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842화
842화, 알 수 없는 혼돈 속으로 (2)
콰콰콰콰콰콰!
투콰아앙!
하늘에서 드래곤과 익룡들이 어지럽게 교차했다.
비익룡 ‘프테라 베타’.
진혁이 사전에 알려준 바로는 14성급에 해당하는 중, 상위 종이라고 했다.
숫자 자체는 익룡들이 몇 배는 더 많았지만, 드래곤들은 단순히 덩치만 큰 게 아니라 10서클의 마법을 다룰 수 있는 고등 종족.
화려하면서 능수능란한 전법으로 숫자의 격차를 극복해나갔다.
“생각보다 많이 질기네. 헬파이어를 3방이나 적중하고도 저리 팔팔하다니.”
“게다가・・・ 빨라. 좌표를 고정시킬 틈을 주질 않는군.”
레드 일족과 블랙 일족 사이에서 쓰디쓴 반응이 흘러나왔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왔지만, 예상보다 거점의 비호를 받는 태고의 생명체들은 강력했다.
“공중전에 고귀한 이 몸을 동원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니라.”
무진룡을 포함한 진족의 용들 역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
“모기이이!”
고구마의 호령과 함께 불만은 쏙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고전이 심하긴 하군요. 제대로 된 거점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생태계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체계적인 면이 있습니다.”
베이로둠이 턱뼈를 긁적였다.
서포팅 겸 별동대로 파견된 예비 전력.
리치들 역시 드래곤의 옆에서 고위급 흑마법을 연이어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마법에 있어서는 한참이나 수준이 떨어졌기에 제대로 된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특유의 튼튼한 몸뚱어리를 갈아넣으면서 드래곤들의 피해를 감소시키는 용도였다.
한 마디로 리치 방패.
예전 유럽 아웃브레이크 당시에 박힌 미운털의 결과였으나, 정작 베이로둠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이런 위험하고 까다로운 레이드에 자신이 당당히 포함되었다는 게 자랑스러울 뿐.
“하기야, 이런 대규모 전쟁에서라면 저처럼 경험 많고 머리를 쓰는 인재가 필요한 법이죠.”
합리화하는 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겔겔겔.”
“달그락! 언데드는 위대하다! 그리고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뼈다귀다!”
“위대하다!”
“티본 님을 위하여!”
“AAA 프라임 등급!”
아무래도 티본의 영향이 큰 듯싶었다.
“모기이이….”
고구마가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쨌거나 이곳 공략에 주어진 시간은 약 2일,
그 안에 거점을 점령하기로 이야기가 맞춰져 있었다.
다른 위성 거점 공략도 지금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텐데, 만에 하나 자신이 꼴찌가 된다면.. 도리도리.
고구마의 노란 눈이 매섭게 빛났다.
그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에서 가장 쓸모 있고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고대종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모기이이이!”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용언!
안 되면 되게 하라.
불가능하면 일단 갖다 박아 넣어라.
그러면 살기 위해서라도 알아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주인에게 열심히 배운 걸 그대로 실천하는 고구마였다.
[드래곤들이 특수 종족능력 ‘용들의 시대’를 발동합니다!]
개체 수가 100 이상이 모였을 때만 발동되는 한정 능력.
화염, 물, 번개와 바람, 독액의 권능이 사방팔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제아무리 단단한 외피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저 많은 종류를 방어할 순 없었다.
“키에에에!”
“케에엑! 켁!”
살갗을 뚫고 내피로 파고드는 마력에 비익룡들이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내질렀다. 한편,
철썩! 철썩!
해변 쪽에서는 프레이가 불사의 인형들을 이끌고 상륙했다.
“지형 파악은 이미 끝났어. 응. 공중에서 시선을 끌어주는 동안 거점의 보스를 찾으면 돼.”
“yes. your highness.”
불사의 인형사.
수많은 실들로 연결된 프레이의 직속 친위대가 각자 서로 다른 무기를 꺼내들었다. 숫자는 스물이 채 안 되지만, 하나하나가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허를 찌르기에 최적화된 특공대라는 뜻이다.
사박사박.
기척은 없애고 풍경에 녹아든다.
이로써 공중과 지상에서 완벽한 양동작전이 개시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울부짖는 회색 군도의 주인인 카이나문이 지켜보고 있었다.
[‘278개의 투명체가 침입자들을 관찰합니다.]
얇은 장막으로 구성된 거대한 투명체들.
그걸 통해서 모든 정보들이 시시각각 카이나문에게 전해지는 중이었다.
“확실히 어지간한 엘더갓 놈들보다 더 탄탄하군. 일단 전력을 조금 더 깎아내도록 할까.”
카이나문이 마력을 재배열했다.
그러자.
꿀렁
프테라 베타의 등 뒤에서 기괴한 갑옷을 입은 곤충들이 자라났다.
그 순간,
우우우웅!
흘러나오는 마력의 질이 달라졌다.
마치, 용기사처럼.
비익룡을 타고 조종함에 따라 모든 시너지가 몇 배로 증가해 버린 것이다.
“드래곤들 쪽은 저 정도면 당분간은 괜찮을 테고, 해안 쪽은 호문쿨루스라… 저쪽도 신경 써야겠군. 다른 인형들은 몰라도 저 녀석은 위험하다.”
카이나문의 시선이 프레이에게 꽂혔다.
인형들 중에서도 격이 다른 위압감.
50층의 거점 보스들 중에서도 동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신중하고 차분하게 공략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이 곳에 온 이상 모조리 죽음뿐이다.’
거점이 바로 이곳이라는 걸 똑똑하게 알려주리라. 군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전략적 요새나 다름없을 터. 그 오랜 세월 동안 엘더갓들의 무수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단 한 차례도 점령당하지 않았던
그런데 바로 그때.
쿠쿠쿠쿠쿠쿠!
카이나문이 있는 동굴에 폭풍이 몰아쳤다.
이런 증상이 나오는 건 단 하나.
[그레이트 올드원 ‘슈드뮤엘’의 사념이 현현합니다!]
일렁이는 검은 구름 사이로 번개가 몰아쳤다.
“위대한 분을 뵙습니다. 이곳엔 어쩐 일로….”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동굴 안을 가득 채워나갔다.
-카이나문! 군도를 버리고 요람이 있는 곳으로 오거라. 금제와 봉인 중 7할을 풀어뒀으니 머지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다.
짧은 전언.
그 명령에 카이나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찌하여 그런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함부로 질문을 하자, 폭풍의 세기가 한 단계 격렬해졌다.
저릿저릿!
명령에 토를 단 게 상당히 거슬렸던 모양.
만약 카이나문이 아니라 다른 거점의 보스가 같은 짓을 했다면 즉시 몸을 으깨서 죽여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슈드 뮤엘은 처벌 대신 이유를 설명했다.
카이나문은 특히나 슈브니구라스가 아끼는 사도였기 때문.
-놈들의 목적을 파악했다. 그러니, 굳이 이런 쓸데없는 곳에 전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겠지. 다른 위성 거점에 있는 놈들도 전부 자신들의 영역을 버리고 합류하고 있으니 너도 서둘러 움직이도록 해라.
쓸데없는곳.
그 말이 유독 아프게 파고들었다.
카이나문의 동공에 불꽃이 튀었다.
“이곳은 그분께서 저에게 믿고 맡기신 거점입니다. 수만 년간 지키고 앞으로도 지켜낼 제 과업이라는 말입니다. 게다가 이곳에는 양들의 요람을 둘러싼 결계들에 치명적으로 작용될 수 있는 식물들이 자란다는 걸 잊지 않으셨겠지요?”
만에 하나 적들이 그 식물들에 담긴 마력을 추출해버린다면,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감히, 내 명령을 거부할 셈이더냐?
이어진 것은 분노였다.
콰르르르!
동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군도 전체를 박살내버릴 만한 번개들이 줄지어 식을 맺었다.
-그깟 놈들이 무슨 수로 그걸 알아 낸다고 호들갑을 떨어대는 것이냐!
“저는 그저 모든 경우를 대비하려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것이라 하더라도?
최후의 경고가 이어졌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저는 오직 슈브니구라스 님의 명령만을 따릅니다.”
카이나문의 결심에 변함 따위는 없었다.
***
그로부터 10시간이 지난 시점.
글라가가 있는 계곡에서 빠져나온 진혁은 빠르게 목적지까지 움직였다. 이미 페시스가 미리 길을 닦아둔 덕에 도중에 발이 묶일 염려는 없었다.
[대거점 ‘양들의 요람’의 외각에 도달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크기.
최고위 태고의 신격 중 하나인 슈브니구라스의 영역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굉장・・・ 하구나.”
“세상에나….”
엘리스와 테레사도 탄성을 내뱉었다.
지평선 끝까지 이어지는 거점은 단순히 ‘크다’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괴랄한 건축물들과 동상들. 그 외에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식물들 역시 알 수 없는 공포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역시・・・ 놈들도 여기서 총력전을 할 셈인가.’
양들의 요람을 살피던 진혁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이미 여러 태고의 신격들이 이곳에 도착해 있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상위급 격을 가진 놈들은 아직 제약을 완전히 풀지 못했다는 점. 강할수록 들어오기 힘든 구조가 이점으로 작용한 순간이다.
‘조심성이 많은 슈브니구라스가 이럴 때는 좋긴 하네.’
아니었다면 ‘니알라토텝’이나 ‘노스이디크’ 같은 굵직한 거물들이 이미 단단히 똬리를 튼 꼴을 마주해야만 했을 테니.
요소로 작용했다. 그나저나 매번 훼방을 놓던 니알라토텝이 요즘 상당히 조용한 것 같다. 대놓고 보일 때가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놈의 침묵은 상당한 불안
바로 그때,
“오셨군요!”
“저희도 몇 시간 전에 도착해서 막 경계 초소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주인! 우리도 왔어!”
“응응!”
진혁의 곁으로 익숙한 얼굴들이 다가왔다.
다른 위성 거점들을 공격하기로 했던 동료들이었다.
펜하이머와 암황, 십이지의 청하와 정령수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멀지 않은 곳에서 미카엘과 가브리엘을 비롯한 에덴의 천사들의 마력도 느껴졌다.
진혁이 계곡에서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과 그 외에 정보들을 풀었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래. 배신을… 했다고.’
“예..”
진혁이 입술을 깨물며 답했다.
베리엘과 아누비스를 포함한 이들이 막아준 덕에 무사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양측에 엄청난 사상자가 나오고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헤라클레스는 너무도 허무하게 목숨을 잃어야만 했고.
“명예도 모르는 놈들 같으니라고. 그깟 나무 하나 때문에 신의를 저버려?”
콰앙!
암황이 노성을 터뜨렸다.
“전력에 꽤 큰 공백이 생기겠군요.”
“북유럽 전사들은 가장 치열한 격전지에 돌입하곤 했으니까. 그놈의 발할라인지 뭔지에 갈 수 있다고 한 마디만 하면 적들에게 벌떼처럼 달려들었지.”
배신은 단순히 머릿수를 줄이는 것만이 아닌, 전체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최악의 변수다.
하지만.
비극에 언제까지나 매몰되어 있을 수만은 없다.
당장 몇 시간 뒤에는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해야만 한다.
시간이 끌릴수록 불리한 건 이쪽이었으니까.
“일단 거점 강화 재료들은 다 모으긴 했습니다만, 의도가 들켜서야 놈들이 두 손 놓고 가만히 지켜보진 않겠군요.”
하스팅이 시시각각 강화되어가는 성벽을 보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결계 쪽도 마찬가지다. ‘대결’는 언제든 발동시킬 수 있는데, 저리 경계가 삼엄해서야 제대로 된 위력을 기대하긴 힘들어.”
벨토르 역시 한 마디 덧붙였다.
샤일록의 상단을 흡수하면서 거의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었는데, 갑자기 거대한 암초를 조우하게 된 기분이었다.
“…마지막 작전회의를 하겠습니다. 일단, 다들 제 텐트로 모여주세요.’
공격루트. 병력 배치. 적의 전력. 거점의 통로.
몇 시간 동안 여러 이야기와 작전이 오고갔다.
-성공 가능성 11% / 실패.
-성공 가능성 12% / 실패.
-성공 가능성 6% / 실패.
-성공 가능성….
7% 10% 8% 15%***.
실패, 실패, 실패!
‘기계 군주’의 능력 중 하나인 워게임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린 결과 50% 이상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는 전무했다.
누군가는 몇백만 개의 미래 중에 승리를 위한 유일한 길이 있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정도 경우의 수를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확실한 건 단 하나.
지체할수록 성공 확률은 더욱더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냐?”
“그래. 이 방법뿐이야.”
엘리스의 마지막 물음에, 진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