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676화
676화. 귀환자들의 전쟁 (1)
“괜찮은 겁니까?”
진혁이 조심스러운 얼굴로 테레사를 바라봤다.
“……네. 문제 없어요. 잠시 놀랐던 것 뿐이에요.”
테레사가 애써 떨리는 팔을 진정시켰다.
그래도 요새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해 ‘타락’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필드 전체에 걸쳐 올라오는 암속성의 저주 때문에 모래시계속 모래알갱이들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을 너무 끌면 안 되겠어.’
멤버들은 다행히 계속해서 싸울 수 있는 상태. 거기에 정령왕과 협곡의 지원이 가능하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적들의 합류로 인해 싸움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버렸으니까.
‘일단 전열을 가다듬을 틈이 필요해.’
우리만으로는 힘들다.
저 정도 규모의 전력이라면 최소한 연합의 지원을 불러야만 승산이 있으리라.
하지만.
우우우웅!
[현재 이 일대에는 ‘령(令)’급 결계가 펼쳐져 있는 상태입니다.]
[현재 이 일대에는 ’11서클 공간 왜곡 마법’이 펼쳐져 있는 상태입니다.]
하프 드래곤 ‘베이츨’과 주술 세계에서 귀환한 ‘카시미츠’.
두 귀환자가 진혁이 외부와 통신하려는 걸 방해했다.
“결계에 제법 능통하다고 하던데, 나도 그쪽 분야라면 꽤나 자신 있거든.”
카시미츠가 손가락에 각기 다른 부적을 움켜쥐었다.
“방심하지 마라. 시스템이 현상금까지 걸었다는 건 절대로 만만한 놈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알고 있어. 나도 ‘천재(天災)’급 마수 사냥 한두 번 해본 건 아니라고. 만전에 만전을 기할 테니 너나 일 똑바로 해.”
“누구한테 조언질인 거냐. 귀환한 지 100년도 안 된 애송이 놈이.”
스윽.
척.
귀환자들이 천천히 포위망을 구축했다.
“아주 갈아마셔주지.”
클레망스의 눈에 이채가 깃들었다.
계속해서 계획이 어긋나는 상황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는데, 드디어 통쾌하게 되갚아줄 시간이 찾아왔다.
콰콰콰콰콰콰!
대응할 시간도 없이 시작부터 묵직한 광역기들이 쏟아졌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펜다리엘과 무혼이 이끄는 병력 쪽이었다.
애초에 저레벨의 양산형으로 귀환자들과 맞선다는 건 어불성설일 터.
당연히 무차별적으로 난사되는 광역기에 그대로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 내 완벽한 얼굴이…!”
“화가…난다.”
다비드상과 대예적금강의 몸이 그대로 박살났다.
부서진 파편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여기저기에 심어뒀던 식물들 역시 불덩이에 집어삼켜졌고. 가장 아끼던 앵두마저도 살아남지 못 했다.
“흩어져라!”
펜다리엘이 자신의 병력에게 고함을 질렀다.
터무니없는 위력의 스킬들을 상대로 방진을 유지하는 건 미친 짓. 그렇다면 차라리 최대한 뿔뿔이 떨어져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다.
적어도 숫자라는 이점을 살릴 수 있다면 적절한 타이밍에 또 다른 변수를 창출할 수 있을 테니까.
현명한 판단이다.
문제는.
[고유능력 ‘저주받은 묘지의 관장수’가 발동됩니다!]
귀환자들 중에서도 숫자의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검은 로브를 걸친 노인이 해골이 달린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자 클레망스의 언데드 군대에 이어 또 다른 군단이 일어섰다.
엘리스와 프레이에 의해 여기저기 상한 병력이 아닌, 자신의 세계에서 방금 불러온 최상의 컨디션의 존재들이다.
주요 퇴로를 봉쇄한 군단이 토끼몰이를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곧바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어졌다.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펜다리엘의 좀비 군단이 어떻게든 포위망을 벗어나려 애썼고. 단 한 마리도 탈주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언데드 병력이 그 뒤를 바짝 쫓았다.
*
“어려운 싸움이 되겠군요.”
윈그라시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일단 진혁을 돕기로 한 이상 아무리 상황이 불리해진다고 해도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협곡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모든 걸 쏟아부을 각오를 마쳤으니까.
“정령들은 그대와 함께할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승리할 수만 있다면 말해다오.”
“한 가지 있습니다.”
이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들이 필요하다.
“어떤 건가요?”
“제가 최대한 시선을 끌 테니, 모든 정령수들을 모아주세요.”
귀환자들을 전부다 물리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개개인의 전투력이 사기적일뿐더러, 한 세계를 평정하며 쌓아온 경험과 잔머리 역시 까다롭긴 마찬가지였으니까.
괜히 어설프게 섬멸전을 펼치려고 하다간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터.
‘최대한 우리 쪽 희생을 줄이면서 이겨야 해.’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리고 모은 병력을 이용해 잭 이든이 가지고 있는 책을 놈과 함께 불태워주시면 됩니다.”
“잭 이든이라면… 아까 전에 저 묘목과 하나가 된 마도사에게 간 남자 말인가요?”
“예. 저 자가 최우선 타겟입니다.”
‘탐식의 눈’에는 아주 희미하게 이어져 있는 마력의 실이 간파되어 있는 상태였다.
클레망스에게 마도서를 넘겼다고 하지만, 마도서의 실소유자는 이든이라고.
결국, 현상금 이벤트를 파괴하고 귀환자들의 암속성을 완화시키기 위해선 이든을 제거해야 한다는 뜻.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이쪽이 미끼가 되어줄 차례다.
“화려하게 날뛰면서 시선을 집중시켜보도록 하죠. 기회가 온다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알겠네.”
“반드시 성공시키도록 하지.”
정령왕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갈수록 최악이군.”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진혁 씨랑 얽히면 편한 레이드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고생 길이 훤히 열릴 확률이 100%야 응.”
“짐은 맛집 리스트 100개를 뽑아놨으니 나중에 거기만 다 데리고 가주면 된다. 아, 그리고 짐의 저택에도 같이 와주는 조건도 꼭 포함해서!”
멤버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반응이 튀어나왔다.
미끼가 되어 가장 위험한 포지션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 꽤나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하지만, 불평불만을 늘어놔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 이상 격렬하게 반대하진 않았다.
무혼과 펜다리엘 그리고 요정들이 버텨주면서 만들어준 몇 분 간의 틈.
빠르게 작전 구상을 끝낸 진혁이 모두에게 각자가 할 역할을 말해주었다.
지금 이곳에 현현한 각각의 귀환자들이 주로 쓰는 능력과 특성 또한 전달해 두었다.
“그럼 다들 건투를.”
“조금 있다가 봐!”
“응. 이해했어.”
“전 서쪽 루트로 갈게요.”
콰앙!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귀환자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의외로군. 얼마 안 되는 전력을 또 분산시킬 줄이야.”
클레망스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너도 여기에 와 있던 거였어?”
“보상이 워낙 매혹적이어야 말이지. 게다가 경쟁 구도가 아니라 우리끼리 협력해서 한 놈만 죽이면 된다는데, 조건까지 너무 완벽하잖아?”
남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제독 ‘앙헬리스’.
은하계를 무대로 항성간 전쟁을 벌이던 세계에서 귀환한 자로 다수 대 다수의 싸움에 특화된 전략가다.
전장 전체를 아우르는 판세 흐름을 기가 막히게 읽을 수 있던 덕에 은하계 변방의 자원 행성을 제국과 견줄 수 있는 규모까지 발전시켰고. 종국에는 그 세계를 통일하는 것까지 성공한 천재였다.
“쳇! 태고의 놈들이 그토록 회유할 때는 꿈쩍도 안 하던 것들이 이제 와서 벌떼처럼 달려드는 꼴이라니.”
“왜, 아니꼽게 느껴지나?”
“당연하지. 진즉에 이랬으면 내가 이 저주 받은 묘목한테 먹히지 않아도 됐을 것 아냐?”
꾸구구국!
말을 하는 이 순간에도 묘목이 클레망스를 잠식하고 있었다.
대마법으로 흐름을 늦추고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시간 문제일 뿐.
의식이 사라지기 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너무 걱정 마. 시스템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으니 기생화가 끝나기 전에만 놈들을 처리하면 너도 원래의 몸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아?”앙헬리스의 말에 클레망스의 동공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그래. 맞아. 그럴 수 있겠네. 나에게도 권리가 있을 테니까.”
“그럼, 이제 집중 좀 해보자고. 우리 불나방들이 무슨 목적으로 저런 계획을 세웠는지 알아봐야 하니까. 밍글스.”
[aya,aye master.]
앙헬리스의 부름에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AI 여성이 나타났다.
“지도 띄워.”
[밍글스가 ‘3D 입체 전장’을 발동합니다.]
조건과 확률 변수.
모든 요인들을 넣은 복합적인 화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흐음.”
몇 분이 채 되기도 전, 앙헬리스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최대 전력을 굳이 최전선에 보내면서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유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요정들을 우측 후방으로 조금씩 빼내고 있던 게 그런 목적이었나.”
확실히.
마지막 한 방을 가하려면 당연히 진혁이 직접 움직이거나 나머지 주력 멤버들을 사용할 거라 판단할 것이다. 그 점을 역이용해 자신들을 미끼로 쓰고 정령왕들로 하여금 마도서를 노리려는 거겠지.
얼마 안 되는 시간에 그 정도 작전을 세운 건 재밌긴 하다.
그러나.
‘너무 단순하군.’
고작 한 번 정도 꼬은 걸로는 어림도 없다.
“그 표정을 보니 이길 수 있는 길을 찾았나보네.”
“뭐, 재밌는 덫 한두 개 정도는 떠올랐어.”
앙헬리스가 전투모를 살짝 눌러썼다.
수많은 휘장이 달려 있는 제복이 유독 붉은 빛을 띄었다.
***
콰콰콰콰콰콰콰!
맡은 임무대로 안쪽 깊숙이 파고든 천유성과 테레사가 마력을 거칠게 해방했다.
산산조각이 난 언데드 병사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
검은 로브를 쓴 귀환자가 멈칫했다.
묘지기의 힘으로 불러낸 병사들이 이토록 허무하게 쓰러지다니. 무혼과 펜다리엘의 병력을 상대로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던 조금 전이 마치 꿈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강자들이로군.”
“저 놈 중에 하나가 겐스케를 죽였다. 그냥 병사로는 상대가 안 돼.”
그레고리가 천유성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과연….”
노인이 지팡이 위로 검보라빛 화염을 둘렀다.
화르르륵!
마력의 농도가 달라졌다.
무겁고 불길한 겁화가 퍼져나가며 언데드 병사들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키에에에!”
“케에에에!”
언데드 병사들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나왔다.
빠르게 녹아버리는 몸.
그것도 잠시 액체로 변해 지면으로 빨려들어간 사념들이 이내 거대한 형체를 이루며 솟구쳤다.
“크르르….”
20M가 훌쩍 넘는 덩치.
네 개의 손에 든 흉측한 검과 채찍, 등불과 도끼에선 각기 다른 속성의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네임드 몬스터 ‘데고리아 발록’이 현현합니다!]
촤촤촤촤촤!
채찍이 번개처럼 날아왔다.
[천유성이 고유능력 ‘검의 노래’를 발동합니다!]
추혼검이 채찍이 오는 궤도에 맞춰 반응했다.
그런데.
콰아아앙!
“…큭?”
천유성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막기는 막았다.
하지만, 엄청난 충격까지 전부 막은 것은 아니었다.
천유성의 뒤쪽으로 깊이가 보이지 않는 상처가 생겼다.
한 방이 말도 안 되는 위력을 보유하고 있다.
“유성 씨!”
조금 옆 쪽에서 싸우고 있던 테레사가 즉시 별의 가호를 사용했다. 눈부신 별빛이 천유성의 검에 깃든 순간.
[데고리아 발록이 ‘망자들을 인도하는 등불’을 사용합니다!]
발록의 손에 쥐고 있던 등불이 음울한 빛을 뿜어냈다.
쏴아아아….
눈 깜짝할 사이에 별빛이 그대로 등불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아무렴 언데드를 상대로 최악의 상성을 가진 신성력에 대한 대비도 없을까?”
클레망스가 고전할 정도면 꽤나 강자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귀환자들 역시 토가 나올 정도로 지독한 난적을 꺾고 살아남은 진짜들만 모인 집단이다.
“한 놈도 빠져나가게 두지 않겠다.”
각기 다른 지점에서.
귀환자들이 자신들의 고유능력을 개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