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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32화


832화. 검은 산들의 주인 ‘슈브니구라스’ (4)

“……”

슈브니구라스가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겉보기에는 그다지 크지 않은 상처다.

고작해야 피부 몇 꺼풀 정도 벗겨내고 화상을 약간 입은 게 고작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고유 무장에 위해를 가할 정도라니.’

최강의 방어구인 ‘삼라만상을 포식하는 실’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완전히 못쓰게 될 정도는 아니었으나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균열이 생겼다.

아끼던 애장품에 흠집이 난 걸 가만히 넘길 정도로 성격이 유하진 않을 터.

뿌득.

더 이상 상대의 재롱잔치를 지켜봐 주고만 있진 않을 것이다.

오싹!

순간적으로 뿜어진 살기가 폭심지 주변을 집어삼켰다.

“큭!”

콰앙!

진혁이 반사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약간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10km가 훨씬 더 넘는 거리까지 몸을 피했다.

이미 주위는 방금 전 공격으로 인해 뼈대도 제대로 안 남은 상태.

거점의 이점을 조금이라도 얻으려면 여기는 안 된다.

[‘천마군림보’가 발동됩니다!]

반포로부터 벗어나 잠실까지.

잔영에 잔영을 남기며 최대한 빠르게 움직인다.

“놓칠 성싶으냐?”

슈브니구라스가 즉시 뒤를 쫓기 시작했다.

투콰앙!

엄청난 속도다.

등에 달린 뱀의 머리들을 이용한 이동기는 보이는 것과 달리 엄청난 거리를 단번에 뛰어넘었다.

[‘근두운’이 주인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제천대성으로부터 빌린 황금빛 구름에 올라탔다.

“앞으로, 빨리!”

제대로 된 목적지를 말할 새도 없이 검은 빛줄기가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부우우우웅!

근두운이 즉각 화려하고 복잡한 궤적을 그리며 빛줄기들로부터 빠져나갔다.

콰콰콰콰콰콰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추격전.

공간이동에 가까운 곡예비행이 아니었다면 벌써 몇 번이나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다. 그 정도로 분노에 찬 슈브니구라스의 추격은 매서웠다.

따라잡힌다.

직선으로 달리면야 근두운으로 충분히 뿌리칠 수 있었지만, 그랬다간 저 빛줄기의 먹잇감이 된다.

그렇다고 계속 방향을 바꾸자니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천도복숭아즙을 들이마신 진혁이 마력을 재배열했다.

[거점의 비호 ‘메트로폴리스’가 발동됩니다!]

콰드득! 콰직!

건물들이 좌우로 쓰러지며 슈브니구라스를 덮쳤다.

가로수들 역시 하나의 뿌리를 둔 거목(巨木)의 형태로 변해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쓸데없는 잔재주를!”

화르륵!

검은 화염이 뿜어지자 모든 것이 한 줌의 잿더미로 변했다.

무의미하진 않다.

방금 걸로 0.1초가량을 벌었으니까.

‘포기하면 안 돼.’

조금의 가능성을 모으고 모아야 한다.

아무리 하찮은 발악에 불과해 보일지라도 참고 견디며 기회를 창출해야만 한다.

진혁의 손이 하늘로 향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끄집어 당기듯 손을 크게 아래로 휘둘렀다.

그러자.

10대가 넘는 비행기들이 추락했다.

콰아아앙!

퍼어엉!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 연출된다면 이런 느낌일까.

다가오는 거대한 종말에 말려든 도시가 폐허가 되는 장면이 여과 없이 연출되었다.

부우우웅!

근두운이 황금빛 길을 만들며 더욱 가속도를 붙였다.

쭈뼛쭈뼛.

솟구치는 솜털과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

당장이라도 어깨를 잡을 것 같은 압도적인 공포는 도무지 떨쳐낼 수가 없었다.

***

거의 다 왔다.

그렇게 느낀 순간.

투콰아앙!

엄청난 충격이 폐부를 뒤흔들었다.

“커억!”

진혁이 자신도 모르게 고통스러운 숨을 내뱉었다.

갈비뼈가 모조리 박살 나버릴 것만 같은 격통이 뇌수까지 지글지글 녹여버렸다.

데구르르・・・콰앙!

건물의 옥상에 거의 몸을 내던지다시피 한 진혁이 가까스로 자세를 잡았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흐음. 무덤으로 고른 곳이 여기더냐?”

툭.

뱀의 머리들을 이용해 건물들을 타고 이동한 슈브니구라스가 옥상에 도착했다.

우둑! 콰득!

단단하게 이빨을 외벽에 박고 한 소녀를 지탱하는 모습.

그토록 빠르게 날아왔는데도 거리를 벌리는 건 무리였다.

“아까와 별로 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데, 굳이 기를 쓰며 여기까지 온 이유가 궁금하구나.”

공중에 떠 있는 슈브니구라스의 시선이 진혁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진혁이 무얼 할지 궁금해하던 건 아까 전까지의 일.

지금은 성가신 적을 소멸시키는 것을 더욱 우선하기로 마음을 굳힌 뒤였다.

[고유무장 ‘태고의 자궁’으로부터 ‘심연의 마그마’가 쏟아집니다!]

슈브니구라스의 등 뒤로 직경 10m에 이르는 검은색 원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던 마그마가 쏟아졌다.

꿀렁꿀렁!

꼬마빌딩들이 순식간에 잠긴다.

시야가 온통 검붉은 마그마로 뒤바꼈다.

“네놈의 방식 자체는 꽤나 신선했다. 약간은 위협적이기도 했고. 하지만, 궁금하구나. 유일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 세계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때에는 과연 어떻게 할 셈이더냐?”

전장이 익숙하지 않다면, 익숙한 전장으로 바꾸어버리면 그뿐.

태고의 자궁에서 쏟아지는 마그마로 가득한 세계는 더 이상 진혁의 편이 아니었다.

[거점의 비호가 종료됩니다!]

[태고의 마력이 10%만큼 복원됩니다!]

[50층과의 연결이 조금씩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붉게 물드는 상태창.

이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짙은 절망이 잠식한다.

[고유무장 ‘성계(星界)를 가르는 검’이 해방됩니다!]

화르륵!

아주 얇고 가느다란 외형.

1m가 갓 넘는 검이 나타나자 황도십이궁의 별자리들이 그 빛을 잃어버렸다.

‘공수 전환인가.’

진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성계(星界)를 가르는 검’은 성유물마저 파괴할 수 있는 고유무장.

무기만으로도 최상위 성명절기를 24시간 내내 발동하고 있는 셈이다.

가장 아래 등급인 빨간색이야 일격을 버티는 것도 힘들고, 최소한 파란색이나 남색 정도는 되어야 약간은 견딜 수 있다.

그것마저도 1분 남짓이긴 했지만.

‘보라색인 퍼스트 블레이드라면 그래도 10분 이상은 합을 나눌 수 있어.’

이 정도면 가능성이 0은 아니다.

현대 세계로 끌어들이면서 녀석의 최종무장인 ‘목자의 지팡이’를 봉인시켜둔 게 그나마 천운이라면 천운이었다. 진혁이 긍휼의 검을 양손으로 잡았다.

“카알루트의 검인가. 다루기 꽤 까다로운 것이거늘. 칭찬하마.”

검은 쥔 슈브니구라스가 먼저 움직였다.

카가가가각!

검신이 진혁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또옥. 또옥.

피부를 타고 떨어지는 핏방울.

손목을 보고 방향과 타이밍을 읽으려고 했는데, 솔직히 말해 중간에 과정 3개 정도를 그대로 놓쳐버렸다.

“검술에도 조예가 있을 줄 몰랐네.”

단순히 힘과 속도만으로 한 게 아니다.

수많은 세월과 격이 실린 완성도는 무림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재미 삼아 몇 가지를 만들었지. 적당히 즐기려면 이런 것도 알아두는 편이 나으니까. 조금 오랜만에 하는 거라 살짝 손에 어색하긴 하다만, 어떠냐? 견딜 만하더냐?” 

가녀린 소녀의 모습.

인간형인 부분은 사실 크지 않다.

신장이 약 160cm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등 쪽에 있는 뱀의 머리들은 하나하나가 거대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단순히 크기만 하다는 게 아니라 검은 화염을 무차별적으로 뿜어낸다는 게 최악인 부분이었지만.

쩌억!

벌어진 아가리에서 태고의 겁화가 맺혔다.

반은 검술이고 반은 본신의 능력을 끌어다가 싸우려는 생각인가.

진혁이 불이 뿜어지기 전에 먼저 움직였다.

[고유성창 ‘페이즈2’가 발동됩니다!]

진혁의 외형이 빠르게 변했다.

강력한 마력에 치중한 모습이 아닌, 속도와 기술에 최적화된 형태.

인지를 뛰어넘어야 한다.

처음이라면 벌써 몇 번이고 리타이어 됐겠지만, 슈브니구라스와 싸우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알고 있어.’

그녀의 강함에 대해선 누구보다 뼈저리게 몸에 익히고 있었다.

그러니.

기억해라.

검은 산양들의 주인이 지닌 특징과 성향을.

주로 어떤 식으로 투로를 열고 대처하는지. 어떤 점을 파고드는 걸 즐기는지….

전부 본능에 새겨라.

카아아앙!

측면에서 날아오는 검격을 쳐내고,

3번째와 11번째 뱀의 화염이 다리를 노리는 것을 흘려보낸다.

퍼퍼퍼퍼펑!

석촌호수와 그 뒤에 있던 건물들이 사라졌다.

맞으면 절대 무사하지 못한다.

하지만, 적절하게 대응할 수만 있다면 직격만큼은 어떻게든 피할 수 있었다.

“잘도 빠져나가는군. 그럼, 범위를 조금 넓혀보도록 할까?”

[태고의 자궁 ‘심연의 마그마’ – 범람(氾濫)이 발동됩니다!]

콰콰콰콰콰콰!

검은 마그마가 솟구쳤다.

순식간에 주위의 모든 것들이 용암 속으로 사라졌다.

화르륵!

‘빙하천결’과 ‘고대결계’로 열기를 방어했음에도 입술에 수분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슈브니구라스가 검을 쥐지 않은 손을 들어올렸다.

[심연 이무기 ‘카두나’가 일어섭니다.]

마그마가 모여 백 미터가 넘는 이무기의 모습이 되었다.

“크오오오!”

거칠게 포효하며 날아오는 마그마 덩어리를 피해 반대편 건물로 몸을 날렸다.

파차앙!

유리창이 깨지며 수십 개의 사무실이 나타났다.

정수기와 티비. 큼지막한 회의실에… 어디 보자 복도 끝에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지형을 완전히 파악하기도 전에 바로 근처에서 지옥불이 다가왔다.

“젠장. 숨 돌릴 틈은 좀 줘라.”

슈칵! 서걱!

진혁이 건물의 기둥들을 베어넘기며 카두나의 추격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애초에 모든 걸 녹여버리는 카두나는 건물의 잔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진혁의 뒤를 쫓았다.

[고유성창 ‘신령질주’가 발동됩니다!]

묘족의 왕 ‘청하’로부터 가져온 능력.

특유의 경쾌하면서 짐승적인 움직임은 포식자로부터 벗어나는 데 최적화 되어 있었다.

툭・・・ 탓!

가볍고 빠르게.

건물들 사이를 가로지른 진혁이 슈브니구라스의 뒤를 잡았다.

[고유능력 ‘공간발도’가 발동됩니다!]

차원을 갈라버리는 최속의 발도술.

검격이 슈브니구라스의 목덜미를 노렸다.

투콰아아앙!

슈브니구라스가 등 뒤에서 날아오는 검광을 잘게 부쉈다.

근거리도 중거리도 원거리도 통하지 않는다.

‘놈의 신경을 조금 더 분산시키거나 최소한 상처라도 더 입혀야 하는데.’

지금이라면 ‘그걸 사용하기 어렵다.

좋든 싫든 시간과 공을 들이는 수밖에.

리스크는 비약적으로 높아질 테지만,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지만 바로 그때.

“……!?”

전투에 한창이던 슈브니구라스의 시선이 갑자기 허공으로 향했다.

***

우우웅!

조금씩 벌어지는 차원의 틈새.

그걸 통해서 외부의 정보 중 일부가 조금씩 전해졌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거야 당연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딴 게 아니었다.

“뭐…지?”

절대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어날 수도 없는 변수의 등장.

이곳에 온 건 어디까지나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릭 헤네시라는 목표를 확보할 수 있다면, 귀찮은 일쯤이야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냐.’

슈브니구라스의 얼굴에서 당혹감과 분노가 일어났다.

심연 포식자.

태고의 존재들이 보유한 최강의 병력을 붙여준 니알라토텝으로부터 소식이 끊긴 것이다.

・・・・・・그 녀석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고?

그럴 리가.

아무리 매복이나 함정이 있다고 한들, 저 정도 전력을 상대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전력을 전부 쏟아붓는다면 모를까.

가능성 자체가 없다는 소리다.

더군다나 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강진혁은 지금 자신이 상대하고 있지 않은가?

엄청난 혼란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슈브니구라스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걸 놓칠 고인물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틈이 생겼다.

“지금!”

진혁이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네크로노미콘 & 잃어버린 언어의 결계 ‘신수와 환수의 골짜기’가 개방됩니다!

[고대종 ‘후라이드’가 주인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그 외에도 결계 안에서 기척을 완벽하게 지우고 있는 정령들과 고대종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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