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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21화


적지인살은 운남을 넘어 남만으로 들어설 때까지 인피면구를 벗지 않았다. 운남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을 풀어놓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중원을 완전히 벗어난 곳까지 가야 했다. 중원과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중원에서는 상상도 되지 않던 폭염에 시달리고 나서야 인피면구를 벗었다.

“이제는 사람을 만나도 된다. 피하지 않아도 돼.”

“정말요?”

“그럼.”

종리추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사람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토록 고대하던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산을 넘고 초원을 가로질렀다. 강을 만났지만 배가 없어 뗏목을 만들어 건넜다. 온 천하가 자연 그대로였다.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움직이는 것은 동물들뿐이었다. 그러다 정말 오랜만에 사람을 만났다. 중원의 가난한 농군처럼 화전을 일구어 논농사를 짓는 농부였다.

“안녕하세요?”

성격이 밝은 종리추는 한달음에 달려가 인사를 했다. 농부가 뭐라고 말을 해왔다.

“….?”

적지인살과 배금향은 서로의 얼굴만 멀뚱하니 바라보았다. 예상은 했지만 언어가 너무 달랐다. 말투가 딱딱 끊어지는 듯한데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찌 들으면 야단을 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들으면 원래 말투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남만에만 들어서면 자유로울 것이라던 기대가 얼마나 안일했는지는 곧 드러났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적의가 가득 담긴 눈길을 보내왔다.

“이거야 원… 말이 통해야 무슨 일인지나 알지.”

“어차피 어울려 살 생각은 없었잖아요.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 가서 자릴 잡아요.”

“우리 추아가 섭섭해서 어쩌나?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못된 아비 노릇을 해야겠구나. 수련을 조금만 게을리 해도 혼날 줄 알아.”

“헤!”

종리추는 섭섭해하지 않았다. 남만에는 뜻밖에도 호전적인 부족이 많았다. 자신들의 부족 외에는 모두 적이라고 간주하는 듯 독침, 독 화살을 날려왔다. 마을로 들어서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그들의 영역을 지나가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여기서는 조용히 지내요. 애꿎은 사람들을 죽일 필요는 없어요.”

“허! 중원에서는 약해서 쫓기고 여기서는 강해서 쫓길 판이군.”

“호호호!”

중원에서나 남만에서나 쫓기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마음이 편했다. 남만 부족민들은 호전적이고 사나웠지만 위협은 되지 못했다. 남만에는 호전적인 부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씨가 순박한 부족도 있었다. 그들 말로 홍리족이라고 부르는 부족은 공격을 가해오지도 않았을뿐더러 반갑게 맞아주기까지 했다. 언어는 여전히 소통되지 않았지만 ‘죽을 먹어라’, ‘술을 마셔라’ 하는 간단한 의사 정도는 몸짓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아들었다.

“이 근처에 자리 잡으면 싸울 일은 없겠네요.”

“오다가 보니까 초원이 있던데 그곳에 자리 잡는 게 어때?”

“좋아요. 오랜만에 멋진 노을을 볼 수 있겠네요.”

배금향의 말대로 노을은 아름다웠다. 초원 너머로 세상을 붉게 물들이며 참나무, 밤나무, 소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나무들이 가득한 밀림 너머로 넘어가는 석양은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풀잎으로 얼기설기 지어놓은 움집일망정 쫓기지 않고 마음 편히 산다는 게 무엇보다 좋았다.

“추아가 보이지 않네요?”

“그새를 못 참고 쏘다니는 모양이지. 휴우! 어떻게 가르쳐야 좋을지 모르겠어.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으니…”

“아직 어린애잖아요.”

‘이제부터는 살수야.’

적지인살은 목구멍까지 치민 말을 꿀꺽 삼켜 버렸다. 움막을 지을 때만 해도 제 키만한 잎을 잘라오고 마당을 고르고… 일을 썩 잘 도와주던 종리추가 온다 간다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다. 걱정은 하지 않았다. 워낙 영특한 아이니까.

‘내일부터는 기본공을 가르쳐야겠어. 글도 가르쳐야겠군. 워낙 괴상한 아이니… 글을 모르고 무공만 배웠다가는 정말 효웅이 되지. 힘들게 자란 아이니 엉뚱한 야망만 키울 우려가 있어.’

종리추는 밤이 이슥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일 년이 넘게 먼 길을 걸어왔지만 속을 썩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눈치가 빨라서 ‘얼마나 눈치를 보며 살았으면 저럴까’ 하고 속상한 적이 있었지만.

“추아가 혹시 길을 잃은 건 아닐까요?”

“초원뿐인데 길을 잃었겠어?”

배금향은 홍리족이 준 쌀로 밥을 지으면서도 어둠이 가득 깃든 초원을 연신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찾아봐야겠어요.”

배금향이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마냥 기다리기에는 밤이 너무 깊었다. 종리추는 쉽게 찾아냈다. 종리추가 놀 만한 곳은 몇 군데 되지 않았다. 드넓은 초원에는 없을 것이다. 밤이 늦도록 관심을 끌어당길 것도 없으려니와 아버지, 어머니가 분명히 걱정할 것을 알면서도 놀고 있을 아이가 아니다.

‘홍리족 부락이야. 그곳에 있을 거야. 눈치가 빠른 아이니 뭔가 필요한 게 있어서 갔을 텐데. 아이도 참… 말을 할 것이지. 눈치 보는 습관부터 고쳐야겠어. 당당하게 키울 거야, 당당하게.’

배금향은 홍리족 부락으로 가지 않았다. 부락에 이르기 전 횃불이 일렁이는 곳을 발견했던 것이다. 홍리족 부락민이 손에 횃불을 든 채 빙 둘러서 있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턱 하고 막아왔다.

‘혹시?’

쉬익!

배금향은 부락민이 눈치 채지 않도록 신법을 전개해 다가갔다. 종리추는 홍리족 부락민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 이런!”

배금향은 너무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덩치가 우람한 사내는 종리추의 멱살을 움켜잡고 개 패듯이 두들겨 패는 중이었다.

퍽! 퍽! 퍼억…!

한 대, 한 대… 사내의 주먹은 쉴 새 없이 휘둘러졌고, 그때마다 종리추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꿈틀거리기만 했다. 배금향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종리추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 어린애이지 않은가. 좋게 타일러도 될 일을 부락 사람들이 빙 둘러서 도망가지도 못하게 해놓고 무지막지하게 때리다니. 때려죽이기라도 하겠단 말인가? 배금향은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밀었다. 양손에 진기를 운집했다. 사내를 일장에 때려죽여도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잠시만 지켜봅시다.”

딱딱하게 경직된 음성과 함께 갈고리처럼 단단한 손이 배금향의 어깨를 잡았다. 배금향은 돌아보지도 않고 음성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았다.

“놔욧!”

배금향의 날카로운 음성이 어두운 밤 공기를 잘게 찢었다. 홍리족 부락민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 향했다. 그들의 눈빛은 적의로 가득했다. 음식을 주고 술을 주던 따스한 이웃이 더 이상 아니었다. 독 화살을, 독침을 날려오던 호전적인 다른 부락민 모습과 똑같은 표정이었다.

“추아가 비명을 지르지 않아.”

“…?”

“추아… 혼절하지도 않았어.”

배금향은 적지인살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말을 나누는 도중에도 덩치가 우람한 사내는 연신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퍽…!

배금향은 종리추의 몸에서, 얼굴에서 작렬하는 소리가 마치 자신의 몸을 가격하는 소리처럼 들려 견딜 수 없었다.

“놔욧! 놓으란 말예요!”

적지인살은 그녀의 어깨를 놓았다. 아니, 그녀보다 더욱 빨리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손에는 어느새 뽑았는지 기형월도가 들려 있었다.

쉬익- 퍼억!

아름답기까지 한 도무는 달빛을 반으로 쪼개 버렸고, 우람한 사내의 목에서 핏줄기가 솟구치게 만들었다. 사내가 칼을 뽑아 종리추를 찔러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홍리족이 일제히 고함을 질러댔다. 그들은 분노했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했다.

‘분노한 사람들은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다. 자칫하다가는 대량 학살이 벌어지겠어.’

생각과 행동은 동시에 일어났다. 적지인살은 허공에 신형을 띄웠다. 수많은 살행을 성공리에 완수하는 데 톡톡히 제 몫을 다해주었던 비호무영보가 펼쳐졌다. 적지인살의 신형은 귀신의 움직임처럼 빨랐다. 용처럼 하늘로 솟구치는가 하면 표범처럼 도약하기도 했다.

‘위협을 주는 데는 지법보다도 도법이 효과적이지.’

기형월도가 비호무영보와 어우러져 춤을 추었다. 혈염도법이라고도 하고 혈염삼절이라고도 부르는 혈염옹의 삼절초다. 혈염옹은 혈염삼절을 창안해 내기만 했을 뿐 제대로 사용해 보지는 못했다. 혈염삼절을 익히고 송영을 제자로 받아들이는 데까지는 순탄했지만 웅대한 뜻을 품고 무림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그의 앞에 나타난 사람이 하필이면 청성파의 장로인 현양자였다. 혈염옹은 혈염도법을 사용한 첫 싸움에서 목숨을 잃었다. 적지인살이 혈염도법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미신에 불과하지만 불길한 도법이라는 이유가 컸다. 적지인살의 신형은 갈수록 빨라졌다.

획! 휘익! 쒜에엑…!

신법과 어우러진 도법이 이름 그대로 피를 그리워하는 듯한 도명을 토해냈다. 적지인살은 오른팔을 사용하지 못하고 대거혈을 다쳐 진기를 끌어올리기도 벅찼지만 끌어올릴 수 있는 모든 진기를 끌어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쉽게 펼칠 수 있는 초식을 펼치는데도 진땀이 흘러나왔다.

“우…!”

홍리 부족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소리가 아름답게 들렸다. 최소한 분노에 치를 떠는 소리보다는 한결 아름다웠다.

‘겁을 먹었다. 비호무영보와 혈염도법을 펼친 보람이 있군.’

적지인살은 지금 이대로 종리추를 데려가도 가로막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종리추는 사흘이 지나도록 깨어나지 않았다. 배금향이 정성을 다해 간호했지만 건강한 사내도 열 번은 혼절했을 뭇매를 얻어맞은 뒤라 쉽게 깨어나지 못했다.

“아직도 피똥을 싸나?”

“다행히 피똥은 멈췄어요.”

“죽지는 않겠군.”

“…”

적지인살이나 배금향이나 홍리 부족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부락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들어가도 막을 만한 사람이 없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종리추는 나흘이 지난 다음에야 눈을 떴다.

“무슨 일이 있었니?”

이제 막 눈을 뜬 아이에게 묻기에는 적당한 질문이 아니었지만 홍리족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아야 했다.

“묘지가 있었어요.”

“뭐?”

“나뭇잎을 잘라올 때 보니까 묘지가 있어서…”

“인피를 만들 생각이었냐?”

적지인살이 성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리 어린아이라 하지만 정신이 있는 것인가. 종리추가 면구를 만드는 솜씨는 뛰어나다. 그건 인정한다. 그런 솜씨를 지녔으니 또 만들고 싶은 욕구도 있을 게고, 인피도 제 손으로 뜨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게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제 부모, 제 형제의 얼굴 가죽을 벗기는데 가만히 있으리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아뇨.”

종리추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인피면구를 쓸 일도 없는데 만들어서 뭐 해요.”

“그럼 뭐 하러…”

“금종수를 익히려고요.”

“뭐, 뭐라고!”

“묘지가 있잖아요, 그래서 금종수를 익히고 싶은 생각에…”

“…”

할 말을 잃었다. 적지인살은 종리추에게 금종수를 가르쳐 준 사실조차도 잊고 지냈다. 그게 언젯적 이야기인가. 오채산에서 도주를 시작하고 며칠이 지난 다음이니 벌써 일 년여가 훌쩍 지난 옛이야기이지 않은가. 종리추는 아직도 금종수를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무공이란 거의 대부분 절정에 이르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필요로 한다. 같은 손짓이라도 깨달음을 얻은 손짓과 얻지 못한 손짓은 확연히 다르다. 깨달음이란 한 번으로 그치는 것도 아니다. 몰랐던 부분을 깨닫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툭 하니 터져 나와 알게 되고… 무공이란 깨달음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깨달음은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만 나타난다. 수십 수백 번의 수련을 통해서 이제는 완벽하다 싶을 때, 혹시 그렇게 수련했는데도 잘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 그때, 깨달음이 나타난다. 금종수는 일반적인 무학 상리를 완전히 벗어난다. 금종수는 처음부터 정신과의 대화에 들어가야 한다. 귀신이란 형상을 만들어내고, 믿어야 하며, 싸워서 얻게 된다. 적지인살이 금종수를 전수할 때는 그저 굳건한 심정이나 유지하라는 뜻이었지만 정말 금종수를 배우라는 뜻은 아니었다. 배울 수 있다고 믿지도 않지만.

“금종수를 익힐 생각이냐?”

“네.”

“귀신을 믿니?”

“귀신이 손을 잡아끌어요.”

“…!”

적지인살은 멍하니 종리추를 바라보았다. 옆에서 말을 듣던 배금향도 멍한 표정이 되었다. 금종수를 익히는 방법은 무림인이라면 삼류 고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배웠다는 사람이 없는 것은 귀신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신이 손을 잡아끈다고? 그 말을 믿으란 말인가?

“좋아. 배워봐라. 낮에는 기본공을 익히고 밤에 잠깐씩만 다녀오는 거야. 알겠니?”

“네. 그런데… 부탁이 있어요.”

“말해 봐라.”

“앞으로 또 홍리족이 나타나서 때리면 나서지 말아주세요. 그 사람들은 절 죽이지 못해요.”

“…?”

“귀신이 절 보호해 주는걸요.”

나흘 동안이나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아이가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언제 아팠냐 싶게 육신이 멀쩡하니 귀신이 곡할 노릇.

“진기를 살펴봐 줘.”

정심한 진기를 끌어올릴 수 없는 적지인살이 배금향에게 부탁했다.

“무공을 배운 적도 없는 아이인데 진기를 운기할 수 있겠어요?”

배금향은 반신반의하며 기해혈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진기를 운기하는 방법, 진기를 조기하는 방법은 문파마다 무공마다 다르다.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른 경우가 많다. 진기를 방기해 주는 방법도 적지인살은 명문혈을 통해서 하지만 배금향이 익힌 무공은 기해혈을 통해서 하는 것 같다. 배금향이 눈을 부릅떴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지, 진기가…”

“진기가 흐르고 있나?”

“예, 거세게.”

“음…! 백회혈이 가장 부드러웠고?”

“네, 독맥이 발달되어 있어요.”

적지인살도 알고 있는 내용이다. 진기를 자유롭게 끌어올릴 수 있을 때 종리추의 골격을 만져 보았고 진기의 흐름을 관찰했다. 믿을 수 없게도 진기의 흐름이 상당히 강했다, 내공을 수련한 사람처럼.

“변검을 해보겠니?”

“가면이 없는데요.”

언젠가 했던 물음에 똑같은 대답이다.

“있다고 치고 해봐라.”

“네.”

종리추는 열 걸음을 떼어놓는 동안 손을 세 번 움직였다. 십보십변의 경지와는 한참 떨어진 십보삼변이다.

“다시 한 번.”

종리추가 다시 한 번 열 걸음을 떼어놓으며 손을 움직였다. 적지인살과 배금향은 손의 빠름에는 관심 갖지 않았다. 그들이 지켜본 것은 손이 움직이는 수로였다. 손이 움직일 때마다 중심이 어느 곳에 자리 잡느냐였다. 중심 이동의 변환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였다.

“백회혈을 통해서 외기를 받아들이고 일직선으로 하강하여 양손에 운집한다. 단전에 쌓인 진기는 그 뒤에 흐른다. 외기를 먼저 사용하고 내기를 사용하는군. 생각이 맞는다면 이건 내공이야, 독특한.”

적지인살과 배금향은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려는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종리추는 귀신이 보호한다고 믿지만, 실은 자신의 내부에 쌓인 반탄진기가 혈맥을 보호한 결과였다.

‘맞더라도 병기에만 찔리지 않으면 안심할 수 있어. 급할 것도 없으니 백일만 지켜보지.’

적지인살은 금종수의 연공을 수락했다. 백일 연공을… 종리추는 하오문의 밀마를 알아듣는 예민한 귀로 홍리족의 언어를 알아듣게 되었다. 말도 하게 되었다. 적지인살과 배금향은 홍리족과 말이 통하지 않지만 나이 어린 종리추는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종리추가 무덤에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백일 연공만 허락한다는 적지인살의 계획은 또 한 번 무너졌다. 종리추는 하루가 멀다 하고 흠씬 두들겨 맞았고 맞을수록 회복되는 시기도 빨라졌다. 도저히 기본공을 수련시킬 틈이 없었다.

“반탄진기가 형성되고 있는 거야. 이것도 좋은 수련이 되겠군. 철포삼을 익힌 효능이 있겠어.”

적지인살은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나 그는 당심나 해도 종리추가 일 년 동안이나 꾸준히 금종수를 수련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금종수를 얼마나 익혔는가? 알지 못한다. 금종수를 익혀본 적이 없고 상태가 어떤지를 모르니 알 도리가 없다. 홍리족 사내들에게는 왜 두들겨 맞는가? 그것만은 조금 알 것 같다. 육신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귀신이 들지 않는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마에 휘둘리지 않는다. 종리추는 심신을 지독하게 학대한다. 종리추가 발길을 들여놓은 무덤은 홍리족의 부락 묘이다. 홍리족은 풍장을 지낸다. 비바람에 가족의 시신이 잘 썩으면 뼈를 곱게 닦아서 부락 묘로 가져와 항아리 속에 곱게 넣는다. 항아리 속에는 적게는 한두 구, 많게는 대여섯 구에 이르는 조상들의 뼈가 소복이 담겨 있다. 홍리족이 성지를 침범한 종리추를 가만두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비록 어린아이지만. 종리추는 그런 점을 알면서도 밀림에 임자 없는 무덤이 있는데도 굳이 홍리족 부락 묘를 이용한다. 사내들을 자극하여 얻어맞는 것은 심신을 피로하게 만들어 귀신이 쉽게 들어오게 하는, 귀신과 대화하기 위한 방책이다. 꼬마가 생각했다고 하기에는 소름 끼치도록 지독한 고육지책이지 않은가. 어느 꼬마가 어른에게 흠씬 두들겨 맞을 생각을 하겠는가. 초막을 아예 부락 공동묘지로 옮겼다. 단지 금종수를 조금이라도 편히 익히게 하자는 배려였다. 그러자 종리추는 맞을 줄 뻔히 알면서도 홍리족 부락을 찾아 들어갔다. 그렇게 흠씬 두들겨 맞은 다음에는 공동묘지로 돌아와 귀신과 대화를 나눴다. 요즘 들어서는 적지인살도 배금향도 종리추가 정말 귀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귀신이 없다고 확신하면서도,

‘신비한 아이…’

종리추는 함께 생활한 지 이 년이 넘은 적지인살 부부에게도 신비한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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