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700화
700화. 별들의 전쟁 (2)
츠츠츠….
몸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마력.
통상 일정 수준을 넘어선 강자들은 스스로의 기척을 통제해 갈무리할 수 있다. 불필요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걸 막음으로써 외부의 관심으로부터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위함이다.
하지만, 당황스러움으로 인해 진혁은 평정심을 잃어버렸고.
그 결과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게 되었다.
‘젠장. 내가 이런 실수를 다 하네.’
아차… 했으나 너무 늦었다.
이미 눈치를 채버린 놈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헤헤. 역시, 여기에 있었구나. 정말이지 한참을 찾았어.”
천진난만하게 웃는 귀여운 소년.
얼마 전에 요틀레암 협곡에서 싸운 적 있는 귀환자. ‘페인 폰 아델’이었다.
검사들이 득실거리는 차원에서 귀환한 최악의 검귀는 아직까지 매듭짓지 못한 승부에 집착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넌….”
“당신은…?”
같이 있던 멤버들이 깜짝 놀랐다.
생리적으로 상대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느껴버렸기 때문.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여러 개의 전투능력이 발동되려 했다.
그 찰나, 진혁이 끼어들었다.
“괜찮아. 저 녀석. 당장 싸울 생각은 없어보여.”
“괜찮겠느냐, 계약자? 위험한 놈이다.”
“알고 있어. 내가 말해볼 테니 소란 피우지 마. 보는 눈이 많아.”
“쳇. 알겠다. 계약자가 그리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엘리스가 반쯤 꺼낸 꼬챙이를 역소환했다.
핏방울들이 흩어지며 금방이라도 몰아치려던 폭풍이 잠잠해졌다.
상황이 진정되자 비로소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네가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거지?”
진혁이 기가막히다는 듯 물었다.
중급 세력들 조차 막대한 아이템과 마정석을 소비해야만 다른 층계로 이동할 수 있다. 하물며 탑 밖에 나오는 건 그들 조차도 세력의 흥망을 걸어야 될 정도로 부담이 큰 행위.
그런데 그걸 한 개인이 해버렸으니 당연히 어이가 없을 수밖에.
“비용은 충분히 지불했어. 이래봬도 나름 모아둔 게 많거든.”
아델이 싱긋 웃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세력의 뒷배는…. 적당한 중급 세력의 윗대가리들을 전부 베어버리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했어.”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를 하면서 여전히 순진한 얼굴이다.
이러니 더 소름이 돋네.
“그런 임시방편을 관리자들이 인정해 줄 리 없을 텐데?”
“그 부분도 괜찮아. 딴지를 거는 중급 관리자 한 명도 죽여버렸거든. 같이 있던 나머지 한 명이 친절하게 도와주기로 했으니 적어도 이번엔 문제없을 거야!”
아….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케이시와 주드로 이후로 이렇게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정신나간 놈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아델이 이곳에 온 게 마냥 골치 아픈 것만은 아니다.
‘쓸모가 있어. 이 녀석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잘만 다룬다면 이용가치가 충분한 장기말이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 훌륭한 거야 말할 필요도 없었고.
이미 ‘탐식의 눈’에는 아델에 관한 상세한 내용들이 낱낱이 파악되어 있는 상태였다.
[페인 폰 아델]
레벨: 315
고유성창: 백귀야행(百鬼夜行)
고유능력: 버들나무 유검
스킬: Lv37 ‘검술창조’, Lv35 ‘광적인 집중력’, Lv 35 ‘운기조식’, Lv 35 ‘유음보’,… 그 외에 스킬이 너무 많아 ‘접어두기’ 상태로 전환됩니다.
복사조건: 강해지기 위해서가 아닌 강자를 베기 위해서. 소년은 수많은 태산들을 넘으며 성장해왔습니다. 광기에 가까운 집착. 그런 아델이 가장 싸우고 싶어하는 대상과의 일대일을 주선해준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창과 고유능력 그리고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습니다. (단, 이 싸움에 임하는 상대방 역시 충분한 전의를 가지고 전투에 임해야 하며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후회없는 싸움.
아델의 능력을 복사하는 덴 상당한 제물(?)이 필요했다.
때마침 아무 죄책감없이 희생타로 보낼 수 있는 인물이 떠올랐다.
이제 적절한 무대만 제공해주고 싸워야 하는 동기부여만 해주면 될 터.
진혁의 머릿속이 사악한 계획들로 가득채워져 나가기 시작했다.
“원하는 게 천유성이지?”
“응! 그 형이 이 세계에서 가장 칼을 잘 쓰는 사람 맞지?”
“그러엄. 캬아. 그 녀석 만큼 날붙이를 잘 다루는 놈을 내가 본적이 없어요. 본 적이. 오죽하면 달마저 베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까?”
“흐응. 그 정도라고?”
“그래. 믿기 힘들겠지. 하지만, 곧바로 들킬 거짓말을 내가 왜 하겠어?”
“그럼, 형은 어떤데? 그때 보니까 형도 보통 실력이 아닌 것 같던데.”
“난 냉병기보다 총이나 마법을 다루는데 특화되어 있어. 적어도 칼솜씨는 그 녀석이 나보다 몇 단계는 위일 거야. 난 발톱의 때만도 못해. 암. 그렇고말고.”
천재 검성.
종횡무진 적들을 쓸어버리는 천유성이야 말로 이 세계 최고존엄이시다.
진혁이 창밖에 떠 있는 태양을 바라보며 감격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이 세계에 떠 있는 태양은 단 하나라고 말하는 것처럼.
“베어버릴 가치는 충분해 보이네! 고마워!”
말을 마친 아델이 곧바로 허리춤에 손을 갖다댔다.
파치칙!
낮아지는 무게 중심과.
피어오르는 스파크.
이 미친놈이 시험장 안에 있는 모든 놈들을 다 죽여버릴 생각이다. 적어도 그 중에 하나는 천유성일 테니까.
“자, 잠깐! 그런 식으로 하면 천유성이랑 싸울 수 없어. 그 녀석 능력이 조금 특별해서 조건이 갖춰져야만 본 실력을 발휘할 수 있거든. 너도 전력을 다하지 못하는 적을 베고싶진 않을 거 아니야?”
“…….”
멈칫하고.
진혁의 말에 아델이 반응했다.
원하는 건 사냥이 아닌 승부.
생과 사를 오가는 아슬아슬함과 그걸 뛰어넘었을 때의 쾌감을 위해서 칼을 휘두르는 것이다. 얼마나 애타게 고대하던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인데, 그걸 덧없게 날려버릴 순 없지.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데?”
…걸렸다.
진혁의 입 꼬리가 씰룩였다.
“방법은 내가 알고 있으니까 이번 대회에서 우리와 함께 하자. 네가 원하는 것. 그걸 이뤄줄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나뿐이야.”
모든 거래에 있어 최고의 전략은 가스라이팅.
구할 수 있는 물건이 단 하나뿐이고. 그걸 판매하는 것 역시 단 한 명뿐이라고 철저하게 압박하는 게 핵심이다.
잔뼈 굵은 중고거래상들이야 쉽게 낚이지 않겠지만….
이 녀석은 하루종일 칼싸움만 해대는 전투광이다.
치열한 홍당무 마켓과 중고월드에서 닳고 닳은 고인물이 아니라.
그리고 그 예상을 증명하듯.
“약속. 꼭 지켜.”
아델은 이 매혹적인 미끼를 물 수밖에 없었다.
***
[파티 선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총 1268개 팀이 구성됩니다.]
[각각의 팀에는 팀을 상징하는 뱃지가 수여되며, 모은 뱃지의 수에 따라 이후 있을 메인 이벤트에 어드벤테이지가 차등 적용됩니다.]
진혁, 엘리스, 테레사, 월영 그리고 ‘인피면구’를 사용해 인간의 거죽을 입힌 티본과 프레이까지.
이 여섯에 아델이 합류함으로써 총 일곱명의 파티가 구성되었다.
“……이 중에서 기껏해야 3팀.”
“나머지는 전부 탈락이다.”
“반드시 우리가 들어가야 해. 메인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달라진다고.”
“오늘을 위해 전재산을 털어 투자했다. 다 박살내주마.”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신경전이 이어졌다.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 다운이 10초를 표시하자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가까운 적부터?
아니면 강해보이는 놈부터?
그것도 아니면 최대한 사리면서 체력과 마력을 보존해야 하나?
서로가 다른 전략과 생각을 갖은 채 대치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3, 2, 1… 시작!]
경기가 시작되었다.
콰콰콰콰콰… 서걱!
상태창이 사라짐과 동시에 피분수가 뿜어졌다.
“끄아아악!”
“아아아악!”
아델의 유검이 무시무시한 궤적을 그리며 뻗어나갔다.
죽이면 안 된다는 규칙.
그렇기에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팔다리가 깊숙이 베인 이들은 한 눈에 봐도 전투를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디서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마, 막아!”
“저런 미친 놈이….”
처음에는 맞서 싸우려 했다.
적은 고작 하나.
다짜고짜 무차별 공격을 해대며 모두를 상대하겠다는 행동은 혈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금세 압도적인 숫자에 짓눌려 꺼져버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쿠쿠쿠쿠쿠쿠!
불길은 사그라들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거세게 타올랐다.
“킥! 뭐야, 이 형 누나들은… 너무 느리잖아.”
몸이 풀렸는지 아델의 속도와 날카로움이 한 층 더 매서워졌다.
“히이익!”
“괴, 괴물이다.”
“무리야. 튀어. 시험이고 나발이고 튀어야 살 수 있다고!”
이제는 싸우려고 하던 자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것으로 상황이 반전되었다.
카가가각….
날붙이가 잘려나가고 갑옷이 토막난다. 비릿한 피냄새가 축제의 서막을 알렸다.
“주군.”
월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봐도 확연한 실력 차.
충분히 손속에 사정을 둘 수 있음에도 지나치게 잔혹한 마무리는 같은 팀에게까지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좀 심하긴 하네. 엘리스.”
진혁이 옆에 있는 엘리스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이런 하찮은 싸움에 위대한 짐의 마력을 낭비하라고 하다니. 계약자는 양심이라는 것도 없는 것이냐.”
“가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몰디브. 거기 데리고 가줄게.”
[고유성창 개벽의 계시록 ‘블러드 익스프레스’가 발동됩니다!]
[황도십이궁의 가호로 인해 스킬에 투명화 효과가 추가로 부여됩니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피로 만들어진 권역이 펼쳐졌다.
“칵테일과 랍스터는 무제한 제공이어야 할 것이다.”
쿠쿠쿠쿵!
무지막지한 중력이 경기장 전체를 짓눌렀다.
“큭!”
날뛰던 아델마저 그 무게감을 견디지 못해 걸음이 멈췄다.
당연히 나머지 플레이어들이야 어떤 꼴이 되었을지 말해봤자 입만 아프리라.
[A-15팀이 탈락했습니다.]
[B-22팀이 탈락했습니다.]
[F-7팀이 탈락했습니다.]
무수히 나타나는 탈락 메시지.
약 10분 뒤 경기장에 서 있는 건 전체 중에 극히 일부 뿐이었다.
***
세계 각성자 협회 연맹.
가장 권위 있고 강력한 집단에서 개최한 ‘별들의 전쟁’은 그야말로 탑을 등반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이벤트가 될 거라 확신했다.
그렇기에 예선 참가 역시 최대한 치열하게 선별할 생각이었고.
하지만.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대체.”
“세상에나….”
족히 6시간 이상 걸릴 거라 예상했던 시험은 채 20분도 안 돼 끝나버렸다.
대규모 난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라면 차라리 이해라도 된다.
수천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싸운다면 빠르게 끝나는 것도 아예 말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까.
허나, 단 한 명에 의해 전멸해버리는 건.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무너뜨려버리는 일이었다.
모니터링을 하던 직원들이 한참이나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멍하니 화면만을 바라보며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망각해버린 탓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선임 모니터 요원인 애플릭이 손바닥으로 뺨을 때렸다.
“당장, 저 인원에 관한 모든 자료 요청하고. 합격한 나머지 멤버들 프로필도 취합해서 보고해.시간 없으니까 1시간 이내로!”
“2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라 자세하게 조사하긴 조금 촉박할 텐데요.”
“나머지는 나중에 업데이트 해도 돼. 지금 중요한 건 1772번 참가자야.”
슈에뜨에 이어서 또 다시 괴물 같은 루키가 등장했다.
공격을 하던 소년이 갑자기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긴 했으나, 그게 정신계열이나 마법 계열의 광역기를 사용하기 위한 동작이었다고 한다면 말이 되었다.
애초에 나머지 지원자들의 마력 반응은 다들 고만고만한 수준이었으니까.
‘특별히 눈에 띄는 자는 없군.’
애플릭의 시선이 강진혁이라는 한국의 전직 BJ에게 향했다.
역시나 운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되는 보잘 것 없이 짧고 하찮은 경력만이 적혀 있었다. 시련의 탑이 나타난 이후 변변찮게 활약한 기록 또한 전무했고.
‘그래도 들러리로서는 충분히 제 역할들을 해줄 정도는 되겠지.’
눈부신 별의 축제를 위한 연료.
그 정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