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582화
582화. 은둔자의 마을 (3)
[악명이 +3만큼 증가했습니다.]
[악명이 +33만큼 증가했습니다.]
[악명이 +15만큼 증가했습니다.]
[악명이 +6만큼 증가했습니다.]
[악명이….]
[……증가했습니다.]
무수히 올라가는 상태창.
은둔자의 마을에 온 지 3시간 만에 악명이 무려 800이나 증가했다.
보통의 악당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끔찍한 악행을 반복해온 결과였다.
툭툭….
천유성이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이 짓도 하다보니 적응이 되는군. 어째서 네가 그리 악랄해질 수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어떤 급소가 가장 아픈지에 대해 연구하느라 고생했는데, 충분히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뽑아낼 수 있었다.
“후후. 이제 짐은 탑의 제일가는 요리사가 되었느니라.”
“응 나도 이인자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아.”
엘리스와 프레이 역시 사람이 먹고도 죽지 않을 수 있는 수준의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주님. 오늘도 수많은 생명을 살렸어요.”
신성력을 한계까지 쓴 테레사가 구슬땀을 훔쳤다.
세상 따스한 미소를 짓는 건 덤이었다.
“껄껄껄! 이곳엔 질 좋은 철이 아주 많구만. 공짜 노동자들을 시키니 좋은 아이템들이 술술 제작되고 있어.”
오룬도 만족스러웠는지 호탕한 광소를 터뜨렸다.
좋아.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아니, 은둔자의 마을에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 잘 적응하고 있는 거려나.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멤버들 모두가 킬킬대면서 각자의 취미를 집대성했다.
‘이쯤이면 슬슬 소문이 퍼졌겠지.’
진혁이 힐끗 마을 안쪽을 바라봤다.
새로운 정보에 민감한 은둔자들의 특성상 낯선 이방인들의 존재에 관심이 높을 터.
안에 있는 굵직한 거물들 역시도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존재를 인지했을 것이다.
그럼….
미끼는 충분히 던져뒀으니 다음엔 어떤 놈이 걸리는지 느긋하게 기다릴 차례다.
***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은둔자의 마을.
그 중에서 입구를 비롯한 남쪽 지역을 담당하는 세력인 ‘바운티 헌터’의 은둔자들은 난데없는 돌발상황에 총 소집된 상태였다.
은은한 촛불이 밝혀진 술집 내부. 독주의 향과 담배 냄새가 한 자리에서 뒤엉켰다.
“골치 아픈 것들이 들어왔다고?”
테이블 위에 발을 올려 두고 있는 거대한 체구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예. 마더. 신참 사냥을 하려던 닌자 놈들을 아주 제대로 박살냈다고 합니다.”
“이미 개개인의 악명이 800이 넘은 데다, 리더 격인 놈은 애초에 이곳에 오기 전부터 1,000이 넘는 악명을 보유한 놈이더군요.”
이곳에 온 이후에서야 악명 스탯이 개방되면서 스탯을 올리는 게 비교적 쉬워진다.
하지만, 마을 밖에서는 전혀 다른 영역.
어지간한 악행과 원한을 쌓지 않고서는 1,000이란 수치를 달성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 믿기 어렵다.
그 유명한 로마의 ‘네로 황제’조차 이곳에 왔을 때 1,000에 미치지 못하는 악명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마계에서 온 마족들조차도 900을 갓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닌자들 쪽에서도 시스템의 오류라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그렇겠지. 나라도 같은 생각이었을 거다.”
마더라 불린 여자가 럼주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마을에선 탑의 일에 일절 신경을 끊었기에 놈들의 정체에 대해선 알지 못했지만. 분명, 심상치 않은 냄새가 풀풀 난다.
그걸 뒷받침하는 실력 역시 증명한 상태였고.
하지만.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남쪽 구역에서 설친 이상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걸 방관했다간 나머지 세력들에게도 우습게 보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테니까.
무엇보다 가장 큰 건, 정신없이 날뛰는 망둥어 때문에 혹여라도 ‘그 분’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는 점이다.
“탑에서 제법 한 가닥 했던 모양이다만, 이곳에서 설치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지. 애들을 시켜서 놈들을 이곳으로 데려오거라. 특별히 실력이 좋은 총잡이들로만 선별해서.”
“알겠습니다. 마더.”
“바로 움직이도록 하죠.”
검은색 코트를 입은 이들이 중절모를 살짝 들어올렸다.
두두두두!
검은색 말을 타고 질주한 이들이 순식간에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그러자 그곳엔 생체실험(?)을 하고 있는 한 무리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아무리 자신들이라 해도 이 정도까진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네놈들이 새로 마을에 들어왔다는 자들이냐?”
“응. 이제 막 이사 왔어. 근데, 떡이라도 안 돌려서 화난 건지 첫 만남부터 시비를 걸더라고.”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면서 태연하게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한 당위성을 덧붙였다.
“우린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야. 애초에 먼저 건드리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잖아?”
“뭐, 상대 쪽에서 잘못했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이쪽은 우리 구역이라서 말이지. 자세한 자초지종을 듣고 싶은데, 얌전히 동행해 줬으면 한다.”
“싫다면?”
“목숨만 지장이 없다면, 팔 다리 하나 정도 못 쓰게 해도 상관없다는 명령을 받았다. 마더께서 자비를 베푸실 때 받아들여라.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슥.
말 탄 남자가 허리 춤에 찬 권총에 손을 갖다 댔다.
나머지 놈들도 레밍턴과 각종 총기류를 뽑으려 했다.
“닌자들 다음엔 마피아냐?”
천유성이 기가 막히다는 듯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범죄자들의 마을이라는 걸 들었을 때부터 대충 예상하고 있었지만.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도 아니고.
이토록 다양한 종류의 적들을 만날 거라곤 예측하지 못 했다.
반면 진혁은 그 모습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여기서 쓸 만한 무기를 하나 구할 수 있겠어.’
제우스를 사냥하고 얻은 사멸자의 탄환.
이 마을에서라면 그 탄환을 사용할 수 있는 총기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입수 난이도가 높은 걸 구하냐는 건데….
몇 가지 후보가 곧바로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바로 그때.
“감히, 짐에게 명령질이라니. 계약자. 말만 하거라. 모조리 쓸어버릴 테니.”
엘리스가 핏방울들을 끌어모았다.
쿠쿠쿠쿠쿠!
여차하면 마을의 한 군데가 사라져 버릴 기세다.
“아니, 괜찮아 엘리스. 일단 한 번 따라가보자고.”
“진심이야?”
“첫날부터 싸움만 하고 있을 순 없으니까. 게다가 저 놈들이라면 이곳의 정보들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을 것 같거든.”
“치. 계약자를 봐서 특별히 넘어가 주마.”
엘리스가 모았던 마력을 흐트러뜨렸다.
그걸로.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나려던 일촉즉발의 상황이 간신히 무마되었다.
***
남쪽의 세력 ‘바운티 헌터’.
요인 암살, 대규모 방화, 정보 조작 등. 지금까지 탑에 있었던 수많은 범죄들을 저지른 이들이었다.
그 중에선 트로이 전쟁을 일으키거나 지천사 중 하나를 암살한 경우도 있었다.
한 마디로 쟁쟁한 놈들만 모였다는 뜻.
술집 내부에 무거운 공기가 가득 채워졌다.
“난 바운티 헌터를 이끄는 클로에라고 한다. 여기선 통칭 마더로 불리고 있지.”
거구의 여자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클로에 ‘마더’.
탑 34층에서 이름을 떨쳤던 랭커 중 하나로 ‘속사의 클로에’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여자다.
정확히 이쪽이 기다리고 있던 대어가 미끼를 물었다.
“강진혁이고 최근에 해적단 하나 만들어서 해적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실력이 제법 쓸만하던데, 어떤가? 내 밑으로 들어오는 게? 대우는 확실히 해주겠다.”
“이야, 거대 세력을 이끄는 분한테 이런 제안도 받고 영광이네요.”
진혁이 손바닥을 부비적댔다.
생각보다 호의적인 반응에 마더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자신을 치켜세워주는데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그럼, 계약금조로 그 두툼한 허리에 차고 계신 권총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도발을 넘어 이성의 끈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뭐… 뭐라고? 지, 지금 그거 나한테 한 말이더냐?”
너무나 어이가 없는 말에 말까지 더듬고 말았다.
그야 그럴 수밖에.
가장 최악의 범죄자들이 모인 이곳에서도 정점에 있는 게 자신이다.
그런데 그 앞에 대고 이런 모욕을 할 줄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미쳤다는 말 밖엔 나오질 않았다.
“건방진…!”
결국, 마더의 옆에 있던 마피아가 번개처럼 권총을 꺼냈다.
[Lv40 ‘0.3초의 반격’이 발동됩니다!]
한 줄기 섬광이 번뜩였다.
엄청나게 빠른 선공이다.
하지만, 반 박자 늦었음에도 진혁의 손엔 권총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술집에 들어오면서 경비 한 명의 것을 슬쩍해둔 것이다.
타앙!
탄환과 탄환이 한 점에서 충돌했다.
쇠붙이가 찌그러지는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총구에 불을 뿜었다.
각기 다른 속성탄과 룬어가 새겨진 특수탄들이었다.
그런데.
퍼억!
카아앙!
진혁이 쏘는 족족 날아오는 탄환들을 모조리 떨어뜨렸다.
“마, 말도 안 돼. 저런 게 가능하다고?”
“탄환의 움직임을 읽는 건가?”
여기저기서 경악에 가득 찬 반응이 터져나왔다.
평생 총을 다루며 살아온 자신들조차 감히 시도해보지 못하는 곡예였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레벨이 아니다.”
마더 역시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보고 반응하는 것도 수없이 많은 총격전을 치른 자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었지만.
저건 총을 쏘기 전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과. 최적화된 공격루트 등을 모조리 꿰뚫고 예측할 줄 아는 자의 영역이다.
속도나 정확도 따위의 잔재주는 이미 한참 전에 마스터한 괴물이라는 말이다.
촤르르….
진혁이 능숙하게 리볼버를 회전시켰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실력 행사가 됐겠지.
조미료로서는 매우 훌륭하다.
그럼, 다음은….
본격적인 사기를 칠 시간이다.
크흠! 큼!
진혁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내가 총을 원하는 건 그냥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강조해야 한다.
“사실 제가 이곳에 온 건 여기 사는 모든 은둔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니까요. 그걸 증명해주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무례를 범하게 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대의를 위해서.
그리고 은둔자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생명’을 강조하기 위해서.
기타 등등 겁나게 공익을 위한 거라는 걸 강조하는 게 핵심이다.
“그게… 무슨 소리지?”
마더가 되물었다.
“그러게. 대체 무슨 소리냐?”
“짐도 처음 듣는 말인데?”
“저도요.”
“모기모기.”
같이 온 멤버들도 영문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진혁이 재빨리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나서야. 뒤늦게 눈치를 채고 즉흥연기에 동참했다.
“맞다. 그러고보니 계약자가 그런 말 했었지.”
“불쌍한 생명을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요.”
“모기모기!”
“껄껄껄! 하여간 우리 선장은 마음이 착한 게 유일한 탈이다.”
뭐, 연기들이 살짝 어설프긴 했지만 상관없다.
릭에게서 들은 정보.
‘아포칼립스’에 관한 증거를 보여줄 수만 있다면.
은둔자의 마을에 있는 가장 큰 세력 중 하나를 같은 편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실제로 아포칼립스가 일어날 예정이니 목숨을 구해주는 게 마냥 틀린 말은 아니지.’
생명의 은인이라는 점은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물론.
같은 편이 되는 대가로 단물을 아주 쭉쭉 빨아먹을 생각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