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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672화


672화 이름 없는 대마도사 (1)

키에에에에!

묘목의 비명 소리가 하늘에 닿았다.

그러자 그 순간.

보랏빛 섬광이 지면을 향해 떨어졌다.

쿠쿠쿠쿠쿠!

“제정신이 아니긴 하네.”

진혁이 클레망스를 보며 기가 막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자신까지 제물로 바쳐 묘목을 완전히 깨울 줄이야.

아자토스의 궁전에서 이 협곡으로 묘목을 옮겨왔다고 들었을 때, 도대체 어떤 식으로 이 단기간에 묘목을 깨울지 이해가 안 됐는데.

클레망스의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렇게까지 할 것을 예측했다면 앞뒤가 맞았다.

‘대관식 없이 계속 레인저 능력을 사용할 순 없어.’

지금은 전직 스킬들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순수하게 과거의 경험과 감에 의존한 전투방식이었다.

그나마 빌리 더 키드의 권총과 ‘황야의 무법자’가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위력이 몇 분의 일로 떨어졌을 터.

다시 말해.

장기전으로 끌면 끌수록 상대에게 패턴을 읽히기 쉽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클레망스가 묘목과 하나가 된 것도 성가셨지만, 계속 신경을 건드리는 건 이성을 잃어버린 라이볼트였다.

파치칙!

또다시 검고 흰 빛이 일렁였다.

[라이볼트가 고유성창 ‘빛의 심판’을 발동합니다!]

지면을 따라 퍼져나가는 하얀 빛줄기.

약 100m에 이르는 원이 라이볼트의 영역권 안에 들어섰다.

콰앙!

‘천마군림보’를 사용해 몸을 날린 진혁이 아슬아슬하게 위험 지역에서 탈출했다.

콰콰콰콰콰콰!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거대한 빛줄기가 진혁이 있던 곳을 구획째로 증발시켜버렸다.

무시무시한 공격이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1초 무적’을 사용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공격력 하나만큼은 정령왕들 사이에서 가장 강하기로 유명한 라이볼트였으니까.

콰콰콰콰콰!

투콰와왕!

연이어 떨어지는 빛줄기.

진혁이 권총을 앞으로 뻗었다.

‘그래도 아직 저 몸에 익숙해지기 전에 끝내야 해.’

집중할 수 시간은 단 1초 남짓.

동공이 맹수의 그것처럼 변하며 예리한 마력들이 모여들었다.

[황야의 무법자 – ‘일몰의 끝’을 발동합니다!]

타아앙!

날카로운 섬광이 허공을 꿰뚫었다.

퍼퍼퍼퍽!

가로막는 실드들과 나무넝쿨들을 모조리 관통해버린 탄환이 클레망스의 안면에 작렬했다.

……직격이다.

박살이 난 파편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그런데.

“킥킥…!”

얼굴 반쪽이 사라진 클레망스의 입에서 비릿한 실소가 흘러나왔다.

뚝뚝 떨어지는 체액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여전히 건재한 마력을 과시하며 더욱더 많은 넝쿨들을 끌어모았다.

머리 역시 빠른 속도로 제 모습을 갖췄다.

[혼혈종 ‘이름 없는 대마도사’가 현현합니다!]

쿠쿠쿠쿠쿠쿠!

보라색 물결이 요동쳤다.

단신으로도 어지간한 주신급에 육박하는 힘을 보유한 대마도사. 그런 클레망스가 묘목에 흡수당하자 태고의 신격에 육박하는 힘을 보유하게 되었다.

‘골치 아프네.’

진혁이 혀로 아랫입술을 적셨다.

힘은 태고의 신격인데 지능은 약삭빠른 대마도사라니.

반쯤 소풍 온 기분으로 온 협곡 공략이 지옥으로 변했다.

촤촤촤촤촤!

퍼스트 블레이드의 칼날이 길게 나뉘어 늘어졌다.

사복검으로 변형을 끝낸 진혁이 권총과 검을 각각 쥐었다.

머리를 파괴해도 저리 멀쩡하게 부활한다는 건 약점이 따로 있다는 뜻. ‘탐식의 눈’이 예리하게 클레망스를 훑었다.

“그 저주받은 눈알을 굴려봤자 소용없을 거야. 지금 내 기분이… 하아아. 아주 최고거든.”

클레망스의 동공이 반쯤 풀렸다.

[통각이 마력으로 치환됩니다.]

[특수 스탯 ‘태고의 축복’이 +20만큼 쌓입니다.]

넝쿨들이 소나기처럼 뿜어졌다.

쿠콰콰콰콰쾅!

투콰아앙!

“큭!”

“피해야 해. 적중 시 치명 확률이 100%야. 응.”

엘리스와 프레이도 심상치 않은 걸 감지했다.

그 말대로 넝쿨이 닿는 곳이 검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흙과 돌의 색이 변했고. 생기 가득한 풀들이 그대로 시들어버렸다.

하지만. 넝쿨이 위협적인 건 단순히 그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크오오오!”

“키에에에!”

넝쿨에 스친 신성 제국 기사의 갑옷에서 흉측한 입이 생겨났다.

“메에에…!”

생겨난 입에서 염소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슈브니구라스의 권능이 깃든 것이다.

콰앙!

곧바로 신성 기사의 장검이 진혁의 단검과 격돌했다.

묵직한 충격이 뼛속까지 파고든다.

[신성 제국 검술 ‘라이제르의 검’이 발동됩니다!]

[태고의 검술이 융합합니다.]

[‘무간의 검’이 펼쳐집니다!]

기존의 검술에 새롭게 가해지는 태고의 힘.

카카카카칵!

검로가 괴랄하게 변했다.

속도와 힘 그리고 기교까지. 모든 것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이다. 거기에 여럿이서 펼치는 자로 잰 듯한 합격은 어지간한 검술의 달인마저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고유능력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

그보다 더 짙고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졌다.

불길하면서 흉흉하기 짝이 없는 마력.

진혁의 살기에 언데드 몬스터들이 움찔거렸다. 사자 앞에 선 하이에나들처럼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시뿐이었다.

이미 피 냄새를 제대로 맡아버린 언데드를 고작 두려움 정도로 막을 수는 없었다.

퍼퍼퍽!

콰아앙!

하나가 쓰러지면 둘이.

둘이 쓰러지면 넷이.

그것도 안 된다면 여덟이.

압도적인 숫자를 내세운 언데드 병력의 파상공세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격렬해졌다.

툭!

자리에서 몸을 숙인 진혁이 그대로 총을 위로 치켜들었다. 총구가 투구와 갑주 사이에 있는 틈에 정확히 닿았다.

타아앙!

울려 퍼진 한 발의 총성.

검은 피가 머리 위로 뿜어졌다.

부웅!

동료 하나가 당하자 등 뒤에서 섬뜩한 한기가 느껴졌다. 진혁이 사복검을 길게 늘어뜨리며 검막을 펼쳤다.

칼날과 칼날이 아름다운 선율을 자아냈다.

한 폭의 영화 같은 장관.

경지에 오른 검술과 검술이 격돌하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총구에서 연신 불길이 뿜어졌다.

그 사이사이로 오는 라이볼트의 광역 마법과 클레망스의 흑마법은 진혁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끝도 한도 없겠네.’

단숨에 거리를 벌린 진혁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쉴 틈 없이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가는데다,  전성기를 구사하는 엘리스의 마력을 유지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이 숫자.

소수 정예만으로 파훼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드디어 새로 얻은 능력을 사용해볼 시간이다.

“티본!”

“달그락!”

진혁의 부름에 아공간에서 대기하고 있던 해골 기사가 달려나왔다.

“무리하지 말고 저 징글징글한 시체들을 유인해줘. 최대한 내 쪽으로 안 붙게만 해주면 돼.”

“알겠다. 마스터.”

검은색 데스 블레이드를 가득 끌어올린 채 유령군마에 탄 티본이 기사들 속으로 돌입했다.

목적은 단 하나.

시간을 버는 것이다.

동시에.

진혁이 무한의 서고를 개방했다.

선택한 것은 조금 전 클레망스로부터 얻은 능력과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2개의 능력.

책이 뽑히면서 안에 있던 내용이 그대로 펼쳐졌다.

[고유성창 ‘포가튼 엠파이어’와 스킬 ‘언데드 제조’ 고유능력 ‘트리플 매직’이 융합합니다!]

우우웅!

서로 다른 빛이 어우러지며 능력들이 합쳐지기 시작했다.

고유성창급 되는 능력들을 융합한다는 건 굉장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

이때, 이미 수차례 반복하면서 얻은 노하우와 경험이 빛을 발했다.

[고유성창 ‘전사들의 입장(Enterance to the Vlhalla)’을 융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사들의 입장(Enterance to the Vlhalla)]

입수 난이도: 측정불가

내용: 과거 상대했던 적들을 전성기 그대로의 모습으로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단, 능력의 숙련도에 따라 부활시킬 수 있는 자의 범위와 숫자가 제한됩니다. (그 당시 적들과 싸웠을 때 사용했던 아이템들 역시 숙련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본래 전사들의 입장을 이용해 데리고 온 적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야 그럴 수밖에.

한때는 각자의 이유와 목적으로 인해 자신과 목숨을 걸고 싸워왔으니까.

‘부활하는 즉시 그 칼끝이 나를 향할 확률이 높겠지.’

일종의 양날의 검.

기억과 이성을 갖고 부활시킨다는 점이 각 개체의 전투능력을 극대화할 순 있었지만, 위와 같은 리스크를 동반할 가능성이 차고도 넘쳤다.

그렇기에.

그러한 확률을 줄여줄 수 있는 안전장치들을 최대한 많이 갖출 필요가 있었다.

[고유능력 ‘고대결계’가 발동됩니다!]

[고유능력 ‘태양의 성역’이 발동됩니다!]

[고유능력 ‘멘트라 테이밍’이 발동됩니다!]

[스킬 ‘교감’과 ‘염혼의 낙인’이 발동됩니다!]

[행운 스탯이 최대치로 작용합니다!]

오시스리스의 고유능력이 발현되자 진혁을 중심으로 거대한 결계가 펼쳐졌다. 온화한 기운이 태고의 기운과 정면에서 부딪쳤다.

좋아.

이 정도라면….

진혁이 검은 책갈피에 적힌 여러 개의 이름들을 살폈다.

처음 시련의 탑이 나타난 이후 싸웠고 또 쓰러뜨린 수많은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죽음의 마도서였다.

촤르륵.

책장이 빠르게 넘어갔다.

누구를 고를지는 이미 정해두었다.

[시련의 탑 3층 ‘무혼’을 선택하셨습니다.]

[시련의 탑 4층 ‘펜다리엘’을 선택하셨습니다.]

저층에서 싸웠던 적들.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물론. 지금 당장은 이들이 큰 전력을 될 수는 없을 테지만….

‘상관없어.’

질보다는 양.

어차피 틈을 만들어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

휘이이잉!

한 줄기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여기는….”

무혼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기존에 알고 있던 익숙한 사찰이 아닌 협곡의 모습. 더군다나 이곳엔 3층과는 차원이 다른 마력을 가진 놈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나. 다시… 살아난 거야?”

펜다리엘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허무하게 죽었던 마지막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러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모를 리가 없겠지.

아주 멀리 떨어진 층계라면 몰라도.

바로 인접 층계에 붙어 있는 보스 몬스터는 영역 다툼의 최전선에 위치한 존재들이었으니까.

“무혼….”

“펜다리엘.”

움찔하고.

두 보스 몬스터가 본능적으로 무기를 꺼내려 했다.

바로 그때.

“지금 상황이 조금 당황스럽긴 할 거야. 나도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싶긴 한데, 지금상황이 꽤나 급박해서 말이야.”

“네놈은…!”

“너…!”

무혼과 펜다리엘이 동시에 외쳤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진혁을 발견했던 것이다.

자신들을 죽인 당사자를 코앞에서 마주하자 본능이 이성을 가볍게 추월해버렸다.

쿠쿠쿠쿵!

무혼이 거대한 석상을 소환했고. 펜다리엘이 살점이 덕지덕지 붙은 대검을 꺼냈다.

그런데.

[‘멘트라 테이밍’과 ‘교감’으로 인해 적대심이 30%만큼 감소합니다.]

[‘고대 결계’로 인해 능력 사용자에 대한 공격이 약 3초간 제한됩니다.]

“큭!?”

“뭐…지?”

무혼과 펜다리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당장이라도 날뛰려던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이다.

진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날 두드려 패는 것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줄 테니까. 진정들 하고 잠시만 내 말 좀 들어봐.”

이제부터는 얼마나 뱀의 혓바닥을 잘 놀리느냐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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