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814화
814화 승리를 위한 조건들 (2)
“키이…. 킥킥….”
불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건 기괴하게 생긴 생명체였다.
티끌 하나 없이 맑은 오른쪽 눈동자.
허나, 반대쪽 눈동자는 마족의 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자들이 혼혈종인 건가요?”
테레사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에 쥔 검을 더욱 꼭 잡았다.
“예.”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 버려진 곳에서 살아가면서 제정신들이 아니긴 했으나 1,00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맛이 가버렸다. 단순히 정신만 붕괴된 게 아니라 신성력과 마기에 집어삼켜진 수준이다.
“이제부터 저는 전투에 개입하지 않을 겁니다.”
진혁이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이곳은 베리엘과 가브리엘 그리고 테레사에게 있어서 각자의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최적의 사냥터다.
난이도가 높은 만큼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을 테고, 자신이 가진 능력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다.
‘절대 뒤에서 안전하게 아이템만 쏙쏙 빼먹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응?’
어디까지나!
동료들의 성장을 위해서!
스승이자 고인물의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을 뿐이다. 크흠. 암 그러고말고.
진혁이 스스로를 세뇌시키듯 두 눈을 감고 연신 중얼거렸다.
콰콰콰콰콰
테레사의 검격이 시작을 알렸다.
‘별의 가호’가 깃든 금빛 궤적이 유적의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재밌겠군. 이번 기회에 날개 달린 천사 따위보다 우리 마족이 우월하다는 걸 보여주지.”
“어머나. 저야말로 추잡한 악마와의 혼혈종들을 모조리 개종시켜서 24시간 내내 찬송가만 부르게 만들어드릴게요.”
파치칙!
가브리엘과 베리엘 사이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나름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 데리고 온 건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아군끼리 공격하는 사태가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흑창 ‘키샨’이 소환됩니다!]
[성창 ‘롱기누스’가 일시적으로 가브리엘에게 귀속됩니다!]
피어오르는 마력.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
그 뒤로는 꽤나 살벌한 전투의 연속이었다.
“신의 이름으로 킥킥! 죽이겠다!”
“타락시켜주지. 더러운 천사여!”
네피림과 임모탈. 그리고 그 외에도 탑에 있는 수많은 혼혈종들이 꾸역꾸역 쏟아졌다.
“빌어먹을.”
베리엘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아무리 마계에서 제일가는 마왕이라곤 하지만, 소수로 저 많은 수를 상대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나오는 몬스터들의 수준이 몇 배씩 강해지고 있지 않은가?
“괜히・・・ 출입을 금했던 게 아니네요. 이곳을 제대로 공략하려면 소수정예가 아니라 군대가 필요해요.”
가브리엘이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녀 역시 지금까지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대천사였지만, 이토록 피 말리는 전투를 한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자자, 조금만 더 힘냅시다! 거의 다 왔어요!”
진혁이 뒤에서 열심히 깃발을 휘두르며 서포팅했다.
일전에 모아뒀던 신성석을 추출해 액체화시킨. 일종의 ‘스팀팩’
가브리엘과 테레사의 신성력이 간당간당해질 때쯤 진혁은 이것을 아낌없이 제공했다.
스스로를 한계까지 밀어붙인 다음 다시 전투의 구렁텅이에 밀어넣는 방식이다.
마찬가지로 베리엘에게도 마기가 듬뿍 담긴 마석을 제공해주었다.
“병 주고 약주고 인가요? 노예들도 이렇게 부려먹진 않을 거예요. 진짜.”
“크하하! 내가 차기 마신으로 강하게 밀고 있는 인간이다. 다른 떨거지 놈들이 반대를 하긴 한다만,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이지. 그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이젠 손이 제대로 안 움직인다.”
“두 분은 조금 쉬고 계세요.”
가브리엘과 베리엘 사이로 테레사가 검은색 대검을 꺼내들었다.
블랙 캐슬에서 새롭게 얻은 마검 ‘데르카시아’.
화르륵!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마기가 신성력을 갉아먹으며 흑금빛으로 물든 불꽃을 토해냈다.
이곳에서 모든 것을 불살라 더욱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야 말겠다는 일념.
테레사의 마음가짐은 그 근본부터가 달랐다.
살포시 눈을 감고.
“부탁할게요.”
장막 뒤에서 또 다른 자신을 마주한다.
[인격이 교체됩니다.]
“순딩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매콤해진 게 아~주 내 취향이야.”
타락한 테레사가 어깨를 으쓱이며 진혁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순진한 여자 마음을 건드렸다간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거 알지?”
“…그래.”
“알고 있으면 됐고, 만약 나중에 어설프게 행동하면 내가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테레사가 대검을 붕붕 돌리며 혼혈종들에게 몸을 날렸다.
투콰아아앙!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듯.
검격에 실린 감정이 태풍을 불러일으켰다.
오싹하고.
차가운 한기가 스친 건 기분 탓이겠지.
뭔가 굉장히 무섭긴 한데, 공포는 더 짜릿한 감정으로 인해 금세 지워졌다.
‘필요한 것들이 아주 쑥쑥 모이네.’
진혁이 느긋하게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진귀한 광석과 네피림과 임모탈들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각종 정수들.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재료들을 보자 어느새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이 정도면 슬슬 해봐도 될 것 같은데.’
목표치에 거의 다 도달하자 진혁이 아공간을 개방했다.
툭!
나온 것은 보랏빛이 도는 상자였다.
49층에서 바르어비스에게 얻은 ‘미확인 보물상자’.
당연한 말이지만, 이 상자가 지닌 가치는 그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미확인 보물상자 – 이 안에는 선택하는 자가 한 번이라도 봤던 아이템들이 들어 있습니다. (단, 고를 수 있는 아이템은 원칙적으로 한 개로 국한됩니다.)]
처음 이 문구를 봤을 때 두 눈을 의심했다.
적혀 있는 내용이 워낙에 사기적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탑을 올랐을 때의 경험까지 포함한다는 소리잖아. 이거.’
이미 ‘탐식의 눈’에는 다양한 후보군들이 포착되어 있었다.
최소한 116개 이상의 아이템들이 잠들어 있는 게 어렴풋이 보인다.
이 중에서 어떤 걸 고르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잘만 한다면 엄청난 변수로서 작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보통 여기까지가 어지간한 고인물들이 생각하는 빌드업이고.
‘나는 좀 다르지.’
고작 랜덤이라는 확률에 기댈 생각은 없었다.
이제부터 가야 하는 곳이 어떤 곳인데. 무조건 최상의 조건들을 전부 갖추고 가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그걸 위해서….
‘요 며칠 사이에 아주 열심히 준비했거든. 나름대로.’
진혁이 추가로 저장해둔 아이템들을 우르르 쏟아냈다.
[아일랜드 글럼퍼의 대동맥 파편을 사용합니다!]
[선택한 스탯은 ‘행운’ -> 1분간 행운 스탯이 30%만큼 상승합니다!]
[‘행운의 메기수염’을 사용합니다!]
[원하는 시점에서 3초 앞을 내다볼 수 있게 됩니다!]
일전에 얻은 두 개를 사용할 시간이다.
거기에.
[성유물 ‘혼혈의 징표’를 발동합니다!]
이곳에서 모은 아이템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목걸이를 사용했다.
원래 1개만 고를 수 있다는 제약이 걸려 있었지만, ‘두 개의 성질’을 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혼혈의 징표’를 사용한다면 고를 수 있는 아이템의 수가 2배로 증가한다.
다시 말해.
“가장 좋은 걸 2개나 꿀꺽할 수 있다는 소리지.”
우우우웅!
아이템들이 눈 부신 빛을 내며 공명했다.
순간, 진혁의 눈에 보물 상자 안에 있는 아이템들이 스캔되었다.
행운 스탯으로 가장 좋은 것들이 조금 다른 색을 띠게 되었고,
그중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5번의 기회를 사용해 최상의 결과를 끌어낸다.
진혁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탓!
척!
빠르게 사라지고 없어지는 아이템들 가운데 2개가 낚싯줄에 걸렸다.
띠링!
띠링!
[‘통한의 거울’을 획득하셨습니다!]
[7개의 떡갈나무 못을 획득하셨습니다!]
수없이 많은 시뮬레이션을 걸쳐 만들어낸 결과값
이게 최선의 선택이 틀림없다.
‘정말로 해 볼 만하겠어. 이번 50층 공략은.’
진혁이 새로 얻은 아이템들을 아공간 인벤토리 가장 안쪽에 잘 보관해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쿠쿵!
쿵!
굉음과 함께 심상치 않은 마력이 뿜어졌다.
[유적의 천사장 ‘메트라엘’이 현현합니다]
[유적의 마계 군단장 ‘에라드 샤 베르카’가 현현합니다!]
10m가 훌쩍 넘는 거대한 체구.
흑과 백을 띤 날개가 공간 전체에 드리웠다.
일종의 게이트 가디언으로 에덴과 마계. 어느 쪽에 있더라도 최상위에 위치했을 법한 괴물들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유적의 보스 몬스터 ‘유다 이스카리옷’이 현현합니다!]
루시퍼와 마찬가지로 최악의 악(惡)으로 규정된 존재가 보였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어린 소년.
천진난만한 표정에서는 한 점 티끌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저건 어디까지나 껍데기를 저렇게 만들어놓은 것뿐이고.
‘실제로는 천사장이나 마계 군단장보다 몇 배는 위험한 놈이지.’
가브리엘과 베리엘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강자들이긴 했으나 글쎄… 과연 이 유적에서 붙으면 어떻게 되려나?
진혁이 슬며시 뒤쪽으로 물러났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대로 개입할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이곳은 모두의 각성을 위한 무대였기 때문.
특히.
50층 공략에서 핵심이 될 소중한 동료가 한계를 넘어서게 만드는 것이 주목적이다.
“흐응….”
호흡을 가다듬은 타락한 테레사가 마검을 붙잡았다.
치솟는 마기와 스파크 치는 신성력.
두 개의 기운이 서로를 자극하며 더더욱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가보자고 순딩아.”
“예.”
테레사의 양쪽 눈이 각각 다른 색을 띠었다.
머리카락 역시 서서히 다른 빛으로 물들었다.
두 개의 인격.
두 개의 능력.
그리고 하나의 몸.
[고유성창 세라핌 – ‘빛과 어둠의 노래’가 발동됩니다!]
이것이 새로운 테레사가 지닌 힘이다.
***
같은 시각.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 역시 탑의 각 층계에 위치한 유적과 미궁들을 공략하고 있었다.
“호오. 너희들이 뭘 좀 아네. 이게 아무리 실력 차이가 있다고 해도 질리거나 지치기 쉬워. 진심으로 즐기지 못하면 말이야.
“그치?”
“응응. 우리가 썰고 자르는 데 일가견이 좀 있거든.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언제나 새롭고 짜릿해!”
아델과 케이시 그리고 주드로가 옹기종기 모였다.
핏빛으로 물든 웅덩이.
이미 수없이 많은 적들을 베고 또 베었지만, 온몸에서 피어오르는 살기와 투기는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특성 ‘쾌락 살인’ 수치가 + 33만큼 증가합니다!]
생존을 위해서가 아닌.
그저 본인의 흥미와 재미를 위해서.
그런 가학적이고 원초적인 욕구가 충족될 때만 얻을 수 있는 게 바로 특성 ‘쾌락 살인’이다.
현존하는 스탯들 중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스탯이 보유한 내재가치는 엄청났지만, 대신 모든 이들로부터 본능적인 혐오감과 두려움을 갖게 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아무나 얻을 수도 없고,
얻더라도 페널티가 극심한 일종의 양날의 검이라는 소리다.
물론.
“아하하! 또 올랐다. 또 올랐어?”
“조금만 더 오르면 그 뭐냐, 층계 현상금? 그런 게 걸린다던데? 우리 완전 유명 인사가 되는 거야!”
케이시와 주드로가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래. 그리고 이렇게 하다 보면 곧 50층에 있는 우리 귀여운 검성도 만날 수 있겠지.”
아델이 혀로 입술을 적셨다.
귀환자의 신분에서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합류한 건 모두 단 한 명의 강자를 쓰러뜨리기 위함이다.
아마 상대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강해지고 있을 테지만…….
스르륵.
버드나무 가지가 흐드러지듯.
아델의 검 역시 부드럽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콰콰콰콰콰콰콰콰!
“키에에에!”
“크오오!”
기습할 기회를 엿보던 몬스터들의 팔다리가 모조리 잘려나갔다.
“강하기만 한 검으로는 결코 날 이기지 못할 거야.”
강(强)을 제압하는 건 유(柔).
그 사실을 곧 증명해주고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