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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54화


854화. 왕관의 새로운 주인

촤라락・・・ 툭!

나침반이 빠르게 움직이다 멈췄다.

하지만, 아델은 굳이 나침반의 위치를 확인하지 않았다.

오싹!

전신에 전해지는 저릿저릿한 감각.

본능이 말하고 있다.

드디어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했노라고.

거침없이 어둠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엔 작은 폭포가 있는 저수지가 나타났다.

연못과 학이 노닐고 있는 너무도 평화로운 공간. 순간, 이곳이 50층이 아닐 거라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리고 그 중앙엔. 마치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남자가 있었다.

검성이라는 불리는・・・ 바로 ‘천유성’이었다.

“유성 오빠. 오랜만이네.”

“헤헤. 와… 물 위를 걷는 신에 대해서는 들어봤지만, 물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은 처음이야.”

케이시와 주드로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델 역시 그 모습을 보며 애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과연, 확실히 달라지긴 했네. 이 정도로 먹음직스럽게 자라다니. 기다림의 보상을 아주 제대로 받을 수 있겠어.”

이미 벽을 넘어도 몇 번이고 넘은 게 틀림없었다.

허나, 그건 자신 역시 마찬가지일 터.

스릉!

검이 번개처럼 뽑혔다.

쿵쾅쿵쾅!

터질 듯이 빠르게 고동치는 심장.

이 순간을 대체 얼마나 고대했던가?

진혁이란 쓰레기는 감언이설로 자신을 속여 온갖 허드렛일이란 일은 다 시켰다.

잠시도 쉬지 않고 각종 노동과 과업에 던져놓고서는 대결시켜 주겠다던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차일피일 미루며 말도 안 되는 핑계만 내뱉을 뿐이지.

그러나 그 시간은 모두 끝났다.

이제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순수한 강함의 고저를 증명할 수 있었으니까.

쿠쿠쿠쿠쿠쿠!

아델의 몸을 통해 유형화된 마력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잘 벼려둔 한 자루의 검처럼 살기는 예리하다 못해 살갗을 벨 정도였다.

바로 그때.

가부좌를 틀고 있던 천유성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런데.

느껴지지 않는다.

태산처럼 무거운 투기나 상대를 죽이려는 살기나. 혹은 자연의 힘을 머금어서 오는 평온함이나.

분명, 무언가 있어야 할 터인데 그 어떤 것도 와닿지 않았다.

그야말로 무(無).

티끌만큼의 내공이나 마력마저도 전무한 상태였다.

“무슨….”

아델이 말끝을 흐린 그 순간.

“쉿! 지금 거의 다 끝났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 깨달음의 여운을 갈무리하려면 방해받지 않는 게 좋거든.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천유성과 같으면서도 다른 자였다.

“넌・・・ 뭐지?”

“그냥 구경꾼이야. 방해하진 않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라고.”

“단순히 구경꾼 치곤 속에 구렁이가 100마리는 족히 들어가 있을 것 같네. 너같이 썩은 눈깔을 하고 있는 놈들을 몇 번 만나봤는데. 경험상 절대 살려두면 안 됐어.”

아델이 옆에 있는 쌍둥이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응!”

“저 놈은 우리한테 맡겨둬!”

케이시와 주드로가 각각 무기를 꺼냈다.

시뻘겋게 빛나는 헬버드와 낫이 당장이라도 새로운 피를 마시기 위해 들썩였다.

바로 그때.

피잉-!

한 줄기 빛이 아델의 몸을 꿰뚫었다.

아니, 꿰뚫기 직전 가까스로 쳐낸 검에 가로막혔다.

카아앙!

날카로운 쇳소리는 개전을 알리는 외침이며, 동시에 투지를 꺾어버리는 경고였다.

“크읍….”

아델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팔이 저린다.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온 검격을 쳐낸 건 반쯤은 운이었다.

“와아….”

“뭐를 어떻게 한 거야 지금?”

케이시와 주드로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중얼거렸다.

“흐음. 보니까 완벽하게 완성된 것 같네. 어때, 기분이?”

“그다지 별 감흥은 없다. 제대로 된 상대와 싸우면 모를까. 힘의 1할도 끌어내지 못할 것 같군.”

“하기야 그것도 맞는 말이겠네.”

과거의 천유성과 현재의 천유성이 대화를 나눴다.

당연히.

그 발언에 아델의 분노는 임계치를 넘어설 수밖에.

“네 눈에는 내가 제대로 된 상대가 아니라는 거냐!”

자존심이 긁힌 아델의 몸에서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삼천 버들나무류’가 발동됩니다!]

흐드러진 나뭇가지들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제2식 ‘청림류(淸林流)’가 발동됩니다!]

부드러운 유검이 은은한 선풍에 의해 수천 개의 검로를 그려나갔다.

마치, 공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나무로 변한 것 같았다.

콰콰콰콰콰콰

곧이어 나뭇잎 하나하나가 검격으로 변해 쏟아졌다.

산산히 부서지는 푸른 폭류.

“귀찮게 하는군.”

천유성이 검을 뽑았다.

카가가가강!

수면 위로 검이 토해낸 불꽃이 하염없이 흐드러졌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검무가 이어지는 사이. 저수지에는 또 다른 그림자가 나타났다.

무림에서 온 추혼사영이었다.

며칠째 한숨도 못 잔 채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는지 수려했던 외모는 너무나 피로해 보였다.

“저 아이를… 괴물로 만드셨군요.”

“괴물이라니 말이 좀 심하네. 검마 마저 뛰어넘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나가는 걸 보면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평생을 별에 닿고자 했던 자는….

이제 별을 벨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어찌 그걸 두고 더렵혀졌다고 하겠는가?

“분명, 겉으로 보기에는 강해졌겠죠.

하지만.

그 검에는 의(義)와 협(俠)이 없다.

마음(心)이 없다.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자 했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던.

순수한 무(武)의 결정 또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묻겠다.

“이 어디에 우리 천 공자가 추구하던 진정한 강함이 있는지요.”

“그 시절의 천유성이 증명한 건 비참한 패배뿐이었어. 의나 협 따위가 있다고 한들.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길에 의미 따윈 없지.”

“무는 반드시 누군가의 위에 서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랍니다.”

“하하. 무에 대한 견해 차이를 굳이 설득할 생각은 없어. 당신은 우리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으니까.”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걸 이해할 수 있는 건 오롯이 같은 갈증을 겪은 자뿐.

“그보다 가져왔겠지?”

“……네.”

추혼사영이 마지못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과거의 천유성에게 건넸다.

“이야, 고마워. 혹시라도 마음을 바꾸면 어쩌나 했는데, 그래도 한 번 내뱉은 말은 지키네. 역시 녀석의・・・ 아니, 아니지. 역시 ‘우리’의 스승다워.” “약속은 부디 지켜주세요.”

추혼사영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분했지만, 그 고통마저도 애써 삼켰다.

“물론이지. 나도 한 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성격이거든. 그나저나 내가 만들어도 참 잘 만들었어. 그 위대한 화과산의 주인마저 까맣게 속였으니까. 아아. 당연히 그걸 교묘하게 빼돌린 우리 스승님이 없었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었겠지만.”

손에 주어진 건 ‘신속의 왕관’.

50층에 진입할 수 있는 열쇠이며, 위대한 등반자를 칭송하기 위한 상징이었다.

[‘신속의 왕관’이 새로운 주인을 인식합니다!]

왕관이 칼을 휘두르던 천유성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파츠츠츠…!

천유성의 눈동자에 푸른빛이 서렸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점으로

스슥.

아델은 천유성의 움직임을 완전히 놓치게 되었다.

파팟.

발자국이 지난 후에야 들리는 소리.

서걱! 푸슉!

아델의 피부에 상처가 하나둘씩 늘어났다.

가뜩이나 일방적으로 밀리던 싸움이 이제는 인지할 수조차 없는 영역으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자랑하던 버들나무류의 초식들은 모두 파훼 됐고, 푸르렀던 숲은 이미 날카로운 칼날에 모조리 잘려나가 버렸다.

“말도 안 돼. 내가… 이 내가! 패배한다고? 인정할 수 없다.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단 말이다!”

압도적인 절망.

그것은 모든 노력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나오는 비명이었다.

카가가가강!

검진이 깨지면서 아델의 오른쪽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치명상이다.

“진혁이 오빠가 말했던 게 지금 같은데?”

“응응. 이건… 못 이겨. 절대로.”

케이시와 주드로가 자세를 잡았다.

이제는 빠져나가야 할 때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

쿠쿠쿠쿠쿠쿠쿠!

모든 것을 쏟아부은 아델의 마지막 초식이 펼쳐졌다.

버들나무류 – ‘결전오의(決戰奧義)’

하나로 압축되는 강기.

미쳐버린 나뭇가지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현현’ – ‘광림천하(狂林天下)’

공간을 무작위로 잘라내는 검은 심지어 광림천하를 사용한 아델마저 노리고 있었다. 적아를 구분하지 않는 무차별 참격.

“나는 이것으로 한 세계를 멸망시켰다. 이래도 내가 너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거냐?”

핏발이 가득 선 눈을 뜨며 하는 마지막 질문.

그 물음에

“물론이다.”

천유성이 짧게 답했다.

“내 검을 단련시킨 건 네가 살아온 세계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괴물이니까.”

어설픈 가짜들이 아닌. 노력하는 천재를 만났고.

수백 번의 절망과 수백 번의 좌절을 맛봤다.

그런데 고작 한 세계를 멸한 것으로 강함의 무거움을 입에 담지 말거라.

극월의 검신이 눈처럼 새하얗게 물들었다.

백야일천검 ‘설혼’

화려하지도, 장황하지도 않은 담백한 일검.

쏴아아아…

하얀 눈발에 붉은빛이 스며들었다.

같은 시각.

기록보관소에선 여러 양피지를 펼쳐둔 진혁이 머리를 감싸쥐고 있었다.

‘이건 진짜 할 때마다 헷갈리네.’

수많은 기믹들을 알고 있는 고인물이라지만, 특히나 이 기록 보관소의 장대함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침착하게. 다시 한 번 점검해보자.

촤르륵.

[네크로노미콘의 1,152page가 펼쳐집니다.]

책장이 빠르게 넘어갔다.

-시작을 알리는 여명과 끝을 고하는 황혼이 한 자리에 머물지니.

-이를 찾기 위해서는 3개의 이정표가 필요하리라.

-하나로는 안 된다. 오롯이 3개의 빛이 모일 때에만 비로소 성운의 길이 열릴지니.

-순수하지 않은 것에 가장 순수한 것을 스며들게 하라.

수많은 단서들 사이에서 필요한 것들을 선별한다.

매번 입수 조건이 달라지는 탓에 골머리를 앓긴 했지만, 그래도 여러 번 하다 보니 요령을 좀 알게 되었다.

‘일단 필요한 양피지들을 다 찾은 것부터 반 이상은 온 셈이야.’

사실상 선별 작업이 제일 까다로운 일이었지만, 그걸 해치워뒀으니 나머지는 문장에 담긴 뜻만 잘 파악하면 되었다. 여명과 황혼,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양피지의 첫 번째 단어와 마지막 단어에 마력을 불어넣는다.

우우웅!

[고대결계 ‘문헌 해독’이 발동됩니다!]

[잃어버린 언어에 대한 이해도가 소폭 상승됩니다!]

‘갈트리안’ ‘아옴 트라’.

13번째 성운을 지배하는 ‘가 카모라’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놈의 특징은 ‘별자리 포식’.

알려지지 않은 외우주의 별자리들을 집어삼키며 파멸과 혼돈을 초래하는 놈이었다.

그리고 놈은 포식한 별자리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 놓았는데, 그걸 흔히 ‘죽음의 별자리’라 불렀다.

진혁이 13번째 성운이 의미하는 서재에 그 별자리를 그대로 옮겨다가 대입했다.

포옹! 포옹! 포포퐁!

물방울이 튀어오르는 맑은소리와 함께 별자리에 맞물리는 양피지들이 밝게 빛났다. 그리고 그 중에서 특이한 빛을 머금은 양피지 3개가 뽑혀나왔다.

[3개의 이정표를 습득했습니다!]

네크로노미콘을 쓴 이는 인간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욕망에 충실한 이기심을 보이면서도 타인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이타심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가식과 진심을 동시에 머금은 ‘눈물’이야말로 그 결정체라 일컬었지.

다시 말해 이 양피지에 눈물을 떨어뜨렸을 경우에 원하는 걸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긴, 인류를 대표하는 나야말로 가장 순수함하고 고결함을 가진 인간이긴 해.’

진혁이 허벅지를 꼬집으며 눈물을 쥐어짰다.

또옥.

양피지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런데.

“말도 안 돼.”

이해할 수 없게도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언가의 모략인가?

탑의 시스템이 억지를 부리는 걸까?

아니면, 눈물의 양이 좀 부족한가?

슬픈 생각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려도. 조금 더 펑펑 울고 나서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10분에 가깝게 이어진 고민과 여러 시도 끝에 결국 진혁은 플랜b를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

향한 곳은 열심히 단서를 찾고 있는 테레사 쪽.

“어라, 여긴 웬일이세요? 벌써 해야 할 걸 다 끝내신 거예요?”

테레사 머리 위로 큼지막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후우. 사실 말해야 할 게 있어요. 원래는 다 끝나고 말하려고 했는데, 지금 아니면 영영 하지 못할 것 같아서요.”

항상 하는 말이지만, 배우는 연기를 잘해야 한다.

감정을 담고 거짓된 상황마저 진실이라며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게 포인트.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테레사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네? 어떤 건데요?”

“그게… 마신화 했을 때 심장에 주입된 마기가 지나치게 강해서. 결국 해금의 쐐기를 억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치료나 회복도 불가능해서 길어야 일주일 정도만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진혁이 슬쩍 쐐기를 꽂았던 지점을 보여줬다.

실제로 여전히 핏줄에는 마기가 흐르는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네. 네? 아아….”

테레사가 그 자리에서 균형을 잃고 휘청였다.

“그럴・・・ 수가…. 지, 진짜예요? 정말로…요?”

그렁그렁,

어느새 눈가에 맑은 눈물이 가득 맺혔다.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유독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조금 과했나?’

그래. 나는 어쩌면 쓰레기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식적으로 울렸다간 순수함의 의미를 잃을지도 모르니 이게 유일한 방법이다.

재빨리 테레사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준 진혁이 한 마디 덧붙였다.

“…라는 류의 소설을 써서 팔면 나중에 잘 팔릴까요? 다시 BJ하기엔 그것도 좀 그렇고, 탑이 없어지면 제2의 직업을 찾긴 해야 해서 고민이었거든요. 어때요? 비련의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가.”

스릉.

순간, 검이 뽑혔다.

단언컨대 타락한 버전이 아닌 성녀 그대로의 인격에서 뽑은 거라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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