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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31화


831화. 검은 산들의 주인 ‘슈브니구라스’ (3)

[‘공간 전이’가 이루어집니다!]

시야가 바뀌었다.

현대.

수많은 빌딩들이 즐비한 장소가 나타났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곳은 실제 바깥이 아니다.

그저 진혁이 익숙하게 여기는 장소를 투영해 만들어낸 허상결계 속이지.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추긴 했네.’

며칠 전부터 진혁은 페시스와 제천대성을 시켜 전장 주위에 거대한 결계를 그리게 시켰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이길 수 없으니 변칙적인 한 방을 준비한 것이다.

“이건….”

슈브니구라스의 표정에 약간이나마 변화가 생겼다.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50층의 거점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4개의 성유물과 5개의 능력에 제약이 붙습니다!]

[자식들과의 연결이 끊겼기에, 50층에 있는 이들의 능력이 50%만큼 감소합니다!]

[본신으로 ‘완전현현’하는 것이 금기됩니다!]

붉게 물든 상태창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온전히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50층이 아닌, 익숙하지 않은 장소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꿈틀하고,

고운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설마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제법이군.”

예상 밖의 변수를 연출하는 걸 보니 수많은 신격들이 고전했던 것도 이해가 됐다. 태고의 존재들이 함정에 빠진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으니까. 물론.

허점은 있다.

‘네크로노미콘’의 이해도가 부족한 탓이겠지.

실제로 50층에 있는 자식들과 마력 공급은 끊어졌지만, 사념을 통한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조금 더 익숙해지면 다른 신격들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차피 시간을 끌어야 하는 입장에서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상황.

무엇보다 이런 제약이 좀 붙었다고 한들 인간 하나에게 패배할 거라는 생각은 단 한 순간도 들지 않았다.

바로 그때.

진혁이 먼저 심리전을 걸었다.

“일부러 이곳에 온 걸 보면 뭔가 중요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나 봐? 우리 전력이나 갉아먹자고 한 것 같지는 않고, 너 정도나 되는 끝판왕이 직접 움직일 정도면 정말 엄청난 걸 감추고 싶은 것 같은데. 어때. 내 말이 맞지?”

“눈치가 제법 빠르구나.”

“의외네. 바로 인정하는 거야?”

“그래. 어차피 죽게 된다면 이곳에서 어떤 말이 나오든 퍼져나갈 일은 없을 테니까.”

유독 그 대답에서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동시에.

쿠쿠쿠쿠쿠쿠!

슈브니구라스 주위로 보랏빛 화염이 몰려들었다.

“쉬이잇!”

“쉬잇!”

꼬리 쪽에 있던 뱀들이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높게 솟구쳤다.

쳇.

이렇게 너프를 먹여도 저런 수준의 힘이란 말인가.

새삼스레 슈브니구라스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괴물이었는지 다시 한 번 실감되었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은 진혁이 준비한 아이템들을 꺼냈다.

이 정도 조건과 상황이 갖춰진 전장은 앞으로 다시는 없을 터.

다른 태고의 신격들이 개입하는 일 없이 오롯이 저 녀석 하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사기적인 이점이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여기서 승부를 봐야 한다.

촤르륵.

단검의 칼날이 길게 늘어졌다.

사복검의 형태로 변한 검이 순식간에 지면을 훑었다.

카가가각!

아스팔트로 된 도로가 갈라지며 좌우로 늘어진 전봇대가 무처럼 잘려나갔다.

[‘뱀 자리의 주인’이 눈을 뜹니다!]

검은 흑사와 하얀 백사가 내달린다.

괴랄하게 궤도를 틀며 오롯이 먹잇감을 물어뜯을 목적으로

왼쪽 다리의 아킬레스건과 오른쪽 손목.

노린 곳은 2군데였다.

카아앙!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검이 튕겨나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 같다. 파츠츠,

반투명한 실들이 보인 건 바로 그때였다.

[고유무장 ‘삼라만상을 포식하는 실’이 주인을 보호합니다.]

슈브니구라스의 고유무장 중 하나.

4개가 봉인되었다고 하긴 했는데, 아쉽게도 저 실은 아니었나 보다.

아자토스의 고유무장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색(色)으로 표현할 수 있는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엔드피스였다.

거의 모든 공격을 무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권능이 깃들어 있었으니까.

“계속해보거라. 이곳이라면 네놈이 이길 수 있노라고 그리 자신하지 않았더냐?”

그거 벗고 나서 정정당당하게 싸우면 이쪽의 자신감이 좀 차오를 것 같긴 한데.

가뜩이나 그 자체만으로도 천외천의 위치에 있으면서, 사기적인 고유무장까지 주렁주렁 달고 오니 시작부터 진이 다 빠지려 한다. 하지만.

삼라만상을 포식하는 실이라고 하더라도 무적은 아니다.

극악의 조건들을 통과한다면 아주 작은 틈을 찾을 수 있을 터.

‘아무리 너라도 처음 보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겠지.’

새로운 영역을 통해 최강의 존재와의 간격을 좁힐 것이다. 우우웅!

[‘거점 어드벤티지’가 발동됩니다!]

[‘현대의 비호’가 당신과 함께합니다!]

본래라면 현대의 화기나 과학기술 따위는 먹히지 않는다.

허나, 마력으로 재구성한 특수한 능력이 가미된다면 탑 안에 존재하는 이들에게도 유효한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이태민의 기계군주처럼 말이다.

[한정 고유성창 ‘VR시스템’ – ‘오피스텔 속 BJ’가 발현됩니다!]

진혁이 이번 싸움을 위해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린 대(對)태고의 신격 전용 필드를 활성화시켰다.

“호오. 이건 조금 흥미롭구나.”

슈브니구라스가 주위를 둘러봤다.

뒤틀리는 세계.

온갖 종류의 빌딩과 가로수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부우우웅!

수십 톤짜리 대형 화물 트럭이 달려들었다.

평범한 트럭이 아닌 전체를 ‘미스릴’로 코팅한 상태였다.

콰아아앙!

당연히, 그 정도로는 생채기 하나 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시속 150km로 달려든 화물 트럭이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허공으로 솟구쳤다.

슈브니구라스가 실망한 듯 중얼거렸다.

“고작 이런 걸 가지고 그리 큰 소리를 냈던 거라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면을 따라 작은 불꽃이 일어났다.

화르륵!

[M-15 대전차 지뢰 – 188발이 발동됩니다!]

[멸성마법 ‘소멸하는 적색왜성’이 발동됩니다!]

퍼퍼퍼퍼퍼펑!

수백 미터에 이르는 불꽃이 솟구쳤다.

각종 마력과 화력이 뒤섞이며 시멘트를 녹였다.

지면이 무너지면서 지하로 떨어진 슈브니구라스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페르무트…란 놈이 썼던 마법이라. 헌데, 그 녀석보다 더 수준이 높구나. 같이 사용한 그 폭발 역시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고.”

여러 가지로 평가를 늘어놓는 모습.

현대와 탑의 조합이 제법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 효과는 그리 크지 않지만, 계속해서 밀어붙여야 한다.

진혁이 다시 한 번 마력을 재배열했다.

철컹! 철컹! 철컹!

2호선,

수많은 지하철들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달려들었다.

“같은 짓을 몇 번이나 반복할 셈이더냐.”

가벼운 손짓.

콰콰콰콰콰쾅!

열차들이 모조리 뒤틀렸다.

“너무 급하게 그러지 말라고. 안 그래도 기대에 부응하는 걸 준비해놨으니까.”

일명 ‘신의 지팡이’.

우주에서 10톤짜리 텅스텐 탄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평범한 텅스텐이 아니라 ‘검은 혈통’과 ‘플레이그’, 거기에 ‘니힐리즘’을 통해 태고의 방벽을 무력화시키는 특수 물질을 섞어뒀다. 

투웅!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 빛.

중력에 이끌려 낙하하는 거대한 흉기가 그대로 슈브니구라스의 머리에 작렬했다.

투콰아아아앙!

대지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며, 지하 전체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아직.

아직 멀었다.

‘긍휼의 검’을 꺼내든 진혁이 황도십이궁의 별자리들을 불러모았다.

푸욱!

대검이 도로 한복판에 꽂히자 검을 중심으로 거대한 바람이 일어났다.

[별들의 부름 – ‘운명의 운항’이 발동됩니다!]

밤하늘을 밝히는 12개의 별자리들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졌다. 물병자리에서 끌어오는 순수한 별빛을 사수자리가 넘겨받고. 쌍둥이 자리의 유대감을 전갈과 사자자리에 골고루 나눠주었다. 쿠쿠쿠쿠쿠!

공명하고 모여든다.

수많은 고대 룬어와 잃어버린 언어들이 출력을 최대화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자신을 불살랐다. 동시에.

파치칙!

도시 전체에 흐르고 있는 전기가 모조리 진혁의 주위로 빨려들어갔다.

무려, 350억kw에 이르는 말도 안 되는 전력이 모여들었다.

거점의 비호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상공유-베리엘의 흑창 ‘키샨’이 소환됩니다!]

[‘암흑투기’와 ‘혈마기’가 창에 깃듭니다!]

[뇌창 ‘아스트라페’가 흑창 ‘키샨’을 보좌합니다!]

수십 개로 나뉘어진 번개가 중앙에 위치한 키샨을 보필하듯 호위한다.

최상급 마정석들을 갈아넣으면서 마력의 최대치를 올려뒀고, 온갖 종류의 영약과 단약이 혈관을 타고 흘렀다.

닿아라.

모두를 지키고 탑의 정상에 닿기 위해서.

이 세계의 끝을 보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내일을 그리기 위해서.

촤르르륵!

보도블럭들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파괴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원통형의 길을 만들었다.

지하로 이어지는 단 하나의 총구.

마치, 도시 전체가 진혁의 의지대로 움직이듯. 모든 사물들이 단 하나의 적을 처치하려 했다.

위에서.

아래로.

신의 지팡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폭풍이 강림했다.

피이이이잉!

충격파가 도시 전체를 휩쓸었다.

콰콰콰콰콰콰콰!

반포대교를 따라 흐르는 한강 물이 모조리 증발해버렸고, 뒤이어 공원과 길. 건물과 차량들이 흑염에 휘감겼다.

‘아직’

아직이다.

진혁의 이마에 힘줄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쿨럭!”

입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2차, 3차, 4차, 5차…

마력의 공급을 멈추지 않고 더욱더 큰 파동을 만든다.

여차하면 이 공간 자체를 지워버리겠다는 각오로

그렇게 얼마나 태풍이 몰아쳤을까?

족히 10분은 넘는 기나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진혁의 일격이 멈췄다.

“허억. 허억. 허억….”

호흡이 거칠다.

이미 과거의 경지를 아득히 넘어선 탑의 고인물이 보인 일격.

그로스나 카알루트가 50층의 전력을 다 가지고 현현했다고 해도 이 공격에서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저 구덩이 속에서 타들어간 신격은 어떻게 됐을까?

진혁이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기감에 집중했다.

바로 그때.

메에에……

심연 속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수십 개의 뱀의 머리들이 잔해더미를 파헤치며 서서히 지상으로 올라왔다.

***

슈브니구라스가 진혁과 함께 사라지자, 전선에 거대한 혼란이 일어났다.

“어머니께서…. 빨려들어가다니.”

“인간 놈이 무언가 간계를 부린 건가?”

“믿을 수 없군. 저런 식의 결계나 마법이 존재한다는 건 들어본 적 없다.”

일렁이는 허상공간.

이곳에서 저 안으로 들어가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안에서 자발적으로 나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다.

“지금이다! 밀어붙여라!”

엘리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만약 진혁이 저 안에서 슈브니구라스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한다고 한들, 바깥에서 대패한다면 의미가 없다.

적은 하나가 아니다.

아직도 넘어야 할 태고의 신격들이 더 많이 남아있었고, 아군의 전력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한정되어 있었다.

“폐하의 명을 따르겠나이다.”

“바르테온 가의 가주로서 명한다. ‘진혈’의 사용을 허가한다!”

순혈의 왕관을 중심으로, 진조와 혈족들이 재차 몸을 날렸다.

아직까지 검은 산양들과 쇼거스들은 말도 안 되는 강함을 자랑했으나, 슈브니구라스가 사라진 시점에서 처음과 같은 격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가능성이 있다면 지금이 적기라는 뜻이다.

“남아 있는 타이탄들을 전부 가동시켜라.”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무기를 들고 싸워라. 어차피 퇴로 따위는 없다!”

얼마 안 남은 그리스의 신격과 대영웅들이 넝마 쪼가리가 된 몸을 일으켰다.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쑤셔 넣으면서 치명상만 대충 처치한 채 전선에 가세했다. 죽더라도 그 가치가 있는 싸움.

바로 이곳에서 50층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기둥 중 하나를 무너뜨려야 한다.

“부디 무사하셔야 해요.”

테레사 역시 진혁이 사라진 곳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그랬듯.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거대한 난관이라도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준 소중한 이가 승리를 가져오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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