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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00화


800화. 고인물이 유사(流)를 이용하는 법 (1)

콰콰콰콰콰!

콰아아앙!

마력이 폭발하면서 폭포 자체가 박살나기 시작했다.

“저, 정말 괜찮은 건가?”

말랑흑두루미가 초조한 듯 되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진혁은 진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관문들을 말 그대로 먼지로 만들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들이 왔다는 걸 알리기 위함이라지만, 이런 식이면 분노한 용들이 벌떼처럼 몰려올 게 불 보듯 뻔했다.

“뭘 그리 겁부터 먹고 그래? 내가 하라는 대로만 잘하면 걱정할 거 없다니까? 날 못 믿어?”

“그런 게 아니라.. 됐다. 더 말해봐야 먹힐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주인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

말랑흑두루미가 모든 걸 체념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떨궜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쿠쿠쿠쿠쿠!

서쪽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드리웠다.

기상을 다루는 진족의 정예들이 모조리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잠시 뒤, 하늘을 가득 메운 용들이 진혁과 말랑흑두루미를 마주했다.

“네놈!”

“잘도 뻔뻔스레 다시 얼굴을 보이는구나!”

“아무리 청룡의 격이 후대를 거듭할수록 떨어졌다고 한들, 수치스러운 줄 알거라!”

장로급에 해당하는 이들이 노성을 토했다.

진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용신의 여의주’.

그걸 마음대로 가져간 것만으로도 종족 전체에 길이 남을 대역죄였다.

“아니, 내가 다른 흑심이 있던 게 아니라, 그걸 그냥 가지고 있으면 결국에 49층 전체가…”

“닥쳐라! 어디 뱀 같은 혓바닥으로 우리를 속아 넘기려 하는 것이냐!”

“당장 여의주를 내놔라. 아직 가지고 있을 테지?”

말랑흑두루미의 변명은 단칼에 잘려나갔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다.

용들이 지난 일을 두고 으르렁거리고 있는 동안, 고고하게 나타난 거대한 흑룡이 입을 열었다.

“네놈이 이 층계를 혼돈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인가 보군. 강진혁이라 불리던데, 맞는가?”

무진룡은 이곳에 온 뒤 줄곧 진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흥미와 경계가 뒤섞인 눈동자.

상대의 격을 파악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이거, 진족의 왕까지 날 알아보고, 내가 많이 유명해지긴 했나 봐?”

“시련의 탑에 존재하는 강자들 중 자네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는 없을 거야. 하지만, 조금 실망스럽군.

“왜지?”

“분명, 터무니없는 강자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약하지 않은가? 아무리 만전의 상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무진룡의 주위로 신비로운 빛이 모여들었다.

당장이라도 공격에 들어갈 듯한 기세.

일부러 화려하게 날뛰면서 자신만만하다는 점을 어필했는데.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새 잔류월광으로 만들어진 가짜라는 걸 간파한 거겠지.

하지만, 말이야.

그걸 알아차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애초에.

“너희를 여기로 불러내는 게 목적이었거든.”

강진혁이라는 이름 석자가 가진 유혹. 거기에 말랑흑두루미가 가진 여의주까지.

모두의 시선을 잡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만한 미끼들이다.

“흐음.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너희 둘이서 시선을 끌고. 동료라도 하나 보내서 구출을 시도하려나 본데”

무진룡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설마 아무런 대비도 없이 나와 내 일족이 이곳에 몰려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결전의 전당에 테레사가 있는 건 사실이나.

그곳은 텅텅 비어 있는 게 아니다.

어찌보면 진족의 정예들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자가 간수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까.

무살두르.

거점과의 융화’가 가능한 특이능력을 지닌 오염된 쇼거스들이 지키고 있는 감옥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을 자랑하는 요새나 마찬가지일 터. 누구를 보내든지 간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결과밖에 만들지 못할 것이다.

자신만만해하는 무진룡의 말에,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웬만큼 강한 동료가 아니라면 거길 뚫는 게 쉽진 않겠지.”

인정한다.

무살두르라는 카드는 그 정도로 사기적이었으니.

허나, 무진룡이 말하는 명제에는 한 가지 조건이 붙는다.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를 보내지는 않을 거라는 조건이.

진혁의 시선이 저 멀리로 향했다.

그러자. 무살두르가 지키고 있는 결전의 전당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용맹의 왕관’을 착용했습니다!]

[고대종 ‘고구마’가 현현합니다!]

동양의 용들이 이곳에서 그럭저럭 강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서양의 용들을 지배하는 로드는 태고의 존재들마저 위협할 수 있는 초월자거든.

“모기이이이!”

고구마가 무살두르 앞에서 날개를 활짝 폈다.

쿠쿠쿠쿠쿠쿠!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의 폭주가 일어났다.

“자, 누가 준비한 게 더 강력한지 한 번 시험해 보자고.”

진 쪽은 모든 것을 잃고,

이긴 쪽은 모든 것을 갖는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용족의 전쟁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제격이리라.

***

전투가 시작된 지 약 1시간이 흘렀을 무렵.

철컹!

굳게 닫혀 있던 감옥 문이 열렸다.

“진혁…씨?”

어둠 속에 갇혀 있던 테레사가 쏟아지는 빛과 함께 들어오는 진혁을 바라봤다.

화과산에서 헤어진 이후 유적으로 간다고 들었는데.

설마,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이곳까지 와줬을 줄이야.

모든 걸 내팽개쳐두고 와준 진혁에 대한 고마움에 그만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물.

“고마워요.”

테레사의 입에서 진심이 담긴 말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얌전히 있어라. 곧 제대로 된 심문을 할 터이니.”

뒤에서 들린 목소리는 진혁의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형태로 폴리모프한 진족의 전사들이 그대로 진혁을 감옥 안으로 밀어넣었다.

콰당!

“아, 이게 안 되네.”

진혁의 뒤를 이어 말랑흑두루미와 고구마 역시 내팽개쳐졌다.

“크윽. 고귀한 이 몸이 이런 수모를 겪게 될 줄이야.”

“모기이이!”

구하러 온 건 맞았지만, 성공한 건 아니었다.

모두가 포로의 신세가 된 채 옹기종기 감옥 안에 들어온 것.

굵직한 구속구를 찬 건 덤이었다.

“……”

테레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혹시라도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이 물거품이 된 순간이다.

“하하. 잘 지내고 있었어요? 그래도 나름 재력이 빵빵한 일족이라 그런지 감옥도 그럭저럭 살 만하게 만들어놨네요.”

“바보….”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이 안에 들어온 걸로 1차 목적은 달성한 거니까.”

무살두르.

놈이 이곳에 와 있다고 들었을 때부터 한 가지 작전을 세웠다.

어떻게 하면 ‘유적’과 ‘진족’이라는 골칫거리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더 나아가서 49층을 완벽하게 공략하기 위해서 말이지.

“챙겨놨어?”

“모기!”

진혁의 말에 고구마가 볼을 오물거렸다.

툭!

굵직한 침과 함께 검은색 결정체가 떨어졌다.

‘태고의 마기’

무살두르가 전투를 하면서 생겨나는 부산물로서, 지독한 마기를 품고 있는 오염물질 덩어리였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는 가지고 다니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족족 버려야 한다.

50층에 서식하는 몬스터들도 꺼려하는 게 바로 이 결정체였으니까.

하지만.

‘테레사는 예외지.’

누군가에게 독이 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약이 되는 법.

태고의 마기를 읽어내고 동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에게는 최고의 영약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아…!”

파츠츠츠!

흘러나온 검은 연기가 테레사의 코로 흘러들어갔다.

그러자 그 순간.

[인격이 교체됩니다.]

싸아아아….

“하아. 끝내주네.”

테레사의 입에서 만족스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맛 좋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을 때와 같은 포만감.

짜릿한 탄산이 목젖을 넘어 식도를 자극하는 기분이다.

[‘마기’가 대폭 상승합니다!]

[타락한 성녀의 격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듭니다!]

우드득!

빠득!

테레사의 몸을 옭아매고 있던 구속구에 금이 갔다.

일정량을 넘어선 마력을 감당하지 못한 결과다.

“역시, 우리 순딩이가 고른 남자다워. 이것까지 내다보고 일부러 포로로 잡힌 거였어?”

“칭찬은 이곳에서 나간 이후에 듣도록 할게. 그것보다 어때. 유사의 흐름에 개입하는 게 가능하겠어?”

“나도 낯선 마력이라 살짝 어색하긴 한데, 가능하긴 할 거야. 시간만 좀 주면 돼.”

테레사가 자신의 주위에 멤도는 흉흉한 기운을 부드럽게 갈무리했다.

아무리 마기에 친숙한 그녀라고 할지라도. 태고의 마기는 태고의 마기.

타락한 성녀라고 해도 쉽게 다룰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내가 이 흐름을 제어할 수 있게 되면, 그다음 계획은 뭔데?”

“유사를 통해서 이 일대를 통째로 옮길거야.”

‘고대 결계’와 ‘시스템 조작’을 통해서 몇 가지 장난질을 쳐놨다.

아마 잠시 뒤에는 깜짝 놀랄 만한 결과가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찌릿!

진혁의 감각에 무언가 걸렸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게 아니라.

“엘리스?”

본체가 있는 곳으로부터의 경고다.

생각보다 더 빨리 갑옷 꿀벌들이 먹잇감을 찾으러 온 게 틀림없었다.

어쩔 수 없다.

타임리미트가 다 됐으니 여기는 테레사에게 맡길 수밖에.

“말랑흑두루미에게 계획은 대충 말해줬으니까. 유사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게 되면 바로 움직여줘.”

“흐응. 다시 그 꼬맹이 뱀파이어한테 가려나 보네.”

“그쪽도 상황이 마냥 좋지만은 않거든.”

아직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 있었다.

운도 좀 따라주긴 해야 하는

“그런 말을 하는 것치곤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인데?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거 아니었어?”

테레사의 말에 진혁이 피식 웃었다.

“맞아. 근데, 뭐라 표현을 하질 못하겠지만, 나는 그런 긴장감이 좋더라고.”

고구마를 아공간에 다시 집어넣은 진혁이 ‘잔류월광’을 해제했다.

퍼엉!

연기와 함께 진혁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

“계약자! 계약자!”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흐릿한 시야에 초점이 다시 맞춰진다.

“우욱.”

곧바로 불쾌한 구토감이 몰려왔다.

젠장.

이런 식으로 완전히 의식을 전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두 번 다시 할 짓은 못 된다는 걸 통감했다.

솔직히 말해 당장이라도 모든 걸 게워내고 싶은 게 본심이었으니까.

바로 그때.

키키킥!

카가각!

갑옷을 입은 꿀벌들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급식을 담당하는 놈들이다.

“찾았다. 여기에 있어!”

“맛있는 먹이야. 맛 좋은 먹이!”

“하아. 참기 힘든데. 이런 건 처음이야.”

“나도나도. 미칠 것 같아.”

달콤한 향에 이끌린 갑옷 꿀벌들이 군침을 뚝뚝 흘렸다.

동공이 살짝 풀리고 날개가 파르르 떨리는 걸 보니,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심각하게 갈등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건 좀 위험한데.

‘생각보다 몸에 바른 꿀이 숙성되는 속도가 더 빨랐어.’

맛이 뛰어난 음식을 넘어서 마약 급에 해당하는 물질이 되어버렸다.

친위대… 아니, 하다못해 장군급만 왔어도 감히 여왕님의 음식에 먼저 손을 대는 건 막았을 테지만.

하루살이 일반 병사들에게 그런 걸 기대하긴 무리다.

최악의 경우 여왕에게 데려가지 않고 여기서 공격당할 위험이 있었다.

“말만 해라. 전부 처리해버리겠다.”

엘리스가 피를 끌어모았다.

원래라면 고분고분 따라갈 생각이었으나,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더 높은 등급의 꿀벌이 올 때까지 실력 행사를 할 필요가 있다.

어디.

간만에 엘리스의 힘을 해방시켜 줄까.

“마력 보충을 좀 해줄게. 마음껏 마셔도 좋아.”

“그 말을 기다렸느니라.”

엘리스가 망설임 없이 진혁의 목덜미에 입술을 갖다 댔다.

푹!

송곳니가 혈관 속으로 파고든다.

붉은 눈동자가 가늘어지며 더욱 짙은 루비색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콰콰콰콰콰콰!

[혈계일식 – ‘혈향의 밤’이 발동됩니다!]

붉은 줄기가 위아래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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