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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61화


861화. 플레이어 천유성

시련의 탑을 플레이하면서 정말로 수많은 일들을 겪었었다.

재밌고 즐겁고 슬프고 화나는 등, 정말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희로애락을 경험했었지. 하지만.

과거 게임이었을 때부터 현실이 된 지금까지.

이토록 분노에 이성이 잠식된 건 처음이었다.

과거 엘리스가 레비시타에게 공격당했을 때조차 ‘절망’까진 느끼지 않았으니까.

파츠츠츠,

유형화된 살기가 공간 전체를 잠식했다.

“형체도 남기지 않겠다.”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

감히.

엘리스를 죽게 만들고 테레사를 울게 만들다니.

이 대가는 목숨 하나 따위를 넘어도 아득히 넘겼다.

콰앙!

진혁이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단 하나의 목표만을 노린 금빛 섬광이 날카로운 궤적을 그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카아앙!

검과 검이 부딪쳤다.

목표물을 코앞에 두고 방해꾼이 개입한 것이다.

천유성의 극월이 은은한 광채를 흩뿌렸다.

“예선을 통과했으면 본선을 치러야지. 주최자를 공격하면 쓰나.”

과거의 천유성이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켜라 스토커. 지금 장난할 기분 아니야.”

“그건 힘들 것 같군. 나 역시 이때만을 위해 살아왔으니.”

콰아아앙!

마력과 마력이 폭발했다.

서로 반대쪽으로 튕겨나간 진혁과 천유성이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눴다.

“저 녀석이 방금 전 엘리스를 죽이고 테레사 씨를 마음대로 조종했어. 그런데도 넌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야? 함께 했던 동료가 저런 꼴이 됐는데도 정말로 괜찮은 거냐고!”

“검에 감정 따위가 담겨선 안 되는 법이지.”

“너… 정말 많이 변했구나.”

“그래야만 했다. 다른 것도 아닌 널 넘어서기 위해서.”

천유성이 양손으로 극월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우우우웅!

또 다시 천장을 넘어서 거대한 빛줄기가 별자리에 닿았다.

성단과 성운이 새로운 별의 탄생을 고대하듯 신비로운 음성을 토했다.

승자는 단 한 명뿐.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결전이 다가왔다.

“드디어 이때가 왔네. 정말이지. 길고 긴 시간이었어.”

과거의 천유성이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최고의 전장을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기다린 만큼 과실은 달콤하고 값지리라.

“어서 보여다오. 우리가 시련의 탑 최강의 고인물을 뛰어넘는 장면을!”

***

[고유능력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 능력.

수없이 많은 검들의 무덤이 펼쳐지며 ‘천마신검’의 초식이 죽어버린 세계의 마침표를 찍었다. 콰콰콰콰콰콰

괴랄하면서 패도적인 검로가 지면을 새로 그린다.

[고유능력 ‘검의 노래’가 발동됩니다!]

이에 맞서 펼쳐진 건 마찬가지로 검성이 검성으로 존재할 수 있게 만든 능력이었다.

카가가가각!

쪼개진 검의 파편들이 무수히 흩날리며 살기 어린 소음을 자아냈다.

더 이상 검에서 들리는 노랫소리는 아름답지 않다.

끔찍하게 일그러지고 고통받는.

오롯이 상대를 베기 위한 노래다.

카앙! 카카캉! 투쾅!

1합. 2합. 3합.

합과 합으로 이어지는 검들은 또 하나의 위대한 초식을 만들어냈다. 눈으로 쫓을 수조차 없는 세월과 경험의 절정이 녹아 있는 광경이다. 

콰아아앙!

승부를 가르지 못한 두 사람이 각기 반대 방향으로 튕겨나갔다.

・・・욱씬!

저릿!

격돌이 끝난 지 몇 초가 지났지만, 여전히 검 끝에 미미한 진동이 남아 있다.

마치 여운을 즐기듯, 조용히 음미하던 천유성이 입을 열었다.

“이번이 몇 번째 대결인지 기억하나?”

“젠장 이 상황이 되면서도 여전히 그놈의 대결 타령이냐? 100번은 넘었겠지.”

“시련의 탑이 처음 나타나고 했던 대결이 138번째였다. 그 뒤로 몇 번의 정식 대결과 비공식 대련이 있었고.”

이렇게 말하니 조금 기억나려고 한다.

타락한 자들의 회랑.

거기서 처음 만나서 일방적으로 박살 냈었지.

기고만장해하다가 패배 후에 잔뜩 풀이 죽어버렸던 게 떠오른다.

이제 보니 참 그것도 추억이네.

“티격태격하긴 했어도 다음 승부를 기약하면서 우리의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었….”

“너와 내가 승부를 벌이는 건 이번이 143번째다. 그리고 마지막 대결이 되겠지. 나의 승리로모든 게 끝날 테니.”

천유성의 선언과 함께, 소중했던 추억이 단번에 끊어졌다.

하여간 저 자식은 예나 지금이나 눈치 없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래도 이 한결같은 놈 때문에 분노가 조금은 갈무리됐다.

냉정하게 판단하고 차분하게 싸워야 한다.

감정이 지배된 상태에서 이길 수 있는 놈들이 아니니까.

그때였다.

파츠츠…!

극월의 칼날을 타고 피어오르는 푸른 광휘.

평범한 강기가 아니다.

엘더갓의 숨통마저 끊을 수 있는 정수가 그대로 구현화 되어 있었다.

[고유성창 ‘백야(白夜)’가 발동됩니다!]

새하얗게 물드는 세계.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천유성의 신형이 사라졌다.

카아아앙!

진혁이 본능적으로 목덜미를 방어했다.

검마극일신 제1식.

‘진홍의 흑련’

단순한 일검이 아니다.

첫 번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천유성의 극월에서 나오는 검강의 크기가 몇십 배로 거대해졌다.

[고인물류 ‘청화-결(結)이 발동됩니다!]

퍼어어엉!

여명의 검에 황금빛과 푸른빛이 섞인 화염이 솟구쳤다.

검로를 모조리 지워버리는 거대한 불꽃 기둥.

눈발 사이로 스며 들어간 진혁이 ‘음살’을 통해 빠르게 이동했다.

최대한 크게 돌아서. 시야에서 벗어난 채 뒤를 잡는다.

그런데.

“상쇄시킨 뒤 사각에서 급습을 하는 게 네놈의 특기였지.”

뒤통수를 날려버리기 바로 직전, 천유성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런 말을 내뱉었다.

순간.

피-잉!

시간차를 두고 날아온 건 암기였다.

갈댓잎.

이걸 표창처럼 날린 것이다.

그냥 겉멋으로만 보기엔 잎에 실린 내기가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지간한 방어는 그냥 뚫린다.

진혁이 ‘풍신’과 ‘뇌신’을 사용해 만들어낸 제3의 팔로 방어했다.

콰아앙!

갈댓잎이 번개와 바람으로 이루어진 팔뚝에 절반 가까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예상보다 적의 반격이 강하게 나오거나 뜻밖에 상황이 펼쳐졌을 때 10번 중에 8번 빈도로 3시 방향으로 도망치는 버릇이 있다.” 

툭.

진혁이 새롭게 자리를 잡은 곳엔 천유성의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백야를 발동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천유성의 독문무공.

백야일천검.

제1식 ‘설혼’

파파팟!

내리는 눈송이가 갈라졌다.

두 토막이 아니라.

32개로 나뉘어진 눈송이는 순식간에 허공에서 증발해버렸다.

예전에도 참격의 수가 엄청났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무려 16배나 많은 참격이 쏟아졌다.

전부 피하는 건 무리고.

모조리 쳐내야 한다.

콱!

단검을 역수로 움켜쥔 진혁이 ‘천마신검’의 초식을 사용하려 했다.

모든 궤적을 읽고, 모든 참격의 크기를 가늠해서 그에 맞는 숫자의 검로를 구현한다.

실제 천마가 오더라도 재현이 어려운 곡예의 극치였다.

콰아아앙!

둘 사이에 칼날로 이루어진 폭발이 일어났다.

지금이다.

폭발로 시야가 가려진 이때 ‘다운 폴’을 사용해 하나의 유성이 되어 저 이름뿐인 유성을 산산조각 내 버릴 시간이었다.

마력을 재배열하고 ‘세계의 기억’에서 능력을 불러온다.

“패턴 11-B. ‘하늘’. 역시나 ‘다운 폴’을 쓸 생각이었던 거냐.”

마력이 채 배열되기도 전에 천유성의 2식이 하늘로 향했다.

백야일천검.

제2식 ‘벼락’

내려친다.

검이 한 줄기 벼락이 되어 ‘다운 폴’이 시작되는 지점 그 자체를 공격했다. 파치칙!

번개로 인해 마력의 구조가 붕괴되었다.

“큭! 진짜 연구 더럽게도 많이 했네.”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다.

‘내가 즐겨 쓰는 패턴을 전부 암기해 반 호흡씩 앞서가고 있어.’

최악인 점은 그걸 가능하게 할 실력과 경험 역시 완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미 눈앞에는 백야일천검의 10번째 초식이 그 형을 갖추었다.

백야일천검.

제10식.

‘나선역검(逆劍).

‘칼날이・・・ 없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제부터는 처음 보는 영역이다.

그렇기에. 최강의 적을 상대한다고 상정하고.

고인물류.

[‘층계합일’- ‘정복자의 시야’가 발동됩니다!]

들어간다.

미지의 영역으로,

진혁이 새롭고도 기묘한 기분을 느끼며 검에 몸을 맡겼다.

카아앙!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섬광.

이에 맞서 질풍을 부르는 단검의 찌르기가 한 줄기 빛으로 변했다.

파아아앙!

공간을 꿰뚫은 하얀 송곳니.

천유성의 검이 태산처럼 커지며 이를 정면에서 받아냈다.

투콰아앙!

날붙이와 날붙이의 격돌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굉음이다.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수백 조각으로 갈라져 떨어지기 시작했다.

불이 붙는다.

검격에 의해 부서진 유성우는 이제 갓 이름이 지어진 신성들의 몰락이기도 했다. 

“후우우….”

진혁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에 천유성도 조금 짧게 숨을 내쉬었다.

열다섯 걸음.

그 간격은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간격이었다.

***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누군가가 보기엔 별로 대수롭지 않은.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

그렇기에 모두에게 이해받지 못했고.

조금은 자신의 속내를 숨기며 살다 보니 그것이 나쁘지만은 않은 상황이 됐다.

고인물 코퍼레이션.

어느새 옆에 나란히 하는 동료들이 생겨버린 탓이다.

하루하루.

꿈은 현실에서 지워졌다.

그런데.

똑같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해하는 이를 만나게 되었다.

자기 자신.

탑의 망령이 되어 부유하며 그 집념을 통해 승화시킨 또 다른 고인물을

-와라. 우리가 바라던 최고의 무대에서 모든 것을 갖추고 온 최강의 상대를 꺾게 해줄 테니.

50층.

모든 등반자들이 염원하고 또 염원하던 곳에서 칼을 맞대게 해주겠노라고.

또한, 상대의 기술을 넘어 공허 그 자체조차도 벨 수 있는 검을 알려주겠노라고 했다. 진부하게도.

거기에 거절이라는 선택지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천유성의 포효소리와 함께 서로의 간격이 좁혀졌다.

열네 걸음.

“너의 패턴. 너의 습관. 너의 특기. 모두 다! 하나도 빠짐없이 외우고 또 익혔다!”

카아앙!

검로? 초식?

수천 개의 변칙과 허초들이 난무했지만, 천유성은 그 모든 것들을 열 수. 아니, 이십 수 앞에서 읽어냈다.

열 걸음.

선택지가 2배로 늘어나는 간격이다.

줄기줄기 솟구친 검강은 피부를 찢고 그 속살까지 가를 수 있었다.

“너의 동작 하나를 보며 밤을 지새웠고. 네가 던진 농담 하나에 무슨 의미가 있을지 칠 주야를 고민에 빠지곤 했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하지만, 이 경우엔 자신 따윈 오래전에 버렸고 오직 상대의 영혼마저 탐닉하기 위해 쏟아부었다.

태워버린 것이다.

마지막 잔불뿐 아니라, 나뭇가지, 그 아래 깔린 흙.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패배에 빠진 자신까지도. 그래야만

그래야만 닿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해야만 넘어설 수 있을 테니까.

아홉 걸음.

한 자릿수 대의 간격.

허초가 사라지고 오직 살초만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극월이 잔혹한 달의 노래를 읊었다.

띠잉!

가야금을 튕기듯. 공중에서 보이지 않는 실들을 끊으며 궤도를 틀은 마검이 종횡무진 춤을 추었다.

“자 어떠냐? 이래도. 아직도 내 패배가 당연시되어야 하는 건가? 나의 노력은 이번에도 새벽녘 이슬처럼 스러져 가야 하는 거냔 말이다!”

“매번 하는 말인 것 같긴 한데. 싸울 땐 입 닫고 싸워라. 혀 깨문다 그러다가.”

진혁 역시 천유성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몇 번 만에 새로운 검의 특성을 파악했다.

‘세 번째와 여덟 번째가 진짜야.’

튕기듯 오는 것들은 전부 틈을 만들기 위해 마력을 10%씩만 담고 있다.

그래야 가벼우면서 유연하기도 했고,

한 꺼풀 한 꺼풀.

실을 벗겨내며 호흡할 틈을 찾아낸다.

천유성 또한 이쪽의 호흡을 파악하고 그걸 앞지르며 역이용했지만,

‘나 역시 녀석 특유의 호흡을 알고 있어.’

그건 아무리 바꾸려 해도 바꿀 수 없는 지문 같은 거다.

강화되고 변형될지언정 근본 그 자체는 영원히 본인의 검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지금처럼.

진혁이 완벽한 파훼식을 펼치며 천유성의 극을 위로 튕겨냈다.

흠잡을 데 없는 빈틈 찌르기였다.

그래.

분명 그럴진대.

투콰앙! 

가슴에 끔찍한 격통이 찾아왔다.

“쿨럭. 커억… 퉤! 검성이라는 게 쓰라는 검은 안 쓰고 검집을 휘두르고 있네.”

갈비뼈를 당한 진혁이 입에 고인 피를 뱉어냈다.

열 번 뱉을 숨을 한 번에 내뱉어버린 게. 아무래도 제대로 맞은 것 같다.

“이길 수만 있다면 검집이 아니라 이빨도 쓸 수 있다.”

천유성 역시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회심의 카운터는 이마에 고속도로 한 줄을 낸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뜻이겠지.

저벅.

먼저 간격을 좁힌 건 천유성이었다.

이제 네 걸음.

1초란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알 수 있는 거리다.

목숨을 끊을 수 있는 간격은 이미 한참 전에 접어들었고, 지금은 누구의 실수가 아주 미세하게라도 더 큰지를 논하는 간격이었으니까. 백야일섬검 ‘승천현검’

검마극일신 ‘진홍의 흑련’

합쳐진다.

두 개의 초식이 하나의 극의를 향해.

[이검일합 ‘오의’가 발동됩니다!]

혼자서 두 영역을 한 개의 검로로 구현할 수 있는 경지.

천유성은 검성이 아니었다.

이미 그 자체가 하나의 검이었으니.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만을 위해 이 자리에 왔다.”

쿠구구구구!

승천하는 검의 운무.

날카롭게 벼려진 기운은 별자리들의 항로마저 바꿔버렸다.

“헌데,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온 너에게 내가 패배할 수 있는 가능성 따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 절규와 같은 질문에.

아무리 말해주고 설득해도 해갈되지 않을 한 플레이어의 탄식에.

“유성아.”

진혁이 조용히 그 이름을 불렀다.

“답해라.”

“유성아.”

“내 이름이나 부르라고 이 시간을 기다려 온 게 아니란 말이다! 왜 네놈이 언제나 내 위에 서 있고, 지금까지도 그걸 당연시 여겼는지. 그걸 답하란 말이다!”

그러거나 말았거나,

진혁이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매번 귀찮고 싫다고 말했었지만, 사실 시련의 탑에서 유일하게 남아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

탑이 텅 비어가고 모든 게 사라질 무렵, 어느 순간부터 이 스토커가 마냥 성가시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플레이어가 없어졌을 땐 솔직히 말해 몇 번인가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뒤를 힐끔거리며 바라보기도 했었지.

게다가 만년 2등은 그리 나쁜 게 아니다.

모두가 떠나버린 탑에서 남아 있는 사람이 단 두 명밖에 없었거든.

아무리 강하더라도 1등과 2등밖에 될 수 없는 쓸쓸한 세계.

“누가 하늘이고 누가 땅이면 어떠냐. 누가 1등이고 누가 2등이면 또 어떻고.”

그러니.

어찌 보면 너무나 멀어 보여도.

하늘과 땅뿐인 천지(天地)에 우열 따위는 없는 거다.

이미 지금의 간격이 넘치고도 충분한 증거가 되어 주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여전히 서 있다.

상처 없이 흔들림 없이. 여전히 고고하게.

서로를 마주 보면서.

저벅.

이번엔 진혁이 먼저 한 걸음 다가갔다.

둘 사이의 간격은 이제 두 걸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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