마신공(天魔神功)’, ‘멘트라 테이밍’, ‘니힐리즘’, ‘멸천만독(滅天萬毒)’, ‘적토승마(赤兎乘馬)’, ‘기계군주’, ‘극진태권도’, ‘몽마의 맹세’, ‘해류의 의지’, ‘배교자의 황금사과’, ‘섭식성장(攝食成長)’, ‘굴종의 손아귀’. ‘어스 퀘이크’.

스킬: 스킬의 내용이 너무 많아 ‘접어 두기’ 상태로 전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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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군타페르 때 올렸던 것까지 합치면 무려 25레벨!

시스템의 제약이 풀린 엑센시온을 사냥했을뿐더러, 그 전에 올드가드들을 사냥한 경험치까지 모두 반영된 결과다.

‘이번 스탯은 체력에 좀 투자해야겠네.’

이전까지는 효율성을 극대화해 어떻게든 버텼었지만, 확실히 위로 올라갈수록 그게 만만치 않았다.

전투의 장기전을 위해서라도 체력을 올려둘 필요가 있었다.

[체력이 85 → 130로 상승합니다.]

[마력이 429 → 459로 상승합니다.]

체력과 마력에 각각 45포인트와 30포인트씩.

적절한 분배가 이뤄졌다.

상태창을 닫은 진혁이 조용히 엘리스를 바라봤다.

“…….”

길고 긴 싸움의 종착점에 도착한 엘리스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약을 맺고 지금까지 줄곧 이루고자 했던 소망.

저 모습을 보니 지금까지 고생한 게 어느 정도는 보상받는 기분이다.

벨루스와 나머지 혈족들도 감격에 빠져 있는 것 같으니, 지금 당장은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으리라.

‘이제 남은 거야 간단한 일들뿐이니까.’

진혁이 힐끗 하스팅을 살폈다.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갔으니, 저 녀석이 이곳에 있을 명분은 없을 것이다.

[관리자 전용 게이트가 개방됩니다!]

“빌어…먹을.”

예상했던 대로 하스팅은 피눈물을 삼키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어차피 지금 죽나 나중에 니알라토텝에게 죽나 별반 차이는 없을 테지만.

목숨이란 1분 1초라도 더 길게 끌고 가고 싶은 게 모든 생명의 본능이었으니까.

반면, 홀로 남은 타미아는 도망칠 타이밍을 놓쳤다.

애초에 토르가 버티고 있는 한 도망이란 선택지는 없는 것이라고 봐야 했지만.

“이런….”

타미아가 뒷걸음질 치다가 등이 벽에 닿았다.

더 이상 갈 곳은 없었다.

“어떻게, 계속할 거야? 만약 우리 전부를 상대로 한 판 더 하고 싶다면야 말리지 않겠어.”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엑센시온은 물론, 그를 따르던 혈족들까지 모두 전멸해버린 상황.

“…좋아. 포기할게.”

푹!

타미아가 ‘브륜힐라’를 땅에 박았다.

그리고 양 손을 어깨 위로 들어올렸다.

“이러면, 살려 주는 건가?”

명백한 항복의 표시다.

고고하고 위대한 종족이 인간에게 패배를 인정할 줄이야.

아마 이곳에서 직접 본 게 아니라면 그 누구도 믿지 못했을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럴 리가.”

진혁은 그 정도로 넘어가줄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래도 드래곤의 목숨 값인데, 고작 자존심 좀 굽힌다고 봐주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예전에 종종 읽었던 판타지 소설에서도 드래곤 한 마리 목숨을 구해준다면 레어에 있는 보물들을 싹 털어버린다든가.

아니면 소원권이라도 한 가지 얻는다든가 하는 보상 정도는 얻어내는 게 국룰이었다.

“알겠다. 그럼, 보물을 주거나 언약에 의한 소원이라도 들어주지. 이 정도면 차고 넘치는 대가다.”

“그거야 당연한 거고.”

“다, 당연하다고?”

“불만이면 그냥 죽든가. 피곤하긴 해도 너 하나 죽일 힘 정도는 남아 있어.”

진혁의 눈빛에 불꽃이 튀었다.

어쩐지 머리에 작은 뿔이라도 돋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꿀꺽.

타미아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 차가운 압박감.

욕심이 얼마나 끝이 없는지, 목구멍 속으로 봐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마치, 심연 속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단언컨대 만나 본 인간 중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성품을 가진 게 틀림없다.

“그럼, 대체 뭘… 해주면 되는 건데?”

“알잖아. 지금 어린아이 사탕처럼 꼭 잡고 있는 그거. 내가 알기론 소유자가 자진해서 소유권을 포기하거나 죽여야만 얻을 수 있다고 들었거든.”

브륜힐라.

고대룡의 뼈로 만든 창이라면 그럭저럭 수지타산이 맞는다.

‘마음 같아선 염혼의 낙인이라도 찍고 싶긴 하지만, 그것까진 힘들겠지.‘

딱 봐도 드래곤 로드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데, 이쪽 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간 즉시 반발할 테니까.

무엇보다 지금 당장은 노예로 삼을 빌드업이 부족했다.

‘어차피 앞으로도 종종 만날 테니, 천천히 구워 삶아주지 뭐.‘

그렇지 않아도 드래곤 노예 한 마리 정도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다.

타미아가 미련이 가득 담긴 눈으로 브륜힐라와 진혁을 번갈아 살폈다.

하지만, 저울 위에 올라간 게 본인의 목숨이었기에, 고민은 길지 않았다.

“넘겨…주면 되잖아. 넘겨주면.”

“고마워. 잘 쓰도록 할게.”

진혁이 뼈로 만든 창을 건네받았다.

“흐음. 정말로 그냥 보내줘도 되는 건가?”

옆에 있던 토르는 타미아가 그대로 빠져나가는 게 탐탁지 않은 듯싶었다.

“괜찮습니다. 대어를 낚으려면 송사리는 보내주는 게 낫거든요.”

“드래곤을 보고 송사리라… 크하하하! 역시, 내가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군.”

토르가 즐거운 듯 한참이나 웃었다.

“조금 더 뒤까지 보고 싶지만, 하스팅이 했던 말대로 올림포스 놈들이 냄새를 맡은 것 같다. 아무래도 난 여기까지만 해야겠어. 그러니….”

“위그드라실에 관한 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 층계 공략이 끝날 때까지 재료는 확보해 두죠.”

진혁이 정확하게 원하는 부분을 긁어줬다.

토르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대만 믿고 있지.”

우우웅!

게이트가 열리며 토르마저 자리에서 사라졌다.

리어퀸이나 다른 문제들이야 이제 차차 처리하면 될 테고….

이제 대충 마무리를 지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띠링!

[‘통화 요청’이 왔습니다.]

뜻밖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그것도 꽤나 공교로운 타이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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