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 17화
백하의 경계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은 모두 요주의 대상이었다.
“따끈한 소면 두 그릇 주시오.”
“미안하지만 안 되겠소. 당분간은 어쩔 수 없으니 빨리 나가주기나 하시오.”
“음식점에서 소면을 안 판다니 무슨 소리요?”
“이 사람, 어디서 왔기에 이렇게 꽉 막혔나?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개방 거지들에게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한 번도 당한 적 없소? 생각해 보시오. 이런 반관(식당)에 거지 떼가 우르르 몰려든다면 기분 좋겠소?”
이렇게 내막을 말해 주는 사람은 그래도 친절한 편이었다. 거의라 해도 좋을 만큼 들어서기가 무섭게 내쫓기 일쑤였다. 담벼락에는 적지인살과 종리추, 적지인살이 인피를 벗겨낸 일곱 시신의 화상이 나란히 붙어 있고, 제일 오른쪽에는 방문도 적혀 있었다.
“뭐라고 쓴 거예요?”
“적지인살이라는 놈이 죽은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겼다고 적혔구나. 이자들이 있는 곳만 일러줘도 후한 포상을 하겠다고.”
“뭘로 포상한데요?”
“십성 은(품질이 가장 좋은 은, 은 값의 네 배) 삼십 냥.”
“와!”
“놀랐니?”
“있는 곳만 말해도 십성 은 삽십 냥이나 준데요?”
“개방은 모두 걸개들이지만 엄청나게 큰 곳이지. 삼십 냥 정도는 내 줄 거다.”
“삼십 냥… 정도? 그게 정도예요? 와! 정말 개방이란 곳은 대단한 곳이네요?”
“대단하지.”
적지인살과 종리추는 죽이 척척 맞았다. 종리추는 자신에게 현상금까지 붙은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십성 은 삼십 냥이라면 말을 열두 필이나 살 수 있는 거금이다. 어린아이에게는 꿈도 꾸지 못할 거금이 분명하다. 어른에게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아이 같았으면 겁부터 집어먹었을 텐데.’
“어디 가서 요기를 해야겠는데, 음식을 파는 곳이 없으니 난감하구나. 할 수 없이 점심은 길에서 때워야겠다.”
“사탕 사줘요.”
“하하! 그러자꾸나.”
적지인살은 걸개 두 명이 따라붙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굳이 숨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대화를 엿듣고 판단하는 듯했다. 그중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멀리서 온 듯한데 어디서 왔수?”
“왜 그러시오?”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물어봤수.”
“하하! 그럴 수밖에요. 산에서 약초나 캐는 놈이 세상 물정을 어찌 알겠소.”
적지인살은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과연 적지인살이 둘러멘 망태기에는 약초가 가득했다. 옷도 산을 타는 약초꾼이나 입는 허름한 옷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약초꾼 같지 않은데…”
“이거 왜 이러시오? 괜한 시비 걸지 마시오.”
“흐흐흐! 내가 보기에는… 마누라 등쳐먹는 버러지 같아.”
“가자.”
적지인살은 화가 나 참을 수 없다는 듯 씨근거리며 종리추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 아이는 누구 자식이요? 마누라가 새서방 봤소? 히히!”
적지인살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요기를 하기 위해 길거리 음식을 파는 골목으로 들어서자 다른 거지 두 명이 슬쩍 다가왔다. 두 명 다 타구봉을 움켜쥔 상태였다.
“사탕은 요기를 한 다음에 사 먹자.”
“예, 사주기만 하면 돼요, 또 약초 판 돈 전부 다 술 드실 건 아니죠? 약초 파는 즉시 돈은 저 주셔야 돼요?”
“알았다. 알았다. 이건 어떻게 된 게 제 어미보다도 더 깍쟁이야.”
쉬이익…! 쒜엑…!
뒤통수로 타구봉이 날아왔다. 타구봉은 적지인살뿐만이 아니라 종리추의 뒤통수도 노렸다.
“그게 다 아빠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 그래요.”
“알았다니까! 자꾸 신경 건드릴래!”
타구봉은 지척에서 멈췄다. 적지인살과 종리추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뒤통수에는 아무 신경도 없는 사람들처럼 무신경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뒤에서 다가왔던 걸개 두 명이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그리고 양쪽에서 지켜보던 걸개도 자리를 떴다. 빵을 먹고 사탕을 사주고, 골목길을 벗어날 때까지 말을 걸어오고 불의의 기습을 날려온 걸개는 무려 이십여 명에 달했다. 먹던 빵이 목구멍에 걸릴 만큼 집요했다.
선부(나루터)로 나온 적지인살은 뜨끔했다. 개방 다섯 호법 중 얼굴에 검상이 있는 호법이 나루터 한쪽에 서서 냉엄한 얼굴로 오가는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종리추를 두고 오길 잘했군.’
고수는 괜히 시비를 걸어오지 않는다. 고수가 시비를 걸어올 때는 십중팔구 정도의 확신을 갖고 있을 때이다. 호법이 적지인살을 쳐다보았다.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뚫어지게 쳐다본다.
‘위험해!’
위기를 알리는 경종이 울렸다. 적지인살은 등을 보이지 않고 태연하게 어물 값을 흥정했다.
“이건 한 마리에 얼마요?”
“세 푼만 주세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잉어가 먹음직스러웠다.
“한 마리 주쇼.”
억세게 생긴 중년 부인은 익숙한 솜씨로 새끼줄에 잉어를 엮었다. 적지인살은 호법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잉어를 쳐다보고 있는 듯하지만 곁눈질은 호법을 향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어. 등을 보이면 안 돼.’
아무리 정교한 인피면구를 썼어도 가릴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신장과 체격이다. 만약 옆에 종리추까지 있었다면 호법은 벌써 다가왔을 게다. 적지인살은 잉어를 들고 태연하게 나루터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호법이 손짓을 해 걸개 몇 명을 부르더니 뭐라고 지시를 내렸다.
‘꼬리가 붙었어.’
적지인살은 바싹 긴장했다. 한순간만 삐끗하면 인피를 쓴 것이 무용지물 되어버린다. 지겨운 추적이 뒷덜미를 움켜잡을 순간이었다. 문정 나루터는 백하 건너편에 있는 모물촌과 마찬가지로 민가가 천여 가구에 이른다. 나루터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정 많고, 인심도 후해서 짧은 시간에 크게 번성한 마을이다. 문정 나루터에 생계를 건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는지를 안다. 객잔은 포근하고 아늑하다. 주루는 향기로운 술이 넘쳐흐른다. 다루는 고급 차를 싼값에 제공한다. 적지인살은 잉어를 들고 천천히 걸었다. 걸음을 빨리 옮기고 싶었지만 그런 마음이 들수록 더욱 천천히 걸었다. 자판에 널려 있는 물건도 구경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개방도들의 움직임에 바짝 신경을 곤두세웠다.
‘경계가 너무 삼엄해. 배를 탈 수 없겠어.’
적지인살은 ‘문정 전포’라고 쓰인 곳으로 쑥 들어갔다.
“이건…?”
“남양표국에서 발행한 어음이오.”
“그건 알고 있소만.”
“…”
“지급 기일도 지난 것을 왜 할인하려고 하시오?”
“편하게 이야기합시다. 말이 길어지면 일어서겠소.”
“도권은 취급하지 않는데…”
“…”
“십성 은으로 오십 냥. 어떻소?”
“이백 냥짜리를 오십 냥으로 후려친단 말이오?”
“싫으면 그만두슈. 도권이란 게 자칫하면 휴지 조각 되어버린다는 걸 잘 알면서 왜 그러슈.”
“좋소, 오십 냥으로 합시다.”
“지금 당장은 열 냥밖에 없소. 사십 냥은 한 시진 후에나 오슈.”
“그럼 안 되겠군. 주쇼. 다른 곳이나 알아봐야지.”
“알아보슈. 이런 조그만 마을에 그런 돈이 어디 있소?”
“좋소. 그렇게 합시다.”
적지인살은 십성 은 이백 냥짜리 어음을 열 냥에 넘겼다. 만출은 이백 냥짜리 어음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개방이 돌린 회보에 기재되어 있는 어음이 틀림없다.
‘남양표국에서 발행한 이백 냥짜리 어음이라… 지급 기일이 작년 섣달… 일 년이나 묵은 어음. 틀림없어.’
만출은 돈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이다. 그는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사내가 이백 냥짜리 어음을 내미는 순간부터 돈 냄새를 맡았다.
개방에서는 회보에 적힌 물품을 신고하는 사람에게는 일 할의 포상금을 준다. 이십 냥이다. 신고만 해도 열 냥의 이득을 본다. 앉아서 몇 달 내내 벌어도 벌지 못할 거금을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회보에 기재된 대로 어음을 가진 자가 살혼부의 살수라면… 잘하면 삼십 냥의 포상금까지 거머쥐게 된다. 하지만 만출은 욕심이 더 생겼다. 그는 도권을 취급하는 녹림도를 알고 있었고, 그에게 넘기면 절반 값인 백 냥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그런 장사가 으레 그렇듯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지만.
‘어떻게 한다. 이걸… 계륵, 계륵 하지만 내가 계륵을 만지게 될 줄은 몰랐군. 그냥 넘겨? 아냐, 너무 아까워. 아이구!’
그때 문이 삐걱 열리며 손님이 들어섰다.
“오늘은 장사 안 하니까 내일…?”
“조금 전, 그자가 맡긴 게 뭐요?”
만출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 결단을 내릴 순간이 의외로 빨리 다가왔다. 얼굴에 검상이 있는 거지는 사결 매듭이다.
“그, 그게…”
거지의 눈에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만출은 그렇게 느꼈다. 날이 시퍼렇게 선 파란빛.
“어, 어음입니다. 남양표국에서 발행한…”
거지는 손을 내밀었다.
“헤헤! 그렇지 않아도 신고하려고 했습죠. 약조한 대로 일 할은… 참! 그 자식, 인두겁을 쓴 적지인살이 틀림없습죠. 그럼요. 적지인살이라는 놈이었습죠.”
만출은 빼앗듯 어음을 낚아채 돌아서는 거지의 등 뒤에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저, 어디 가서 포상금을 받아야 하는지… 남양 분타까지 가야 되겠습죠? 여기서는 아무래도…”
탕!
거지가 문을 닫고 나갔다. 적지인살은 기루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바빠졌다. 지금쯤 개방에서는 어음을 손에 쥐었을 게다.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데 반 시진. 반 시진밖에 시간이 없어.’
“호호호! 대낮부터 양기가 뻗치셨나 봐.”
창기가 천박하게 궁둥이를 흔들며 다가섰다.
“네 방으로 가자.”
“어멋! 정말이네. 정말 대낮부터…”
적지인살은 십성 은 한 냥을 내밀었다. 창기의 눈빛이 탐욕으로 이글거렸다.
“오라버니를 뵙는 순간부터 숨이 턱 막혔다니까. 어쩜 이렇게 잘 생기셨는지.”
적지인살은 십성 은 다섯 냥을 내밀었다. 지분을 덕지덕지 바른 창기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욕심은 나지만 너무 큰 돈이라 선뜻 받아 들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일만 잘해주면 이건 네 거야.”
“어, 어떻게 해드려요? 빨아드려요? 항문으로 하실래요? 아님 다른 걸 좋아해요? 말씀만 하세요. 전, 전 아주 잘해요.”
“지금 당장 나루터로 가줘야겠다.”
“…?”
“난 배에서 하고 싶어, 생선 냄새 물씬 풍기는 어선에서. 이 보드라운 살결에 생선 비늘이 묻으면 얼마나 향기로울까?”
‘변태 자식!’
“어차피 공돈으로 생긴 것이니 오늘 밤 진하게 놀아보고 싶은데.”
“사, 사람들이 볼 텐데…”
“싫으면 꺼져.”
“오라버니도 참… 난 뭐 부끄럼도 없나? 하지만 오라버니가 원한다면 배에서 하는 게 문제야?”
“나루터에 가서 배 한 척 세내.”
적지인살은 십성 은 한 냥을 내주었다.
“반 시진 안에 세내놔. 찾아봐서 없으면 죽을 줄 알아.”
“기분 좋게 돈 다 주면 안 돼?”
“널 뭘 믿고? 돈 걱정은 하지 마. 이래 봬도 난 돈을 쓸 줄 알아. 네가 잘해주기만 하면… 흐흐!”
‘어디서 공돈을 주운 모양인데, 미친놈. 그래, 한번 대주지. 혹시… 이놈, 변태 살인마 아냐? 원태를 데려가야겠어.’
“호호호! 그래요, 오라버니, 지금 곧 가서 배를 세낼게. 빨리 와야 해. 나, 너무너무 하고 싶단 말야.”
적지인살은 엉덩이를 만져 주었다.
‘일각… 너무 시간이 걸렸어.’
적지인살은 기루에서 나오자 곧바로 길거리에서 몸을 파는 노기를 찾았다. 노기는 기루에 적을 둘 수 없는 퇴기가 대부분이다. 나이도 들었고, 몸도 불어 여자다운 매력은 별로 없었다. 노기는 생선 한 마리 값인 세 푼에도, 떡 하나 값인 한 푼에도 몸을 판다. 적지인살은 가장 외진 곳에 앉아 있는 노기에게 다가갔다.
“할까?”
“얼마 줄 거야?”
“얼마면 돼?”
“긴 거, 짧은 거?”
“긴 거.”
“닷 푼.”
“입에다 뒤까지.”
“…여덟 푼.”
“채찍질은?”
“그건… 안 해.”
“어선에서 채찍질에 구타까지.”
“변태구나? 싫어. 가.”
“십성 은 한 냥. 싫으면 가고.”
“… 어느 배야?”
“네가 세내, 반 시진 안에. 난 술 한잔 걸쳐야겠어. 가봐서 없으면 넌 죽어.”
적지인살은 노기의 손에 십성 은 한 냥을 쥐어주었다. 노기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반 각… 훨씬 빠르군.’
적지인살은 계속 노기를 찾았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떨어져 있는 노기가 목표였다. 그들은 은 한 냥씩을 손에 쥐고 멀어져 갔다. 도주는 걱정하지 않았다. 창기들은 하오문이라는 문파에 귀속되어 있었다. 그들의 허락 없이는 지역을 벗어날 수도, 기적에서 몸을 뺄 수도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란 십성 은 한 냥을 동전으로 바꿔 일부를 가로채는 정도였다.
문정 전포에서 어음과 바꾼 열 냥 중 아홉 냥이 사라지자, 적지인살은 부유해 보이는 집의 담장을 넘었다. 무림인에게, 살수에게 담장을 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널찍한 장원에는 오가는 사람이 많았지만 내실로 숨어드는 것은 별 어려움이 없었다.
‘살혼부 살수 적지인살이 옷가지나 훔치려고 담장을 넘었다면 사람들이 믿을까? 대행이나 의형들은 박장대소를 터뜨리겠지?’
적지인살은 가난한 사람들의 살림보다 부유한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더 환하게 꿰뚫었다. 지역에 따라 다른 가옥 구조도, 가구의 배치도… 대충 어디쯤에 도자기가 놓여 있고, 화장대는 어디쯤에 놓여 있는지… 옷장을 열어 옷가지를 살펴보았다.
‘운이 좋군.’
생각했던 옷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