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833화
833화, 검은 산양의 주인 ‘슈브니라스’ (5)
“미요오오오!”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후라이드의 포효.
따스하면서 아름다운 불꽃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캬오오오!”
“쁘에에!”
“그라라라라!”
“후와아앗”
“샤아악!”
각양각색의 외형과 마력을 지닌 고대종들.
이집트의 신격들을 주축으로 탑의 구석구석에 잠들어 있던 고대종의 알들을 모아 부화시킨 것이다.
후라이드가 직접 모두를 품었기에, 이들은 모두 후라이드를 어미로 생각하고 따랐다.
그리고 당연히 후라이드가 따르는 진혁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언제 또 저런 걸 준비해둔 것이냐. 이곳에는 너와 나 단둘만 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만.”
“서프라이즈야. 너 정도 되는 대어를 잡으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어?”
결계 자체를 만든 건 조금 전이 아니다.
훨씬 더 전에 이미 이 심상 세계에 들어갈 준비를 해줬지.
나름 손이 많이 가긴 했지만, 고대종 군단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의 고생이 씻은 듯 사라지는 기분이다.
“가소롭구나. 고작 버러지들을 무더기로 데리고 온 걸로 기고만장하는 꼴이라니.”
슈브니구라스가 코웃음을 쳤다.
잠깐의 틈을 이용해 고대종들을 현현시킬 타이밍을 잡는 건 그런대로 신선했다.
하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고대종들은 제아무리 많이 모여봤자 새끼들일 뿐.
앙증맞게 아장아장 걸으며 이빨도 제대로 나지 않은 놈들 따위.
마그마 한 번이면 모조리 핏물로 만들어버릴 수 있었다.
그때,
움찔하고.
훨씬 더 먼 곳으로부터 다양한 기척들이 느껴졌다.
“정령왕들과 정령수들도 있군. 정말이지 쓸데없이 손을 많이 써두긴 써뒀구나.”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합류했다는 정보를 듣긴 했는데, 계속 사라져 있어서 어디갔나 했더니.
이런 곳에 숨어서 작당질을 하고 있던 거였나.
마찬가지로 어차피 전황을 바꿀 수 없는 미물들이다.
“한결같네. 너희는.”
진혁이 입을 열었다.
시련의 탑이란 세계관에서 무소불위의 절대자로 군림하는 존재들.
자연재해를 넘어서는 우주적 신격들에게 있어 ‘위기감’이란 있을 수 없다.
특히나 슈보니구라스 정도 되는 최상위격은 더욱더.
허면, 공략 자체가 불가능한 게 아닐까?
아무리 스펙 업을 하고 강력한 지원을 이끌고 와도 무의미한 저항일까? 아니다.
애초에 시련의 탑은 불가능을 전제로 두지 않았다.
탑을 이해하고 아끼는 등반자라면 결국엔 정상에 올라갈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정상을 봤고.
‘너희의 유일한 약점.’
그것은.
‘오만’.
절대 자신이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그것은 그저 약자의 발악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그 자신감이 최대의 허점이다. 진혁이 신중하게 타이밍을 쟀다.
기회는 단 한 번뿐.
실패는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권역 ‘태산의 용맥(脈)’이 발동됩니다!]
파츠츠,
마력과 마력이 이어진다.
보이는 것을 넘어, 대지를 가로지르고 산과 강을 넘어 끝없이.
“결계 속에・・・ 또 다른 결계를 연다고?”
슈브니구라스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했다.
이중 결계.
단순히 두 개를 동시에 발동하는 게 아닌, 세계 속에 세계를 구현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거점의 비호’가 최대치로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1분간 30%만큼 상승합니다!]
[성유물의 효과가 1분간 100%만큼 상승합니다!]
[고유성창의 힘이 1분간….]
[・・・・・・ 상승합니다!]
[직업 ‘룬의 지배자’가 마지막 개화를 시작합니다!]
연이어 나타나는 상태창들.
태백산맥(太白山脈). 굳이 한국을 고른 것은 익숙하기도 했을뿐더러, 지금 사용할 능력을 극대화시켜주는 데 있어 최고의 지형이었기 때문이다.
한 나라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산의 정기는 수만 개의 마정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순수한 힘을 제공한다.
“두 번은 무리다. 반드시 이번 한 번에 끝내야 한다!”
“정령족의 전부를 실어넣었어. 부디・・・ 이겨줘!”
“헤엑.헤엑.헤엑.”
정령수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국에 위치한 영산(山)들.
설악과 지리와 한라에서 의식을 치르던 정령왕과 상급 정령수들이었다.
백록과 천지의 기운이 모여들었다.
작은 물방울의 형태로.
포포퐁! 포옹!
투명하고 맑은 기운들이 고대종들에게 스며들었다.
[고대종들이 일시적으로 ‘강제 성장’을 이룹니다!]
[고대종 후라이드가 성장의 한계치에 접어들었습니다!]
[조건이 충족됩니다!]
화르륵!
귀엽고 통통한 외형이 변화한다.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날개.
불꽃으로 이루어진 깃털들은 구름 너머 천공을 전부 아우렀다.
[진명(眞名)이 개방됩니다!]
[‘염화조(鳥)’ ‘레아르타’가 전장에 합류합니다!]
세계를 떠돌며 태양에서 나오는 불을 마시고, 태양을 잉태하는 고대종.
쿠쿠쿠쿠쿠!
날개를 활짝 펼친 레아르타를 중심으로 수많은 고대종들의 입이 벌어졌다.
브레스를 뛰어넘는 눈부신 빛이 맺혔다.
[다중 성명절기 ‘고대를 영위하는 빛’이 발동됩니다!]
엄청난 마력의 폭풍이다.
결계 안에 있는 세계가 격돌하면서 다가올 심판에 전율했다.
진혁이 아공간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꺼냈다.
동시에.
모여든 빛줄기가 슈브니구라스를 향해 날아갔다.
번쩍하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완전히 바뀌었다.
***
후두둑.
후둑.
부서진 세계의 파편들이 떨어졌다.
하늘이 조각조각으로 갈라진다는 문학적인 표현을 현실로 음미하게 된 순간이다.
세계선마저 어긋나게 만들어버리는 위력.
모든 걸 쏟아부은 성명절기는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크윽.”
그 말도 안 되는 공격 속에서도 슈브니구라스는 쓰러지지 않았다.
[고유무장 ‘삼라만상을 포식하는 실’이 고대의 격을 떨쳐냅니다.]
치명상 역시 아니다.
충격을 다소 받긴 했지만, 여전히 건재한 모습.
약간 비틀거리는 것 역시 앞으로 몇 초만 있으면 완전히 회복해 버릴 것이다.
순식간에 사그라들던 태고의 겁화가 점점 더 커져가기 시작했다.
*미, 미요오오.”
“쉬. 쉬익.”
“켈룩. 키르르….”
기진맥진한 고대종들이 그 자리에서 누워버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지 않은 상황.
이제는 정말로 끝장이다.
모두의 얼굴에 절망의 먹구름이 드리웠다.
바로 그때.
[‘퍼스트 블레이드’ + ‘태고의 나뭇가지’ + ‘주인 없는 그림자 묘목’이 융합합니다!]
[‘별의 파편’, ‘점성술이 적힌 두루마기’ ‘신명의 횃불’ ・・・ 외 11가지 아이템이 추가됩니다!]
“다들 고생했어.”
홀로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진혁이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황도십이궁 – 형(形), ‘사안봉인검’이 완성되었습니다!]
진혁의 손에 황도십이궁이 새겨진 검은색 검이 쥐어졌다.
검신을 따라 별자리들이 은은한 빛을 발했다.
“처음부터….”
능력이니 성유물이니 하는 걸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심상세계니 결계니.
고유성창이니 권역이니 하는 것 역시 전부 눈속임이었을 뿐.
애초에 이 녀석은 그런 식으로 사냥하는 게 아니다.
“그 검은…?”
슈브니구라스의 표정에 처음으로 새로운 감정이 드러났다.
‘위험하다’라는 본능적인 경고가 담긴.
판단은 빨랐다.
서둘러 회복을 위해 마력을 재배열하려 했다.
“어딜.”
진혁이 반박자 더 빨랐다.
[고유능력 ‘검의 노래’가 발동됩니다!]
중심을 잡기 바로 직전, 균형을 무너뜨리고 슈브니구라스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카아앙!
검과 검이 부딪쳤다.
보라색 불꽃이 일어났다.
먼저 치고 들어갔는데도 손목에서 어깨까지 전해지는 시큰함.
인정하마.
너는 최강의 생명체요.
무결점의 절대자다.
수많은 천재들이 생에 모든 것을 바쳐 쌓아올린 업과 격조차도 빛이 바랠 것이며,
별에 이르는 신격과 영웅들도 한 줌의 재에 불과하겠지.
그렇기에, 그렇게 완벽하기에.
통한다.
단언컨대 단 한 번도 ‘균형’이 무너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체험해본 적 없을 테니까. “이놈….”
슈브니구라스가 고함을 질렀다.
동시에 그녀의 대검이 한 번에 스무 개의 궤적을 그리며 쪼개졌다.
콰아아앙!
노래를 부르는 검이 이를 흘려보낸다.
파훼하기 위해 역을 사용하면 다시 한 번 그에 대한 역을 사용하고.
그것마저 읽으면 그다음의 단계에 도전해온다.
인지를 초월하고 예지를 넘어서 미래를 바꾸는 영역.
카가가가강!
수십, 수백 합이 오갔다.
수없이 많은 활로와 사로가 교차하며 단 하나의 길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이미 진혁과 슈브니구라스의 검격은 눈으로 식별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검이 지나간 자리엔 끝이 보이지 않는 검흔이 새겨졌고,
빗겨나간 칼날은 하늘과 대지를 사정없이 갈라버렸다.
카아앙!
한 걸음.
콰아앙!
다시 한 걸음.
검의 선율과 함께 진혁이 더욱더 슈브니구라스의 영역에 다가갔다.
“죽어라 인간!”
[슈브니구라스가 ‘공허의 검’을 발동합니다!]
공허를 몰고오는 식(式)이 진혁을 집어삼켰다.
하나의 검로가 아닌, 입방면체의 모든 공간 자체가 적의를 가지고 대상을 찢어버리는 검술이었다. 그에 맞춰서.
우우우웅!
[고인물류 성명절기] – <구국신검救國神劍>
검의 궤적들이 하나로 모이는 자리에 끼어드는 상쇄기.
[‘용소(龍沼)’가 발동됩니다!]
살의에 반응해 그 식을 파훼하는 고인물의 독문검술이 펼쳐졌다. 용의 형상을 띤 3개의 빛줄기가 입방면체를 세 조각으로 찢었다. 충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투콰아앙!
‘성계를 가르는 검’이 튕겨올랐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푸욱!
사안봉인검이 정확히 ‘삼라만상을 포식하는 실’에 생긴 빈틈으로 파고들었다. 드디어….
・・・・・・ 성공이다.
진혁이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검이 살 속으로 파고들자, 검신에 새겨진 언어들이 슈브니구라스의 주위를 감쌌다.
그리고 12개의 별자리들이 다시 그 주위를 감쌌다.
치명상을 입히려는 게 아니다.
그저 이번 전쟁에서 더 이상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퇴장시키는 것에 가깝지.
“말도… 안 돼.”
슈브니구라스가 거칠게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요란한 소리가 날 뿐 봉인은 풀리지 않았다.
쿠웅! 쿠웅!
한 번 몸을 움직일 때마다 세계가 요동친다.
걸린 덫에서 빠져나가려 하는 슈브니구라스의 몸부림이 엄청난 파동을 만들어냈다.
‘이 정도면 원래 어지간한 태고의 신격도 30년 이상은 가둬 놓을 수 있는 거구만. 진짜 엄청나긴 엄청나네.’
과거 시간이 다르게 흐르도록 구성한 허상공간에서 시험해본 결과 최소한 그 정도는 됐다.
허나, 슈브니구라스는 격이 다르다.
잘해야 한 달.
재수가 없으면 3주 정도 가둬두는 게 한계리라.
‘재료가 넘쳐났다면 같은 방식을 몇 번 정도 더 써먹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지만 주어진 조건에서는 한 개를 만드는 것도 가까스로 성공했다.
그나마 그 한 번뿐인 기회에 이런 거물을 낚았다는 것에 위안을 가져야겠지.
‘사안봉인검’으로 봉인할 수 있는 놈들 중 가장 큰 대어를 낚았으니까.
“이거 풀어라! 당장 풀란 말이다!”
슈브니구라스가 악에 받쳐 괴성을 질렀다.
고막이 조금 아프긴 하지만 무시하도록 하자.
이제 바깥으로 나가서 잔당들만 처리하면…… 그렇게 결정하고 움직이려던 바로 그때였다. 띠링!
[50층 최종 퀘스트 – 탑의 정상(2) 연계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결코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