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 56화
유구, 우회, 역석이 천화기루를 나선 지 사흘째 되는 날 이른 새벽. 종리추는 산보를 하는 가벼운 차림으로 기루를 나섰다.
낮에는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거리던 자리에 쓸쓸한 바람만 가득했다. 매섭게 몰아친 겨울바람이 나뭇가지에 쌓인 눈을 털어냈다.
‘아름답군.’
겨울이 생경했다.
더운 곳에만 십 년을 보낸 후라 중원에서 처음 맞이하는 겨울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논과 밭이 흰색 일색이었다. ‘백설이 만건곤’하다는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은 아직 어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날은 밝아오고 있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꿈나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오늘도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있겠지. 힘든 삶이었다고 생각할까, 더 머물고 싶은 세상으로 기억할까.’
종리추는 바람에 휘날리는 눈가루 하나도 소홀히 보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걷고 있는 걸음이 마지막 보는 풍경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걷고 있는 걸음이 마지막 걸음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벌이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세상처럼 변수가 많은 곳은 없다. 그래서 옛 성현은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을 했다. 인간의 머리로는 앞을 내다볼 수 없기에.
‘완벽은 있을 수 없어.’
그러나… 자연은 어떻게 이리 완벽할 수 있는가. 바위가 있을 곳에 바위가 있고, 나무가 있을 곳에는 나무가 있고… 억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흩어지고 모였을 풍경이 완벽하지 않은가.
천화가루에서 머물렀던 며칠 간은 참으로 값졌다.
종리추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세계에 눈을 떴다.
금기서화.
아버지에게 학문을 배우기는 했지만 무공보다 중점을 두지는 않았다. 뛰어난 경전을 읽어도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모두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어른들에게 반말을 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래서는 안 돼’하는 반발이 울려 나온다. 사람을 죽이라는 명을 내릴 때도, ‘꼭 그럴 필요까지는’ 하는 망설임이 새어 나온다.
학문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을 가르쳐 준다.
그가 배웠던 학문은 살수의 길에는 오히려 장애로 작용했다.
‘살수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
종리추는 약한 마음이 새어 나올 때마다 더욱 강한 모습으로 자신을 붙들었다.
금기서화는 나약한 마음을 붙드는 데 좋은 보약이었다.
금을 탄주하든 바둑을 두든… 어느 하나에 몰입하면 죄책감, 불안감이 사라지며 편안해졌다.
그렇다고 금기서화에 미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대장원은 생동감 있게 움직였다.
대문 앞에 가득 쌓인 눈은 말끔히 쓸어져 깨끗했고, 활짝 열린 대문 저쪽에도 눈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은 낄낄거리며 농담을 주고받았고, 검을 찬 무인들도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종리추는 돌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돌계단 위쪽에는 수문 무인인 듯한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주를 뵈러 왔소이다.”
종리추는 깍듯이 예의를 지키며 포권지례를 취했다.
“무슨 일이오?”
“볼일이 있어서요.”
“글세, 볼일이 있어서 왔다는 건 알겠는데, 그 볼일이란 게 뭐요?”
“은자 이만 냥짜리 볼일입니다. 책임질 수 있습니까?”
순간 수문 무인의 안색이 변했다.
종리추는 하얀색의 비단옷을 입고 있다. 신발도 수달피 가죽으로 만든 가죽신이다.
용모는 옷에 어울리지 않게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였으나 이목구비가 깨끗하고 고생을 모르고 자란 모습이 역력히 풍긴다.
어디로 보나 명문대가의 자제이니.
“안으로 들어가서 잠시 기다리십시오. 곧 총관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아니, 장주를 만나야겠소. 괜히 번거롭게 하지 마시고 장주님께 직접 연락을 취해주시오.”
“그러겠습니다.”
수문 무인은 공손했다.
역시 은자 이만 냥은 사람의 혼까지도 살 수 있는 거금이다.
“소인이 수문위수입니다. 따라오시지요.”
자신을 수문위수라고 소개한 무인은 고수였다.
그는 안내하는 척하며 종리추의 전후좌우를 세밀하게 살폈다.
종리추는 오진기를 끌어올렸다.
심기기기의 상태.
마음이 일어나니 진기가 일어난다.
동시에 일어난 다섯 진기는 전신을 휘돌았다.
미간에서 쏟아져 돌아온 불빛은 이환궁을 환하게 밝혀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모든 잡념과 번뇌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깊은 숲 속에서 똑똑 떨어지는 맑은 물방울처럼 깨끗이 정화된 진기는 혈도를 따라 휘돌았다.
백회에서 치달려온 진기는 중단전에 머물러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희로애락 같은 감정이 사라지며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았다.
혈염무극신공, 천풍신공, 대연신공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혈맥마다 진기를 충만하게 북돋아 전신에 활기가 넘쳐흐르게 만들었다.
어린이가 떠올랐다.
이제 어린이는 종리추에게 기쁨이었다.
진기를 일주천하여 기쁜 마음, 밝은 마음이 몸속에 가득할 때면 활짝 웃는 어린이가 떠오르곤 했다.
요즘 들어 종리추는 또 다른 변화를 겪었다.
마음이 환하게 밝혀지고, 어린이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된 다음부터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환궁에 머물렀던 진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신을 휘돌고 이환궁으로 환원한 진기가 다시 움직인 것이다. 도가 무공으로 짐작되는 금종수의 진기는 하단전으로 돌아가는 세 진기와 합세하여 하단전으로 스며들었다.
중단전을 넓히던 변검 양부의 진기도 움직였다.
금종수의 진기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중단전의 진기를 보듬어 안았다.
하단전으로 집중된 다섯 진기는 각기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전에 있던 세 진기는 각기 자리로 돌아갔다. 상부, 중부, 하부의 자리로.
이환궁과 중단전에서 내려온 진기는 혼합되어 하단전을 감쌌다.
하단전에 조그만 돌덩이를 넣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실제로 손으로 만져 보면 딱딱한 돌기가 느껴졌다.
어쨌든 그게 무슨 현상이든 간에 상단전과 중단전에 머물던 진기가 하단전으로 스며든 다음부터는 전신에 활력이 배는 넘쳐 났다.
하루 종일 술을 마셔도 취기를 느낄 수 없고, 천 리를 걸어도 피곤하지 않았다.
내력이 강화되자 도공, 선공, 권각의 위력도 한결 강해졌다.
종리추 자신도 ‘이런 변화가 있었나?’ 하고 놀랄 만큼 수천 번을 거듭했던 초식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힘과 속도가 달라지자 초식도 달라진 것이다.
종리추는 수문위수의 눈길을 의식했지만 태연히 오진기를 끊임없이 끌어올리고 집어넣었다.
심기기기는 좌식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주었다.
은밀하기는 더욱 깊어져서 타인은 바로 옆에 있어도 운기를 하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설혹 안다 해도 상관없었다. 운공 중에 기습을 받으면 치명적이라 극히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종리추는 운공 중에도 공격과 방어가 자유로웠다.
“여기서 기다리시지요.”
수문위수가 안내한 곳은 보통 정도의 별로 화려하지 않은 평범한 대청이었다.
“외총관입니다. 이만 냥짜리 볼일이 있으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장주님께 직접 말씀드려야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까?”
“들었습니다. 따라오시지요.”
외총관은 또 다른 대청으로 종리추를 안내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내총관입니다.”
종리추는 끊임없이 감시받았다.
어제 낮과 밤을 꼬박 걸었고, 또 낮이 되어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에서야 내총관이란 자를 만났다.
“장주님께서는 무척 다망하신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을 하다 보니 알아지는 것도 많더군요. 그중에 하나가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것이죠.”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맞는 말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내총관이라는 자는 너무도 태연자약한 종리추의 태도에 당황한 듯 했다.
“절대적이 아니라는 말씀은…?”
“장주님을 만나 뵈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지금은 손님이 계셔서… 사실 은자 이만 냥이 많기는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부탁일 터, 흔쾌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요? 그럼 볼일이 끝났군요.”
종리추는 서슴없이 일어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태연하게, 천천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총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종리추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그가 입을 연 것은 종리추가 전각을 돌아가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였다.
“이름은?”
“모릅니다. 보고된 적이 없는 자입니다.”
내총관 뒤에 소리 없이 나타난 음침한 인상의 중년인이 대답했다.
“대목중에 포함된 자인가?”
“아닙니다.”
“음…!”
내총관은 신음을 토해냈다.
살천문에서는 예비 청부자를 관리한다.
외도를 하는 사람,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사람, 노름을 좋아하는 사람, 원한이 있는 사람 등 사람을 죽일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
그들은 언제든 돈이 생기면 살인 청부를 할 자들이다.
종리추는 단 한 번도 보고된 적이 없다.
아주 크게 장사를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적이 많다. 당장은 없더라도 딛고 넘어서야 할 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당연히 청부가 들어온다.
관직에 나간 사람, 이런 사람은 정적이 있다.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관직에 있는 사람치고 한두 번쯤 살의를 느끼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살천문에서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따로 관리한다.
대목.
청부도 거의 확실하고 쉽게 들어오며 청부금도 크다. 살행을 하기도 쉬운 부류다.
다른 부류가 또 있다.
“그럼… 대목에는?”
“없습니다.”
“은자 이만 냥이라고 했어. 그런데 아무 곳에도 없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현재 은자 이만 냥을 돌릴 수 있는 자들은 빠짐없이 더듬어봤는데도 비슷한 자조차 없었습니다.”
결론은 하나다.
무인들 중에서도 찾을 수 없는 자라면 타 지역에서 온 자다.
그는 너무 쉽게 장원을 찾았다. 수문 무인에게 대뜸 ‘은자 이만 냥 운운’한 것이 증거다. 그는 이곳이 살천문임을 정확히 알고 왔다.
“다른 지부에서도 연락이 없었냐?”
‘틀림없이 소개를 받았어. 그런데 도대체 누가..? 어느 지부에서 소개를 했을까?’
젊은이가 죽이려는 자는 개봉부에 있다.
살천문에서는 자신들의 영역을 넘어설 경우 그 지역의 지부에 청부자를 인계하곤 한다. 대부분은 직접 청부를 받아 사건만 넘겨주는 것이 관례지만 이자처럼 은자 이만 냥이나 걸린 일이라면 본인이 직접 올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
“가서 데려와. 장주님 집무실로.”
“존!”
음침한 중년 사내가 신형을 뽑아 올렸다.
‘사지가 따로 없군. 천장에 둘, 바닥에 넷, 벽에 여섯, 열둘에 다가 앞에 다섯, 뒤에 다섯이라…’
종리추는 숨어 있는 자들의 위치를 파악해 냈다.
천장에 숨어 있는 두 명은 호흡이 너무 높다. 무공이 변변치 않은 자들이다. 그들은 아마도 만일의 경우 제일 먼저 공격을 시도할 것이고, 죽으리라.
진짜 공격은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청석 밑에 숨어 있는 네 명, 그들은 호흡 소리가 무척 낮다. 금종수의 신기 어린 직감력이 아니라면 찾아낼 수 없을 만큼 은밀히 숨어 있다. 그들은 고수다.
탁자를 중심으로 육각 방위를 점하고 있는 여섯 명도 고수들이다.
어떤 자는 기둥 속에, 어떤 자는 화폭 뒤에, 그들은 청석 밑에 숨어 있는 자들보다 거리는 멀지만 극히 정제된 호흡으로 미루어 일류 고수라고 할 만한다.
뿐만 아니라 장주 뒤에 시립해 있는 다섯 명도 상당한 고수들이고, 종리추의 뒤에서 행동을 감시하는 다섯 명도 무시하지 못한다.
더욱 큰 문제는 장주다.
장주는 적어도 살혼부 전대 고수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
살혼부와 살천문이 백중지세라고 봤을 때, 지난 십 년 동안 살천문은 상당히 발전했다. 전대 고수들로는 재건조차도 꿈꿀 수 없을 만큼.
“실례가 많았소. 바쁜 용무가 있어서.”
장주가 밝게 웃으며 정중히 포권지례를 취해왔다.
“…”
종리추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태연히, 그러나 약간은 거만하게 걸어가 장주의 왼쪽 자리에 털썩 앉았다.
“어떤 용무이신지?”
상대가 누군지, 이름이 무엇인지 등등은 중요하지 않다. 죽일 사람이 누구죠, 얼마를 내놓는가 하는 문제만 매듭되면 청부는 성립한다.
종리추가 말했다.
“여기를 찾아왔을 때는 용건이 분명하겠죠.”
“하하! 살인이란 말을 쓰기가 곤란하신 듯한데 여기서는 괜찮습니다. 우리는 살인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좋습니다. 한 사람을 죽여주십시오.”
“누굽니까?”
“먼저 할 수 있는지부터 알아야겠습니다. 상당히 어려워서.”
“…?”
“그자는 금성철벽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힘으로 뚫고 들어가려면 대문파가 나서야 할 만큼 튼튼한 곳이죠. 요행히 뚫고 들어가도 그자의 주변에는 무인 열 명이 호법을 서고 있습니다. 그들은 드러난 자들일 뿐, 드러나지 않은 자도 열두 명이나 됩니다. 그것뿐이면 괜찮습니다만, 죽이려는 자는 상당한 고수입니다.”
“무림인입니까?”
종리추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주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림인이고 개봉부에 거주한다면 개방 문도일 가능성이 높았다.
개방 문도만은 건드려서는 안 된다. 개방에도 아는 사람이 있으나 보복을 차단해 줄 정도는 아니다. 그것도 은자 이만 냥에, 말대로 철저한 경계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이라면 보통 사람이 아닐 터.
‘자칫하면 십망을 당할 수도 있어.’
“죄송하지만 저의 능력으로는 벅차군요.”
종리추는 얼굴에 그럴 줄 알았다는 고소가 스쳐 갔다.
‘이 자식이 기분 나쁘게’
“이곳에 찾아오면서도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만한 능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배짱도 없을 테고.”
“…”
장주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둘러선 자들의 눈에서도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들의 노기는 이어지는 말에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역시 세상에 그럴 만한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을 것 같군요.”
“한 사람? 그자가 누구입니까?”
“종리추라고 하더군요. 살문의 문주인데… 왜, 못 들어봤습니까?”
“…”
장주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는 수하들을 둘러보았다. 대신 대답해 줄 수 있는 자가 있는가 하고,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일을 수하들이라고 알고 있을 까닭이 없다. 도대체 언제 살수 집단이 생겼단 말인가. 감히!
“볼일을 봤으니 그럼 저는 이만.”
“잠깐! 지금 그 종리추라는 자를 만나러 가는 길입니까?”
“그래야죠. 여기서 못하니.”
장주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스쳐 갔다.
살문이 어디서 나타난 개뼈다귀인지는 몰라도 이제 종말을 고할 때가 되었다는 미소였다.
“아! 한 가지 잊어버린 사실이 있군요.”
수하에게 막 눈짓을 보내려던 장주는 느닷없는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가져갈 물건이 있는데 깜빡했지 뭡니까. 주시겠습니까?”
“뭘…?”
“목! 당신의.”
“…!”
쒜에엑!
장주가 상황을 눈치챘을 때는 너무 늦었다.
그와 종리추는 너무 가까이 있었다. 또한 종리추의 기습이 너무 급작스러웠다.
푸욱!
장주는 손을 들어 막아보려 했지만 종리추의 손길이 워낙 빨랐다.
장주의 목에서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암살이닷!”
“죽어랏!”
쒜에엑! 쒜엑!
고함 소리가 터짐과 동시에 앞과 뒤를 가로막았던 무인 열 명이 신형을 날렸다.
종리추는 얼굴을 찔러오는 검을 제일 먼저 쳐냈다.
슈욱! 푸욱!
그자는 검이 빗나간 것을 알고 검을 회수하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미 종리추의 손이 심장에 틀어박힌 후였다.
그자의 심장에서도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중원에 들어오자마자 한성천류비결에 적힌 대로 특별히 제조한 비수다.
비수의 길이는 중지손가락만 하고, 손가락 한 개 반 정도를 합쳐 놓은 듯한 넓이, 두께는 매미 날개처럼 얇다.
종리추는 자루조차 달지 않았다.
대저 자루란 손을 보호하기 위해, 병기를 마음껏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만약 인간이 검날을 손으로 잡고 사용할 수 있다면 검병은 아예 만들어지지도 않았으리라.
종리추에게는 수투가 있다. 수투가 없어도 금종수의 단단함은 충분히 비수의 날카로운 날을 움켜쥘 수 있다.
종리추는 근접전에서 탁월한 효과가 있는 한성천류비결 제일공 비류혼을 전개했다.
슈욱!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은 팔 모양을 따라 공격하던 자의 얼굴이 꽈리처럼 터졌다.
종리추는 육신을 저며낸 자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쓰러지든 말든 빙글 몸을 돌린 후 등 뒤에서 쳐오는 자에게 비수를 던졌다.
퍼억!
사내의 머리가 줄에라도 걸린 듯 휘청거렸다.
이마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린 것은 그 직후, 사내는 머리를 뒤로 젖힌 채 털썩 무릎을 꿇었고, 앞으로 쓰러져 머리를 청석 바닥에 박았다.
쉬익! 쉬익…!
천장을 향해 날린 비수 두 자루는 막 몸을 솟구쳐 뛰어내리던 사내들의 몸통을 꿰뚫었다.
최아악…!
비수 열 자루가 또 허공을 날았다.
한성천류비결 제사공 십비십향이다.
열 자루의 비수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달려들던 자들을 허공에 띄워버렸다.
쿵! 쿠웅! 쿵…!
다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죽었다. 비수 하나에 한 명씩, 일류 고수라는 자들이 손도 써보지 못하고 절명했다.
종리추의 비도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직감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너무 빨라서 ‘위험하다’는 직감이 들 때는 이미 몸을 관통했거나 몸속에 틀어박힌 후였다.
종리추는 신형을 띄워 기둥을 차고 대들보를 밟은 후 지붕을 뚫고 하늘로 비상했다.
“도주한다! 잡아!”
누군가가 소리쳤지만 종리추를 잡기 위해 몸을 날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대청에 남아 있는 사람은 겨우 다섯 명에 불과했다. 장주를 비롯해 열여덟 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저승으로 향했다.
꽈다당!
문이 부서지며 살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을 때 남은 다섯 명은 뻥 뚫린 지붕만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